몸도 마음도 사업도, 웃으면 풀립니다
닥터 스마일
웃음은 감기보다 전염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 전염성이 강하다는 웃음이 줄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웃음을 찾아 TV 오락 프로그램에 빠지거나 웃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웃으십니까.
지난해 말 SK 브랜드 관리실이 20~50세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웃음에 관한 라이프 스타일을 조사했다. 응답자들은 하루 평균 열 번쯤 웃고, 한 번 웃을 때 약 8.6초 동안 웃는다고 했다. 그들이 하루 평균 웃는 시간은 90초 정도였다. 그나마 500명 중 9명(1.8%)은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들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평생 웃는 시간이 한 달도 채 안 되는 셈이다.그들도 어렸을 때는 훨씬 많이 웃었을 게 분명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청소년기까지는 작은 일에도 쉽게 웃는다. 갓난아이 때는 자면서도 미소를 짓는 배냇짓을 하고, 별 의미 없는 ‘도리도리 짝짜꿍’에도 자지러지듯 웃어댄다. 걸음마를 하다가 넘어지면서도 헤벌쭉 웃기도 했을 게다.
인간은 왜 웃는 것일까.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제기된 웃음에 관한 이론은 현재 100여 가지라고 한다. 웃음의 종류만큼이나 많아 보인다.
플라톤은 자신의 덕(德)을 실제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무지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나 해를 끼치지 않는 실수나 결점이 사람의 웃음을 유발한다고 봤다. 이러한 관점은 다른 사람의 단점과 불완전성을 보고 자신의 우월성을 느낄 때 웃는다는 홉스의 우월성 이론으로 이어진다.
반면,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일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갑자기 파악했을 때에 웃음이 생긴다고 본다든지(쇼펜하우어), 긴장해 있을 때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 갑자기 긴장이 풀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표현이 웃음이라고 보는 시각(칸트)도 있다. 또 프로이트는 웃음을 자아내는 기지·익살·유머 등의 심리적 과정을 심적 에너지의 억제와 소비 등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인간의 웃는 능력은 나이가 들면 점점 무뎌진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 이르면 옆에서 아무리 웃겨줘도 쉽게 웃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치매환자는 치매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속도가 빨라지는 시기와 웃음을 잃기 시작한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을 웃겨주고 웃는 법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들이 ‘웃음치료’ ‘웃음요법’ ‘행복트레이닝’ 등 다양한 이름으로 관심을 끈다. 국내에서는 한광일 한국웃음센터소장이 2004년 2박3일의 교육을 통해 30명의 웃음치료사를 배출하기 시작한 이래, 웃음치료교육을 실시하고 관련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만 해도 레크리에이션 단체에서부터 종교 단체에 이르기까지 30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모두 민간 자격증으로, 일부에서는 부실한 교육내용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할 정도다. 웃음요가·웃음태교·웃음명상 등 접목된 분야도 다양하다. 최근 전국의 대학병원과 종합병원들뿐 아니라 보건소나 초·중·고에서도 여러 질환의 환자나 비만관리 등을 위해 웃음요법이 도입돼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2006년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에는 유머웃음치료 전공 석사 과정이 개설되기도 했다.
웃음은 그 자체로 훌륭한 운동이다. 또 면역력을 높여 질병을 막아주고,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하는 ‘명약’이다. 먼 조상들도 경험적으로 그걸 알고 있었다. 서울대 서대석 명예교수(국문학)는 『삼국유사』5권 ‘경흥우성(憬興遇聖)’조에도 이미 그런 내용이 언급돼 있다(2005년 한국웃음문화학회 창립총회 대회사)고 말한다. 경흥국사가 병이 들었는데 한 여승이 찾아와 대사의 병은 근심에서 난 것이니 웃음으로 치료해야 한다며 우스운 모양을 지어 국사를 웃게 해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도 웃음을 ‘소약(笑藥)’ 또는 ‘소제(笑劑)’라 하고, 웃음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소료(笑療)’라고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1979년 미국 UCLA의 노먼 커즌스 박사가 쓴 『질병의 해부』라는 책이 웃음의 의학적 효과에 대한 의료계의 관심을 촉발했다. 이후 일본 오사카 의대나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웃음은 암세포를 죽이는 NK세포(자연살상세포)를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의학적 효과뿐일까. 한동안 유행했던 ‘펀(fun)경영’도 웃음의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웃음이 안 나오면 억지로라도 과거의 재미있었던 일 등을 떠올리며 웃어보라고 권한다. 즐거워서 웃기도 하지만 웃다 보면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웃음은 상대방의 닫힌 마음도 열게 만드는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게다가 돈도 들지 않는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그 옛말엔 충분한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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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 웃음회로서 명령, 40개 얼굴근육이 빚은 '종합예술'
웃음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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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미국 UCLA 대학병원의 프리드 박사는 만성 간질성 발작을 앓는 16세 소녀를 치료하기 위해 뇌검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뇌 좌측 전두엽의 직경 1인치 정도 되는 특정 부위를 전기로 자극하자 소녀가 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알았다. 주변의 상황이나 소녀의 감정이 어떤지는 관계가 없었다. 웃음의 강도와 시간은 오로지 전기자극의 세기에 따라 달라졌다. 자극이 약할 때 소녀는 미소 지었고, 강할 때는 즐겁게 웃으며 재잘댔다. 프리드 박사에 의해 가장 먼저 발견된 이 '웃음보' 연구결과는 네이처지에 발표된다.
