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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HINA STORY 원문보기 글쓴이: 임연옥
이래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 이유 그-열두번째(20130329)
[영화]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 Jiseul 2012/드라마/한국/108 분/개봉 2013-03-21
출연 :
이경준 (경준 역), 홍상표 (상표 역), 문석범 (원식이 삼촌 역), 양정원 (용필 역)
1948년 그해 11월 15일, 제주섬의 북서부지역 중산간마을인 안덕면 동광리에 토벌대 군인들이 들이닥쳐,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사흘 뒤 마을을 불태워버린다. 주민들은 토벌대의 공세를 피해 일단 산으로 들어가 숨어서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동광리 주변의 무동이왓, 삼밭마을 주민들까지 120여 명이 속칭 ‘큰넓궤’로 알려진 동굴로 숨어든다. ‘큰넓궤’는 제주말로, 말 그대로 크고 넓은 동굴이라는 뜻이다. 현재 세계유산으로 빛나는 제주 천연의 용왕동굴들은 4.3 당시 주민들에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생사의 기로에서 목숨을 부지하게 해준 최고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지슬>은 1948년을 배경으로 미국의 소개령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 동굴 속으로 피신하는 마을 주민들과 그들을 쫓는 토벌군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다루고 있다. 영화는 제주 섬 사람들이 왜 빨갱이로 내몰렸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사람들 안에 있다. 죽음의 시간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큰넓궤동굴에 옹기종기 모여 소소한 농담과 함께 따뜻한 감자를 나누고, 밤 하늘을 보며 이 시간이 끝날 거라는 희망의 내일을 기다린다. 이들의 가녀린 희망과 바람에 안타까운 탄식과 먹먹한 감정이 가슴속을 가득 메우고, 관객들은 이내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한편, 배고픈 사냥개 마냥 토벌군에 혈안이 된 군인들은 오로지 명령에 의해서, 갓난아이서부터 할머니까지 학살을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살인 병기가 되어야 했던 그들 역시 역사 앞에 희생된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감독은 군인들의 캐릭터에서도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며 끝까지 선악의 구분 없이 양면의 모습을 비추다가도 본질에 있어서는 단호한 어조를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울고 웃는 일상을 중심으로 한바탕 마당극이 펼쳐지는 <지슬>은 절제된 연출로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시키기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운과 함께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건넨다.
상표의 달리기, 만철이의 사랑이 멈추던 날!
운명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웃음과 깊은 슬픔이 공존하는 영화! <지슬>
<지슬> 은 자칫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아이러니의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심각하고 무겁다는 편견을 말끔히 깨주는 듯 <지슬>은 오히려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한 방식으로 웃음과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말끝 마다 “이 새끼야”를 외치며, 경준을 구박하는 용필아저씨, 틀린 길을 안내하면서도 자신이 끝까지 맞다고 우기는 경준, “나는 총도 피할 수 있을 만큼 달리기가 빠르다며 몰다리(말다리)”를 자랑하는 상표, 오직 돼지 걱정 밖에 없는 원식이 삼촌, 집에 두고 온 노모가 걱정되는 무동이등의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관객들에게 더욱 진하고 아린 여운을 남긴다. 때론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 한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이 가혹 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 동굴 안에서 고추를 태운 연기로 군인들을 막아내는 장면에서는 그저 살기 위해서 서로가 적이 되어야만 하는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 모두 역사의 희생자일 수 밖에 없는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일본의 영화배우 겸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2011년 3.11 대지진 이후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다’라는 거다. 2만 가지 죽음에 각각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슈칸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처럼 오멸 감독은 <지슬>을 통해 ‘제주4.3’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갇힌 3만 명,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준다. 그들이 잃어버렸던 이름을 기억해냄으로써 감독은 헛되이 사라질 뻔 했던 그들 삶에 의미를 다시 불어넣어주며 최상의 씻김굿을 한 셈이다. <지슬>은 이처럼 가장 차가웠던 시절 뜨거운 희망을 나눈 사람들이 내 곁의 가족, 이웃, 친구이었음을 되새긴다. 동시에 제주4.3이 제주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그러니 외면하지 말아주기를 묵직한 어조로 말한다.
