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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삿 1:11-15
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삿 1:11-15 / [드빌을 정복하다] 또 유다 지파 사람들은 거기서 드빌에 사는 주민들을 치러 갔다. 드빌의 옛 이름은 기럇세벨이었다. 12) 거기서 갈렙은 이렇게 공언하였다. `누구든지 기럇세벨에 올라가 그곳을 점령하는 사람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 13) 그러자 그나스의 아들이자 갈렙의 조카인 ㄱ) 옷니엘이 기럇세벨로 올라가 그 성읍을 점령하였다. 그래서 갈렙은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ㄱ. 옷니엘이 갈렙의 아우일 수도 있다) 14) 악사가 옷니엘과 혼인을 올리던 날이었다. 악사는 옷니엘과 함께 나귀를 타고 시집으로 떠날 차비를 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몫으로 아버지한테 밭뙈기라도 달라고 합시다.' 하면서 나귀에서 내렸다. 그러자 갈렙이 딸 악사에게 물었다. `악사야, 무슨 일로 그러니?' 15) 악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버지! 저를 남쪽 땅으로 시집 보내면서 아무런 예물도 주시지 않을 셈인가요? 샘이라도 하나 주세요' 그러자 갈렙은 딸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예물로 내주었다.
본문은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기럇 세벨을 점령한 이야기입니다.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11-12) 드빌은 헤브론의 남서쪽 20km 지점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헤브론은 그니스 사람 갈렙이 정복한 땅이었습니다. 갈렙은 유다 지파 사람으로 예루살렘 남쪽 지역은 유다 지파의 땅에 속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는 아낙 자손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드빌의 다른 이름인 기럇 세벨은 책의 도시 또는 기록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기럇 세벨에 큰 도서관 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큰 도서관이 있었다는 것은 이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갈렙은 이러한 요충지를 점령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기로 선포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고대의 포상 관습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신앙이 있는 용사를 사위로 맞이하려는 갈렙의 신앙제일주의 사상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옷니엘이 기럇 세벨을 점령함(13-15)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기럇 세벨을 점령하기 위하여 출전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기럇 세벨을 점령합니다. 이에 갈렙도 이전의 약속대로 자신의 딸 악사를 옷니엘에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딸이 출가할 때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이 있는데, 이것을 모하르라고 합니다. 또한 모하르는 남자가 처녀를 아내로 데려갈 때 장인에게 치르는 대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 악사가 나귀에서 내려 아버지에게 대가를 요구합니다. 부모가 결혼하는 딸에게 모하르를 주는 경우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아버지 갈렙의 품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악사가 아버지 갈렙에게 요구한 밭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물이 귀한 가나안 땅에서 샘물은 아주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던 악사이기에 땅과 함께 샘물도 요구하였습니다. 현명한 악사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옷니엘은 이로 인하여 넓은 지역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그 위치를 확고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적용: 당신의 용기는 어느 때에 나옵니까? 당신의 지혜는 어느 때에 나옵니까? 주님을 향하여 그리고 주님을 위한 용기 있는 성도, 지혜 있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당신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뜻을 구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다면, 당신의 마음을 검토해 보십시오. 당신이 완전히 굴복하지 않은 삶의 어떤 부분이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이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그분의 뜻으로 빨리 바꾸면 바꿀수록 하나님께서 당신이 알아야할 것을 당신에게 더 빨리 보여주실 것입니다.
< 설 교 >
악사가 시집가던 날
삿 1:11-15
소녀가 자라서 처녀가 됩니다. 처녀가 시집가는 날 십부가 됩니다. 처녀는 “ 인생의 꽃봉우리 ” 라 한다면 시집가는 날은 “ 활짝 핀 인생의 꽃 ” 이라할 것입니다. 본문은 악사라는 처녀가 시집가던 날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악사는 누구입니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딸입니다.
