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역사]
2002년 08월 16 ~ 17일 백두산 2차 방문
8월 빛역사
91.08.02 초광력전의 첫 기적, 코끼리 저금통
92.08.13 공산서원의 잠자리떼
93.08.10 태풍 로빈의 진로변경
95.08.31 무주구천동 중풍환자의 기적(걸어 나가라)
02.08.16~17 백두산 2차 방문(백야현상, 천재문 낭독과 자연의 변화, 천지에서 건진 우주마음의 선물)
07.08. 26 스위스 융프라우 빛현상
07.08 우피치 미술관 빛현상(엠마오의 만찬)
10.08.22 ~ 31 호주, 뉴질랜드 빛여행
12.08.28~ 09.02일 푸켓 빛여행
14.08.02(음력 07.07) 빛패치의 날로 지정(빛패치 창제의 날)
바늘과 어머니
2002년 08월 16 ~ 17일
백두산 2차 방문 빛VIIT역사
(백야현상, 천재문 낭독과 자연의 변화, 천지에서 건진 우주마음의 선물)
백두산 우주마음 감사제 빛 카페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webucs/ChG9/177
[2002]백두산빛VIIT여행
백두산에서의 빛VIIT여행 사례입니다.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8a4l
행복마에스트로
백두산 우주마음 감사제와 빛VIIT의 잔 탄생 (1)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DJ17/439
백두산 우주마음 감사제와 빛VIIT의 잔 탄생 (2)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DJ17/441
백두산 우주마음 감사제와 빛VIIT의 잔 탄생 (3)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DJ17/442
백두산 우주마음 감사제와 빛VIIT의 잔 탄생 (4)
바로가기 : https://cafe.daum.net/webucs/DJ17/443
빛VIIT잔의 탄생과 백두산의 기적
1994년 10월 15일은 공식적으로 '초광력超光力' 을 세상에 알린 날이다. 그날 공개강연회를 성황리에 마친 후 그 날을 우주초광력학회(현 사단법인 건강과 행복을 위한 빛VIIT명상의 전신) 설립 기념일로 잡았다.
그 후 나는 특별한 사유가 있거나 어떤 느낌이 다가올 때 우주마음에 올리는 감사제를 올렸다. 정성껏 제물을 준비하고 마음을 모아 감사제를 드리는 순간은 나를 비롯한 온 회원들이 우주마음과 함께 하는 아주 귀한 시간이다. 그런데 감사제를 지낼 때면 늘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모든 제(祭)가 그러하듯 감사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술인데 헌주를 할 잔이 마땅치 않았다. 아쉬운 대로 회원 집에서 얻어온 조그만 은색 잔으로 대신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감사제에 쓸 잔을 새로 만들어야겠다.'
나는 곧 마음을 정하곤 회원들의 정성을 모아 18K로 도금한 새로운 잔을 마련하였다. 나 혼자 힘으로도 할 수 있었지만 하늘에 대한 정성을 표하는 일에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게 더 뜻깊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회원들과 힘을 모아 만든 잔이었다.
"우주마음에 올린 잔도 만들었으니 이번 감사제는 어디서 지내면 좋을까요?"
나는 회원들과 한자리에 앉아 의견을 나누었다. 그때 옆에 있던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말했다.
"백두산이 있잖아요. 가장 귀한 감사제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지내면 되잖아요."
그 아이는 바로 대구 동산병원에 재직하고 있던 **과 과장의 딸로 난치병을 앓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한쪽 발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 상태였다. 의사인 아버지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초광력超光力'이라는 힘을 알고는 학회에 가입한 터였다.
"학회장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 배달민족의 기상이 어린 백두산이야말로 감사제를 올리기에 제일 적당한 곳이지요!"
회원들도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백두산 천지에서의 감사제를 위해 여행사에 문의를 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여행사 측에서는 단체 비용을 적용받으려면 최소 15명을 모집해야 하는데 참석 인원은 모두 12명뿐이었다. 남은 3명을 더 확보해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문득 맨 먼저 '백두산'이라는 장소를 제안한 중학교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아이를 데려가려면 먼저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다.
