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최후까지 늙지 않는다
[세태탐방] 노년의 사랑과 성
박형숙 기자
일흔 살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성과 사랑은 청춘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겐 자못 충격파가 될 듯하다. 이번 경우에 영화는 ‘현실’이었다. 황혼의 사랑이 배회하고 있는 그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요즘 영화들이 하도 자극적이어서 제목만 봤을 땐 무슨 또 사내들 의리를 다루었던가, 그도 아니면 하드코아 포르노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죽어도 좋아!」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제대로 된 영화평은 다음달 「정성일의 영화세상」을 참고하시길).
어느 날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야말로 한눈에 뿅 간다. 그때 던진 할아버지의 추파. “할머니 예서 혼자 뭐해. 너무 예쁘네. 전에 본 적이 없어.” 장면이 바뀌더니 할머니가 옷 보따리 들고 할아버지 집으로 온다. 할아버지는 좋아 어쩔줄을 모른다. “아이고 왔네.” 짐 얼른 받아들더니 얼굴 부비고 좋아 난리다. 동거가 시작됐다.
영화는 노년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있는 그대로’가 그 자체로 의미인 것은 노년에 씌워진 편견, 오해, 그 주류(젊은것들)의 시선이 노인을 무성적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개의치 않고 ‘늙으나 젊으나 사랑은 똑같다’는 것을 담담하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이런 것.
할아버지는 늘 달력에 뭔가를 기록한다. 할머니와 동거 전, 그러니까 ‘방문하는 관계’였을 때 ‘이씨 다녀감’이라고 쓴 메모는 살림을 합친 뒤엔 ‘꽃표’로 바뀐다. 일주일에 세 개도 좋고 네 개도 좋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개의 꽃표가 그려진다. 짐작이 되시는가. 바로 섹스한 날이다. ‘낮거리’라고 쓴 날도 있다. 해지기를 참지 못한 날이다.
“욕실에서 나오는 남편을 보구 에구머니 소리를 지를 뻔하게 놀라면서 얼굴을 돌렸다. 팬티만 입은 남편의 하체가 보기 흉했다. 넓적다리에 약간 남은 살은 물주머니처럼 축 처져 있고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는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순간적으로 닭살이 돋는 것처럼 혐오스러웠다. 징그러워 하는 것 하고는 달랐다. 징그럽다는 느낌에는 그래도 약간의 윤기가 있게 마련인데 이건 군더더기 없는 혐오 그 자체였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묘사된 ‘퇴직한 남자’의 몸이다. 피부와 근육으로 치자면 영화 속 할아버지도 다를 바 없다. 일흔세 살의 몸이다. 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데 지장은 없다. 노년의 정욕은 아주 서서히, 그리고 친절하게 진행된다.
“어때, 이렇게?” “아니, 이렇게.” “아이구 죽겄네.”
“오고 있어?” “너무 좋아.” “나는 됐어요. 이제 당신 순서야.”
하루 종일 담배가게나 지키며 혼자서 라면 끓여 먹고 밤이면 틀니 꺼내 칫솔로 박박 닦아대던 남자. 이 독거노인이 어느 날 비슷한 연배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더니 눈에 광채가 흐르고 표정에 웃음살이 잡힌다. ‘천하를 얻은’ 이들은 어느 날 정화수 한 그릇에, 촛불 두 개 켜놓고 맞절하며 이렇게 언약한다.
“멋지게 살아봅시다. 영원히.” “건강해요. 사랑해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박치규씨와 이순예씨는 만난 지 한 달만에 살림을 합쳐, 서울 어느 변두리 한 지붕 아래서 깨가 쏟아지게 잘살고 있다. 커플링도 끼고 길 가다 붕어빵도 사 먹는다. 자주 아픈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가 닭 모가지 비틀어 삼계탕을 끓여 바치면, 할머니는 더운 여름날 신랑 고생시킨 게 미안한지 삼계탕 앞에 두고 눈물 짠다. 정말이지 젊은 사람들 약 오르게 잘 산다. 경기민요 전수자인 할머니의 장구 장단에 할아버지는 뒤늦게 소리를 배우고, 할아버지가 인계한 가계부에 할머니는 ‘콩나물 1000원, 파스 1500원’이라고 적으면서 한글 공부를 다시 한다.
너무 늦게 만난 두 사람, 그동안은 어찌 살았을까. 얘기하다가 자식들이 지들 방으로 속속 들어가 버리면 그게 참 서글펐던 할머니. 한 달이면 열흘은 잠을 못 자고 밤새 뒤척이던 시간들. 그 설움을 어디 말할 데가 없었다. 헌데 “나는 이 양반이 안 오면 죽을병에 걸려 죽던가 세상살이가 끝날 뻔했다”는 할아버질 만나 ‘죽어도 좋을’ 행복을 얻었다.
작년 5월, 만난 지 두 달을 기념해 사랑의 연을 맺어준 최초의 장소 서울시 성동구 복지회관에서 열린 노래자랑대회에 나가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누가 만들어주고 갖다주는 게 아녜요. 자기가 만들어야 돼요. 외롭게 한숨 쉬고 살게 아니라 자신 있게 사랑을 만들어보라구.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그것만 연구해요. 밥 먹고 그것만 연구하라구. 능력 발휘해야지. 소질 계발하고.”
「죽어도 좋아!」의 감독 박진표는 12년 경력의 방송국 PD. 작년 5월 어버이날 즈음 ‘사랑’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만난 박치규, 이순예 커플을 보고 영화를 생각했다. 텔레비전용으로 ‘날리기’엔 너무 아까운 러브스토리였다. 그래서 순전히 ‘이 두 분’ 때문에 영화감독이 됐다. 영화 제목은 본래 할아버지 제안에 따라 ‘순예 내사랑’이 될 뻔했다. 너무 ‘노골적’이라 좀 순화시킨 게 ‘죽어도 좋아’였단다. 영화의 영어 제목(지난 4월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뒤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었다)은 ‘Too Young To Die’. 죽기엔 너무 젊은. 영어 제목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들의 사랑은 너무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