1. 그녀는 훌륭한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갈렙은 어떤 면에서 훌륭했습니까 (1) 그는 유다 지파에 속했습니다. 유나 지파에서 다윗과 그리스도가 탄생하였습니다. 유대 왕국에서 아사 왕, 히스기야 왕, 요시야 왕 같은 선한 왕들도 낳습니다. (2) 그는 12정탐군 중 한 사람입니다(민 13:6) 모세가 바란 광야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군을 가나안 땅에 보내실 때 각 지파에서 대표 한사람씩을 선출하였는데 그는 유다 지파 대표를 뽑히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3) 그는 신앙적인 보고를 했습니다(민 13:30). 40일간 정탐을 하고 돌아온 12명중 가장 신앙적이고 여호와 편에서 보고한 갈렙입니다. “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 이 유명한 말은 여호수아가 한 말이 아닙니다. 갈렙의 말입니다. (4) 온전히 순종했습니다(민 32:12). (5) 형제 화목을 잘 했습니다(수 14:12). 영도자로서 순위를 말한다면 첫째는 모세요, 둘째는 여호수아요, 셋째는 갈렙입니다. 원래 갈렙은 그 신앙 인격이 겸손한지라 하루는 여호수아에게 찾아가서 “ 나에게 산지를 주소서 ” 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는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살기 좋은 헤브론을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갈렙과 여호수아는 절친한 친구입니다. 한 번도 여호수아를 시기하거나 비방한 때는 없었습니다. 옛날 중국 제나라에 관중(菅仲)과 포숙(淑)이 살았습니다. 장사해서 이를 나눌 때 관중이 더 많이 차지했습니다. 포숙은 말했습니다. “ 관중이 저렇게 행한 것은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후에 관중이 전쟁하다가 세 번이나 패하여 도망하였을 때에 포숙은 그를 겁장이라하지 않고 좋게 말하기를 “ 관중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한 것은 늙은 어머니가 계셔서 어머니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 라고 사랑으로 감싸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동양 도덕에서도 이와 같이 변치 않은 사랑을 칭찬하였습니다. 명신보감에 “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맑고 소인들의 사귐은 단술과 같이 달다 ” 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혈통을 초월한 애정의 벗이라 한다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신사적인 신앙의 동지라 할것입니다. (6) 그는 건강했습니다(수 14:11) “ 오늘날 내가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40년전 정탐군으로)과같이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아온 즉 ” 이 말은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한 말입니다. 그리고 기업으로 받은 헤브론은 누가 살았습니까 장대한 아낙 족속이 살았습니다. 그 장대한 아낙 족속을 85세 노장수인 갈렙이 몰아 내었습니다. 악사는 이같이 무병 건강 장수하시는 부모를 모셨으니 행복했습니다.
2. 악사는 좋은 신랑을 만났습니다 신랑 이름은 무엇입니까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은 누구입니까 갈렙의 사위요, 이스라엘 15명 사사중에 제 1대 사사입니다. 왕정이 들어서기 전에 300년간을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악사가 결혼 후 옷니엘이 사사가 된고로 악사는 일조에 왕후가 된 셈입니다. 수 15:16-17에 “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죽여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 고 했습니다 또 삿 1:12-13에 “ 갈렙이 말하기를 가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 고 했습니다. 악사는 옷니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3. 악사는 많은 결혼 선물을 받았습니다 수 15:18-19에 “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며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 고 했습니다. (1) 악사는 나귀에서 내려서 구했습니다(삿 1:15) 이것은 부친에 대한 겸손한 미덕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겸손히 부수러기 은혜를 구하였더니 딸의 사귀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7번 목욕했더니 어린아이 살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악사가 나귀에서 구한 것은 썩 잘한 일입니다. (2) 아버지는 딸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 네가 무엇을 원하느나 ” 시집가는 딸에게 복주머니 끈을 푸셨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나귀에서 내려 마지막 인사를 하는 딸에게 최신형 승용차를 사주고 싶은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 아버지가 딸에 대한 사랑의 무한성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 아버지께서도 꼭 주실 마음만 있으시다면 100세에도 이삭을 주시고 도끼 날을 깊은 물 속에서 떠오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이 없으시면 주었던 성령도 도로 거두시고 맡기셨던 사도직도 도로 빼앗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지로 얻어 먹은 메추라기 고기는 이스라엘로 기브롯 핫다아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민 11:34). (3) 알맞게 구했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갈렙의 딸 악사가 구한 선물입니다. 옷니엘의 승리의 선물인 악사는 아버지에게서 결혼 지참금으로 땅을 받았습니다. 그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에게 “ 내게 남쪽 땅을 주셨으니 샘도 주소서 ” 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옷감, 가구, 저택보다 샘을 구했습니다. 그가 받은 남쪽의 땅은 건조하고 높은 지대에다 물이 귀한 곳이므로 샘을 구했습니다. “ 아버지께서 나로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을 내게 주소서 ” 물론 남방 땅을 결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사막지대이므로 샘을 필요로 한 것입니다. 15절에 “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 고 했습니다. 시집가는 딸의 소원을 갑절이나 채워주었습니다. 딸은 믿음으로 구했고 아버지는 사랑으로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악사는 알맞게 샘물을 구하였습니다. 만일에 갈릴리 호수를 구하고 예루살렘을 구했다 해봅시다. 아버지의 마음에 적중이 되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그저 “ 샘물만 주옵소서 ” 얼마나 아름다운 간구인지 모릅니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간구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적중되었고, 에스더는 자기백성의 생명을 구한 것이 아하스에로 왕의 마음에 적중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주자도 “ 다툼에는 이기기를 구하지 말고 재물을 나눌 때는 많이 가지기를 구하지 말라 ” 고 말했습니다. (4) 특히 샘물을 구했습니다. 