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으로 나간 김에
오월 하순 주중이었다. 은행 창구 볼 일이 생겨 일과 중 조퇴를 신청해 고현으로 나가야 했다. 시내버스가 파업 중이라 연초 천변을 걸어서 갔다. 고현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가끔 걸었던 익숙한 지형지물이고 풍광이었다. 연사 들녘은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트랙터로 무논을 다려 이앙기가 굴러가면서 모가 심어졌다. 벼농사는 모내기 이후 드론이 약을 뿌리고 콤바인이 수확했다.
연초천 하류는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중곡지구 아파트 주민들이 산책을 나와 걸었다. 물때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여 때때로 하천이 바닥까지 드러났다가 다시 채워졌다. 마침 음력으로 사월 보름이라 조수 간만의 차가 아주 큰 때였다. 썰물이라 연초천 하류는 고현만까지 냇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염도가 낮은 기수역에 자라는 어패류와 수서 곤충이 많아 철새들이 나타났다.
지난날 카페리가 드나들던 고현만은 매립이 끝나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었다, 그 바깥 삼성조선소 도크와 크레인이 보였다. 고현에는 금융기관 지점이 드물어 은행 창구 이용이 불편했다. 고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재래시장 근처 농협중앙회 지부로 갔다. 번호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려 일을 보고 나왔다. 점심나절 교정에서 나왔으니 퇴근 시간 이전이었지만 학교로 되돌아갈 일 없었다.
거리에는 행정당국 업무 지원을 나선 아주머니들이 여럿 보였다. 코로나 백신 예방 접종 신청율이 저조해서인지 백신 접종을 권장하는 홍보물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난 주중 고현으로 나와 내과를 찾아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을 해 놓은 바 있다. 유월 중순에 1차 접종을 받고 2개월 뒤 2차 접종이 예약되었다. 예방 접종 후 부작용 없이 항체가 생기길 바랄 뿐이다.
모처럼 고현 시내로 나간 김에 저녁을 겸한 반주를 들었으면 싶었다. 시간이 불과 오후 세 시밖에 되질 않았지만 시외버스 터미널 곁에 가끔 들렸던 식당을 찾아갔다. 문은 열려 있고 실내등과 텔레비전은 켜 놓았는데 주인이 보이질 않았다. 바깥으로 나와 서성이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위에 연락처가 적혀 있어 전화를 넣으려니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은 병원 다녀온 길이었다.
내가 찾아간 식당은 저녁이면 술을 들려는 자들이 더러 찾는 실내포장 형식이었다. 퇴근 시각이 되려면 한참 남았는지라 손님이 없었다. 나도 그렇게 이른 시각에 들리기는 처음이었다. 맑은 술을 들만한 안주가 뭐가 있는지 여쭈니 한치회와 갑오징어 숙회가 된다고 했다. 갑오징어는 지난번 먹어 봤기에 한치를 시켰다. 밑반찬이 몇 가지 나오고 연이어 싱싱한 한치를 썰어 내었다.
와실에서 혼자 아침저녁 끼니를 때울 때면 애호박과 두부로 된장국을 끓여 집에서 가져온 몇 가지 나물로 비빔밥을 비벼 먹기 예사였다. 단백질은 점심시간 학교 급식소에서 벌충하는 정도였다. 어쩌다 고현으로 나가면 맑은 술을 들면서 생선회라도 한 점 먹는다. 한치회는 소주 안주로는 적격이었다. 맑은 술을 한 병 비우고 한 병 더 비우면서 공기밥을 시켜 저녁까지 잘 해결했다,
비록 혼자였지만 반주를 겸한 저녁 식사를 끝냈는데도 날이 훤했다. 연사로 되돌아가기 위해 찻길 보도로 나가니 군데군데 길을 안내하는 도우미들이 있었다. 시내버스가 이틀째 파업 중이라 행정당국에서 전세버스를 임차에 임시 운행을 하고 있었다. 파업으로 시내버스 기사들이 휴무일 때 코로나로 유래가 없는 불황에 허덕이는 전세버스들이 며칠만이라도 일거리가 생기는 듯했다.
걸어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임시 운행 버스를 타도 될 듯해 수협 마트로 가 몇 가지 시장을 봤다. 두부와 대파와 새송이버섯을 고르고 계란도 집었다. 즐겨 드는 곡차도 세 병 챙겼다. 계산을 마치고 버스 정류소에서 능포로 가는 임시 버스를 탔다. 시내버스가 파업이라 시청에서 긴급 투입한 전세버스는 승객들에게 요금을 받지 않고 운행했다. 수월삼거리를 거쳐 연사 정류소에 내렸다. 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