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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밀, 메밀, 쌀, 감자 등 곡물 가루로 만든 반죽을 가늘고 길게 뽑아내서 만든 식재료인 면(麵)을 지칭하는 순우리말. 넓은 뜻으로는 면류 전반을, 좁은 뜻으로는 한국 면요리의 일종인 잔치국수만을 의미한다.
한자어로는 '면'(麵)이라고 한다.
'국수'라는 순우리말 어형 역시 한국식 한자어인 麴鬚(누룩 국, 턱수염 수)가 원형이라는 설도 있다. 누룩처럼 반죽을 둥그렇고 넓게 펴서 수염처럼 잘라 만드는 요리라는 의미다. 다만 이 설은 신빙성이 떨어지는게 출처도 불분명할 뿐더러,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음식 이름이 현재 한국 한자음과 정확히 일치하기도 쉽지 않다. 누룩과 수염으로 음식 이름을 정했다는 것부터 너무 끼워맞춘 느낌이 강하다. 차라리 고려시대에 메밀(穀)로 면을 만들어 김치 국물(水)에 담그어 먹었다고 전해지는 곡수(穀水)가 국수로 바뀐 것이라고 추정해보는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동남방언으로는 '국시'이다('안동건진국시' 등). 그래서 예전 개그로 "국수와 국시의 차이는? -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는 밀가루 면만 麵(면)이라고 부르며, 밀을 제외한 면은 粉(분/fen3/펀)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들이 중국에 갔을 때 아무리 봐도 겉으로는 몐으로 보이는 펀 사진을 보고 이 면 요리 달라고 하면 중국 종업원이 "이건 몐이 아니라 펀이라고 펀!" 이라며 실랑이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현지인 입장에선 면과 분이 구분되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비유하자면 짜장면 사진에 대고 짜장밥 달라는 식이니까 재확인을 안 할 수가 없다. 문제는 밀가루 면과 쌀가루 면의 겉모습 차이가 그다지 없어서 헷갈리기 쉽다는 점. 쌀국수는 米线(미셴)이라고도 한다. 웬만하면 대충 알아듣고 알아서 가져온다
한국어에서는 '면'이라는 단어가 쌀가루 면까지 포함하긴 하지만, 보통은 쌀가루 면을 '쌀국수'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麺(めん)이라고 하지만, 본래 메밀을 뜻하던 '소바'가 워낙에 국수로 자주 만들어지다 보니 메밀 이외의 것으로 만든 국수를 '소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오키나와 소바, 중화 소바 등. '우동'은 중국어 훈툰(餛飩)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역시 꽤 다양한 종류의 면 요리를 지칭한다.
한국어에서 '분식'(粉食)은 본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지칭했고 많은 면 요리가 분식에 속했다. 오늘날에는 분식의 의미가 변화해 분식집이라고 면 요리를 특별히 더 많이 팔지는 않는다.
국수 가게를 '면옥'(麪屋/麵屋)이라고도 부르지만, 라면이나 짜장면처럼 각각 분식집, 중국집의 범주에 속한다면 면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주로 냉면 전문점만 면옥이라고 부르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 시내에 가장 번성했던 면 전문점이 바로 냉면집이기 때문이다. 중국집의 경우 식사부 외에 요리부도 겸해서 '청요릿집'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었고, 분식집은 1960년대 이후 정부의 분식장려 정책으로 생겼다.
옛날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최초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추정한다.