뇌 속 변연계(대뇌반구의 안쪽과 밑면에 해당하는 부분)를 자극해도 웃음이 나온다. 변연계에 포함되는 해마와 편도·시상은 친근함이나 사랑·행복·쾌감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뇌 속의 또 다른 웃음 창고다. 특히 이 중 시상하부의 가운데 부분은 조절할 수 없이 터지는 큰 웃음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웃음의 과학적 메커니즘은 병적으로 웃는 환자를 연구하면서 많은 것이 밝혀졌다. 서울대 신경정신과 강도형(37) 전문의는 “웃음은 전두엽이나 변연계같이 뇌의 특정 부위 한두 곳에서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뇌 속의 여러 영역이 함께 작용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 우리는 출연자의 행동이나 말장난 등을 눈과 귀로 듣고 해석한다.
만약 우습다고 판단한다면 안면 근육들이 움직이고 입을 벌려 소리를 내게 된다. 배를 잡고 웃으면 복근뿐 아니라 횡격막까지 움직인다. 심하게 웃으면 눈물까지 난다. 이때 우리 뇌 속에 감각신호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시각ㆍ청각피질, 말의 뜻과 소리를 구분해내는 언어영역, 몸의 무의식적인 생리작용을 관장하는 뇌간이 복합적으로 반응해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강 전문의는 "현재까지는 웃음을 표현하는 회로가 우리 뇌에 두 가지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했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웃을 때 활성화되는 회로다. 이 회로는 의지와 상관없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작동한다. 다른 회로는 의지에 의해 웃음을 조절하는 회로다. 두 회로는 뇌의 가장 아랫부분에서 척수와 곧바로 연결되는 배측 연수에서 만난다. 이곳은 웃음 조절센터 역할을 한다. 두 회로는 서로 작용하며 웃음의 강도와 형태를 조절한다. 평소 자연스럽게 웃다가도 카메라 앞에서 웃으라고 하면 곧 바로 어색해지는 것도 웃음 조절센터에서 의식적으로 웃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뇌의 웃음조절센터에서 웃음의 형태나 강도가 정해지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얼굴의 근육이다. 사람 얼굴의 근육은 ‘피부 밑 근육’이고 이것이 얼굴의 표정을 만든다. 네발로 걷는 동물은 온몸에 이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다. 사람은 얼굴과 목 근처에만 이 근육이 발달했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퇴화했다.
사람의 얼굴 근육은 크게 눈과 입 주변의 근육으로 나눈다. 웃을 때 눈과 입 주변 근육을 많이 쓰지만, 특히 입 주변 근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입 주변 근육은 윗입술을 올려주는 근육(위입술올림근ㆍ위입술콧방울올림근ㆍ작은광대근), 입꼬리 주변 근육(큰광대근ㆍ입꼬리당김근ㆍ입꼬리내림근), 아래입술내림근 등 세 가지가 있다. 이런 다양한 입 주변 근육 덕에 여러 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다.
다른 동물도 입 주변에 근육이 있지만 주로 음식을 씹는 역할만 하고, 씹기에 관여하는 위아래 턱이 사람보다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따라서 사람에 비해 입주위 근육의 원활한 운동이 부자연스러워지며 다양한 표정을 짓기 힘들게 된다. 이에 비해 사람의 입 주변 근육은 다른 동물에 비해 입주위근육이 수직적으로, 상대적으로 짧게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보다 운동이 수월해 진다. 또 음식을 씹는 운동도 하지만 주로 말을 하는 등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에 표정이 다양해질 수 있다.
연세대 치과대학 김희진(44) 교수는“얼굴에는 수십 개의 근육이 있는데 어떤 근육이라도 혼자서 움직이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근육 몇 개가 웃음을 관장한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대략 80개 근육 중 40여개가 웃는 데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눈을 찡그리면 눈 주변 근육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볼과 입 주변의 근육까지 따라 올라간다. 또 사람마다 웃는 모습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진다. 그때마다 움직이는 근육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의도적인 웃음은 눈이나 입 한 부위의 근육만을 사용한다. 웃음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눈ㆍ코ㆍ입 주변 근육이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자연스러움은 사라진다.
