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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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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 ●자유게시판 참고 광주사태 때는 전쟁이었다
유재덕 추천 0 조회 270 08.11.15 10:03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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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11.15 12:05

    첫댓글 김치년씨가 본 붉은글씨 구호「농민수탈금지」가 제가 노란장미의 당시 전공학과를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농민수탈금지」라는 구호는 본래 1980년에는 한국에서 사라진지 오래된 구호요, 옛적에 공산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이용되던 구호였습니다. 전남대 교정에 그런 구호가 있었다는 것이 의외였고, 「농민수탈금지」구호가 전북대까지 퍼져 있었는지 궁금했었으니까요.

  • 08.11.15 13:54

    잘읽었습니다....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내세웠던 정국이었던 만큼 대학가에 나붙은「붉은 색 구호」는 그만큼 우리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이것은 시위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대중씨를 석방하기 위해 시위를 했다 하더라도 굳이 붉은 색을 사용했어야 했는지, 게다가「농민수탈금지」등 당시로서는「용공」이라고 오해를 받을 일을 자초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란내용..뻘건냄새가 많이 낫었군요... 군인들의 명예도 회복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죄인취급받고있다니.......전쟁이었다 표현이 참으로 동감되네요..

  • 08.11.15 18:47

    노란장미가 광주사태 전야의 운동권 동향에 대하여 대단한 힌트를 주는군요. 5월 17일은 토요일이었고, 5월 18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5월 17일 자정(5월 18일 0시)에는 평상시에도 학생이 학교에 있어서는 안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로지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를 준비하던 운동권이 5월 17일 자정 학교에 머물러 5월 19일부터 시작될 시위 대자보를 붙이는 등 5월 20일부터의 총궐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휴교령이 내린 시간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당시 김대중 일당의 음모는 5월 19일 월요일부터 수업을 전폐하고 총궐기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를 사전에 막기 위한 휴교령은 18일 0시부터

  • 08.11.15 18:55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아마 노란장미는 모르고 저는 아는 사실이 있습니다. 김대중 일당이 이해찬을 시켜 심재철과 유시민 등을 이용하여 5월 16일 오후 6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전국대학총학생회장 연석회의"를 소집하였는데, 그때 그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일부 학생들이 치안본부에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음모 주동자 명단을 치안본부에 넘겼습니다. 학생 운동권 중에는 서울대, 고대, 전남대, 전북대 등에 주동자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그 명단을 가진 수사기관이 5월 18일 0시의 휴교령 발효와 더불어 운동권 대학 등에서 사전예비검속을 했었던 것입니다.

  • 08.11.15 19:13

    참고로, 노란장미는 7공수부대에 체포되었던 것이 아니라, 경찰서 수사담당자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7공수는 여러 학교에 분산되어 휴교령 업무를 집행하기 위해 전북대에 들어갔던 것이고, 그래서 7공수의 역할은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을 귀가시키는 것이었고, 치안본부 산하 수사관들 역시 그 시간대에 그곳에 도착하여 주동자들이 도주하기 전에 검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당시 학생 운동권 중의 전국적 민중봉기 주동자들은 공수부대가 아니라 경찰서 수사관들에게 연행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학생 운동권 수사의 주체는 치안본부였는데, 광주사태가 터지자 군 수사기관과 민간 수사기관이 합동하여 수사하는 합수부가 구성되고,

  • 08.11.15 19:25

    합수부가 김대중 내란 음모 수사의 주체가 됩니다. 그런데, 광주사태가 아주 큰 사건이었으며, 김대중 인맥의 광주향토사단장이 광주사태 초기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을 연행하였기 때문에 경찰서에서는 그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사의 주체는 김대중의 심복 이종찬이 장악하고 있던 중앙정보부와 치안본부와 보안사로 구성된 합수부였지만 경찰서 시설 부족으로 보안대로 연행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란장미가 수사를 받기 시작한 6월에는 이미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임기는 끝났던 때였으므로 털끝만치도 수사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노란장미 관련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칠 인물이 있었다면 그 인물은

  • 08.11.15 19:30

    오히려 김대중의 심복으로서 당시 중앙정보부 최고 우두머리였던 이종찬 중정 총무국장이었습니다. 학생시위 수사 담당자들은 보안사가 아니라 중정에 있었으니까요.

  • 08.11.15 19:42

    많은 사람들이 전남대가 광주사태를 주동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진실은 광주사태 기간 동안에 전남대 운동권은 단 한 명도 광주에 없었습니다. 5월 16일 전민봉기 주동자 명단이 치안본부로 넘어가자 5월 17일 서울대 운동권이 전남대 학생회 사무실로 전화걸어 모두 즉시 도주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전남대 운동권은 전민봉기 준비를 하다 말고 모두 타 지역으로 도주하였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서울대 운동권이 전북대 운동권에게도 도주하라고 일러주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마 노란장미는 전북대 주동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란장미의 글로 보아 전북 치안본부는 5월 17일 자정의 사전예비검속 때 전북대

  • 08.11.15 19:47

    주동자들을 놓쳤던 듯합니다. 그러나 노란장미에게도 혐의는 있지요. 17일 자정에 검속당했다면 전민봉기 준비 야간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현장에서 검속당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운동권 이름을 대라는 요구를 받았던 것이요, 반성문을 쓰라는 요구를 받았던 것입니다.