의사인 아버지는 그 멀고 험한 곳까지 걸음도 힘든 아이를 데려가서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오, 그만한 각오도 없이 데려가겠소?"
나는 무슨 배짱이 들었는지 내가 다 책임진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제 남은 건 2명이었다. 그때 뜻밖에도 장삼용 씨가 무척 고심한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도 가고 싶습니다."
"장삼용 씨가요?"
나는 물론 회원들도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버거씨 병을 앓고 있었다. 버거씨 병은 혈관 폐쇄로 인해 사지의 끝이 괴사(세포나 조직의 일부가 죽음) 상태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절단까지 초래할 수 있는 혈관질환이었다.
그는 이미 한쪽 다리에 상당한 괴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병원에서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기를 놓쳐 병원에서 죽을 바에는 차라리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죽을 각오로 남은 시간을 보내다가 초광력超光力을 만나게 된 사람이었다.
"죽더라도 백두산에는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이미 가족들 불러놓고 유언까지 남겨놓고 왔습니다."
장삼용 씨는 간곡하게 함께 가기를 원했다.
"그럽시다. 장 씨도 우리와 같이 가도록 합시다."
나는 흔쾌하게 그의 동행을 허락하였다.
이제 남은 한 명만 모집하면 되는데 문득 당시 영남대학교 신경정신과 과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초능력학회를 이끄는 박충서 회장이 떠올라 전화를 하였다. 하지만 박충서 회장은 이미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갈 형편이 아니라고 했다.
"학회장님, 그럼 제가 한 사람 추천하지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수간호사랍니다."
마침내 15명의 인원이 우리의 의사가 아니라 여행사에서 끼워 맞춘 6월 말경에 백두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장마철 비수기라 비용이 저렴한 건 좋았지만 우기(雨期)인 걸 알았더라면 다른 좋은 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 모든 일이 우연처럼 만들어졌지만 결코 평범한 우연으로만 볼 수 없는 빛VIIT역사로 남게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1995년 6월 27일 이른 아침이었다. 숙소에서 나온 우리 일행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중형버스는 감사제가 치러질 백두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안녕하십네까? 오늘 백두산 천지 여행을 도와드릴 안내원입네다. 잘 부탁드리갔시오."
출발과 함께 안내원 아가씨는 북한쪽 사투리에 가까운 조선족 특유의 억양으로 인사했다. 창밖으로는 맑고 푸른 하늘 아래로 간간이 보이는 달구지와 느긋하게 풀을 뜯는 소 떼들의 모습이며 순박한 사람들과 소박한 집들이 마치 1960년대, 70년대 우리 옛 시골 풍경을 보는 듯 마냥 정겨웠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백두산이라는 장소가 지닌 무게와 상징성 때문인지 저절로 긴장감이 들었다. 백두산이야말로 우리가 터 잡은 이 땅의 정수리요 배달의 혼백이 살아 꿈틀대는 민족적 성지가 아니던가.
사실 내가 이곳을 흔쾌히 감사제의 장소로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민족의 정기와 국토의 기운이 발원한다는 백두산 천지, 남북의 대립으로 더욱더 사랑과 화해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아닌가. 더구나 삼천리강산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곳이면서 육천 년 민족혼과 기백이 서려 숨 쉬는 곳이기에 이곳 백두산의 감사제는 하늘에게 더 없는 정성이 될 것이요,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굳게 믿었다.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고 있는데 안내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여러분께 잠시 죄송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묵은 숙소에서 백두산 입구까지는 본데 네 시간 정도 걸립네다만 얼마 전부터 중간에 도로 보수공사가 시작되어 두 시간 정도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니끼니 지루하더라도 양해해 주시면 고맙갔습네다."
무려 여섯 시간이나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피곤하지 않아요? 눈 좀 붙이지 그래요?"
나는 들뜬 마음에 간밤에 잠까지 설친 회원들이 걱정이 되어 물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요,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아마 이 모두가 다 선생님이 주신 초광력超光力 덕분인 것 같아요."
"보세요, 이렇게 팔팔하잖아요. 선생님이 옆에 계신데 피곤할 리가 있겠어요?"