누들로드 등 면 관련 자료를 보면 인류 최고(最古) 문명 발상지와 가까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를 발굴하였다. 여기서 서쪽으로 퍼진 것은 최초의 국수와 가까운 형태인 파스타, 동쪽으로 퍼진 것은 쌀국수, 탕면 등 각기 독자 형태로 발전했다. 이후 아시아 쪽에서는 꽤 널리 퍼졌지만 유럽 쪽에서는 파스타를 제외하고는 그리 널리 보편화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삼국 시대나 남북국 시대에 전래되어 먹었다고 추정되나 구체적인 문헌 증거는 없다. 일단 고려도경에 식사 접대를 할때 내온 음식 중 하나로 국수를 언급 하고 있어 늦어도 고려 시대부터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국수는 접대는 물론 제례에도 사용되었으며 사찰에서 만들어 팔기도 했다. 노걸대에 ‘우리 고려인은 습면(濕麵)을 먹는 습관이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생각보다 자주 먹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반도가 밀을 많이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밀가루가 비싼지라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성인식이나 혼인식같은 귀한 잔칫날에만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대신 메밀을 사용하거나 밀가루를 녹두나 전분과 섞는 방식으로 면을 만들었는데 이 중 메밀로 만든 국수 종류가 가장 많았다. 보통 한반도 북부에서는 메밀을 이용한 온면이나 냉면, 막국수가 발달했고 남부 지방은 밀가루를 이용한 칼국수가 발달했다. 현재까지 문헌에서 그 모양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가장 오래된 국수는 녹말로 면을 만든 녹두나화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국수라고 할 수 있는 우동은 헤이안 시대 때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소바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전래했다. 메밀국수가 전래하기 이전에는 메밀로 국수를 만든다는 개념이 없어서 그냥 메밀가루를 호화시켜 만든 소바가키(そばがき)라는 것을 먹었다.
근대 시기에는 일본에서부터 건면 제조를 시작하였는데 이후 한국전쟁 때 미국에게서 받은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풀린 이후 일반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농업이 정상화 할 때까지 오래 걸리리라고 여겨 밀가루를 대량으로 생산해 두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정상화 하여 남아 돌던 밀가루가 한국까지 유입된 것이다. 이 때 원래대로라면 메밀로 만들던 냉면을 밀가루로 만들어 밀면이 탄생하는 등 새로운 면 음식이 생겼다. 쌀이 부족하니 비교적 싼 수입산 밀가루로 끼니를 대신할 수 있도록 혼분식 장려 운동을 시작하며 국수 문화를 다시 보편화 하였다.
국수는 매우 익숙한 음식이지만, 역사가 깊은 만큼 다양한 변형이 생겨서 그것을 정의하는 범위가 워낙 포괄적이라 무엇을 국수라고 하는지 정의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곡물 가루를 원료로 만든 주재료에 수프(간을 한 국물)를 더해 먹는 음식을 면류로 정의한다.
통상 우동/라면/짬뽕같이 밀가루로 만든 길쭉한 면발의 주재료에 묽은 국물을 더한 형태를 전형적인 면류로 생각한다. 수제비/떡국같이 주재료의 모양이 일반적인 면발 모양이 아니어도 면류이고, 짜장면/스파게티같이 국물의 점도가 높은 것들도 면류이다. 위의 정의에 따르면 모양도 면발이 아니고 국물의 점도도 높은 떡볶이도 면류라고 할 수 있다.
5.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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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시판되는 국수(소면)를 만드는 모습. 동영상
다양한 곡물가루, 대표적으로 쌀가루 또는 밀가루에 약간의 소금을 넣고 물로 반죽하여 면을 뽑은 뒤 말린 것이다. 이러한 건면은 이탈리아의 파스타 등도 있으나, 한국의 흔히 볼 수 있는 건면국수인 소면은 밀의 종류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다. 파스타 중에서도 소면과 거의 비슷한 굵기의 카펠리 단젤로(천사의 머리카락)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파스타 종류들은 듀럼밀을 사용하는 데다, 반죽할 때 물 대신 계란을 사용하기 때문에 식감이나 풍미가 전혀 다르다.
한국의 제면법은 분틀에 반죽을 넣고 눌러서 뽑아내는 압면(押麵), 반죽을 넓게 펴서 둘둘 말고 칼로 썰어내는 절면(絶麵)으로 이분화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면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른다.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길게 늘려 만들면 라면(拉面)이라 한다. 이외에도 수공면(手工面)이나 도삭면(刀削面) 등도 있다.
한국에서는 국수라고 하면 떠올리는 음식이 지역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양반이 많았던 한양, 개성 및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서부, 황해도 동남부에서는 밀로 뽑은 잔치국수가 대표적인 국수 문화로 자리잡았다. 엄밀히 말하면 잔치국수(물국수)조차도 경상도식과 서울식으로 갈라진다. 경상도 해안가 쪽은 거의 멸치국수라도 해도 좋을 정도인데, 멸치 외에도 부추가 들어가고 멀건 국물에 청양고추나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잔치국수는 멸치육수 베이스임은 비슷하지만, 서해에서 나오는 디포리나 각종 버섯, 양파류를 사용하여 더 풍부한 맛을 낸다.