김 교수는 한국사람 웃음이 서양인에 비해 자연스럽지 못한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볼굴대’의 위치다. 입 주변의 수많은 근육이 입꼬리 주변 한 점에서 만나는데 그곳이 볼굴대다. 볼굴대는 입 주변 근육 움직임에 큰 영향을 준다. 특히 크고 환한 웃음을 위해 필요한 윗입술을 올리는 근육과 함께 움직인다.
그런데 한국인의 볼굴대 위치는 입꼬리를 기준으로 아래에 위치한다. 반면 서양인은 입꼬리와 동일선상에 있거나 더 위쪽에 위치한다. 그 때문에 한국인의 웃음은 서양인에 비해 작고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평균적으로 한국인이 서양인에 비해 얼굴에 지방이 많다. 그래서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이 표현되지 않아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인은 서양인에 비해 입이 작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이 큰 서양인보다 입을 이용한 표정이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지막 이유다. 김 교수는 “해부학적으로 보면 웃음에 있어서 한국사람이 서양인에 비해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도움말 강도형(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희진(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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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아이들 까투리 웃음에 선생님은 '썩소'
웃음의 표현
| 중앙SUNDAY 제139호 | 20091108 입력
바람둥이의 웃음소리는 어떨까. ‘걸걸걸(Girl Girl Girl)’이란다. 남자 바람둥이는 ‘허허허(her her her)’, 여자 바람둥이는 ‘히히히(he he he)’라고 웃기도 한단다. 또 살인마는 ‘킬킬킬(kill kill kill)’, 요리사는 ‘쿡쿡쿡(cook cook cook)’, 축구선수는 ‘킥킥킥(kick kick kick)’, 수사반장은 ‘후후후(who who who)’ 그리고 어린애들은 ‘키득키득키득(kid kid kid)’하고 웃는단다. 표음문자인 한글의 특성을 이용해 우리말과 영어를 절묘하게 결합한 유머다.
언어학자들은 한국어의 특성 중 하나로 의성어와 의태어가 풍부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웃음소리뿐 아니라 웃는 모습이나 방법을 표현한 단어도 순우리말과 한자어가 일상생활에서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웃음에 관한 단어의 수가 한국어는 100가지, 일본어가 34가지라는 분석도 있다. 그만큼 한국어엔 웃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먼저 순우리말 표현으로는 눈웃음·코웃음처럼 얼굴 부위와 결합하거나, 여우웃음(교활하고 간사스러운 웃음)·소웃음(웃음 같지 않는 웃음, 소는 웃을 줄 모름)·염소웃음(염소처럼 채신없이 웃는 웃음)같이 각 동물의 특징을 담은 단어들이 있다. ‘눈웃음을 살살 치다’처럼 연상어와 함께 미묘한 감정에 그에 맞는 표정이 절로 그려지는 표현들이다.
잔웃음·함박웃음 등은 웃음의 크기를 보여주는 우리말들이다. 여기에 북한에서는 간살웃음(간사스럽게 몹시 아양을 떨면서 웃는 웃음)·데설웃음(시원치 않게 웃는 웃음)·까투리웃음(경망스럽게 키득거리며 웃는 웃음) 등의 표현도 사용된다고 한다.
‘소(笑)’와 결합한 한자 표현도 아직 널리 쓰인다.
미소(微笑: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웃음)·괴소(怪笑: 괴상한 소리로 웃는 웃음)·굉소(轟笑: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처럼 크게 웃는 웃음)·폭소(爆笑: 폭발하듯 갑자기 웃는 웃음)·홍소(洪笑: 크게 입을 벌리고 떠들썩하게 웃는 웃음)·가가대소(呵呵大笑: 대단히 우스워서 큰 소리를 치면서 깔깔 웃음) 등은 웃음소리와 관련된 단어들이다. 또 웃는 얼굴을 기준으로 함소(含笑: 웃음을 머금고 조용히 웃는 모습)·빈소(嚬笑: 찡그리고 웃는 모습)·교소(嬌笑: 요염한 얼굴로 웃는 웃음)·파안대소(破顔大笑: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크게 웃는 웃음) 등이 있다. 포복절도(抱腹絶倒: 배를 움켜 쥐고 숨이 끊어질 정도로 웃는 웃음)·요절복통(腰折腹痛: 배가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웃는 웃음) 등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웃는 모습을 표현한다.