신위 神位.신묘 神廟.음복 飮福.소지 燒紙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영화!
죽은 자에게는 위로를! 산 자에게는 치유가 되다!
영화 <지슬>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위한 굿 판을 연상케 한다. 첫 장면부터가 알 수 있듯이 카메라의 앵글은 구름 위 하늘에서부터 마을로 지긋이 내려온다. 마치 원혼들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듯 한 느낌이 들게 하고, 마루 바닥에 흩어진 제기들은 이 영화가 그들을 위한 위령제라는 눈짓을 준다.
감독이 제주 4.3 당시 이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의 제사를 지낸다는 마음으로 <지슬>을 만들었다고 말했듯이 영화는 제의적 형식을 띈 네 개의 시퀀스로 전개된다.
먼저 ‘신위’(神位-영혼을 모셔 앉히다)는 다시 말해 ‘영혼을 부른다’는 뜻이다. 이때 영화는 1948년 11월로 돌아가 군인들부터 마을주민들까지 모두 현재로 불러온다.
두 번째 ‘신묘’(神廟-영혼이 머무는 곳)의 차례에서는 당시의 삶을 다시금 보여주고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핀다.
세 번째 ‘음복’(飮福-영혼(귀신)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영화에서 무동의 어머니가 군인에게 살해당해 돌아가실 때 품었던 감자를 동굴 안의 사람들이 나눠먹는 장면과도 일맥상통한다.
마지막으로 ‘소지’(燒紙-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에 이르러 카메라는 무당이 되어 개개인의 사연을 놓치지 않으며 이름 없이 사라져야 했던 무고한 사람들의 넋을 정성스럽게 위로한다. 65년 만에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원한을 조금이나마 씻겨 보내려는 노력이다.
지방지를 태우며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고이 올려 보냄으로써, 비로소 제사의 시간을 마친다. 이처럼 <지슬>은 죽은 자에게는 위로가 되고, 아직까지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산 자에게는 치유가 되는 씻김의 영화로서 중간 매개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로써, 제주 4.3에 대해 몰랐던 관객들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가슴이 먼저 요동치며 비로소 제주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길고도 깊은 그날의 아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영화가 막을 내리면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듯 먹먹한 여운에 젖어 든 관객들은 누구 하나 쉽사리 극장을 나서지 못할 것이다.
전 세계인들의 소울 푸드이자
당신과 나의 뜨거운 감자 <지슬>
<지슬>은 중의적인 의미로 제주어로 땅의 열매인 ‘감자’를 뜻하며 전 세계적으로 소울 푸드로 통한다. 특히 <지슬>의 제주 섬 사람들이 춥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감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감자는 사연 곳곳에 중요한 삶의 매개체로 드러난다. 순덕이 부모는 감자를 챙기느라 순덕이를 미처 살피지 못했고, 무동이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함께 피신하지 못한 어머니를 모시러 다시 마을로 내렸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불탄 집과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품 속에 따뜻하게 익은 감자였다. 마지막으로 박상병이 순덕이에게 몰래 감자를 챙겨주려는 장면까지 영화 속 감자는 마치 제주섬을 만들었다는 설문대 할망 신화처럼 어머니로 상징되는 생명의 힘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곡선을 닮은 오름, 물통을 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군인 정길, 돼지를 삶던 큰 가마솥 안에서 결국 폭력의 삶을 마무리 짓게 되는 김상사 등 <지슬>의 많은 장면은 알고 보면 제주의 여신에 관한 신화를 바탕으로 묘사되어있다.
놀라운 영화적 체험이 시작된다!
매혹적인 흑백 영상미가 영화의 감동을 더하다!
