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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우아(用敵于我)
나를 위해 적을 이용한다는 뜻으로, 적의 적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用 : 쓸 용(用/0)
敵 : 대적할 적(攵/11)
于 : 어조사 우(二/1)
我 : 나 아(戈/3)
출전 : 전국책(戰國策) 第27卷 한책(漢策)
적(敵)은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싸움을 걸어오는 존재이니 내 편이 될 수 없다. 또 글자가 근거지가 되는 나무뿌리, 밑동을 나타내는 적(啇)을 치는 복(攵)으로 되어 있으니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상대인 원수가 된다.
하지만 의외로 적에 대해 긍정적인 격언이 많다. '적이 없는 자는 친구도 있을 수 없다', '자기 자신보다 질이 나쁜 적은 없다' 등이다. 친구는 자기를 감싸주지만 적은 약점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적의 적은 아군(我軍)'이란 말이 있다. 갑(甲)과 을(乙)이 대립관계인데 병(丙) 또한 을과 원수진 사이라면 갑과 병은 공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동맹하게 된다. 을을 제거하고 난 뒤의 일은 차후 문제이고 우선은 나 살고보자는 식의 동지가 된다.
나를 위해 적을 이용한다(用敵)는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싸움과 전쟁으로 지고 새는 살벌한 권력투쟁 속에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는 적 이용법이다. 전한(前漢) 시대 학자 유향(劉向)이 전략가들의 일화를 모은 책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에 나온다.
전국시대 한(韓)나라 양왕(襄王)에게는 아들 구(咎)와 기슬(幾瑟)이 권력을 두고 대립하고 있었다. 태자 구를 돕던 재상 공숙(公叔)은 기슬이 추방되자 후환을 없애려고 자객을 보내 암살하려 했다.
한 측근이 충고했다. "지금 태자께서 공을 중히 여기는 것은, 기슬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슬을 죽이게 되면 태자는 근심이 없어지게 되고, 그러면 틀림없이 공을 가볍게 봅니다(太子之重公也 畏幾瑟也 今幾瑟死 太子無患 必輕公)."
태자의 근심거리로 놓아두게 되면 공숙을 중히 여길 것이란 이야기다. 암살계획을 취소한 공숙은 이왕(釐王)이 된 태자에 의해 계속 중용됐다.
아무리 의견을 달리 하더라도 받아들일 부분이 있는 법이다. 경쟁을 하다 한 쪽이 승리하게 되면 상대방의 싹부터 자르려고 덤비는데 어리석은 일이다. 꿋꿋이 반대하는 상대가 아무리 고약하더라도 일부러 기를 살리고 계책을 활용한다면 발전의 길이 탄탄하다.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여야의 정당들이 더욱 필요하다.
적(敵)은 어떤 적이든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적(敵)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또한 정치인의 능력이다. 상대의 작용을 여러모로 냉정히 따져보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면 적(敵)과도 동거(同居)도 감수해야 한다.
정적(政敵)의 존재는 자신이 저지를지도 모를 실수를 미연에 방지해 주는 방패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강력한 적(敵)이 있음으로써 자기 진영의 단결을 다지는 촉매로도 작용할 수 있다. 역사상 유명한 정치가들 가운데 고의(故意)로 반대파를 남겨놓은 경우가 적지 않다. 대단히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일이다. 이야말로 상생(相生)의 정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요즈음 정치인들은 상생(相生)은 커녕 상살(相殺)의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나름대로 싸우는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상대의 잘못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싶어할 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당리당략(黨利黨略)적 파쟁(派爭)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 전하, 전하의 영토 가장자리에 위치한 왕은 적입니다. 하지만, 전하의 영토와 그 왕의 영토 사이에 적국이 가로막고 있다면, 그 왕은 친구입니다. - 아르타 샤스트라
○ 난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한다면 악마에 대한 지지 연설이라도 할 수 있다. - 윈스턴 처칠
말 그대로, A와 B가 대립하고 있을 때 C 역시 B와 원수 진 사이라면, 공공의 적을 둔 A와 C는 면식이 없어도 서로를 알기 이전에 공통의 적을 둔 관계이므로, B와 상대하거나 견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거나 친해지려는 경우를 의미한다. 여담(餘談)이지만 정작 이 속담을 말한 페르시아 왕자는 신하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다고 한다.
