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옹비설
책을 저술하면서 서문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책의 주제와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기도 하거니와 책을 쓰게 된 동기 및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문에서 부탁한 내용을 독자들은 따라주는 것도 좋습니다. 익제 이제현은 역옹패설(櫟翁稗設)을 지었습니다. 한자로 읽어서 역옹패설이지 저자는 낙옹비설로 읽어 주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면 낙옹비설로 읽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저자의 서문 일부를 옮겨봅니다. "櫟翁稗設"의 '역'자는 '낙'으로 음을 읽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나무가 재목감이 못 되는데도 베어지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 나무로서는 더할 수 없는 즐거운[樂] 일이므로 '낙'음을 따른 것이다. 내가 일찍이 벼슬을 하였으나 스스로 사직하고 내가 못났음을 생각하여 호를 낙옹(櫟翁)이라 한 것은 좋은 재목감은 못되지만 장수하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패(稗)' 또한 '비(卑)'로 읽기로 하였는데, 그 이유는 '피[稗]'는 '벼[禾]' 가운데서도 비천하여 알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피[稗]'와 같이 알차지 못한 비천한 존재라서 그 적어 놓은 글을 비설(稗設)이라고 이름하였다."
낙옹비설로 이름 지은 것은 이제현이 책을 저술함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소중함을 겸손한 필체로 다루었음을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우린 고등학교 다닐 때 시를 분석적으로 배웠습니다. 아마도 원작자가 이를 본다면 땅을 칠 일일 수도 있겠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를 썼다고? 역으로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공자는 시경을 지었습니다. 지은 것이 아니라 편찬으로, 세간에 돌아다니는 가사의 노랫말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지요.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시삼백 일언이폐지왈 사무사" 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 시경에 수록된 시 300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시경에 수록된 시는 311편입니다. 그 안에는 남녀 간의 애정과 애환, 사랑 이야기가 상당수 실려 있습니다. 그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임금에 대한 연모로 호도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시대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