<지슬>의 많은 장면들은 그대로 프린트해서 미술관 벽에 걸어놓아도 손색이 없다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매혹적인 이미지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멸 감독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누구보다 더 제주의 진짜 표정을 잘 읽어낼 줄 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이기도 한 제주를 흑백으로 담겠다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하여, 먹 색은 하나이지만 감정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감독은 그의 전공이 한국화였던 만큼 <지슬> 안에 제주의 아름다움을 가장 동양적으로 담아 냈다. 모두가 제주라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을 떠올리지만, 그 색에 가려진 슬픔을 무채색으로 길어 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제사 지낼 때 빨간 옷을 입고 갈 수는 없지 않나”라는 감독의 말처럼 <지슬>은 무채색의 옷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때론 깊고도 기나긴 한을 닮은 검푸른 바다의 색이, 때론 천진한 그들의 삶을 닮은 햇살의 빛이 느껴져 더욱 강렬하고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관객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48년 겨울로의 시간 여행을 떠난 듯 놀랍고도 신비로운 영화적 체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
姑김경률 감독을 위한 위령제
영화 시작에 앞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 ‘총 제작지휘 姑김경률 감독’. <끝나지 않은 세월>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리고 제주4.3을 담은 최초의 영화였다. 하지만 척박한 제주의 영화제작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姑김경률 감독은 작업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오멸 감독은 후배들에게 큰 그늘이기도 했던 그의 열정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열정을 연장할 힘이 필요했다. 피하고 싶었지만 언젠가는 뚫고 지나가야 했던 숙제 같은 일을 오멸 감독은 자신이 끝내 지고 가리라 결심했고, 그래서 나온 작품이 <지슬>이다. 그리고 姑김경률 감독의 못다 피운 뜻을 이어간다는 의미로 <지슬>에는 ‘끝나지 않은 세월2’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에 오멸 감독은 “이 타이틀이 사라지는 날이 와야겠죠” 라는 말을 덧붙인다.
65년 전, 그들과 같은 시간을 숨쉬다
돌문화공원부터 큰넓궤동굴까지
깊은 슬픔이 스며있는 진짜 제주의 모습
01. 곶자왈 &동백동산
제주도에만 있는 독특한 지형의 숲인 곶자왈은 제주도 방언으로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자연림을 이루고 있는 곳을 뜻한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당시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나무들과 사랑스러운 단풍의 모습을 보았다.”고 전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생명력을 지닌 곳이다. 옛날 제주사람들이 곶자왈에서 나무땔감을 구했고 제주 4.3 때는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곶자왈에서는 두 번의 구덩이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 초반 처음으로 마을 청년들이 작은 구덩이에 모두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과 중반부 군인을 피해 모두 구덩이 속에 납작 누워있는 장면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무척이나 심각한데 보는 이들에게는 실소를 자아내는 장면으로, 덩치 큰 성인 남자들이 작은 구멍에 꼼짝 못하고 모여있는 모습에 스텝들 모두 웃음을 눌러 참으며 촬영했고, 오멸 감독 마저 이 장면을 핸드폰 사진으로 남겨두었다는 후문이다.
한편 원래 촬영하기로 했던 큰넓궤동굴이 입구가 매우 협소하고 위험해서 고민하던 차에 동백동산 근처에 적당한 동굴을 발견했다. 그러나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진행된 강행군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다칠까 헬멧을 나눠 쓰며 동굴에 들어갔고, 소품인 삶은 감자가 모자라자 이곳 저곳에 부탁해 구해오고, 새벽까지 진행된 촬영에 고단했을 배우들은 힘들다는 내색 한번 없이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고 노래 한 곡씩 부르며 기나긴 대기시간을 버텨냈다. 그리하여 <지슬>의 가장 따뜻한 장면이 탄생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며 그렇게 새해의 첫 촬영을 마무리 했다.
