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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대 문명은 1953년 찰슨 햄굿이 주장했고. 아인슈타인이 그이론을 뒷받침했다.
그들의 이론의 따르면 초고대 문명은 약 서기1만 2000년전에 존재했고 현재와 같이 여러나라들이 존재했으며 대부분이 공산당이었다. 그 당시에는 마야 문명과 고대 일본 아틸란틱같은 많은 왕중심제 나라가 있었고 무슨일인 지는 모르지만 큰 재앙이닥쳐 정신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현재의 인류보다 훨씬앞선 초고대 문명은 멸망위기에 놓인다.
그들은 문명과 유물등을 보존하려하였으나 결국 실퍠하고 말았다 몇명의 인류만이 재앙에서 살아남고 건물 기술 예술 과 그당시 유물들도 거의다 소멸하였다 그러나 깊은 바다속, 이집트 사막가운데에서 그들의 흔적이 발견된다.
초고대 문명
Graham Hancock이 책에서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은 '지구는 기원전 지각이동설에 의해 지각의 극이 바뀌는 대 재난을 겪은 적이 있다. 이 때, 그때까지 이어져오던 남극의 어떤 찬란한 문명이 빙기의 변화에 의해 남극의 얼음 밑에 사장되었다. 이 사라진 문명은, 당시로 보았을 때의 미래의 인류(즉 유사 이래의 인류)에게 그들의 문명을 조금이라도 알리기 위해 그 흔적을 지구의 곳곳에 남겨놓았고, 이 흔적이 바로 현재의 인류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세계 각지의 문화유산들이다.
과거의 대 재난 이후로 지구는 한 번 더 지각의 극이 바뀌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현상은 21세기 초엽에 일어날 것이다. 지각의 극이 바뀌게 되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되며, 이 때 살아남는 인류는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유사 이래로 인류가 갈고 닦은 문명이 모조리 파괴될 것이어서, 미래의 대 재난 후에 인류가 또 다시 번성하게 된다면 그들은 <원시생활>에서부터 문명을 <재시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인류는 정말로 멀지 않은 시대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대 재난으로부터 문명을 지켜서, 다음 인류에게 전해줄 현명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다.
따라서 이 학설은 유사 이래로 인류가 인정한 모든 '역사'를 부정하며, '유사'라는 용어 자체를 회의한다. 즉 우리가 '문명발상지'라고 부르는 몇몇 지역에서 일어난 문명은, 인류의 최초의 문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사 이전'에도 인류의 역사는 있었으나, 그 시대의 역사서 등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인류는 '유사' 이전 시대의 역사를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밖에 알지 못한다고 한다.
지각 이동설
위에서 저자가 언급한 '지각이동설'과, '판구조론'이라고도 불리는 '대륙이동설'(plate-tectonics)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대륙이동설은 17세기부터 태동하였는데, 자연주의 철학자 Francis Bacon이 대서양 해안선이 병행함을 지적한 후로 여러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0세기 초 독일 기상학자 Alfred Wegener가 본격적으로 대륙표이의 증거를 제시하여 많은 연구가 있은 후에, 1960년대 말에는 대부분의 지구과학자들이 이 이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륙이동설은 그 대담한 직관이 확실한 증거보다 훨씬 먼저 나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 후 서서히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질학원론 (1989), 원종관 외, 우성문화사, 서울.)