웃을 일이 어디 기분 좋을 때뿐일까. 비웃음도 있고 쓴웃음도 있다. 한자어로 도소(滔笑)·조소(嘲笑)·비소(鼻笑)·암소(暗笑) 등이 그런 때 쓰는 표현들이다. 또 인간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웃는 미고소(微苦笑)·습소(濕笑)도 있고 기가 막힐 때는 실소(失笑: 알지 못하는 사이에 툭 터져 나오거나 참아야 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웃음)나 앙천대소(仰天大笑: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우러르며 웃는 웃음, 어이가 없어하는 웃음)를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시니컬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요즘 젊은 층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신조어 ‘썩소(썩은 웃음의 준말, 입 한쪽 꼬리만 올라간 모습)’도 언젠가 국어사전에 오를지 모를 일이다.
사실 전 국민의 영어 공부 열풍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관련된 영어 표현은 laugh와 smile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 기회에 깔깔거리거나 킬킬대며 크게 웃는 것을 말하는 chuckle이나 giggle,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 쓰는 grin, 소리 죽여 웃는 모습인 titter, 실없이 크게 웃는 guffaw 등의 단어도 알아두면 어떨까.
기분 좋은 웃음은 이왕이면 많이 웃을수록 좋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웃으면 복이 온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를 비롯해 ‘죽 사발이 웃음이요, 밥 사발이 눈물이라(먹을 것이 있어도 근심과 걱정 속에 지내는 것보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걱정 없이 사는 편이 낫다)’ ‘한 잔 술에 눈물 나고 반 잔 술에 웃음 난다(사람을 사귈 때 서로 대하는 태도나 방법에 따라 서운해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등은 그런 진리를 담은 속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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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나도록 웃다 보면 통증·스트레스가 확 날아가요”
웃음이 명약 1 서울대병원 웃음치료교실 가보니
누구나 웃음이 건강에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의학적 효과가 충분히 검증된 것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지에 실린 연구 논문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의학계가 치료법으로서의 웃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고, 측정 기준을 포함한 연구 방법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웃음의 강도나 빈도, 시간 등을 표준화해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한계가 있지만 “웃음이 명약”이라며 웃음전도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억지로라도 실컷 웃다 보니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다는 그들은 오늘도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는다. “나 왜 이렇게 예쁜 거니…” “거참 멋있는 양반이군…” 하면서.
누가 웃음치료 강사고 누가 말기 암환자 수강생일까. 이임선(왼쪽) 간호사와 정근숙씨의 환한 미소엔 진심이 담겨 있다. 최정동 기자 |
“어머, 오늘은 화장까지 곱게 하시고 오셨네요. 호호호호.”
“흐흐, 가발까지 신경 써서 쓰고 왔어요. 이거 100만원짜리 가발이야. 하하하. 친구 좀 만나고 왔거든요.”말끝마다 웃음이 터진다.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깔깔댄다는 여학생들 같다.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대병원 웃음치료교실에서 만나는 그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한때 우울증까지 앓았던 40대의 웃음치료 간호사와 “임종 준비를 하라”는 선고까지 받았던 50대의 암환자. 3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도 그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간단한 웃음운동 동작을 보여 달라고 청하자 그들은 서슴없이 음악에 맞춰 지렁이처럼 몸을 좌우, 위아래로 흔든다. 서로 손뼉 치거나 간지럼 태우듯 서로의 몸을 마사지해주며 쉴 새 없이 웃어댔다. 당황한 사진기자가 멈칫하며 셔터를 못 누를 정도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표정엔 결코 꾸밈이 없었다. ‘국내 최초의 웃음치료 간호사’로 통하는 이임선(45) 간호사는 “정말 유치해 보이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다들 어렸을 땐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행동에 웃었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얼굴 근육도 굳고 웬만한 자극에도 둔해지면서 쉽게 웃는 법을 잊어버린 거예요. 자꾸 웃는 연습을 하다 보면 다시 아주 유치해 보이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웃게 되죠”하고 말했다. 실컷 온몸으로 웃고 난 그들의 얼굴엔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정근숙(53)씨는 지난해 4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이미 간까지 전이돼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담배나 술을 전혀 하지 않았던 그에겐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의사는 길어야 1년 정도 살 거라고 했다. 다행히 항암치료의 효과가 좋았다. 가까스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그해 8월 정씨는 인터넷을 통해 웃음치료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침 강남구청에서 무료로 하는 웃음치료교실이 있었다. 그곳을 처음 찾았을 땐 그도 억지로 웃는 게 어색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세 번 가니까 터지더라고요, 웃음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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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에 맛을 들인 정씨는 지난해 12월 서울대병원의 웃음치료교실을 찾았다. 이 간호사가 2005년 유방암 환자 8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곳이다. 매주 금요일에서 최근엔 화요일로 시간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인기다.정씨는 “여기서 한 시간 동안 한바탕 웃고 가면 한 주가 개운하다”고 했다. “올 2월엔 암이 뼈까지 전이됐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런데 더 신기한 건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웃음치료 효과가 큰 것 같아요.” 이 간호사는 “웃을 때 나오는 엔도르핀이나 엔케팔린 등의 호르몬은 모르핀보다 진통효과가 200~300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돼 절제수술을 받았던 박화일(70)씨도 웃음치료교실 모범생이다. 여성에 비해 웃음에 인색하게 살아온 남성들은 웃음치료교실에 나오는 이도 적은 편이다. 박씨는 “2005년 간암 수술을 받고 난 뒤 이 간호사님의 ‘웃음치료약’ 덕분에 예정보다 사흘이나 일찍 퇴원을 하게 되면서 효과를 느끼고 참여하기 시작했다”며 “잘 웃으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도 즐겁게 치료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간호사도 처음엔 ‘환자’로서 웃음을 배웠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늘 찡그린 얼굴을 하고 살았어요. 가벼운 우울증까지 앓았죠. 그러다가 5년 전 우연히 2박3일간의 웃음치료교실에 참가하게 됐어요. 의식적으로 웃기 시작하면서 인상이 달라지고 성격도 달라지더라고요.”