여기서 B는 작품이나 상황에 따라 그냥 공통적인 적일수도 있고, A와 C를 비롯한 D, E, F…등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대적인 혹은 절대적인 거악일 수도 있다. 사실 전자보다는 후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특히 대중매체에서 사용될 경우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그만큼 공동의 적으로 낙인찍힌 대상자가 그만큼 강하다는 걸 보증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 A와 C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품으면 그냥 일시적인 동맹으로 끝나서 삼파전으로 흘러가거나, 심하면 C나 A가 서로에게 배신해서 B편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혹은 B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A와 C가 바로 적대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A와 C가 A와 B, B와 C만큼의 적대관계는 아니더라도 적대관계였는데 B를 물리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동맹을 맺은 거라면 아예 B와 같은 다른 한쪽도 묻어 버리려는 통수를 칠 수도 있다. 이는 애초에 이런 동맹관계가 철저히 이익만을 노리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없고 심지어 동맹이 나의 이득에 방해가 된다 생각이 들면 가차없이 내치는 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적의 적도 어쨌든 적일 수 있다.
물론 B에게 당하나 C에게 통수맞으나 어차피 똑같은데 C에게 통수맞는 게 그래도 B에게 당하는 것보다 기분이 덜 나쁘거나 하는 식으로 해서 피해가 더 적다면 어쩔 수 없이 C에게 양보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이게 더 실리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편 A와 C가 손을 잡고 B를 견제하는데 성공했는데, A와 C는 서로 갈등을 겪거나 적대할 일이 없으면 뒤통수치기나 배신 없이 좋게 헤어져서 각자 갈 길을 가거나, 혹은 A와 C가 B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좋은 이미지를 서로에게 심어줬다면 앞으로도 동맹관계를 지속, 강화하는 식의 해피엔딩도 있기 때문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인 대립 심리관계이기 때문에 대중매체에서도 쓰이지만 현실에서도 굉장히 잦은 현상 중 하나이다. 삼국지와 동맹의 역전이 좋은 예이다. 한반도에서도 삼국이 서로 동맹과 배신을 일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이런 국제적 스케일의 동맹과 배신뿐만 아니라 사실상 인생을 경험하면서, 적을 만들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적을 만들고 살아가다 보면 이러한 경험도 할수 있게 되는 법이라 오래 살다보면 이런 경우 역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케이스가 바로 예체능 프로그램의 경쟁 구도이다. 기본적으로는 모든 출연자가 동등한 규율 아래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나 출연자들간의 기본 능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능력치가 부족한 출연자들이 능력치가 좋은 출연자를 집중 견제하기 위해 동맹을 맺기도 하고 볼 일이 끝나면 바로 배신을 때리기도 하는 등 본 클리셰에서 구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셰리프(M.Sherif)가 1954년에 수행한 로버스 케이브(Robber's Cave) 공원 실험에서도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선 셰리프는 만12세 소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서 캠핑을 하게 하고, 위계서열과 질서가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 우연을 가장하여 두 집단을 서로 접촉시켜 보았다.
사실 셰리프는 두 집단 사이에 반목을 조장하려고 이런저런 꼼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격렬하게 분쟁이 발생해서 도리어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박터지게 싸우던 와중에, 셰리프는 캠프 관계자를 시켜서 일부러 그 소년들을 교묘히 괴롭혀 보았다.
이렇게 '공동의 적'이 생겨나자, 두 집단은 서로를 열심히 디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쉽사리 손을 잡았다. 심지어는 연구 마지막에는 서로 화해하고 친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이것이 바로 남자들의 우정?!
하지만 예외는 있다.
○ 물론 옛말에도 나와 있듯이, 나의 적의 적은 여전히 X같은 적일 뿐이다. - 카렌 보우먼
같으면서도 다른 명언으로 '친구의 친구는 내 친구가 아니다'가 있다. 로마 제국 당시부터 내려오던 격언으로 성염 교수의 고전 라틴어란 책에 예문으로 써 있는 문장이다.
TV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이 "이 사람의 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대감의 편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라고 이 클리셰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극중 전개로 이인임은 결국 이성계를 비롯한 무장들과 신진사대부들을 비롯한 문신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퇴장...