회원들은 너도나도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소소한 데까지 은근히 챙겨주시는 우주마음의 배려에 감사하며 나는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주변이 조금씩 산악지형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안개 뒤로 뿌옇게 보이는 산세가 제법 가파른 것으로 보아 이제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반가움보다는 먼저 안개가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뒤부터는 기어코 빗줄기가 내리치기 시작하였다.
"이거 어쩝네까? 이제 30여 분만 더 가면 되는데 기사님이 비 때문에 땅이 고르지 못해 버스로 이동하기가 어렵다고 합네다. 우회하여 가는 길이 있는데 세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고 합네다."
하는 수 없이 버스는 다시 우회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쪽도 비가 쏟아져 길이 엉망이었다.
"여러분, 천지는 오늘 못봅네다. 이런 날씨로는 천지는 고사하고 올라가기도 힘듭네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백두산 일대는 기후 변화래 매우 극심한 곳입네다. 한 열 번 오면 두 번이나 천지를 볼 수 있갔나 하는 정도디요. 그러니 천지를 못 보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라요."
안내원은 위로를 하는 건지 김을 빼는 건지 계속 천지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순간 나는 우주마음에 의지해 보기로 하였다. 이것이 진정 하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고 단순한 자연현상이라면 분명 어떤 답이 있을 거 같았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침묵에 들어갔다.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 세 번 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우주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침묵을 끝내자 자신이 생겼다. 평소보다 수북하게 나온 손바닥의 빛VIIT분을 보자 더욱더 확신이 생겼다. 그 순간 나는 가이드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빼앗았다.
"오늘 백두산 천지는 세 번 볼 수 있습니다!"
"천지를 꼭 볼 수 있단 말입네까? 세 번을요? 혹시 선생님이래 백두산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모양이디요? 아니면 그 머이냐, 점을 치는 분입네까? 죄송하지만 오늘 천지는 세 번 못 봅네다. 지금까지 가이드 생활 10년의 경험으로 비춰봐서 오늘 이 날씨로는 천지를 본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네다."
안내원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장담하듯 말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비가 멎고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내가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을 회원들은 이미 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니, 우째 이런 일이 다 있습네까?"
안내원만 그저 아까보다 더 놀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저 한 번 빙그레 웃어주는 도리밖에 없었다.그 후 30여 분 정도를 더 달려 일행은 마침내 백두산 등정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하늘은 한껏 흐려있었다. 하지만 이미 우주마음의 뜻을 전달받았으니 아무 걱정이 없었다.
다시 몇 대의 지프차에 나누어 타고 15분 정도 더 올라간 후 일행은 천지 등정 입구에 도착했다. 우리 말고도 여러 단체 여행객들이 우비를 입고 모여 있었다. 그들은 천지에 올라갈까말까 망설이는 듯 보였다. 일부 일행은 등정을 이미 포기한 듯 백두산 천지를 그린 대형 그림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기서 사진 찍고 가세요."
안내원이 우리에게도 그림판 앞에서 사진 찍기를 권했지만 나는 일행을 데리고 앞장서서 산을 올라갔다. 일행 중 아직 빛VIIT을 모르는 수간호사만 빼고 모두 그냥 우비도 입지 않은 채로였다. 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 장삼용 씨가 신발이 맞지 않아 발보다 훨씬 큰 고무신을 신고 덜그럭 덜그럭 거리며 따라오는게 보였다.
우리 일행이 산을 오르자 망설이고 있던 4, 50여 명의 다른 일행들도 뒤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갑자기 눈앞이 탁 트였다. 마침내 천지에 올라온 것이다. 그야말로 7시간에 이르는 대장정 끝에 도착한 곳이었다. 기대와 달리 천지는 먹구름과 너울거리는 안개가 가득 덮여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꾸물거리던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제가 그랬잖아요, 천지를 볼 수 없다고요."
안내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퉁명스레 말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우주마음께서 약속해주신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자.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사제 지낼 준비를 합시다. 감사제 중에는 비가 오지 않겠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비가 올 테니 어서 서두르세요."