이 간호사는 자신이 경험한 효과를 환자들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민간단체들이 발급하는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모자라 가정의학과나 정신과 등 주변 의료진에 자문해 다양한 질병과 환자들의 특성에 맞는 체계적인 기법을 스스로 개발했다.
이들은 집에서도 수시로 크게 웃는다. 혼자 거울을 보면서도 웃고, 잠자려고 누워서도 웃는다. 매일 등산을 다니는 정씨의 경우 산을 오르다 아무도 없을 때도 큰 소리로 웃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누가 지나가면 얼른 휴대전화를 귀에 대요. 통화하면서 웃은 척하는 거죠.”
이 간호사는 “웃으면 침이 많이 고여 소화도 잘 되고 혈액 순환이 잘 돼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도 좋다”며 “노인들에겐 특히 좋은 보약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웃음치료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며 “암이나 우울증·치매 등 이미 질환이 있다면 정상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웃음운동은 그 치료효과를 극대화시켜 주는 보조적인 방법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비만으로 고민하던 이주희(상인천여중 3년)양 모녀는 웃음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톡톡히 본 경우다. 주희양의 학교에서 지난해 2학기에 학생 비만관리를 위해 도입한 웃음치료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매일 점심시간과 5교시 수업 사이 5분간, 방송을 통해 보건교사의 지도에 따라 선생님과 학생들이 간단한 율동과 게임을 하며 실컷 웃게 한 것이다. 주희양은 “다이어트를 위해선 물도 많이 마셔야 한다더라”며 생수병을 들고 다녔다.
그러나 “물을 너무 많이 마셔 토할 것 같다”고 불평을 하던 주희양이 웃음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한 뒤 태도가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하루 2L의 물을 마시는 일이 거뜬해진 것이다. 주희양은 집에서도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혼자 틈나는 대로 땀이 날 정도로 크게 웃었다. “실컷 웃고 나면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전에는 살 때문에 적게 먹거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짜증부터 났는데, 그런 게 없어지더라고요.”
정말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한번 살이 빠지자 기분이 좋아 더 신나게 웃었다. 지난 4월엔 웃음요법을 보다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는 방과후 학교의 ‘건강 지킴이’ 반에도 들어갔다. 한 시간씩 매주 두세 번 실컷 웃고 왔다. 살이 빠지니 외모에 자신감도 생겼다.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좀 더 당당하게 친구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5개월 동안 주희양의 몸무게는 10㎏이 줄었다.