다만 생각보다 밀가루 국수가 흔해진 건 오래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대부분의 국수는 메밀로 만들어졌고, 밀로 국수를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음식디미방에서 알 수 있듯 양반가에서도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섞어 칼국수를 만들었고, 남부 지방에서도 안동건진국수처럼 귀한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국수를 만들었고 왕실에서도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먹었다 일제강점기 때에 소면이 들어오긴 했지만 '조선인들은 메밀면, 일본인들은 소면'이란 말이 나올만큼 메밀국수가 디폴트였던 것이다. 밀가루 국수는 미국에서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며 보편화되었다. 물론 밀가루 국수의 대명사인 소면이 들어온 건 일제강점기 이후지만, 남한에서만 밀가루 국수가 메밀국수의 수요를 대신한 걸 보면 미국의 영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반면 기후가 거칠고 양반이 적었던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동부, 충청도 충주 동쪽 지역에서는 메밀로 뽑은 냉면과 막국수가 이들 지역의 주된 국수 문화가 되었다. 메밀 재배조차 힘들었던 함경도에서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농마국수가 지역을 대표하는 국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강원도, 경기도 동부를 제외한 남한 지역에서는 국수라 하면 잔치국수 등 따뜻한 면요리를 떠올리지만, 강원도 및 경기도 동부에서는 국수라 하면 막국수라는 차가운 면요리를 떠올린다. 역시 북한의 평안도, 황해도 일대에서는 국수라 하면 일반적으로 냉면을 뜻하며, 함경도로 가면 농마국수를 떠올린다. 이북 지역과 강원도에서는 따듯한 국수를 '온면'(溫麪)이라고 따로 불렀지만, 이남 지역의 강원도는 수도권과 빈번히 교류하여 이제는 온면을 마냥 따로 구분하지만은 않는다.
이렇듯 한국에는 지역마다 재배되는 작물에 따라 다양한 국수 문화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전통 국수요리는 냉면, 칼국수, 막국수, 고기국수, 올챙이국수, 콩국수, 간장국수 등이 있다. 구한말부터는 외래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잔치국수, 짜장면, 우동, 짬뽕, 라면 등 한국식으로 어레인지된 국수 요리 및 쫄면, 밀면, 비빔국수, 잡채처럼 국내에서 아예 새로 만들어진 면요리가 생겼다. 또한, 분단 이후 이남 지역의 경제력 상승으로 인해 전세계에서 음식 문화가 유입되어 2000년대 이후로는 파스타, 쌀국수 등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다.
크게 물국수와 비빔국수, 그리고 볶음국수로 나뉜다. 쫄면도 크게 보면 비빔국수의 일종이다.
국수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정말 많다. 가정에서 소면으로 간단하게 먹고 싶다면, 집에 흔히 볼 수 있는 충분히 익은 김치국물을 머그컵 반 컵 정도, 김치를 1/4포기 정도 썰어넣고, 고추장을 취향껏 두세 스푼, 설탕 반 스푼만 넣어도 물이 끓은 후 3분 안에 만들 수 있는 먹을 만한 비빔국수가 된다. 소면은 가격이나 공간대비 삶은 후의 양이 꽤 많기 때문에 한 번 사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맹물에 설탕만 넣어 설탕국수로 먹기도 하는데, 간단한 방법과 의외의 맛에 비해 고정관념을 깨는 레시피라 타 지방 출신에게 컬처쇼크를 주기도 한다. TV 지역방송에 전남 섬지방에서 공동 작업을 하다가 새참으로 국수를 먹을 때 그대로 혹은 매운 양념에 더해 설탕을 듬뿍 넣어 말아 먹는 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다. 경상도도 맨 설탕물에 말아 먹지는 않지만, 설탕을 과용해 김치말이국수를 하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짠 것 위주인 다른 재료에 부족한 단맛과 감칠맛을 쉽게 낼 수 있고, 피로회복 겸 노동에 필요한 열량을 주기 때문인 듯 하다. 그리고 이런 식품이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초장에 단맛을 더하면 팔도 비빔면의 양념장 맛에 가까워진다.
한중일 삼국 중 면류가 가장 발달한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그중에서도 산시성(산서성) 국수 요리가 중국에서도 유명하다.