나는 회원들을 독려하여 감사제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근처에 있던 관광객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하나둘 우리 주위에 몰려들었다.
나는 마침내 이날을 위해 준비한 잔을 꺼냈다. 우주마음에 드리려고 가져온 귀한 술도 꺼냈다. 예로부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가 바로 술과 잔이었다.
마침내 나는 제단이 차려지자 술잔 가득 술을 따랐다. 그리곤 잠시 숨을 고르면서 구름과 안개 저편에 숨은 천지 모습을 가늠해 보았다. 그때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우주마음으로부터 어떤 기운이 내릴 때 받는 그 느낌이었다.
'생명 원천의 빛VIIT을 모두에게 나눌 중심, 우주초광력학회 설립을 신고하며 우주마음에 감사를 올립니다!'
나는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하늘과 천지를 향해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보라!' 하는 느낌과 함께 천지 주위에 가득 어려있던 먹구름과 안개가 한가운데로부터 서서히 갈라지더니 양옆으로 밀려나면서 천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곧게 닫힌 장막이 젖혀지듯, 떡시루를 칼로 자르듯 그렇게 구름이 갈라지면서 천지가 깊고도 넓고 그윽한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흐려서 천지의 그 푸른 빛은 덜했지만, 물빛도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빛VIIT으로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 超光力' 빛VIIT의 책 1권 사진
"어쩜, 천지가 보여요, 천지가!"
"아아,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나는 서서히 잔을 내렸다. 그러자 동시에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면서 천지는 다시 희뿌연 안개 속으로 잠겨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두 번의 약속이 더 남아있잖은가.
다시 마음을 정제하고 두 번째로 술을 따라 하늘과 천지를 향해 올렸다. 그때였다. 가운데서부터 밀려 나가던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왼쪽에서부터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천지가 나타났다. 한쪽부터 반듯하게 구름이 걷혀가는 광경은 마치 한옥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병풍 속의 천지가 반갑게 얼굴을 내미는 듯 보였다.
"두 번!"
나는 두 번째로 천지가 열렸다는 의미로 크게 외쳤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일이!“
"제가 경비원 생활 수십 년이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봅니다.“
빙 둘러선 사람들과 백두산 천지를 감시하던 중국 경비병이 놀라 말했다.
잔을 내리자 약속한 듯 다시 구름이 밀려와 천지가 닫혔다.
마침내 세 번째 잔을 올리자 이번에는 하늘 위의 하늘이 열리고 빛VIIT줄기가 잔 위로 쏟아져 내렸다. 순간 우르릉 천둥 번개가 치면서 번개가 잔을 내리쳤다. 그 천둥소리는 내게 천둥소리는 내게 이렇게 들렸다.
"받아라, 빛VIIT의 두 번째 보물이다!"
그리고는 천지의 구름이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쭈욱 밀려 들어가 천지의 모습을 한 번 더 보여주었다.
"우와!"
주변 관광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 천지가 닫혔다 열리는 경이로운 광경에 그저 말을 잃은 사람들도 보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천지는 여전히 고요하고 넉넉한 기운을 감싸고 있었다. 마치 빛VIIT이신 그분께서 품은 맑고 밝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스며있는 듯 보였다.
'자연의 순수함을 잃어가는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우주마음께서 지금 천지를 열어 보이시는 건 아닐까?'
나는 우주마음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았다.
감사제 끝에 마지막으로 회원들에게 초광력超光力을 주는 시간을 가졌다. 천지가 열린 것에 놀란 관광객, 중국 경비병, 안내인 등등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기꺼이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초광력超光力을 보내주었다.
초광력超光力이 끝나자 잠시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이게 뭐지? 손바닥에 금가루가 이렇게 나왔어!"
"내 팔에도 금가루가 묻었는걸!"
"나는 빛VIIT까지 봤어요. 붉은 불기둥이 분명히 보였다고요!"
우리 회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조용한데 주변 사람들이 야단법석이었다. 중국인들은 자기네 말로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그중에서 제일 놀란 건 안내원이었다.