02. 큰넓궤동굴
<지슬> 주요장면의 배경이 되었던 ‘큰넓궤동굴’은 실제 제주4.3 당시 주민들이 소개령을 피해 5~60일 동안 몸을 숨겼던 곳이다. 오멸 감독은 두 번째 동굴 촬영에 들어가던 날 이 공간을 좀 더 이해하고자 했고 그리하여 전 스텝들이 동굴에 모여 눈을 감고 동굴의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굴촬영은 감독, 배우, 스텝 모두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큰넓궤동굴 입구는 사람이 엎드린 채 기어가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칼바위라 불리는 내부를 통과하며 전 스텝의 외투가 모두 찢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장비를 담요로 둘러 보호하고 썰매로 끌어당겨 어렵게 촬영장소까지 운반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배우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에 동굴 속으로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는 군인들을 주민들이 불을 피워 연기로 내쫓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가짜 연기를 피울 계획이었는데 배우들이 손수 나서서 고추를 태웠다. 실제로 65년 전, 고추를 태운 연기로 군인들의 토벌을 피했던 일화가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기침을 토해내고 눈물범벅이 된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1948년의 주민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체험을 하며 다른 때보다 더욱 남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고생했던 만큼 그날의 장면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영화 속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03. 돌문화공원
제주 특유의 돌문화를 집대성한 돌문화공원은 전통적인 주거환경과 제주만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어 <지슬> 대부분의 촬영이 이곳에서 이뤄졌을 정도로 촬영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산간지역에 위치해 있는 돌문화공원의 추위는 같은 제주라 하더라도 다른 곳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매일 아침 마치 전장에 나가는 마음으로 바지를 세 겹씩 입고 온 몸을 핫 팩으로 무장한 채 돌문화공원을 향하곤 했다. 게다가 깊은 산골이라 조명이 없으면 암흑 그 자체가 되곤 했다. 아름다움 이면에는 냉혹한 자연이 있었다.
하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도 찾아왔다. 카메라를 고정시킨 후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인서트컷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무도 건드린 적이 없는 카메라가 혼자 서서히 줌 인을 하고 있었다. 이를 모두들 귀신컷이라 불렀다.
04. 용눈이 오름
오름 역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으로 특히 용눈이 오름은 급격한 경사의 여느 오름과 달리 평탄하고 부드럽다. 368개에 이른다는 제주 오름들 중 유일하게 세 개의 분화구를 함께 가진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슬>을 촬영한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그 해의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용눈이 오름 위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고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몇몇 관광객들이 즐거워하며 사진 찍는 모습을 스쳐 지났다. 이곳에서는 군인 상덕과 순덕이의 긴장감 넘치는 대치 장면을 담아냈다. 순덕 역할의 배우 강희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긴장을 많이 한 듯 했다. 게다가 표정연기까지 요하는 장면이었는데 초보답지 않게 “잘했어! 표정 연기되네“라는 오멸 감독의 칭찬까지 받으며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용눈이 오름에서 상덕이 순덕에게 총을 겨누는 이 장면은 이후 국내, 해외 포스터로도 쓰일 정도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주말로 노래하는 배우 양정원이 직접 작사, 작곡한
제주 해녀들의 노래 ‘이어도사나’
가슴 깊이 파고드는 뭉클한 감동!
오멸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배우 양정원의 본업은 사실 ‘제주어로 제주를 노래하는 가수’로 전작 <어이그, 저 귓것>에 이어 <지슬>에서도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선보였다. 바로 영화의 엔딩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와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던 노래 ‘이어도사나’이다. 제목은 제주민요에서 따온 것이다. 민요 ‘이어도사나’가 해녀들이 바다에 나갈 때 이별 없는 영원한 이상향에 대해 부른 노래인 것처럼, 양정원 표 ‘이어도사나’ 역시 제주의 근원이자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해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영화 <지슬>이 태어난 고향 ‘제주’는 오랫동안 해녀, 어머니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왔다. <지슬> 엔딩곡 ‘이어도사나’의 가사가 말해주듯 몸을 띄우는 역할의 ‘테왁’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매일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했던 어머니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고 그 눈물을 먹으며 자라온 것이 우리들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꿈꾸던 유토피아 같은 곳이 ‘이어도’라는 환상의 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섬은 멀고 삶은 고단하다.
경쾌한 멜로디와는 달리 제주라는 드넓고 따뜻한 땅이 품고 있었을 고달픔과 기나긴 슬픔이 배어있는 ‘이어도사나’는 따뜻한 감자를 나눠먹으며 추운 동굴 속에서의 시간을 견디었던 <지슬>의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과도 이어져 뭉클한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 제주4.3으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이들이 되돌아간 곳은 어머니의 땅 제주의 품이기에, 그리고 어쩌면 그곳이 그토록 닿고자 했던 ‘이어도’이기에 먹먹한 울림이 한참 마음에서 가시지 않는다. 한편 ‘이어도사나’는 배우 양정원을 비롯해 출연진들이 함께 불러 의미를 더했다.
