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祝刊辭 (野隱선생 회혼 축시집 발간)
/李炳俊 (시인ㆍ수필가ㆍ서예가)
《야은 회혼 축시집 부 자음(野隱 回婚 祝詩集 附自吟)》상재(上梓)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망백의 나이를 지나 백수를 바라보는 연세에 한시집(漢詩集)을 출간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그 용기와 기개에 우선 찬사를 보냅니다.
야은 배계철(裵啓喆)선생은 그 아호가 상징하듯 초야에 숨은 야인으로 순박하게 살아온 농부중에도 상농부셨습니다. 적어도 회갑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야은 배계철 선생은 분명 경북 봉화가 낳은 귀재(鬼才)요, 괴재(怪才)입니다.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勸氣) 넘치는 서예, 사군자, 화조화, 신선도, 잉어도 등은 행운유수(行雲流水)같은 호방무비(豪放無比)의 진경(眞境)을 빚어낸 것입니다.
선생은 육예(六禮)에도 뛰어났으며 신(身)
언(言)서(書)판(判)에도 전혀 하자가 없으며 시(詩)서(書)화(畵)문(文)사절(四絶)의 영역까지도 얻었다 할 수 있을 경지입니다.
선생은 태생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가사를 영위하는 궁벽한 농촌에 태어나서 쉼없이 농사일을 이어가며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자녀 삼 남 육 녀를 가풍으로 훈도해서 화목으로 가도(家道)를 전승하는 가운데 틈틈이 촌음을 아껴 활용해 생활의 장(場), 서화의 장(場),교학의 장(場) 등을 폭넓게 사유한 사량(思量)과 느낌의 정수를 시(詩)서(書)화(畵)문(文)으로 아울어 한 권의 서책에 담아낸다는 것이 실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이요, 백화총집(百花叢集)의 쾌저(快著)입니다.
야은 선생은 저에게는 자형으로서, 선생은 1925년 8월21일 생으로 경북 봉화군 물야면 수식리에서 성주 배씨 (시조,휘(諱)ㆍ지타
(祗陀),시호 문양(文讓)공)이십니다. 일찌기 봉화군 법전면 시드물 정상(珽相)(전주이씨 온녕군파 7대손인 송월재, 휘ㆍ시선(時善)의 9대손)님의 장녀와 혼인하여 슬하에 3남6여를 두었습니다.
초근목피의 1960년대 그 시절에 워낙에 근면 성실하여 논농사는 물론 산전을 개간하여 옥답으로 만들어 과수 농사로 일대의 부(富)를 이루어 가업을 부흥시키고 자녀 9남매를 훌륭하게 훈도하여 성가시켰습니다. 분망한 총중에서도 막내동생인 계선(啓宣)님을 서울 농대를 졸업시켜 동아대학 교수로 임용하기까지 뒷바라지 하는 등 허리 한 번 제대로 편케 펴시어 쉴틈조차 없으셨습니다.
60 세를 기점으로 가세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다음 평소에 내심으로 품었던 입지(立志)를 실행에 옮기셨으니,시ㆍ서ㆍ화ㆍ문 사절의 세계에 옹골차게 입문하신 것입니다. 상당히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이지지(生而知之)로서 무사자통(無師自通)의 필묵도인(筆墨道人)이시요, 시유별재(詩有別才/시를 잘 짓는 것은 학문이 많은 것 보다는 천분(天分)이 뛰어나야 한다는 뜻)이시다. 아마도 백천학해 이지우해 (百川學海 而至于海/사람이 부지런히 배워 쉬지 않으면 끝내는 성인군자의 지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의 말씀
을 일찌기 소시적부터 뼛속에 새겨 뜻을 깊게 하신 듯합니다.
60세가 넘어 서기가 무섭게 특히 서예에 몰두하기 시작해 간혹 식음도 전폐하고 신문 양면 전지 수백장을 하루에 앞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붓으로 글씨 사군자 화조화등 가리지 않고 쓰고 또 쓰고 연습하고 익혔다고 하니 그야말로 천신만고의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불교에 입문하여 용맹정진하는 도인의 경지였다고나 할 수 있겠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시ㆍ서ㆍ화ㆍ문ㆍ 사절(四絶)에 대해 특별히 스승을 초빙한 적도 찾아가서 배운적이 없다고하니 이야말로 생이지지로 무사자통의 도인의 경지가 아니고서야 이룰 수 있는 일이겠는가 ! 아래의 축시 한 수로 축하의 헌사를 가름하고자 합니다.
본시 천품이 단정한 분이시니
명인달사(名人達士)요
성인군자(聖人君子)로다
시어가 단정(端貞)하고
고상(高尙)하지 않음이 없도다
학문은 끝이 없는 것이니
서(書)와 필(筆), 문(文)의
기(技)와 묘(妙)는 만년(晩年)에
최종의 미(美)를 나타내는데
완상하며 찬탄할 벗들이
먼저 떠난 것이 한스럽구나
먼 훗날 선조의 깊은 경지를
헤아려 줄 후손 하나 태어나
세상의 빛으로 이어준 들 어떠랴
서풍과 필법이 청아 고상하니
이는 뜻을 알고 썼음이요
마음을 다스리며 썼음이요
청정하게 썼음이요
활달하고 건장하게 썼음이요
정밀하고 단정하게 썼음이니
어찌 군자의 필(筆)이라
아니할 수 있으랴
공손하고 어진 부인에
효도하는 아들 딸들 있어
가성(家聲)이 넓게 메아리지고
만사형통 필유(筆遊)를 펴셨도다
큰 뜻 꽃 피우시고 회혼을 맞으시니
근심도 병도 없이 태평세월 누리시어
덕(德) 쌓은 집안 덕을 실천하였고
인(仁) 베푼 가문 인을 실천하셨네
소시에는 가흥(家興)에 진력하였고
부귀를 탐치 않고 시와 문을 닦으시어
만년에는 한묵(翰墨)을 벗삼아
금슬지락으로 회혼식도 맞으시고
자손이 화목하여 효성이 지극하니
근면 성실 은덕으로 누리신 천복
백수를 바라보는 한뉘의 삶
하늘이 내린 오복을 받아 누리시니
후손에게 길이 남을 만세의 표상일세
부디 백세를 넘겨 천수를 누리소서.
(20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