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실려 내 앞을 날아간다.
방랑도 젊음도 그리고 사랑도
알맞은 시기와 종말이 있다.
저 잎은 궤도도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만 가서
숲이나 시궁창에서 간신히 멈춘다.
나의 여로는 어디서 끝날까.
-『조선일보/최영미의 어떤 시』2023.10.30. -
내 나이 또래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독일 작가, 한국에서는 ‘데미안’ ‘유리알 유희’ 등 소설로 더 알려졌지만 시도 곧잘 쓴 헤세. 중학생 시절에 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나는 ‘사춘기 혁명’이라고도 할 만한 충격을 받았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빌려 읽지 않았다면 나는 작가의 길을 걷지 않았고 오늘날처럼 독립적이고 개성이 강하고 ‘불편한’ 여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85세까지 살았으니 충분히 오래 산 시인. 그의 시는 쉽고 ‘센티멘털’하다.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나뭇잎 하나로 시 한 편을 만든 그의 재능은 칭찬할 만하다. 나뭇잎이든 뭐든 하나를 붙잡고 치열하게 응시하면 시가 나온다. “방랑도 젊음도 사랑도 알맞은 시기와 종말이 있다”는 1연은 달콤했으나, 2연의 “궤도도 없이”에 이르러 심각해졌다가 “나의 여로는 어디서 끝날까”를 읽으며 문득 슬픔이 몰려와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