주희양의 어머니 고영남(47·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씨도 지난 4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웃음치료 연수를 받았다. 맞벌이 주부였던 고씨도 70㎏을 넘어선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 화장을 할 때나 혼자 집에 있을 때 전신 거울 앞에서 30분씩 박수를 쳐가며 크게 웃어댔다. “남이 봤다면 아마 미쳤느냐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웃음이 웃음을 낳더라고요. 일 때문에 기분이 푹 가라앉아 있다가도 일부러 막 웃다 보면 전에 웃겼던 일들이 연이어 생각이 나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싹 풀리면서 일에도 자신감이 생기고 식사 조절도 쉬워져요.” 역시 10㎏을 뺐다는 고씨는 이제 확실한 웃음 전도사가 됐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상인천여중의 서혜영 보건교사는 “요즘 청소년들은 우울증이나 비만 문제가 제법 심각하다”며 “웃음은 스트레스 등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외모나 태도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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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웃는 화상 환자들, 흉터 회복 더 빠르다"
웃음이 명약 2 다양한 치료효과들
환자와 보호자들은 웃음치료를 통해 웃음과 희망을 함께 배운다. [서울대병원 제공] | |
7일 오전 10시 서울 연건동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임상강의실. 대한웃음임상학회의 창립 총회장은 마치 오락 프로그램 녹화장 같은 분위기다. 공동회장인 임정남 광주시 보건소장이나 격려사를 위해 참석한 대한간호사협회 김용순 부회장 등이 연단에 오를 때마다 총회에 참석한 60여 명의 회원들은 아바의 노래 ‘맘마미아’에 맞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대구보건대 사회복지학과 배기효 교수는 튀어나온 눈알 모양의 코믹 안경을 쓰고 축사를 해 참석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인들이 근거 중심의 임상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웃음의 효과를 입증한다’는 창립 취지에 맞게 학술 발표만큼은 진지하게 진행됐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의 수간호사 김경자씨는 재활의학과 의료진과 공동으로 연구한 ‘웃음치료가 안면부 화상 흉터 회복에 미치는 효과’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중증 화상 환자들에게 웃음치료를 적용한 결과 미세혈류량과 색소 침착도·피부 탄력도 등의 회복 척도가 의미 있게 호전됐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계가 웃음의 치료 효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9년부터다. 미국의 커즌스 박사가 저서 『질병의 해부(Anatomy of Illness)』를 통해 웃음이 인간의 신체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살핀 것이 시작이다. 특히 1989년 UCLA의 프리드 교수가 세계적인 과학 전문지 ‘네이처’를 통해 뇌에 웃음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힌 이래 스트레스와 유머, 웃음과 면역력 등의 관계를 밝힌 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간호사나 사회복지사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나마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3~4년이 채 되지 않는다. 국회 도서관에서 ‘웃음 치료’나 ‘웃음 요법’으로 검색 가능한 관련 논문은 10여 편 정도다. 노인의 스트레스 반응, 비행청소년의 분노 조절, 중년여성의 갱년기 증상, 혈액 투석 환자들의 삶의 질, 척추수술 환자의 통증 완화, 장애 부모의 정신건강, 암환자의 불안과 우울 등에 웃음 요법 혹은 웃음 치료가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웃음치료사들은 웃음 요법이 이미 특정 질환을 앓게 된 사람뿐 아니라 건강한 이들에게도 각종 질병에 대한 부작용 없는 최고의 예방약이라고 입을 모은다. 집에서 가족끼리 함께 간단히 해볼 수 있는 방법도 적지 않다. 제일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방법은 간지럼 태우기다. 가족끼리 함께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서로 간지럼을 태우면서 신나게 한바탕 웃는 것이다.
또 사랑의 박타기 웃음도 해볼 만하다. 먼저 두 사람씩 마주 앉아 적당한 크기의 수건 양쪽을 잡고 각자 머리를 덮어쓰듯 들어올린다. 그렇게 하면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는 10㎝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 이 상태에서 앞으로 한 번, 뒤로 한 번 당기면서 크게 웃음소리를 낸다. ‘아~하하하’ 하는 날숨 웃음과 ‘오~호호호’ 들숨 웃음으로 사랑의 박을 탄다. 웃으면서 뒤로 넘어갈 때 처음엔 등이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로 했다가, 익숙해지면 2단계로 좀 더 힘있게 서로 당겨서 교대로 등이 바닥에 닿게 한다.
또 노인이 있는 가정에서는 웃음 박수, 일명 치매예방웃음을 해보면 좋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자신의 허벅지 한 번, 상대의 손바닥 한 번, 자신의 허벅지 두 번, 상대방 손바닥 두 번 하는 식으로 9번까지 늘려가며 반복한다. 이때 박수의 수는 입이 아닌 웃음으로 헤아린다. 하,하, 하하, 하하, 하하하, 하하하, 이런 식이다. 웃음소리를 점점 더 크게 하고 속도까지 높여가면 효과는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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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바이러스, 여럿이 코미디 보면 더 많이 웃는다"
웃음을 만드는 사람 개그콘서트 김석현 PD
'개그콘서트'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코너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KBS 제공] |
“많이 바뀌었죠. 초창기만 해도 젊은 개그맨들이 신선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에, 이른바 ‘깔깔유머집’에 나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도 즐거워들 해주셨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코미디) 전문가죠. 예전에는 재밌어 했던 말장난이나 단순한 반전에 요즘은 ‘우’하고 야유가 나와요.”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연출자 김석현 PD의 말이다. 1999년 9월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 프로는 ‘콘서트’라는 참신한 형식과 함께 코미디의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10년 동안 이를 통해 배출된 유행어와 인기를 누린 코너·개그맨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자연히 이를 꾸준히 지켜본 시청자들의 눈높이 역시 만만치 않다.
