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연중 제3주간 화요일 강론>
(2026. 1. 27. 화)(마르 3,31-35)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1-35)”
1) 여기서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라는 말씀은,
“그들은 나의 가족이 아니다.”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또는 ‘어떻게 사는 사람이’
당신의 ‘참 가족’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또는 번역되어 있는 대로만
보면, 당신의 가족을 부정하신 말씀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니고, 가족이 찾아온 일을 계기로 삼아서, 당신의
참 가족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다는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이 말씀에서 사무엘 예언자가 사울 왕을
꾸짖은 말이 연상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2-23).”
2) ‘실행’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면,
야고보서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되지 못합니다.
믿음이 죽어 있는 사람은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영혼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3)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가장 큰 계명’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여기서 ‘다하다.’는 ‘바치다’로 생각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온 마음을 다
바치고 온 삶을 다 바치는 일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없이 겉으로만 형식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실천이 아니고, ‘삶 전체’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만 실천하는 것도 실천이 아닙니다.
이 말에 대해서, “그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만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소수의 정예 요원들만 할 수 있는
생활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이고, 하느님 나라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들어가기를 원하고, 들어가려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동전 두 닢을 봉헌한 ‘가난한 과부’가
대표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마르 12,43-44).
그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을,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또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 자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 바쳐서 실행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아도, 또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어도, 그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에서 꼭 시성식을 해야만 성인 성녀인 것은 아닙니다.
남들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시는 성인 성녀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다는 말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