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담 가는 길
오월 다섯째 토요일이다. 간밤 대학 동기 모친상 부음을 접했는데 문상 갈 형편이 못 되어 난감했다. 장소가 합천이지만 내가 길을 나서면 동행해 줄 동기가 있긴 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아 감염이 우려되어서가 아니었다. 주중 거제 와실에 머물다 주말이면 창원으로 복귀하니 춘추복과 하복 정장 둘 다 연사 와실에 있어서다. 그렇다고 이 계절에 동복을 입고 나설 수 없었다.
평소 주말과 마찬가지로 약차를 달여 놓고 산행을 나섰다. 반송시장에서 김밥과 곡차 마련해 동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외감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동구 밖에서 달천계곡 입구로 들다가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 단감농원으로 올랐다. 단감 꽃이 저문 꽃 꼬투리는 감이 빼곡히 달려 솎아주기를 마쳤다. 감 농사는 시기별로 일손이 많이 갔다.
양미재로 오르는 숲길로 들었다. 지나간 봄날에 산나물을 뜯느라고 몇 차례 찾았던 산기슭이었다. 이제는 철이 철인지라 산나물은 모두 쇠어 뜯을 일 없지 싶다. 근년 새로 뚫린 작대산 트레킹 길을 걷으려고 다시 찾았다. 오리나무를 비롯한 낙엽활엽수들이 녹음을 짙게 드리운 숲이었다.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쌓인 길을 걸어 내가 즐겨 쉬는 너럭바위에 앉아 곡차 잔을 비웠다.
너럭바위 가부좌를 틀고 한참 앉았다가 양미재로 올랐다. 작대산 트레킹 이정표를 따라 산비탈로 올라 산등선을 넘어갔다. 칠원 예곡으로 가는 호연봉 너머로는 무학산과 화개지맥 산세가 드러났다. 맞은편 트레킹길보다 해발고도 높은 곳에 여러 차례 올라본 작대산 정상부가 드러났다. 작대산 트레킹길은 난공사인데 함안 군청에서 예전 내었던 길보다 더 위쪽에 새로 넓게 뚫었다.
양미재에서 산등선을 넘는 북향에서 트레킹길에서 벗어났다. 굴참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 바닥을 살피니 취나물 끝부분이 보드라워 몇 줌 따 모았다. 서덜취와 빗살서덜취도 보였다. 덩굴로 뻗어가는 여린 청미래 순도 서너 개 따 보탰다. 다시 트레킹길로 나와 양목이고개에서 작대산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트레킹길로 접어들었다. 작대산 산허리 칠원 무기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작대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도 그렇고 트레킹길로도 산행객은 드물었다. 주말 반나절을 걸어도 산을 찾은 이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기초 자치단체에서 산세 험한 곳에 숲길을 조성해 놓아 내가 다니기는 적합했다. 작년 가을 공사가 진행 중일 때 감계 소목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걸어 무기마을 뒤까지는 가봤다. 그때 산허리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 예전 희미한 길을 따라 지났다.
작대산 비탈 바위벼랑을 따라 난 트레킹길이었다. 오래 전 아랫마을 살던 사람들이 그곳까지 올라 무덤을 써서 묵혀진 산소들이 몇 군데 보였다. 산이 높아도 전방이 탁 트인 남향이라 옛날에는 조상 산소 터로 삼기 알맞았지 싶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바위더미 비틀어진 소나무가 자라는 낭떠러지에 전망대가 나왔다. 여항산이 무학산으로 건너가는 낙남정맥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바위더미에는 바위채송화와 기린초가 붙어 자랐다. 한여름에 노란 꽃이 피는 바위채송화는 아직 개화가 일렀다만 기린초는 꽃을 피워 있었다. 쉼터에 앉아 남겨둔 김밥과 곡차를 마저 비웠다. 기가 막힌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 몇몇 지기들에게 날려 보냈다. 퇴직 후 같은 아파트단지에 꽃을 가꾸는 초등 친구가 바위채송화를 채집해 오라는 회신이 와 몇 줌 걷어 배낭에 채웠다.
트레킹길은 가도 가도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였다. 비탈을 내려서고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무기마을에 닿기 전 ‘돈담 가는 길’이라는 샛길 임시 이정표가 보였다. 숲길을 제법 내려가니 돈담 마을회관이 나왔다. 산정마을로 하루 두 번 다니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칠원 읍내를 거쳐 마산으로 나갔다. 합성동에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집 근처 주점에서 친구와 곡차 잔을 비웠다.2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