한국, 일본은 기후상 밀을 주식으로 삼기 힘든 곳이 많은 반면,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은데다 문명의 발상지인 화북이 밀농사에 적합한 기후여서 수천 년간 밀가루 요리를 주식으로 삼은 지역이 많았다. 아예 서양에서 수프를 먹을 때 빵을 뜯어서 넣어서 먹는 방식과 유사하게, 끓인 양고기 탕에다가 발효되지 않은 구운 빵을 손으로 잘게 뜯어 넣어서 수저로 떠먹는 식습관도 있다. 만두에서부터 밀전병 국수, 빵 등을 주식으로 자주 먹어왔었다.
동아시아의 국수 전파만 하더라도 중국 송나라(북송)에서 자주 먹던 국수가 동아시아 각국으로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국수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때는 중국 송나라로부터 면이 전파된 고려시대부터였다. 일본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게서 국수 문화와 국수와 관련된 요리 기법들을 전파 받았다. 일본의 독창적인 전통 요리기법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무를 갈아 국수에 곁들어 먹는 양념으로 쓰는 식문화도 중국으로 유학 간 일본 승려들이 중국 선종을 배우면서 중국 사찰에서 먹던 식재료들과 조리기법들을 일본으로 가져온 것에서 기원했다.
무를 갈아서 곁들이는 것 외에도 콩으로 국물 내기, 참깨를 절구로 갈아 으깨서 식재료로 쓰는 것 등도 함께 배워왔다. 이 때문에 일본의 국수 역사에서 일본의 불교, 승려, 사찰은 빠질 수 없는 존재로서 항상 언급된다. 특히 13세기 가마쿠라 시대에 송나라에 유학한 승려 엔니(円爾)가 유명하다. 1236년 쿠조 미치이에(九条道家)는 교토에 토후쿠지(東福寺)를 창건하고 엔니를 초대 주지로 모셔왔는데, 지금도 토후쿠지는 엔니의 기일이 되면 아예 면을 삶아 공양을 올린다.
중국 국수문화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넓은 대륙에 수많은 식재료를 결합하여 새로운 국수를 창조한다. 그 예로 중국 류저우시에는 뤄쓰펀이라 불리는 달팽이, 정확히는 우렁이 국수가 별미로 손꼽힌다. 달팽이 국수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을 좋아한다고 해서 인스턴트식품으로도 개발되었다고 한다.중국 달팽이 요리 쏸라펀은 충칭시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
일본은 간토 지역에서는 소바가 유명하고, 간사이 지역에서는 우동이 대표적인 국수 요리이다. 특히 소바는 에도 시대에 제면법이 완성되어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 완성된 형태가 변하지 않은 유서 깊은 음식으로 인기가 많다.
이러한 동서 구분은 현대의 일본에서 또 다른 양태로 드러나는데, 바로 라멘의 구분이다. 가장 서쪽 끝인 하카타(후쿠오카)는 중국과 오키나와의 영향으로 돼지뼈 국물이 진한 돈코츠 라멘을, 오사카 등 간사이 지역은 소금간을 한 시오라멘, 도쿄를 비롯한 간토 지역은 우동처럼 간장을 뿌려 간하는 쇼유라멘, 그리고 홋카이도 지역은 된장을 풀어넣은 미소라멘이 주력이다.
본토 외의 지역의 국수 요리로는 오키나와의 오키나와 소바가 유명한데 본래 오키나와는 밀을 기르기에 좋지 않은 기후 때문에, 밀가루 면요리는 그리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으나 1902년 나하시에서 중국인 요리사가 면요리를 만들던 것을 시작으로 오키나와 소바가 등장하여 전쟁 후 미군 원조물자로 많이 들어온 밀가루를 사용해 오키나와 소바를 만들면서 많은 오키나와 소바 음식점들이 번성하였다.
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에서의 면 요리는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비롯한 파스타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오래 전부터 파스타를 먹어 온 것으로 보이는데 12세기 이전부터 시칠리아에서 스파게티를 수출해 왔고, 고대 로마 유적에서 파스타 틀로 보이는 물건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베트남의 쌀국수인 퍼, 태국의 팟타이가 유명하나 이들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아 근대 들어서야 등장했다. 문서 참조.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수타면 요리인 라그만이 있다. 지역마다 국물의 양을 많게 하기도 하고 적게 하기도 한다.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손으로 먹는 문화라 자체적인 면요리가 잘 발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인도식 중화 요리의 흥행으로 차오멘(혹은 만초멘) 등의 면 요리가 인기가 있다.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지역에는 국시(кукси)라는 요리가 있는데 한국에서 건너간 고려인들이 퍼트린 국수 요리다. 냉면처럼 차게 해서 먹기도 하고 따뜻하게 먹기도 한다.