지각이동설은 1953년 미국 역사학자인 찰스 햅굿이 주창하여 아인슈타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지질학 이론이다. 지각이동은 암권에 의해 지구의 표층 전체가 내부의 부드러운 부분은 그대로 두고 몇 번에 걸쳐 이동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오렌지 껍질이 알맹이와 떨어져 헐거워지면 껍질 전체의 위치가 한 번에 바뀔 수 있는 것과 같다. 지각이동에 의해 남극대륙이 남쪽으로 이동해 가는 동안 대륙은 점점 식어, 수천 년간 만년설이 형성·확대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 이론은 남극대륙의 대부분이 기원전 4,000년까지 얼음으로 덮여있지 않았던 이유와 같은 지구과학의 변칙성에 대해 설명한다. 당시 남극대륙이 따뜻했던 이유는 현재보다 3,200㎞ 북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남극대륙은 남극권의 밖에 있었고 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본문 p.21)
아인슈타인은 지각을 이동시키는 힘의 원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극지권에서는 얼음이 계속 퇴적하는데, 언제나 고르게 퇴적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는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불균등하게 퇴적된 얼음에 영향을 미치는 원심력이 발생하여 지구의 딱딱한 지각에 전달된다. 계속 증가하는 원심력은 어느 점에 도달하면 지구의 내부는 그대로 두고 지각만을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지구의 극지대는 적도 방향으로 이동한다. "( 본문 p.22, p.622)
햅굿에 의하면 대륙이동설과 지각이동설은 상반된 이론이 아니다. 두 이론은 서로 병행하며 일어날 수 있는데, 지각은 몇억 년에 걸쳐 서서히 이동하면서 급격한 이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각이 급격하게 이동할 때는 대륙간의 위치 관계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대륙 전체를 두 고정된 극지대 속으로 또는 바깥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이 이론에 대한 증거로 남극대륙에서 발견된 열대식물과 열대갑각류의 화석과, 고운 입자의 퇴적물, 뒤에 설명할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 부아슈의 지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19세기의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균일설과 천재지변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나는 천재지변설과 균일설 사이에 사상적인 대립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연한 변동은 일관된 움직임의 본질적인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견해를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다. 시계의 동작은 일관된 움직임의 모델이다. 시계가 정확하다는 것은 움직임이 일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계가 해머로 시간을 알리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돌연한 변동이다. 해머는 총신의 화약을 폭발시키는 장치일지도 모르고 다량의 물을 내뿜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세공을 하면 시계가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그때마다 다른 강도에 다른 횟수로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릴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불규칙하게 보이는 이 변동은 완전히 일관된 움직임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계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파가 생긴다면 두 가지 학파가 생길 수 있다. 하나는 해머를 연구하는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진자를 연구하는 학파이다. ") 본문 p.638
피리 제독의 고지도
저자가 위의 충격적인 이론에 대한 증거로 제시한 것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6세기 중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해군 제독이었던 '피리 레이스'가 1513년 작성한 아프리카 서해안, 남아프리카 동해안, 남극대륙의 북해안을 그린 지도에는 얼음으로 뒤덮이지 않았던 기원전 13,000년부터 기원전 4,000년 사이의 남극대륙의 산맥과 강 등이 정확히 표시되어있다. 이 지도는 피리 레이스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먼저 만들어진 다른 여러 지도를 베껴 그린 것이라고 지도에 쓰여있다.
그러나 남극이 인류에 의해 발견된 것은 1818년이고, 유사이후 과거에 만년설로 뒤덮이지 않은 남극을 그토록 자세히 그릴 수 있는 기술은 없었다. 그렇다면 피리 레이스가 모사한 지도는 빙기가 오기 전의 남극을 고도로 발달한 알려지지 않은 문명이 작성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얼음으로 덮이기 전의 남극을 모사한 사람은 피리 레이스 한 사람이 아니다. 도법으로 유명한 16세기 네덜란드의 지도제작자 메르카토르, 18세기 프랑스의 지리학자 필립 부아슈, 16세기의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이다. 특히 피나에우스가 모사한 지도에는 만년설이 대륙의 오지에서만 발견되므로, 원본 지도는 남극에 얼음이 없던 기원전 13,000년경에 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알 수 없는 문명이 그려놓은 지도는 남극지도 뿐이 아니다. 피리 레이스가 1513년에 모사한 남아메리카지도에는 1543년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마라조 섬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그 위치도 현재와 매우 다르다. 그리고 오리노코 강과 현재의 델타지대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원본 지도가 그려진 시대부터 퇴적하여 오늘날의 델타지대가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피리 레이스의 지도에 나타나있는 대서양의 거대한 섬은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위치가 중앙 대서양 해령의 위치와 일치하므로 당시 이 지역에 지도와 같은 섬이 존재했을 지도 모른다
. 2세기 로마의 지리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고대의 원본 자료를 토대로 편집한 북해도에는, 스웨덴 남쪽까지 빙하로 뒤덮인 기원전 10,000년경의 북유럽이 매우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리고 1770년대에 영국의 존 해리슨이 크로노미터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정확한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위의 사람들이 모사한 원본 지도들은 경도와 위도가 정확하다. 또한 이 원본 지도들은 구형의 지구 표면을 평면의 종이에 나타내는 투영도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지구가 구체라는 사실에 대한 지식과 이에 따르는 매우 복잡한 기술인 구형삼각법(球形三角法)이 쓰였을 것이다. 1137년에 베낀 중국의 돌기둥에 그려져 있던 지도 역시 경도의 정밀도가 뛰어나고, 바둑판 형태의 눈금 선이 있으며, 구형삼각법을 이용하여 작성되었다고 한다. 이 지도는 유럽과 중동의 지도와 차이가 없다.
