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두 개를 걸어 놓은 부뚜막 앞에 주모가 술구기를 들고서 솥 속에서 중탕해 낸 술을 손님의 청대로 따라주는 모양인데...
부뚜막 위에는 안주를 담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릇들이 대여섯 벌려 있어서 안주는 거저인 듯한 인상이다.
擧盃邀晧月 (거배요호월)
抱甕對淸風 (포옹대철풍)
“술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술항아리 끌어안고 맑은 바람 대한다” 라는
풍류가 넘치는 제화시를 덧붙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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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방관속이 저녁나절 주막집에 모였다.
치부책엔 외상값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주막주인내외는 감히 술값 독촉 한번 못 해 보고 또 닭 잡고 술을 걸러 내야 한다.
이방은 관아에서 사또와 백성 등쳐먹을 밀담을 나누느라 뒤늦게 주막집으로 향하는데 울타리 옆에서 걸음이 딱 멈춰졌다.
“이방이 요즘 너무 설쳐.”
“사또한테 딱 붙어서 우리들 알기를…”
주막 봉창으로 흘러나오는 넋두리는 모두가 이방을 헐뜯는 소리뿐이다.
예방, 호방, 병방, 형방, 공방은 벌써 혀가 꼬부라져 이방이 봉창 밖에서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방을 안주 삼아 씹고 있었다.
이방이 ‘병신들, 꼴값하네.’
코웃음을 치며 주막집 사립짝으로 들어서는데 이번엔 못 볼 것을 보게 되었다.
부엌 옆에서 주인여자가 어린 것을 옷도 안 입힌 채 띠만 둘러 업고 술을 거르고 있었다.
술독에서 지게미째 바가지로 퍼서 체에 넣고 물을 치면서 걸러 내면 막걸리가 체 아래 옹기에 고이는 것이다.
어미는 땀을 흘리며 막걸리 거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등에 업힌 어린것은 주르르 설사를 해댔다.
어미가 구부려서 일을 하니 어린것은 자꾸 엉덩이께까지 흘러내렸다.
그러자 어미가 손을 뒤로 돌려 어린 것을 추켜올리는데 그때 또 주르르 설사가 흐르자 어미 손이 그대로 설사 칠갑을 했다.
주막집 주인 여자는 그 손을 씻을 생각도 않고 홱홱 털고 나서 체에 받친 지게미를 계속 문지르며 거르는 게 아닌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사립짝 뒤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방 얼굴이 살며시 펴지더니 생긋이 웃기 시작했다.
‘이놈들~
설사 막걸리 죽죽 마시고 또 헛소리들 해 보시지!’
하며 마당을 가로질러 방문을 열었다.
“어흠~ 어흠~
늦어서 미안허이.”
이방이 들어가자 없을 때 욕하던 관속들이 낯뜨겁게
“어서 오시게~
이방 어른 안 계시니 도통 술맛이 안 나네.”
하며 아양들을 떨 때 막걸리가 또 한동이 새로 들어왔다.
바로 그 막걸리였다.
“자~
이방 한잔 드시게.”
병방이 조롱박 바가지로 한사발 가득 술을 따라 이방한테 건네자 이방이 손사래를 쳤다.
“오늘 점심이 체했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네.
술은 사양하겠네.”
“어허~
세상 오래 살다 보니 이방이 술잔을 마다하는 걸 다 보네 그려.”
이방은 한걸음 물러나 벽에 기대어 배를 움켜쥐고 아픈 척했다.
그리고 그들이 잔을 돌려가며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는 걸 보고 속으로 킬킬 웃었다.
“카~
오늘 막걸리 맛있네!”
“입에 짝짝 달라붙네!”
제들 딴엔 이방을 약올린다며 한마디씩 입을 놀렸다.
속으로 웃는 것도 지겨워 무료하게 앉아 있던 이방이 문지방 옆에 떨어진 마늘 한쪽을 주워 상으로 다가가 고추장을 찍어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그리고 다시 물러나 문지방 옆에 앉았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주인 여자가 두리번거리며 하는 말~
“어린 것 똥구멍 막았던 마늘을 여기 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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