김 PD는 9년 전 조연출 시절부터 개콘에 합류했던 이력이 있다. 그간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 터다. 그는 “요즘은 어설픈 신선함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암만 반짝여도 거기에 완성된 연기와 구성이 갖춰지지 않으면 안 돼요. 코미디도 장르로서 발전을 한 셈이죠. 방송을 보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다음 날 화제를 삼고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놀잇감을 원해요. 저희가 늘 하는 작업이 공감대 찾기예요.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소재를 찾아 이야깃거리와 놀잇감을 제공하는 것, 점점 더 여기에 집중하고 있죠.”
새로운 공감대의 발견이라는 점에서는 개콘에 최근 등장한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코너도 큰 화제다. 이 코너는 연애할 때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편의를 제공하는 세태를 ‘네 생일에는 명품가방/내 생일에는 십자수냐’ ‘커피값은 내가 냈다/쿠폰도장도 네가 찍냐’ 등 소심한 구호로 풍자해 남녀불문 웃음을 짓게 한다. “저희 아버지들 세대에 비하면 그동안 여성들의 권익은 많이 향상된 반면, 지금 남성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죠. 아버지들이 해야 할 책임은 다해야 하면서도,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것은 못 누리죠. 너무 거창한 얘기를 하면 피곤해하실 거고, 작은 얘기로 해보게 된 거죠.”
김 PD는 “슬랩스틱(치고 받고 넘어지는 등 몸으로 하는 코미디)처럼 선험적인 웃음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빼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코미디는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자기 경험에 기반해서 웃어요. 아이냐, 어른이냐, 많이 배운 사람이냐, 조금 배운 사람이냐 다 달라요. 그래서 저희는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코너를 만들려고 하지요.” 70분 분량인 ‘개콘’의 한 회는 보통 10여 개가 넘는 코너로 구성된다. 그는 각각의 코너에 대해서도 “되도록 중의적 표현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같은 콘텐트라도 사람 따라 웃는 방향이 달라요. 100%가 될 수는 없겠지만 경험적으로 각각 어떻게들 해석을 할지 확률을 높여가려고 하지요.”
그는 달라진 시청자의 반응 속에서도 “코미디의 기본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도 그랬죠. 아무리 잘난 척하고 떠들어도 바보 같은 이야기, 다시 말해 시청자들 눈에 논리적 약점이 보이죠. 시청자들을 가르치려는 느낌은 안 돼요.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하고픈 얘기를 대신 해주는구나 싶어야 웃음이 나와요.”
개콘은 공개방송으로 녹화된다. 녹화현장에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당연히 중요할 텐데, 그는 여기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현장에서 반응이 좋다고 해서 시청자 반응도 꼭 같은 건 아니에요. 가요 프로그램으로 치면 아이돌 가수들이 나왔을 때 환호나 비명이 크죠. 그렇다고 조용하게 부르는 발라드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배를 잡고 웃는 웃음도 있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보면서도 속으로는 웃는 웃음도 있죠. 그렇게 속으로 웃고도 나중에 이야깃거리로 삼는 게 화제가 되는 코미디죠.”
그에게 코미디로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묻자 역시나 정치와 종교를 꼽았다. “정치나 종교나 모두들 자기 신념의 전문가잖아요. 타인의 취향을 잘 배려하려고들 하지 않죠. 정치적 이슈는 외압 때문이 아니라, 너무 스펙트럼이 다양해 누구에게 맞출지 모르겠어요.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는 “‘웃는 것’과 ‘우스워지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잘 구별이 안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계층이나 직업마다 코미디 소재로 등장하는 것 자체를 불쾌해하는 분이 많아요. 자신을 보고 웃으면 무조건 기분 나빠하는 분도 많죠.”
코미디를 즐기는 방법으로 그는 “여러 명이 함께 보는 것”을 권했다. “가족이라도 취향이 달라요. 혼자 보면 자기 취향에 맞는 것만 웃게 되지만 웃음은 전염성이 있거든요. 설령 다른 사람이 웃는 것이 어이없어서 웃더라도 한번 더 웃게 되죠.” 그는 경제위기를 비롯, 힘든 시대가 코미디의 인기를 더한다는 시각은 강하게 부정했다. “경제도 코미디도 모두 호황이었던 적도 있죠. 단지 시대마다 그에 맞는 소재가 생겨나고, 또 인기를 끌 수 있다고 봐요. 경제가 어려워 코미디가 잘되는 거라면 거꾸로 묻고 싶네요. 우리 참 잘 살고 있다, 너무 호황이다, 이랬던 적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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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일 없어도 웃어 보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기고 - 주선희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
주선희 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 교수 | 제139호 | 20091108 입력
주선희 교수는 입에 연필을 물고라도 웃는 표정을 연습하라고 조언한다. [중앙포토] | |
“좋은 일이 있어야 웃지, 요즘 같아서는 웃을 일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사는 게 어려워지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 적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노력으로 웃음을 만들다 보면 정말로 웃을 일이 생기는 것이 바로 얼굴경영의 묘미다.