긴 형태 때문에 동북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장수의 의미로도 사용되며, 때문에 생일에 국수를 먹는 풍습이 있다. 한국에서 설날이나 생일에 떡국을 먹는 것도 크게 보면 떡국 자체가 긴 '가래떡'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국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예 아주 기다란 한 가닥으로 한 그릇을 담아내는 '일근면' 같은 조리방식도 존재한다. 중국, 일본에서는 지금도 찾아볼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소 생소한 방식인 듯.
한국 냉면에선 가위로 썩둑썩둑 면을 잘라주는 서비스를 시행하는데, 먹기에는 무척 편해지지만 '장수 기원'이라는 문화적 코드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다. 한국을 제외한 면 문화권 사람들에게 면을 가위로 자르는 행위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국수로 장수를 기원하는 문화는 한국도 공유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냉면에 가위질하기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라면을 끓여 먹을때 면을 부수는 사람이 많고 자른 당면이 시중에 팔리는등 한국에서는 면과 장수에 대한 연관성은 많이 옅어진 편이다
옛날엔 생일, 결혼식 등 잔치에서 자주 만들었다고 한다. 면발의 길쭉한 생김새에서 장수하라는 좋은 의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면이 준비되면 빠르게 요리로 만들어 다수의 하객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중국에서 온 듯하다. 중국에서는 생일잔치 때 장수면(長壽麵)이라고 말 그대로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먹는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면이 끊어지면 안된다는 것. 때문에 한국에 오는 중국 관광객들이 생일을 맞이해서 냉면집에 들어가 냉면을 장수면으로 먹는데, 이걸 끊을 수도 없고 다 삼킬 수도 없고 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광경을 가끔 볼 수 있다.
현대는 거의 뷔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의 결혼 소식을 들으면 '국수를 먹여준다'라는 관용어를 사용한다. 상대방에게 결혼을 언제 하느냐고 묻는 이야기를 할 때 '국수는 언제 먹여줄 거냐?'라고 묻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실제로도 결혼식 때에는 뷔페 메뉴에 잔치국수나 우동이 빠지지 않고, 잡채나 비빔국수 등으로도 제공된다. 설령 양식 풀코스를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매뉴에 스파게티가 있거나 소량이나마 국수가 서빙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이사 온 사람이 이웃에게 국수를 돌리는 문화가 있다. 그냥 국물이 있는 국수를 돌리면 불기 때문에 주로 자루소바를 돌린다. 현대에 와서는 웬만한 시골이 아니면 그냥 포장된 건면을 사다가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개 양 옆집과 맞은편 집의 3곳에 돌리며 조금 여유가 있다면 맞은편 집의 양사이드까지 5곳에 돌린다.
한식에선 설렁탕이나 갈비탕 등의 탕류 요리에 소면, 당면 등을 넣기도 한다. 혼분식 장려 운동의 영향이 남은 것으로 그 시절에는 특정 요일에는 밥을 취급하지 못했으니까 궁여지책으로 국수를 대신 넣은 것이다. 면요리로 취급될 정도로 충분한 양을 넣지는 않고, 그냥 고명 역할을 하는 정도.
일본에서는 중국에서 공부하고 온 승려 엔니(쇼이치 국사)가 국수 뽑는 기계의 설계도를 가지고 제작,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만 먹는 종교의례용 음식이었지만 점차 민간으로 퍼지면서 대중화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사찰 요리로 전파되었던 듯하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사원에서 면을 만들어 판다는 기록이 있다. 사료를 보면 절에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국수를 대접했다는 기록도 볼 수가 있다.