문명의 계승
이로 보아 '전 세계에 걸쳐 사라진 문명의 유산이 계승되어왔다'는 새로운 추측을 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한 것들에는 이 외에도 '페루의 나스카 지상 그림', '잉카문명',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숫자',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별의 세차운동', '각 민족의 신화' 등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지각의 극이 바뀌면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발생할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마지막 자장의 반전이 있었던 기원전 11,000년에서 기원전 10,000년 사이에 대형 포유류가 멸종되고, 해면이 갑자기 상승하고, 허리케인 같은 폭풍이 치며, 뇌우와 화산활동이 일어나게 된다.
즉 지상 위의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2030년경에 다음 자장의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현재로부터 33년 후의 일이다. 만에 하나 예측이 들어맞는다면 인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철저한 파괴'를 피해 소수의 현 인류가 살아남을 것이며, 그 대다수는 원시생활로 역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소수 중에서 몇몇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대다수에게 지식을 전파하거나 문명의 흔적을 남겨, 후세 인류가 문명을 다시 일으킬 발판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세의 인류'는 현재의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문명을 발전시켜간다는 것이다.
1. 몇만년 전에 초고대 문명이 존재했을까요..?
일단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추측은 해볼수있습니다. 대략 초고대 문명의 최초 형성시기는 불명입니다. 현재까지는 대략 20000년 정도 이전이 가장 빠른 고대문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지구에서 진화한 인간계통의 생물일 경우에 한함]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4대문명과는 당연히 질적으로 틀리죠. 벽돌집에 간단한 농기구등을 사용하는 문명과 현대와 필적하거나 그보다 더 뛰어난 문명이 초고대 문명이니까요.
1.아틀란티스
대부분 고대문명은 2000~3000년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기원전8000년 경에 대서양에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한 크기의 대륙이 존재했을 거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지적입니다. 이 대륙을 아틀란티스 라고 하고 여기서 최초의 문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로마를 능가하는 문명을 이룩하였던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대륙은 자연재해(화산폭발, 지진,허리케인)로 멸망한것으로 보입니다.
2.히타이트
고대문명중 메소포타미아 문명아시죠? 이 문명중 바빌로니아 왕국 을 정복하고 철기를 바탕으로 눈부신 문명을 이룩했던 국가중 하나죠, 그런데 이 히타이트 수도 부근에서 히타이트멸망이후 약 1000년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 지금까지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나오고 있죠, 또한 이 수도부근 건물에서 건축 벽돌이 녹아내린 흔적이 있어 의문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정도의 열기라면 핵이나 화산폭발이 아니고서 일반화재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온도라 더더욱 의문은 깊어 져갑니다. 또 기록에 의하면 바다의 민족에 멸망되었다고 고대문자로언급이 되어있습니다.
2. 고대의 핵전쟁이 있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자료등) [위의 1번도 연관]
전혀 없었다고 볼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현재 어느정도 검증된 자료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발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발굴로 인하여 고대의 이 지구상에는 핵전쟁이 발생했음이 거의 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으로는 고대 핵전쟁이 있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없지요. 그처럼 먼 옛날에 핵폭발을 일으킬만한 기술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 옛날에도 고도로 발달된 기술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지요. 1967년, 사하라 사막에서 불에 타 형체를 알 수 없는 금속덩어리가 발굴되었는데, 적어도 1만년 이전의 지층에서 발견된 이 금속 덩어리는 누군가가 가공한 흔적이 있었고, 세밀히 조사한 결과, 그 금속 덩어리는 매우 복잡한 기계의 일부분이었음이 밝혀졌죠. 더욱이 성분을 알아낼 수 없는 고도의 기술에 의한 합금이었습니다. 그럼, 왜 그런 것이 50만년 전의 지층에서 발굴된 것일까요?