얼굴경영은 얼이 머무는 동굴을 경영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경영하고 마음을 성형해야 얼굴경영이 된다. 좋은 인상은 나쁜 인상보다 연봉이 높다든지, 판사가 내리는 형량이 낮다든지, 나쁜 인상에 비해 좋은 인상이 머리가 좋다든지 등등 인상에 관한 논문이 세상에 소개된 지는 이미 오래다.
좋은 인상이란 간단히 말해서 ‘웃는 인상’이다. 좋은 인상이 되려면 식사도 맛있게 하고 일도 즐겁게 하는 등 생활 속에서 ‘재미와 웃음’을 추구해야 한다. 그 생활의 표정이 쌓여서 얼굴에 탄력이 생기고 얼굴빛이 밝아진다. 웃음으로 운명을 바꾼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필자가 강의하는 얼굴경영학과의 학생들이 바로 그 산 증거다. 300명 학생들의 입학 당시 사진을 보면 재학 중의 얼굴과 사뭇 다르다. 학생들은 얼굴경영을 배우면서 스스로 경영을 실천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 당시 가정적으로 불운했던 어느 남학생이 있었다. 늘 수심이 드리워져 있었고 병도 있어 보이는 어두운 얼굴이라 얼굴을 볼 때마다 적잖이 염려되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에서 마음경영의 증거들을 보면서 스스로 확신을 갖고 많이 웃으려 노력했다. 그는 지금 재혼했고 진급했으며 웃는 얼굴이 멋진 미남이 되어 학생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는 15년째 청소관리를 책임 맡아온 아주머니가 있었다.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 일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강연 중에 가끔씩 그 아줌마를 모델로 얘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만난 그녀의 표정이 웃음이 싹 사라지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늘 웃던 분이 갑자기 얼굴이 왜 그러세요? 그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데…” 했더니 남편이 등산 중 실족으로 졸지에 세상을 떠나 매일 울며 지낸다고 했다. 표정이 어두워지다 보니 불운이 겹쳐 청소관리를 하는 자리에서도 쫓겨나게 됐다. 기분이 좋다는 것은 기의 분산이 잘된다는 뜻이다. 기의 분산이 잘되면 에너지가 넘쳐나고 행운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슬퍼하면 기가 흩어지고 삶을 하직하면 기가 사라진다. 기가 흩어진다는 것은 시간문제이긴 하나 기가 사라지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살아도 죽은 것과 진배없이 지내게 된다.
한 정신과에서 생긴 일이다. 정말 불행해서 죽고만 싶다는 환자에게 어느 날 의사는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웬일이냐고 묻는 환자에게 그는 ‘바로 당신의 심리상태’라고 했다. 그러자 환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다리를 놓았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면서 환자의 증세가 호전됐다고 한다.
모 대기업 회장의 경우 회사와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얼굴이 많이 처진 듯 탄력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 그 회사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문제가 또 생겼을 때 그의 얼굴을 보니 탄탄한 탄력이 있었다. 밖에만 요란한 사건이었지 사실 개인적으로는 손해 본 게 아니라는 뒷소문이 있었다. 잘나가는 기업의 CEO들을 보면 얼굴에 탄력이 있다. 웃음 근육을 쓰지 않아 얼굴 탄력이 떨어질 땐 기업에도 어려움이 닥쳐 타격이 온다. 기업의 흥망성쇠는 곧 CEO의 얼굴 안에 있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기 인생의 희로애락이 얼굴의 밝기와 탄력에 달려 있다. 정 웃을 일이 없거든,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표정을 자주 지어줄 필요가 있다. 그도 어렵다면 깨끗한 연필을 위아래 치아 사이에 물고 있어보자. 영국의 어느 심리학자가 이렇게 연필을 입에 문 사람들 한 팀과 물지 않은 사람들 한 팀에게 즐거운 영상과 슬픈 영상을 보여주었더니, 입에 연필을 문 사람들은 즐거운 영상을 더 많이 기억했다고 했다. 이렇게 입이 웃게 되면 우리는 웃을 일 쪽에 더 가까이 가게 되고 마침내 세상이 우리와 함께 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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