"내래 몇 년 동안이나 안내원 생활을 해왔디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요. 그동안 천지를 본 적보다 못 본 적이 많고, 또 봤어도 부분적으로 본 적이 더 많은데 대체 이거이 어케 된 일인지······게다가 조금 전에 선생님께서 기도 비슷한 걸 하실 때는 찌릿찌릿 전기래 통하는 겁네다. 그러면서 눈에 불똥이 안 튀나, 손바닥에서 이케 금가루래 나오디 않나 하여튼 놀랍습니다. 대단하십네다."
안내원은 갑자기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였다.
"하하, 어서 일어나시오!"
어딘가 딱딱해 보이는 인민복 복장을 입은 아가씨의 느닷없는 행동에 나는 그만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이 놀라고 기쁜 얼굴로 연방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번에도 역시 약속을 어기지 않는 우주마음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더군다나 새로 만든 잔으로 모신 감사제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적이 내렸다는 게 더욱 뜻깊었다. 만일 부정이나 반려의 뜻이 계셨다면 적어도 이런 기적은 내리지 않았을 게다.
'그렇다면 이 잔은 보통의 잔이 아니다. 우주마음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며 그 축복을 입은 잔을 어찌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성스러운 하늘의 기적, 빛VIIT이 내렸다는 의미에서 새로 만든 잔을 빛VIIT의 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금껏 우리 학회의 보물 2호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빛VIIT의 잔은 이렇게 해서 그 유래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백두산 천지에서 뜻깊은 감사제를 마친 후, 나는 일행들에게 하산을 서둘렀다. 관광객들 중에는 천지가 네 번째로 열릴까 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천지는 감사제가 끝나자 다시 먹구름과 안개로 닫혀있고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산을 위해 인원점검을 할 때였다.
"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어 봐도 한 사람이 부족했다. 그러고 보니 버거씨 병을 앓고 있는 장삼용 씨가 안 보였다.
"아니 몸도 불편한데 어디 가셨을까요?"
일행들은 잔뜩 근심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천지는 점점 안개가 자욱하게 몰려와 앞사람도 보이지 않을 만큼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행여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산기슭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때 다른 관광객 한 사람이 말했다.
"다리가 시커먼, 고무신 신은 사람이 저만치 앞서가는 걸 봤어요."
우리 일행은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 순간 장삼용 씨는 마치 눈밭을 구르는 강아지처럼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우리를 반겼다.
"선생님, 제 다리 좀 보세요! 선생님께서 잔을 올리고 천지를 여시는 순간 다리에서 쩌르르 하는 어떤 느낌이 들기에 봤더니 이렇게 정상으로 돌아왔지 뭡니까? 그래서 한달음에 여기까지 먼저 내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장삼용 씨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얼굴엔 가득 웃음을 담은 채 잔뜩 흥분하여 외쳤다. 나는 그 순간 한쪽 발이 땅에 닿지 않던 아이를 찾았다.
"얘야, 네 발 어떠니? 지금 걸어보렴."
"어, 선생님, 제 발이 이제 땅에 닿아요! 어떻게 된 일이지요?"
아이는 이쪽저쪽 한 바퀴를 휘 걸으며 좋아서 어쩔 쭐 몰랐다.
"빛VIIT이 너에게 주시는 기적의 선물이란다."
나는 장삼용 씨와 아이에게 찾아온 기적을 보며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빛VIIT은 이처럼 그 어떤 종교를 떠나서 원천의 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 그 자체였다. 억만 년이 지나도 우리와 함께할 인류의 희망과 행복임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저기, 무지개 좀 보세요!"
일행이 가리킨 곳에는 직선 쌍무지개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아마도 우주마음께서 오늘의 기적을 두고두고 기억하라는 무언의 약속이 아닐까.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년 5월 3일 초판 3쇄 P. 173~187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무한의 우주근원 우주생명원천의 기쁨 행복 천혜의 초광력 학회장님 우주빛VIIT마음 빛안의 무궁한 공경과 감사마음드립니다 ...
빛의 잔 탄생과 백두산 감사제의 중요한 의미를 담습니다.
빛역사 이야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