샘을 Spring 또는 Fountain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 솟아 오른다 ”로 물 근원이 있어 솟아 오름을 의미합니다. Lake도 아니요 Pond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생수가 물 근원에서 솟는 활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명절 끝날에 서서 크게 외쳤습니다. 요 7:38-39에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고 하였습니다. 악사가 구한 물은 Spring water였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는 Living water였습니다. 그러나 샘물도 솟으면 넘쳐 흘러 작은 시내를 만듭니다. 시냇가에는 화초가 만발하고 흐르는 시냇물 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습니다. 생수가 흐르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신령적으로는 샘물이 생수인 것입니다 이삭의 종들은 골짜기를 파서 샘근원을 하나 밖에 못 얻었으나(창25:19) 악사는 결혼 선물로 윗샘과 아랫샘을 얻었습니다. (5)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갈증나지 않은 생수를 주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돋우어줍니다. 사람들은 네겝 같이 건조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샘을 요구하고 소똥과 갱신의 근원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갈렙이 그 딸에게 샘물을 선물주늣이 인생에게 샘의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갱신의 샘을 공급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중요한 사건의 하나가 샘과 관계된 것입니다. 샘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주는 샘은 자연의 샘과 달라서 마르지 않고 생생하도록 솟아나는 샘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선물을 주시기를 잊지 않으신는 것과 메마른 땅에사는 사람들에게 영적 능력이 솟아나는 샘을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들의 교회는 윗샘과 아랫샘을 확보한 교회임을 확신합니다. 생수가 솟는 교회는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시집가는 딸에게 윗샘과 아랫샘을 주었는데 영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성령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샘물도 내게 주소서
churchmentor / 삿 1:11 -15
갈렙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있어서 누구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헤브론 산지 점령 전을 자원하여 이 일을 이루어낸 사람입니다(수14장).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기독교인들의 애창곡의 주인공입니다. 갈렙 군대가 점령해야 하는 또 하나의 큰 난관이 있었습니다. 헤브론 남서쪽 약 15 Km 정도에 “드빌” 또 다른 이름으로 “기럇 세벨”이라는 곳입니다. 교통의 요지요 군사적 전략 요충지입니다. 여기에는 보통 사람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정도로 키가 큰 아낙 자손이라 불리는 거인 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전투에서는 용맹스럽던 사람들도 이 전투 앞에서 선뜻 나서지를 못했던 모양입니다. 옛날 영화에서 가끔 보는 대로 갈렙 사령관이 말합니다. “누가 저 곳을 점령하면 내 딸을 주겠노라.” 이에 옷니엘이라는 용감한 청년이 나서서 그곳을 마침내 점령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갈렙이 이 사위 옷니엘을 정말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내게 주소서! 아낙 자손이고 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 타입의 사람입니다. 옷니엘 역시 그렇습니다. “예, 제가 하지요. 뭐가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가 아니라 .. 준비된 것은 없지만 ... 계산 상으로는 답이 안 나오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할 수 있습니다!” 갈렙의 마음에 매우 흡족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타입의 사람이란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14절, 악사가 출가할 때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려 아버지께 무엇을 구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원리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은혜 은혜로다
악사는 아버지께 밭을 달라고 합니다. 15절에 남방 땅이라고 언급됩니다. 악사는 그 땅 중에서 “그 밭”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 지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일대는 갈렙이 소유한 헤브론 관할지역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면 갈렙의 땅입니다. 옷니엘이 드빌의 거인 족을 몰아냄으로서 그 일대가 이제 확실하게 갈렙과 그 가문의 소유가 됩니다. 그러니 딸과 사위가 그 중에 분깃을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 악사의 행동을 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그는 “나귀에서 내렸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나귀에서 내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갈렙에게 그것을 구하기 위하여 나귀에서 내린 것입니다. 악사가 나귀에서 내리자 아버지가 “무엇을 구하느냐” 묻는 것을 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악사가 아버지에게 “구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세’란 겸손한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합니다. 주님은 "담대히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러나 맡긴 것 찾아가는 듯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달라는 대로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저 사람은 주고 왜 나는 주지 않느냐는 식”으로 대듭니다. 물론 말을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그것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은 교회 생활과 일상의 생활 중 한 부분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대하십니까? 나를 왜 이렇게 다루십니까?