제주바당에 배를 띄왕 노를 젓엉 혼저나 가게
보름아 보름아 불지 말어라 좀수허레 가는 배 떠나 감쩌
물질 허레 바당에 들언 테왁 허나에 목숨을 멧경
설룬애기 두엉 바당에 드난 살고저 살고저 허멍 셍복을 따곡
제주바다에 배를 띄워 노를 저어서 빨리 나가자
바람아 바람아 불지 말아라 잠수하러 가는 배 떠나 간다
물질 하러 바다에 들어가 테왁 하나에 목숨을 맡겨
가여운 아기 두고 바다에 드니 살고자 살고자 하면서 소라, 전복을 따고
이승질 저승질 갓닥온갓닥
숨그친지는 숨비소리 좀녜 눈물이 바당물 되언
우리어멍도 바당물 먹언 나도 낳곡 성도 나신가
이승질 저승질 갔다 왔다
목숨 끊어지는 숨비소리 해녀 눈물이 바닷물 되어서
우리엄마도 바닷물 먹고 나도 낳고 형님도 낳는가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아방에 아방에 아방덜 어멍에 어멍에 어멍덜
이어도 가젠 살고나 지고
제주사름덜 살앙죽엉 가고저 허는게 이어도 우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
이어도 가려고 살고나 지고
제주사람들 살아서 죽어서 가고자 하는 곳이 이어도 입니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사나
작사.작곡 양정원 편곡 전송이
[ Tip ]
65년 동안 봉인된 시간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 제주 4.3
제주 4·3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남한 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의미하는 5.10 총선을 막아내려 했던 제주 민중들의 항쟁과 이에 대한 미군정 당시의 군인과 경찰들, 극우 반공단체들의 유혈진압을 말한다. 제주 4.3의 시발점이 된 1947년 3월 1일부터 사실상 7년 7개월간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약 3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살당했다. 마을이 통째 불타 사라지기도 했다.
1948년 3.1절 발포사건
1948년 3월 1일, 경찰은 5.10선거를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에게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일반 주민이었다. 미군정당국은 이 발포사건을 정당방위로 주장했고 민심수습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주섬 사람들을 ‘폭도’로 몰았다. 이 사건이 4.3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도지사를 비롯한 군정 수뇌부들이 전원 외지사람들로 교체됐고, 주모자에 대한 검거작전을 전개했다. 한 달 만에 500여 명이 체포됐고, ‘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구금됐다.
테러와 고문이 잇따랐다.
1948년 4.3 무장봉기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이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 발포사건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사실상 7년 7개월간 지속되면서 엄청난 유혈사태로 비화되었다. 미군정은 5·10선거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5월 10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다. 남한에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북쪽에 또 다른 정권이 세워짐에 따라 이제 제주도 사태는 단순한 지역문제를 뛰어 넘어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1948년 11.17 계엄령 선포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때부터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이와 관련, 미군 정보보고서는 “9연대는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다”고 적고 있다.