유병재는 2015년 6월 19일 페이스북에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라 그냥 별개의 개새끼로구나"라는 글을 남겼다. 현실적으로는 사실 이 클리셰는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에 가깝다. 격언이 항상 맞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적절한 예시를 들자면, 한일 관계가 삐걱거리고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 일본이 북한과 친한다는 것과 같은 뉘앙스가 있고, 한일 관계와 러일 관계가 경색되었을 때 한국과 러시아가 친하다, 중국-인도 관계, 중국-필리핀 관계가 경색하더라도 인도와 필리핀이 친하다, 폴란드가 러시아, 독일과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오히려 독일과 러시아가 친한 경우와 같은 식이 성립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 用(쓸 용)은 ❶상형문자로 감옥이나 집 따위를 둘러싸는 나무 울타리의 모양 같으나 卜(복; 점)과 中(중; 맞다)을 합(合)한 모양이니 화살을 그릇에 넣는 모습이니 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물건을 속에 넣는다는 뜻에서 '꿰뚫고 나가다', '물건을 쓰다', '일이 진행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用자는 '쓰다'나 '부리다', '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用자는 주술 도구를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걸개가 있는 '종'을 그린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用자의 쓰임을 보면 이것은 나무로 만든 통을 그린 것이다. 用자가 '나무통'을 뜻하다가 후에 '쓰다'라는 뜻으로 전용되면서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결합한 桶(통 통)자가 '나무통'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用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다만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나무통'이라는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用(용)은 (1)용돈 (2)비용(費用) (3)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무엇에 쓰이거나 또는 쓰이는 물건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쓰다 ②부리다, 사역하다 ③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시행하다 ④일하다 ⑤등용하다 ⑥다스리다 ⑦들어주다 ⑧하다, 행하다 ⑨작용(作用), 능력(能力) ⑩용도(用度), 쓸데 ⑪방비(防備), 준비(準備) ⑫재물(財物), 재산(財産), 밑천 ⑬효용(效用) ⑭씀씀이, 비용(費用) ⑮그릇 ⑯도구(道具), 연장(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 ⑰써(=以)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버릴 사(捨)이다. 용례로는 볼 일을 용건(用件) 또는 용무(用務), 무엇을 하거나 만드는데 쓰는 제구를 용구(用具), 기구를 사용함을 용기(用器), 쓰고 있는 예를 용례(用例), 용도에 따라 나눔을 용별(用別), 사람을 씀을 용인(用人), 쓰는 물품을 용품(用品),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을 용역(用役), 어떤 일에 쓰기 위한 토지를 용지(用地), 사용하는 방법을 용법(用法), 사용하는 말을 용어(用語), 돈이나 물품 따위의 쓸 곳을 용처(用處), 쓰이는 곳을 용도(用途), 대변이나 소변을 봄을 용변(用便), 대롱을 통해 하늘을 살핀다는 뜻으로 소견이나 견문이 좁음을 이르는 말을 용관규천(用管窺天), 일자리를 얻었을 때에는 나가서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고 버리면 물러나 몸을 숨긴다는 뜻으로 나아가고 물러섬이 깨끗하고 분명함을 이르는 말을 용행사장(用行舍藏), 돈을 마치 물 쓰듯이 마구 씀을 이르는 말을 용전여수(用錢如水),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고 이것저것 정신을 팔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용지불분(用志不分), 긴 것이나 짧은 것이나 다 함께 사용함이나 장단점을 다 같이 이용함을 일컫는 말을 용장용단(用長用短), 어떤 일을 할 마음이 두루 미친다는 뜻으로 마음의 준비가 두루 미쳐 빈틈이 없음 또는 무슨 일에든지 주의와 준비가 완벽하여 실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용의주도(用意周到), 쓸 만한 곳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용지하처(用之何處), 그림이나 글씨의 운필이 침착하고 웅건함을 일컫는 말을 용필침웅(用筆沈雄),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용지불갈(用之不竭), 송곳으로 땅을 가리킨다는 뜻으로 조그마한 지식으로 큰 도리를 깨달으려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용추지지(用錐指地) 등에 쓰인다.