여러분, 너무도 기초적인 것이지만 이런 질문을 하겠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란 어떤 공로가 있어서 응당 주어야 할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사실 줄 이유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주는 것을 은혜라 합니다. 표현을 좀 야박하게 하자면 하나님이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저와 여러분은 그것에 대하여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을 다 가져 가셔도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잘못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받아들이는데 참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과외지도가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할 때는 “그것이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가 뭔지 모르는 자들에게는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그러나 동시에 악사의 구함은 비굴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귀에서 내려 엎드려 구한다는 것은 비굴한 동냥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입니다. 두 살 때 엄마 아버지가 헤어지는 바람에 엄마와 계속 살다가 17살에 고 2가 되어서 어떤 일로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아이가 소개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집에 사는데 그 어색함은 보는 사람도 숨이 막히려고 합니다. 서로 말을 안 합니다. 할 말이 없는 것이겠지요. 주일 오전인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제 방에 들어가 있고 아버지는 마루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습니다. 목이 마른지 이 아이가 마루에 나가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아버지가 힐끔 봅니다. 눈이 마주치니까 좀 머뭇거리더니 “저.. 여기 있는 쥬스 먹어도 되요?” 이렇게 묻습니다. 나중에 누가 그에게 왜 아버지에게 그런 것을 묻느냐고 하니까 “그거 다 아버지 돈으로 산 것이라서..”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보는데 가슴이 쓰리더군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바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하게, 자녀로서의 당당함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사다 놓으신 냉장고의 주스를 얼마든지 마시기 바랍니다.
샘물도 주소서
여기서 그의 기도를 보세요. 좀 더 넓은 땅, 좀 더 비옥한 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샘물을 구합니다. 좀 더 많은 것, 좀 더 좋은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기도 내용을 재빨리 살펴보셔야 합니다. “하나님 지금의 수입은 자식들을 훌륭히 키우고 교회 봉사하기에는 좀 적습니다. 지금의 능력으로는 앞서는 리더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 전쟁을 좀 잘하려고 해도 이 정도 실탄으로는 멋진 성과를 내기가 좀 어렵습니다.” 사실 징징거리는 유형의 사람들은 기도제목조차 모두가 징징거리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이 악사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사실 남방 네게브는 그 광야 전체를 통으로 다 줘도 덩치만 크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물이 공급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남방 땅 저 구석 냄비뚜껑만한 땅 한 뙈기라도 거기에 물이 공급되면 지구 반 만 한 사막 한 덩어리 보다 그것이 나은 것입니다. 악사의 기도를 배워야합니다. “하나님 나는 왜 평생 요것만 갖고 살아야합니까?” 사실 상 기도 말을 멋있고 고상하게 해서 그렇지 껍질을 다 벗겨내면 주로 이런 것이 기도의 주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가진 땅의 십분의 일도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거친 것이라 해도 그것을 옥토로 만들면 됩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하는 땅으로 만들면 됩니다.
악사에게 준 남방 땅 그 자체는 별 것 아닐 수 있습니다. 돌맹이나 굴러다니는 “의미 없는 땅”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공급되면 거기서 온갖 생명체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참 지지리도 못살고 무식한 한 가정에도 하나님이 생수를 공급해주시면 거기서 사과나무도 배나무도 자라고 나중에 가지가 담장을 넘습니다. 가진 것이 적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닙니다. 물을 공급하면 그보다 백배나 넓은 땅보다 더 많은 소산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름진 땅을 선점하려고 기를 쓰고 뛰어갑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황량하면 황량한대로 주시는 대로 감사히 받습니다. 그리고 물 샘도 달라고 하십시오. 여기서 물 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성령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추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내가 나 이상이 되는 그 은혜입니다.
악사는 참 지혜롭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양(量)이 많아야 좋은 것인 줄 압니다. 작더라도, 황량하더라도 그것을 존귀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물 샘, 그것은 곧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가득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