(출처 : 제주4.3 평화재단)
어머니의 상징, 태초의 제주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
<지슬>은 제주4.3 이전에 제주의 설화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장면에서 여러 가지 설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설문대할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창조하였다고 전해 내려오는 여신이다. 지역에 따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르고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제주도를 대표하는 신화 속 인물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조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설문대할망에게는 오백 아들들이 있었는데, 하루는 사냥 나간 오백 아들에게 먹을 죽을 끓이다 그만 가마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죽을 다 먹은 후에야 이 사실을 안 오백 아들들은 슬퍼하다 죽었는데 영실 장군석이 됐는데 그 막내가 현재 차귀도 작은 오백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설문대할망 설화에서는 자식들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뒤이어 어머니의 생명을 먹고 자란 이들이 제주를 일구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제주는 어머니의 생명이 묻힌 땅인 것이다. 여기에서 해녀의 삶을 노래하는 ‘이어도사나’가 왜 제주 4.3을 다룬 <지슬>의 엔딩곡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이어도사나’의 해녀, 즉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을 자식들에게 전해준 것이나 다름없고, <지슬>의 어머니 또한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감자를 아들에게 남긴다. 두 어머니의 시대는 다르지만 모두 제주의 품으로 돌아갔으며 시대를 반복하며 이 땅의 근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징은 <지슬>에서 죽은 순덕이의 몸이 제주의 오름과 겹쳐지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은 ‘솥’은 영화에서 어머니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가진 ‘솥’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지슬>은 알고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졌다. 처음에는 제주 4.3이라는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제주라는 땅의 역사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 안에는 평화의 땅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있는 제주의 참 모습이 있다.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의 눈으로 제주를 바라봐 달라 말하는 오멸 감독의 마음은 이렇게나 한없이 깊게 <지슬>이란 영화의 모든 순간마다 녹아 들어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깊이 있는 서사와 더불어 시적인 이미지까지 <지슬>은 우리 모두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었다”(선댄스영화제 심사평),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오멸 감독은 절망에 맞닥뜨린 인간의 삶을 강렬하게 보여준다”(버라이어티), “영화, 연출 모든 영역에 걸친 탁월한 재능”(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심사평) 등 쏟아지는 아낌없는 찬사 속에서 <지슬>은 개봉 전부터 국내외 ‘화제의 영화’이자 ‘2013 올해의 영화’로 회자되고 있다. 또한 제주섬에서 세계로 뻗어나간 <지슬>은 해외 순항을 마치고 마침내 국내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의 눈앞에 올때
누군들 두려움에 변절하지 않겠는가...?
오직 큰사랑으로 변절하지 않는자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난 두려움앞에서 오금이 져려 상표보다 더 먼저 변절을 해버릴 것 같으니까...
차라리 먼저 총에 맞아 죽었다면 변절자는 되지 않았을
말 처럼 잘 달리는 순진한 상표
군인들 인들
자의에 의해 총부리를 들이 댔겠는가..?
오직 명령에 복종 했을뿐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을 가슴속에 품고산다는 아렌트의 얘기가 생각난다
상대가 인간으로 보인다면
세상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것을...
이미 일어나버린
이미 저질러버린 나쁜일들이
만약 명령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명령권자는 마땅히 공개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제주 4,3사태도 그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이다
미국이나 정부의 마땅한 공식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제주사람들 가슴에 깊이 상채기난 분노의 기억을 씻어줄 수 있을까...?
분노의 기억을 용서의 망각으로 상쇄시킬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남겨진 일 인 것 같다
지슬...제주말로 감자
이젠 감자를 먹을때 마다
제주사람들이 생각날 것 같다
흑백의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더욱 심금을 울린다
처절한 장면 없이도
효과음과 화면만으로도
더욱 처절한 느낌을 받게 하는건
감독의 빼어난 기술 덕분일까..?
극장문을 나오면서
분노와 슬픔으로 먹먹한 이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으로 잘된 영화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고하게 생을 달리한 돌아가신분들께 지은 죄를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이런일이 있을때마다
아우슈비츠의 죄값을 치르기에 여념이 없는 독일과
마치도 남경사건이나 정신대사건을 없었던일로 치부하는 일본의 태도가
비교되어 떠오르곤 한다
강추
첫댓글 지슬이 무슨 외국 말인가하여 읽다가 새로운 재주도 방언을 알게 됐네요.
우리나라 만큼 이야깃 거리가 많은 역사를 가진 나라도 없다더니...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리도 많은데,
요즘의 북한 행태를 보면 또 다른 이야기거리를 무수히 만들어 낼것 같다는 염려가 되어
절로 기도하게 되더라구요~! 으휴~~~!
이어도 사나,,,음악을 참 감명깊게 들었답니다.. 사상이란 무엇인지를,,, 생명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네요,,
세상에, 이리도 친절하게 글을 올리시다니 대단하네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정성에 감격합니다.
이쪽 저쪽에서 가져온 글의 모듬입니다...
일종의 표절글
하지만 재가 읽고 감명 받았기에
한번보고 버리기 아까워 올렸습니다
참고 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