현재도 사찰에서는 국수를 스님의 미소라는 뜻의 '승소(僧笑)'라고 하는데, 공양으로 국수 나온다고 하면 스님들이 그냥 좋아서 빙긋 웃기 때문이다. 누들로드에 출연한 선재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아무래도 채식 위주의 식단이라 단백질이 부족할 수 있는데, 밀가루 글루텐도 단백질이므로 본능적으로 부족한 영양소의 보충을 위해 몸이 당겨서 그런 것이 더 강하다고 한다. 더구나 옛날에 국수는 요새로 치면 패스트푸드로 격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일본에서는 국수를 먹을 때는 소리 내어 먹는 예절이 있는데, 일본의 엄격한 선종 사찰에서도 국수를 먹을 때만큼은 소리내서 먹는 세속의 예절을 따른다. 평상시의 엄격한 기준을 좀 풀어준다는 뜻이다.
그 유명한 법정 스님은 한창 국수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어서 그 때는 남들이 몇 생을 거쳐야 먹을 국수를 먹었노라고 수필에 써놓았다. 가끔씩 외출을 할 때도 국수를 먹기도 했는데, 휴게소 우동이 제일 맛이 없었다고 깠다. 며칠 동안 퉁퉁 불어터진 면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뜨거운 국물에 잠시 척 담가져서 사람 앞에 오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휴게소 우동은 시판용 면과 국물을 미리 준비해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면만 해동해서 국물에 담아서 내놓으므로 엄청 빨리 나오는데 반대급부로 맛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어떤 지역 휴게소 보리국수는 상당히 맛있더라고 적어놓으시기도 했다. 그렇게 줄기차게 국수를 먹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물려서 암자로 국수가 들어오면 근처 사찰로 다 보내버렸다고 한다.
말린 국수는 들고 다니기 쉽고, 잘 상하지 않는다. 이는 실크로드를 지나갈 때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아무 때나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면 요리는 예나 지금이나 최강의 패스트푸드다.
물기를 없앤 국수는 보존기간이 굉장히 길어 비상식량처럼 쓰기도 한다. 다만 삶을 때 물을 상당히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식수를 구하기 힘든 환경이라면 물의 소비를 줄이는 조리방식을 써야 한다. 부숴서 죽처럼 쒀 먹는 것이 보통.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국수 자체를 씹어서 먹을 수도 있기는 하다. 말린 음식은 수분을 흡수해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국수를 그대로 씹어 먹는다면 많이 먹을 경우 배탈에 주의해야 했다고. 만약 연명(?) 비슷하게 사용한다면 많이 먹지 않는 게 좋다.
옛 중국에서도 튀긴 후 말린 국수를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 다만 기름에 튀기면 몇 달 못 가 산패하기 때문에 과거라면 모를까 오늘날엔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애당초 튀긴 국수도 보관기간이 길다는 점보다는 자연건조로 말리는 데 시간이 며칠씩 걸리는 건면보다 생산 후 빠르게 보관, 수송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국수는 대부분 가늘고 길게 만드는데 빨리 익도록 하기 위함이다.
크게 나누자면 가느다란 소면, 굵은 중면이 있는데, 소면이 중면에 비해 더 가늘고 소면 아래로 더 가는 세면이 있고 중면도 크기가 살짝 조금 더 큰 정도지만, 중면도 어느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외 면에 다른 재료를 섞은 것도 있고, 칼국수처럼 넓적하게 나온 것도 있으나 기본적인 소면과 중면이 가장 흔하고 많이 쓰인다.
동네 슈퍼마켓과 마트에서는 소면을 주로 팔고 더 해야 칼국수 정도인데, 요즘은 간편식을 선호하는 추세에 밀려 특히 칼국수는 면만 파는 상품은 줄어들었다. 국수맛을 아는 사람은 세면과 중면을 소면과 구별할 텐데, 가게에서 구하지 못했으면 온라인을 뒤져 보자. 업소용 납품은 잘 되는지 메이저 브랜드도 만든다.
소면은 주로 비빔국수용으로, 중면은 잔치국수용으로 쓰인다. 대개 마트등에서 살 수 있는 건조된 면은 세면,소면,중면 정도로 나뉜다. 소면보다 더 작은 세면의 장점은 넘기기가 쉽고 금방 삶아져서 가스불을 오래 켜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 오히려 금방 삶아지기 때문에 삶는 시간을 잘 챙겨야 한다. 소면보다도 부서지기가 가장 쉬우니 주의. 소면과 세면의 구분은 꽤나 미묘한 수준이지만, 대단히 가느다란 형태의 국수 가락들이 보통 세면으로 취급 된다. 세 가지 면을 동시에 늘어놓고 보면 확실히 차이가 나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