1.핵폭발의 흔적[인더스 문명]
1978년 겨울, 파키스탄과 인더스 강 유역에서 고대 유적인 '모헨조다로'를 조사하고 있던 두 사람의 연구가가 크게 놀랐다. 검은 유리질의 돌로 꽉 덮여있는 직경 400m 정도 되는 넓은 광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광장을 둘러싼 돌은 광택이 있고, 무척 단단했지만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그것을 발견한 두 사람은 미친 듯 환성을 질렀다.
'모헨조다로'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발생한 인더스 문명의 도시로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은 처음부터 완벽한 도시계획 속에 건설되어, 상·하수도까지 갖추었다. 그런데 이 곳은 누가 건설하였으며, 무엇 때문에 멸망되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앞서 이곳을 발견한 두 연구가는 유리로 변한 돌을 로마대학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은 짧은 시간 동안 1,500°c의 높은 열을 받다가,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 녹은 상태에서 고체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이곳에서 발견된 검은 유리돌은 가마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화재로 인해 생긴 돌도 아니었다.
분석 결과, '모헨조다로'의 유적은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고온의 강한 폭발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그런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것은 핵폭발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2.신화 속에 등장하는 고대 핵전쟁 [인도지역(갠지스+인더스포함)]
왜 두 연구가는 먼 옛날 지구상에 핵전쟁이 있었다는 의문을 갖게 되었을까? 러 가지 논의가 계속되어 왔지만, 두 연구가가 '모헨조다로'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은 인도의 신화인 '마하바라다' 때문이었다. 이 '마하바라다'는 기원전 10세기경이 있었던 '바라다'족의 대전쟁을 말한다. 이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전쟁이야기가 씌여져 있다.
"영웅 '마스와타만' 은 하늘을 나는 전차 '뷔마나'를 타고 물 위로 내려와 신들조차 무서웠던 '아그네아'라는 무기를 마구 쏘아댔다. 반짝반짝 빛나는 빛의 이 무기는 연기가 나지 않는 불을 사방에 마구 쏘아댔다."
이 '아그네아'무기의 효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번개처럼 강렬하게 폭발한 이 무기 때문에 수 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아그네아'라는 무기의 성능은 지금의 미사일의 성능과 흡사하다. 이 것은 미사일이 폭발한 광경과 같기 때문이다.
'마하바라다'의 전쟁묘사는 계속된다. "반짝거리는 빛은 우주의 모든 힘을 갖추었으며, 태양이 일만 개나 모인 것처럼 밝고, 연기와 불이 뒤섞인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마침내 고대 핵전쟁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었다.
3.고대 핵전쟁의 흔적[터키,아프리카,중동]
고대 핵전쟁의 흔적은 '모헨조다로'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계속 발견되어 있다.인도에서는 갠지즈강(江)과 라자마하르산맥 사이에서 불타버린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다. 또, 사하라사막, 고비사막 등지에서도 계속 발견되었고, 이스라엘에서도 5m깊이의 지층에서 두께가 6mm되는 녹색 유리층을 발굴해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수 만 도가 넘은 높은 열을 쬐어야 만 가능하다고 한다. 즉, 핵폭발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 어마어마한 파괴흔적은, 지금은 쓸모 없는 사막지대와 400년 이전의 고대 유적지에 집중되어있다.
한 가지 기묘한 것은 터어키의 '카파도키아'이다. 이 곳에도 고열파괴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이는 이상한 지형이 있다. 그런데 이 넓은 고원의 지하에는 약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도시가 발견되었다. 1965년 이래, 5개 도시의 발굴이 계속되었지만, 생활도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이 거대한 지하도시는 분명히 전쟁에 대비한 일시적인 방공호가 틀림없다. 약 10만이 넘는 사람이 지하 150m나 되는 곳으로 피해야 할 전쟁이란 바로 핵전쟁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3. 핵전쟁으로 인류가 거의 멸망 뒤 부활할 가능성은 어느정도..?