  • 08.11.15 20:38

    그런데, 노란장미가 너무 쉽게 유공자가 되었군요. 5.18무장폭도들이 일으킨 유혈폭동은 너무도 엄청난 사건이었으므로 광주사태 직전 전민봉기 거사 준비를 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된 자들이 수사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요, 우리가 전방에서 3년간 군복무할 때 겪었던 고생에 비하면 3개월은 아주 가벼운 것임에도 유공자가 되었군요. 지들 맘대로 나라돈 쓰면서 유공자 숫자 늘리는가 봅니다.

  • 08.11.16 10:21

    아, 노란장미가 기숙사 안에 있었다고 하는군요. 전북대에 서울 사람을 위한 기숙사가 있었군요. 그런데 집에서 가까운 고대 농대를 놔두고 전북대 농대로 진학. 여하튼 노란장미의 경험담이 5.18사기꾼들의 거짓말을 또 하나 폭로합니다. 5월 18일 자정에 문교부 휴교령 집행을 위해 전국 대학교 정문에 공수부대원이 7명씩 배치되었음에도, 5.18사기꾼들 중에는 광주에만 공수부대가 동원되었다고 우기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경우 노란장미의 경험담이 그런 5.18사기꾼들의 거짓말에 철퇴를 가하는데 기여해 주는 셈입니다. 노란장미의 글에서 "보안대상사가 사단장 정갱이를 거더차는 일이 쉽게 목격되던 시절이었답니다.:는

  • 08.11.16 10:29

    거짓말입니다. 광주사태 이후 정웅 소장도 허상사도 평민당에 입당했었는데, 정웅이 군복을 벗고 국회의원 출마하던 당시 김대중 인맥의 정웅과 허상사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노란장미가 와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란장미는 전두환 졸개들이 김대중 내란사건 수사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김대중 졸개들이 수사를 담당했습니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907/nd99070020.html 합수부 수사였지만 노란장미가 수사를 받던 때는 김대중의 심복 이종찬 중정 총무국장의 입김과 장난 하에 수사가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이종찬은 김대중 동향 사람들로 수사진을 구성하였고, 김대중 내란음모의

  • 08.11.16 10:35

    증거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의 예비내각명단이 김대중 내란의 명백한 증거였음에도 이런 결정적 증거들을 없애면서 몸통을 보호하고, 수사 방향이 꼬리에 집중되게 하였습니다. 김대중의 졸개들로 구성된 중정 수사관들이 내란 증거물들을 없애고, 학생 운동권으로 수사 방향이 집중되게 한 다음 수사를 종결시켰기 때문에 이종찬이 김대중 후보 선거대책위 위원장, 김대중 정부 인수위 위원장,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맡았던 것이고,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로비 공작도 이종찬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김대중 졸개들이 김대중의 내란 증거물들을 없애고, 수사가 꼬리로, 학생운동권으로 집중되게

  • 08.11.16 10:36

    한 것이 김대중에게 유리하였기에 훗날 그들로 국정원을 장악하게 하였던 것이니, 만약 노란장미가 정말로 김대중 편이라면 김대중 졸개들이 김대중 보호를 위해 수사 방향을 꼬리로 집중시킨 것을 너무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08.11.16 14:57

    뭐 이건 말이 필요없군요. 광주사태의 진상을 잘 말해주는 글입니다.

  • 08.11.17 04:12

    노란장미가 쓰나미로 5.18논리가 자멸될 수 있는 헛점 투성이 주장을 많이 했군요. http://cafe.daum.net/80518/N8mN/1138 에서는 <518이 일어나기 직전 대학생등 민주화주동세력들은 이런 저런 경로로 전두환이가 광주학살을 준비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다들 안전하게 도망을 쳤지요>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허튼 주장, 이런 거짓말 하나에만 제가 공개 반박하여도 5.18논리는 와르르 허물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5.18사기꾼들의 잘못된 주장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힘드는데, 노란장미의 글들에 5.18측 허위주장이 수두룩하니 노란장미의 글들에 반박을 하면 되겠군요. 광주사태 자료 공개가 어느 정도 진행되는대로

  • 08.11.17 04:30

    노란장미의 글 하나하나에 공개 반박을 해야겠습니다. 국제적 사기꾼이 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노란장미부터 따끔하게 교육시켜야 겠습니다. <전두환이가 광주학살을 준비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면 입수한 쪽에서 공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노란장미가 누가 어디서 어떻게 그 첩보를 입수하였다는 것인지 밝히지 못하면, 객관적 진술이었는지 허위사실 유포였는지 호되게 따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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