▶️ 敵(대적할 적, 다할 활)은 ❶형성문자로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啇(적; 나무 뿌리, 밑동)과 적의 근거지를 친다는 등글월문(攵)部의 뜻이 합(合)하여 대적하다를 뜻한다. 敵(적)은 이것저것 있는 중에서 하나를 정하여 맞서다, 부딪치다, 상대 등의 뜻이 전(轉)하여 나중에 상대방, 원수라는 뜻으로 변하여 쓰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敵자는 '원수'나 '적', '겨루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敵자는 啇(밑동 적)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啇자는 꽃의 뿌리를 강조하기 위해 식물의 줄기 아래에 口(입 구)자를 그려 넣은 것으로 '밑동'이나 '뿌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뿌리'라는 뜻을 가진 啇자에 攵자를 결합한 敵자는 '원수'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원수'는 반드시 갚아야 하고 그들에 대한 한(恨)은 가슴 속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敵자는 뿌리를 강조한 啇자를 응용해 깊은 한을 풀기 위해 적과 싸운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이다. 그래서 敵(적, 활)은 (1)싸움의 상대 서로 싸우는(해치려 하는) 상대자(相對者) (2)원수(怨讐) (3)시합(試合)이나 경기(競技) 따위를 할 때에, 서로(승부(勝負)를)겨루는 상대편(相對便) 등의 뜻으로 ①대적하다 ②겨루다 ③대등하다 ④필적하다(능력이나 세력이 엇비슷하여 서로 맞서다) ⑤맞서다 ⑥거역하다 ⑦갚다, 보답하다 ⑧원수(怨讐) ⑨짝 ⑩상대방 그리고 ⓐ다하다(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원수 구(仇)이다. 용례로는 상대가 되어 싸우는 나라를 적국(敵國), 적국의 병사를 적병(敵兵), 힘이 엇비슷하여 서로 맞섬을 적우(敵偶), 적군의 땅이나 적의 점령지를 적지(敵地), 마주 대하여 버팀 적으로 여김적대(敵對), 적국의 장수를 적장(敵將), 적의 깃발을 적기(敵旗), 적의 성질을 띤 것 또는 서로 대적되는 성질을 적성(敵性), 힘이 비슷한 상대를 적수(敵手), 적의 무리를 적군(敵群), 적국의 군사를 적군(敵軍), 적의 진지나 적군의 진영을 적진(敵陣), 겨룰 만한 맞수가 없음을 무적(無敵), 오래 전부터의 원수를 숙적(宿敵), 적을 이롭게 함을 이적(利敵), 정치 상으로 의견이 달라 반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정적(政敵), 사나운 적을 맹적(猛敵), 힘이 강한 적군을 강적(强敵), 억센 적수를 경적(勁敵), 능력이나 세력이 서로 어슷비슷함을 필적(匹敵), 적과 마주 대함을 대적(對敵), 적을 미워하며 분개하는 심정을 적개심(敵愾心), 자기 나라와 전쟁 상태에 있는 적국의 사람을 적국인(敵國人), 적으로 여겨 맞서는 마음을 적대감(敵對感),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를 적대국(敵對國), 적국의 사이 또는 첩과 첩 사이를 일컫는 말을 적국지간(敵國之間), 적은 반드시 전멸시켜야지 용서해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적불가가(敵不可假), 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뜻 또는 적은 사람으로는 많은 사람을 이기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중과부적(衆寡不敵),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천하에 적대할 사람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인자무적(仁者無敵),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패배함을 일컫는 말을 경적필패(輕敵必敗), 나아가는 곳마다 적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소향무적(所向無敵), 세상에 필적할 만한 자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천하무적(天下無敵), 배 속의 적국이라는 뜻으로 군주가 덕을 닦지 않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이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들이라도 적이 되는 수가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주중적국(舟中敵國),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을 침과대적(枕戈待敵), 적을 이롭게 하는 짓을 이르는 말을 이적행위(利敵行爲) 등에 쓰인다.
