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들의 인격을 무시한 의료행위
전에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서 알코올 중독환자를 무려 100시간 이상 묶어두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인권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는데 정말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질병으로 잔인했던 시대의 잔상들을 남기고 있으며
수세기 동안 인류가 정신병을 치료하는 방식은 정신병적인 행동과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전쟁으로 몸과 정신을 다친 사람들 중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당시 그들을 보호하거나 치료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우리의 과거사 속에도 6.25 전쟁이후 정신질환자들이 거리에서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놀림거리가 되는 일들이 흔히 있었다.
또한 빅토리아 시대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국의 오락거리 중의 하나가
런던 베들럼 왕립병원의 입장권을 구입하여 그곳의 정신병자들을 구경하거나 그들과 잡담을 나누는 것이었다고 한다.
입장권을 판매하는 쪽은 물론 병원이었고 그들은 구경꾼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녀환자를 가리지 않고 벌거벗긴 채로 사람들 앞에 내세워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특히 정신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너무나 잔인하여 치료가 아닌 죽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중세시대에는 정신병을 마귀가 뇌 속으로 들어갔다고 믿었기 때문에
끌과 같이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서 두개골에서 마귀를 파내는 시술이 행해졌었고,
미국의 정신의학협회 회장인 월터 프리먼 박사는 정신질환자의 두개골을 아이스픽(얼음 깨는 도구)으로 절개하기도 했다.
초창기 미국의 벤저민 러시 박사는 환자를 사정없이 흔들어 정신병을 떨쳐내야 한다고 주장하여
환자들을 의자에 묶어 놓고 하루 종일 흔들어 구토를 하면 나쁜 질병이 사라진다고 믿었던 기막힌 일들도 있었다.
12세기 교황 요한네스 21세는 정신병자에게 구운 쥐를 먹이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많은 치료방법들이 등장했지만 실제로 이런 방법들은 과학적이지 못 하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병세가 악화되거나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16세기 영국의 유명한 의사였던 대니얼 옥슨브리지 박사는
정신질환을 앓던 24살의 여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최신 치료법을 시도했는데
먼저 환자에게 관장을 실시한 다음 어깨를 비롯하여 양팔과 다리, 이마와 혓바닥에 있는 정맥을 통해 피를 뽑아낸 후,
항문의 정맥에 생긴 치질에는 거머리를 붙였다.
또한 식물성 하제를 혼합한 소다수를 만들어 환자에게 마시게 하였는데
이것은 온몸을 통해 배설을 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흘에 한 번씩 피를 뽑거나 구토를 시키고 관장을 실시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고 결국 환자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의사들은
유순한 동물의 생명력이 정신병 환자의 광증을 순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인간의 몸에 양의 피를 수혈하려고 했다.
1667년 영국에서는 정신질환을 앓던 성직자 조수였던 아서 코거는 20실링을 받고 이 실험에 응하여
양의 피 12온스를 수혈 받았다.
이 시술에 관심을 갖던 수많은 의사들과 박사들이 영국으로 몰려들기도 했지만 결국 코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듬해 드니박사는 아내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일삼은 한 남자 환자에게 세 차례에 걸쳐 양의 피를 수혈 받게 했지만
결국 그가 사망하면서 드니 박사는 살인자란 비난을 받아야 했다.
18세기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의 경미한 퇴행성 건망증을 치료하기 위해
두 번에 걸쳐 강한 전기충격 요법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또한 헨리 코튼 박사는 병원균이 감염되어 정신질환을 유발한다고 믿고,
외과 수술을 통해 감염의 가능성이 있는 신체의 일부를 제거하기도 했는데,
1919년에서 1921년 까지 코튼 박사는 뉴저지 트렌턴 주립병원의 환자들에게 무려 1만 1천 개의 치아를 뽑아내기도 했다.
만약 환자가 치과 시술에 의해 치료되지 않을 경우, 위, 창자, 혹은 생식기의 일부를 제거했다고 한다.
반면 여자환자들은 자궁경관 적출이 행해지기도 했다.
그곳의 거의 모든 환자들은 치아를 몽땅 잃은 채로 병원 복도를 걸어 다녔고
병원 곳곳에 환자들의 잘려진 팔과 다리 그리고 내장들이 가득하자,
차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에 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시술의 성공률은 20%를 밑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단되었다.
1935년 800년 전에 행해지던 마귀 퇴치법인 중세의 뇌수술이 부활하였다.
드릴을 사용하여 환자의 두개골에 두 개 이상의 구멍을 뚫은 후에
의사는 과일의 씨앗을 제거하는 기구나 버터 바르는 칼 등을 환자의 뇌에 집어넣어 환자의 뇌를 손상시킨 것이다.
그러던 중 1930년에 포르투갈의 신경과 전문 의사였던 안토니오 데 에가스 모니츠 박사는 젊은 동료 의사들과 함께
20명의 환자들의 전두골에서 작은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했고
자신이 개발한 대뇌백질 절제수술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리는 기사를 6개국에 내보냈다.
이후 미국에서는 월터 프리먼 박사와 제임스 와츠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시행된 대뇌백질 절제술이 시행되자
이 수술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타임’, ‘라이프’, ‘뉴욕 타임스’ 등의 언론사에서 두 사람을 구세주로 격찬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상당한 추진력을 얻어,
결국 1949년 에가스 모니츠 박사는 대뇌 백질 절제술에 대한 ‘애플 코어러 시술’로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뇌수술이 다시금 야만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이런 뇌수술을 대신하여 약물치료가 실시되었다.
오래전 정신질환자들에게 많은 의사들은 어처구니없는 시술을 감행했으며,
사람들은 그들에게 비인간적인 모욕으로 농락했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의학과 과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신질환자들의 인격 역시 반드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당
잘 읽었습니다
즐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