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다
이사 온 날 다친 손끝이 아물었다. 첫 탐방코스로 신대호수를 향했다. 벚꽃 가로수가 아이들 등굣길과 이어지고 그 끝이 호수다,
호수를 반 바퀴쯤 돌았을까 남쪽 데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알 품고 있는 뿔논병아리를 찍는 사진작가와 구경하는 사람들이다.
그곳을 오래전부터 지켜온 듯 한 분이 뿔논병아리는 번식기면 암수가 춤을 추고 자극적 구애와 수없는 짝짓기로 얻은 알을 교대로 품는다 했다. 새끼들을 먹이고 훈련시키고 키우는 어미의 삶은 한편의 역사라 했다. 그 순간들을 사진에 담는 중이라 했다.
이틀 후 부화가 임박한 듯 사람이 늘었다. 다음날 세 마리가 태어났고 남은 두 알을 부부가 교대로 품는다.
아빠가 얼룩 줄무늬 새끼들은 품고 호수 가운데로 나가 먹이를 물면 어찌 알았는지 새끼들이 엄마 깃에서 나와 소리를 낸다. 이를 찍는다고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간다. 받아먹고 먹이고 다음 것이 입 벌리고 먹이고 망원랜즈로 찍은 그 장면은 감동 그 자체다.
1987년 가을 대한항공 서소문사옥 신축공사가 막바지다. 일요일인데 조중훈 회장님이 현장에 오셨다. 준공 즈음에 설치할 조각품 좌대로 가시더니 사진 한 장을 주시면서 뒤편 마감에 참조하라셨다. 고니가 물을 차고 떠오르는 사진이다.
“힘차고 멋진 사진입니다” 나의 환호에 기분이 좋으셨든지 떠나시며 내가 외백(外伯)에 전화를 할 터이니 끝나고 다들 식사하시게, 든든하기로는 중국음식이 최고여.
그렇게 청동조각상 비상(飛翔)의 뒤 배경이 정해졌다.
작년 삼월 분당 서울대병원 올라가는 다리 근처에서 고니를 보았다. 크기가 거위만한 것이 목 줄기아래부터 옅은 분홍색인데 은은하고 모습은 우아했다,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길에 휴식이다.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찌고 법석을 떨어도 흩뜨림이 없다. 때가 된 듯 물위를 뛰다가 차고 떠오르는데 일대가 파동에 휩싸인다. 힘차게 날랐다.
회장님께서 그런 벅찬 감동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이건희컬랙션이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유월육일까지 연장전시중이다, 전시도록을 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김환기의 여인과 항아리에 고니가 나른다. 이중섭의 닭과 병아리, 작품 첫눈에는 사람과 물고기 새가 어울린다. 장욱진의 새와 아이들 작품 효도의 주연은 새다. 박항섭의 가을에는 비둘기가 날고 문신의 닭장에는 수탉이 가득하다.
점과 선 채색만으론 부족하단 말인가, 미학적이 아닌 다른 방식의 시선을 가졌다는 것인가. 도대체 그들의 새는 어떤 존재인가.
입시가 끝나 버려진 책 더미에서 역사와 논술이란 책이 눈에 들었다. 논술에 거론될만한 사건들을 다뤘는데 열하일기 슬견설 충암집이 거론된다.
충암집은 김정(金淨)의 문집으로 그중 유배 생활에서 체험한 지역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제주풍토록이 실려 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순창군수, 지금의 검찰총장 형조판서에 오른 관료이자 시문에 능하고 그림도 잘 그렸다했다.
그의 그림 이조화명도(二鳥和鳴圖)를 보면 숫 딱새가 산초나무가지에 올라 꾀는 수작을 거는데 암컷은 내심은 좋으면서도 딴청 핀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 귀양 중 사약을 받은 해에 새 농탕질 그림이라니 절망한 심정에서 왜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에게 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수가운데 나가 새끼는 아예 점으로 보인다. 점이 어미에 타 오르다 뛰어내리고 어미 곁을 벋어난다. 어미 소리에 놀란 듯 점이 빠르게 돌아온다. 아빠 새가 날아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이 주쯤 지났을까 어미와 두 마리는 여전히 호수 가운데 있고 아빠는 제법 큰 두 마리를 데리고 부화한 곳 근처 사람 가까이서 놀고 있다.
새됐다는 말이 있다. 내가 칠칠치 못해 부끄럽게 됐다는 자조적 표현으로 쓰인다. 새가 되어가는 새끼들의 보며 이는 아주 나쁜 은유임을 알았다. 새가되는 것은 생명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좋은 말이다.
화가들의 새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유(思惟)를 붙이기엔 무겁다. 알기위해선 작품을 봐야한다. 새가 되어보아야 한다.
2022년 5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