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다문화 여성들 국내 적응 돕는 ‘사회적 농업’
영농조합법인 야호해남의 공유주방인 ‘일곱부뚜막’에서 음식만들기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다문화여성, 여성 귀농인, 마을주민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활할 수가 있기 때문에 늘 신나고 즐거워요. 사람들과 어울려 농사를 짓다보면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어려움도 하나씩 극복할 수 있게 돼요.”
몽골 출신 다문화 여성 이자연씨(34·몽골 이름 설렁거·전남 해남군 삼산면)는 요즘 사는 게 재밌다. 사람들과 어울려 농사를 지으면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 가고 있는 데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여성 귀농인, 지역 주민들과 함께 7000㎡ 규모의 농장에서 쌀·감자·나물 등을 생산하고 농산물을 가공해 반찬이나 김부각·깨강정 등 간식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해왔다.
한국에서 문화적 차이 느꼈지만
주민들과 농장일 하면서 친해져
“동네에 완전히 뿌리내렸어요”
“여성 귀농인과 지역의 다른 다문화 여성들이 모여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요리를 만들어 지역 축제나 모임에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좋아요. 이제 해남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이씨가 낯선 한국 땅에서 이렇게 신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영농조합법인 야호해남(전남 해남군 현산면) 덕분이다. 결혼 이후 해남에 정착한 이씨는 그동안 야호해남이 진행하고 있는 각종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찾아내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씨는 올해 몇 가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하나는 법인이 비닐하우스에서 새로 시작하는 올리브 농사에 참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전공(관광)을 살려 농촌관광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또 몽골의 전통 뜨개질을 이용해 문화상품을 만들어 파는 일도 구상하고 있다.
여성 귀농인들 소득 향상 위해
영농조합 ‘야호해남’ 지원 활동
5년 전 이곳으로 온 여성 귀농인 장민경씨(47) 역시 야호해남의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면서 농촌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키워가고 있다.
영농조합법인 야호해남은 최근 그 가치가 조명받고 있는 ‘사회적 농업’을 실행하고 있다. 사회적 농업은 농업을 이용해 장애인·고령자·다문화 여성·범죄 피해자·폭력 피해자·청년 실업자 등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봄·교육·일자리 등을 제공하기 위해 펼치는 활동을 뜻한다. 농업인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복지·교육 종사자 등 지역사회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야호해남은 농촌에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여성과 여성 귀농인을 돕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기농업 전문가이면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전개해온 전병오 대표(48)는 “농업과 문화를 접목해 다문화 여성과 여성 귀농인들의 소득을 높이고 문화적 자존감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문화 여성 등이 각국 식문화와 한식을 접목한 요리를 만들어 판매하는, 공유주방 형태의 ‘일곱부뚜막’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전 대표는 요즘 다문화 여성들이 문화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다문화 동화책 만들기, 문화 다양성 연극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의 공공도서관과 협력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다문화 이해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그는 “농촌지역에서 취약계층으로 인식되고 있는 다문화 여성들을 활동의 주체로 만들어줌으로써 지역사회의 문화 수용성과 문화 다양성을 높이고,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가 야호해남처럼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장·법인 등의 수를 2023년까지 100개로 늘려나가기로 한 가운데 1970년대부터 사회적 농업이 시행되고 있는 해외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해외도 ‘사회적 농업’ 사례 많아
해외에서 사회적 농업이 활발한 나라로는 이탈리아를 꼽을 수 있다. 1978년 시작된 이탈리아의 사회적 농업은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인건비 지원 등을 계기로 크게 활성화됐다. 특히 이탈리아는 2015년 ‘사회적농업법’을 제정, 사회적 농업 활동에 대한 지원을 한층 강화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사회적 농업을 통해 생산된 농산물을 공공기관에 판매할 수 있도록 돕고 판매처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까지 펼치고 있다. 사회적 농업을 하는 법인 등에는 국영 농지에 대한 우선 사용권도 부여한다. 벨기에는 농업과 복지를 연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 나라는 사회적 농장에 대해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적 농업 활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한다. 벨기에 정부는 농업·농촌을 보존하기 위해 전업농을 대상으로 사회적 농업 활동비와 시설 개선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벨기에의 사회적 농장은 전체 농가의 3% 수준까지 늘어났다. 벨기에의 사회적 농업은 사회적 약자의 자립보다는 사회성 향상과 재활 등에 무게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도 농업과 복지를 하나로 묶는 ‘농복(農福) 연계’ 형태의 사회적 농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은 농림수산성과 후생노동성이 힘을 모아 농업·농촌 문제와 장애인 등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사회적 농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농업을 통해 농업·농촌의 휴경지 증가와 일손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찾고, 취업 기회가 적고 임금이 낮은 장애인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성과 후생노동성은 농업 분야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실천 조직에 대해 장애인 편의시설 정비 비용, 농업 직업 연수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정책이 시행된 이후 사회복지법인, 농업회사법인, 시민단체, 농가 등이 농업 분야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