일단 핵전쟁을 전개한다면 전인류의 85%이상은 전쟁 직후 사멸합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
몇일~몇주동안 기온이 급속도로 내려가는 핵겨울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남극점의 기온에 거의 필적하는 것으로써 핵전쟁 이후에 제대로 된 집과 난방장치가 없는 인류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최소 수년 이상을 버틸만한 연료채굴시설이 없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전인류의 99.7% 이상은 사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방공호등에 선택적으로 남은 1000만 이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있겠죠. 그러나 재기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습니다.[30%이하]
그것은 저장된 식량으로 정해진 기간은 버틸수 있겠지만, 그 이후 경작을 하거나 하여 살아간다 하더라도, 상당수의 인구는 점차 계속되는 식량부족으로 인한 기아와 새로운,혹은 기존의 질병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항생제는 그 수요에 따라가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생활 물자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여 남은인구는 결국 1세기 안에 절반이하로 감소하게 되고, 여기서 간신히 문명을 다시 이룩하여 번영해 나가든지, 아니면 인류의 혈통만 이은채 점차적으로 문명을 잃고 다시 원시의 삶으로 가겠죠.[로마의 찬란한 문화=>로마멸망=>크리스트 교 치하의 중세시대의 암흑문화(자그마치 몇백년이나 후퇴함)]
4. 고대 핵전쟁을 주장한 학자들은 누구 입니까?
아직까지 이름을 밝힌분은 없습니다. 어느자료를 살펴보더라도 "어느 학자들"이라는 학자들의 단체혹은 여러명의 학자들이 모여서,혹은 단독으로 조사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첫댓글 이것이 사실이라면...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런거 무서워
재밌다 와~~~~
참... 우주의 신비란.......
와ㅏ!!!!!!!!!!!!!! 와!!!! 정말 신비롭다
그럼 지금과 같은 발달된 문명이 전쟁으로 멸망하고 다시 원시사회로 돌아가 또 문명이 살아나고..이런 상태가 계속 반복됐다는 얘기인가요? 뭔가 무섭다ㅠㅠ
인류가 있는한 핵전쟁은 계속된다는 건가....
진짜 맞는거 같아요 ㄷㄷㄷ
인류의 혈통만 이은채 점차적으로 문명을 잃고 다시 원시의 삶으로 가겠죠.[로마의 찬란한 문화=>로마멸망=>크리스트 교 ㄷㄷㄷㄷㄷㄷㄷ
봉신연의를 보니깐 맞는거같긔
조낸 이런글 좋아... 스크랩좀 해가겠긔. 그나저나 아인슈타인 개미놈...역사가 니 이름만 기억해주니 좋냐
아.. 이런거 너무 좋아하는데.. 진위여부는 미지수인가....... ........엄청 궁금 ㅠ-ㅠ
이런거에 관심있다보니 관련책들 많이 읽었는데..얼마나 발달됬는지는 정확히 알수없어도 꽤 수준높은문명이 우리도 모르는새 있었던것같긔..전세계적으로 공유되고있는 하나의 이야기(ex..대홍수. 더 있었는데 생각이 안나긔 ㅠ) 라던가 이스터섬의 모아이와 제주도의 돌하르방이라던가요..
헿 이런거 너무 좋긔..다른데서도 한 번 읽었었는데... 스크랩해갈게요
예전에 어떤책에서 유명한 예언가인 에드가 케이시가 예언하기를 2100년인가? 그때쯤의 미래를 봤더니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있더라는 얘기를 봤어요. 그때는 믿을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것 같기도 해요. 문명과 원시가 계속 반복되는것..
헉..무섭다긔..
전이런 자료 자ㅓㅇ말 좋더라구요 ㅋㅋㅋ
좀 무섭군요.....ㄷㄷ 생각해보면 지금 문명은 너무 많이 발달되어 있는데,, 심히 걱정 됨ㄷㄷㄷ
정말 타임머신 개발 됐으면 좋겠다긔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