▶️ 于(어조사 우, 어조사 어)는 ❶상형문자로 亏(우), 於(어)는 본자(本字), 亐(우), 扵(어)는 동자(同字), 於(어)의 간자(簡字), 亏(우)의 약자(略字)이다. 대막대기의 양쪽 끝을 고정(固定)시켜 중간을 굽히는 모양(十)이 기원(起源), 굽다에서 '우'라 하였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語助辭)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于자는 '~에서'나 '~부터', '~까지'와 같은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于자는 '어'와 '우' 두 가지 발음을 갖고 있다. 于자는 二(두 이)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지만, 숫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于자는 亏(어조사 우)자의 약자(略字)로 亏자와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굽은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유래와는 관계없이 于자는 어조사로 쓰이거나 '향하다'나 '동작하다'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干(방패 간)자와 혼동되기 쉽다는 점이다. 干자는 아래 획이 단정하게 끝나지만 于자는 삐침이 있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래서 于(우, 어)는 ①어조사(語助辭)(~에서, ~부터, ~까지, ~에게) ②향하여 가다 ③동작(動作)을 하다, 행(行)하다 ④구(求)하다, 가지다 ⑤굽다, 굽히다 ⑥크다, 광대(廣大)하다 ⑦비슷하다, 닮다 ⑧광대(廣大)한 모양 ⑨성(姓)의 하나 ⑩이, 이것 ⑪아!(감탄사) 그리고 ⓐ어조사(語助辭)(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무엇보다도 먼저를 우선(于先), 지금까지를 달리 이르는 말을 우금(于今),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감을 우귀(于歸), 신부가 결혼한 뒤에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가는 날을 우일(于日), 암수 한 쌍의 봉황이 사이 좋게 날았다는 옛 시에서 따온 말로 부부의 의가 좋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비(于飛),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이르는 말을 지우금일(至于今日), 형제 사이에 우애하는 도리를 일컫는 말을 우우지도(友于之道), 옛 성왕聖王들의 가르침을 공부함을 일컫는 말을 학우고훈(學于古訓),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담에도 귀가 달렸다는 뜻으로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말을 삼가라는 뜻의 말을 이속우원(耳屬于垣), 봄철의 얼음을 건넘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험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섭우춘빙(涉于春氷) 등에 쓰인다.
▶️ 我(나 아)는 ❶회의문자로 手(수)와 창 과(戈; 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다.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我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我자는 톱니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저팔계가 가지고 다니던 삼지창과도 같다. 我자는 이렇게 삼지창을 그린 것이지만 일찍이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졌던 은상(殷商) 시기에도 我자를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본래의 의미는 일찌감치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我자가 왜 '나'를 뜻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의미에서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한자에는 余(나 여)나 吾(나 오), 朕(나 짐)자처럼 본래는 '나'와는 관계없던 글자들이 시기에 따라 자신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었기 때문에 我자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我(아)는 ①나 ②우리 ③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④나의 ⑤아집을 부리다 ⑥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오(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 피(彼)이다. 용례로는 소아에 집착함을 아집(我執), 나의 뜻을 아의(我意), 우리 나라를 아국(我國), 우리 여러 사람이나 우리들을 아등(我等),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아견(我見), 우리 편 군대나 운동 경기 등에서 우리 편을 아군(我軍),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를 아만(我慢), 나에게 애착하는 번뇌를 아애(我愛), 자기의 이익을 아리(我利), 참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생각을 아상(我想),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아욕(我慾),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자아(自我), 육체적인 나를 소아(小我), 남과 구별된 개인로서의 자아를 개아(個我), 저편과 우리편 또는 남과 자기를 피아(彼我),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어떤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음을 망아(忘我), 바깥 사물과 나를 물아(物我), 나 밖의 모든 것을 비아(非我),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아를 실아(實我),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唯我), 남이 자기를 따름을 응아(應我), 다른 사람과 자기를 인아(人我),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함 또는 억지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꾀함을 이르는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침을 이르는 말을 아가사창(我歌査唱),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후손이나 남을 걱정할 여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아궁불열(我躬不閱),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의 공평함을 이르는 말을 아심여칭(我心如秤), 자기네 편의 무위가 드날림을 이르는 말을 아무유양(我武維揚),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 또는 자기만 잘 났다고 자부하는 독선적인 태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일컫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본디 내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뜻밖으로 얻었던 물건은 잃어 버려도 서운할 것이 없다는 말을 본비아물(本非我物), 자기가 어떤 것에 끌려 취하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자아도취(自我陶醉), 잘못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는 말을 곡재아의(曲在我矣),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어떤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를 잊고 다른 사물을 돌아보지 않거나 한 가지에 열중하여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림을 일컫는 말을 무아몽중(無我夢中), 자기 때문에 남에게 해가 미치게 됨을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유아지탄(由我之歎), 인신人身에는 항상 정하여져 있는 주제자 즉 아我가 없다는 말을 인아무상(人我無想),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흠뻑 취함을 이르는 말을 무아도취(無我陶醉),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일컫는 말을 자아주의(自我主義),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착타착아(捉他捉我),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름을 일컫는 말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하는 비판을 일컫는 말을 자아비판(自我批判)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