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1: 10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 합 1: 11 자기 힘을 신으로 삼은 자
합 1: 10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취할 것이라. )
본 절은 갈대아 사람들의 성격과 특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들은 독단적인 거만함, 조급하고 야만적인 심성, 자제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진 자들이었음을 보여준다.
1]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1) 왕들을 멸시하며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 최고의 책임자, 즉 통치자를 의미한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사사"로 불리었고 그 후에는 왕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애굽의 왕들은 "바로"로 불리었다.
신약 시대에 가장 큰 권력을 가졌던 통치자는 로마의 황제였다.
* 눅 2: 1 -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 행 25: 11 -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 벧전 2: 13, 17 -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로마 제국의 어떤 지역은 마 27: 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유대"를 다스린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총독이 다스렸다.
* 마 27: 1-2 -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로마 제국의 어떤 지역은 어느 정도 자치가 허용되어 그들의 통치자는 그 당시 팔레스틴의 거의 전 지역인 유대의 "헤롯" 왕처럼 왕으로 불렀다.
* 눅 1: 5 -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눅 3: 1에 나오는 헤롯의 동생 빌립과 헤롯 안디바 같은 "분봉 왕"이다.
* 눅 3: 1 -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요 12: 31에서는 "마귀"가 "이 세상 임금"으로 불렸다.
* 요 12: 31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2) 방백을 조소하며
"방백"은 오직 왕에게만 복종하는, 권력 있는 고관이다.
2]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견고한 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를 의미한다.
구약에서 '회중'은 아주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임을 가리키는데, 이는 곧 '여호와 앞에' 한데 모여서 해마다 명절을 지키고 가르침을 받거나 판결을 집행하는 백성을 의미한다.
* 출 12: 3 -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 민 27: 16-23 -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 신 23: 2-4, 8 - 2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 대에 이르기까지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8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신약에서 '에클레시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과 죄에서 불러내어 모아두신 새로운 하나님 백성을 뜻하고, 이를 <개역한글판>에서는 '교회'라고 옮겼다.
* 마 16: 18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내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는 모든 믿는 자들의 모임인 세계 교회를 가리킨다.
* 마 18: 17 -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여기에서는 신자들이 서로 잘 알고 서로를 고쳐주고 도와줄 수 있는, 어떤 특정 지역의 교회를 뜻한다.
그와 아울러 공간이 넉넉한 개인 집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에 대해서도 쓰인다.
* 롬 16: 5 -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 고전 16: 19 -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가정에서는 개별적으로 모여 서로 사귀고 성만찬을 거행하고 함께 식사하며 여러 가지 영적인 경험을 서로 나누었다.
3]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그들의 공격성은 맹렬하였으므로 아무리 견고한 성벽이라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벨론 사람들은 스스로 절대적인 통치권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고 다른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합 1: 11 자기 힘을 신으로 삼은 자 -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 그들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득죄하리라. )
1]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자기들의 힘을 믿고 '내 주먹이 곧 하나님이다. 내 주먹을 믿어라. 내 주먹이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우리들의 힘이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다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이들이 악한 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악한 자가 힘이 있고 그뿐만 아니라 추진력이 있고 돈이 많고 부유함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악한 자의 개념과는 다르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사람들이니까 악한 자는 돈도 없어야 하고 멸망 아래에 있어야 하고, 실력도 없어야 한다. 악한 자는 물질의 복을 누릴 수도 없어야 한다.
반면에 선한 사람이라면 항상 부유하고 돈이 있고 힘이 있고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악한 자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지위와 부와 능력을 다 소유하고 있다. 돈도 많고 명예도 있고 힘도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
2]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갈대아인이 바람이 휩쓸듯이 빠르게 여러 나라들과 이스라엘을 정복할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신격화하여 득죄하는 오만함을 드러낸다.
이들은 책임을 모르고 회개하지도 않고 도리어 창조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질서를 깨뜨린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그들이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도구로 사용되긴 하지만, 그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결국 몰락하게 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성취된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의 마지막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안해하고 괴로워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 역사의 미래를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분명하다.
우리가 그 분명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일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내일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 하나님 앞에 나를 맡기자.
우리에게 더는 희망이 없고, 악한 자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큰 역사의 눈으로 보면 역시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배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시오. 그 악인들은 임시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긴 안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역사를 대하는 시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역사의 작은 부분에 시선을 집중하니까 악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고 악이 세상을 흔드는 것 같다.
좀 더 넒은 눈으로 보고 구원의 드라마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누리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적인 사람은 긴 안목의 역사를 이 순간에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를 바로 알고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한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