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1: 14 바다의 고기 같고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 합 1: 15 낚시로 낚으며 잡으며 모으고
합 1: 14 바다의 고기 같고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 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시나이까? )
앞에서 언급한 논의에 이어,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아인들에게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사로잡히게 될 일을 비유로 나타내고 있다.
1]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벌레'나 '바다의 어족'이라는 표현은 인간 이하의 상태를 암시한다.
* 창 1: 26, 28 -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창 9: 2 -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 시 8: 8 -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 전 9: 12 -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정상적인 인간 사회에서 기대되는 조직이나 지도력이 결여한 무기력한 상황을 가리킨다.
우리도 역시 그러한 요소들이 있다.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더 고통을 당하고 의로운 사람이 더 외롭다.
바른 교회, 정직한 교회를 외치면 교인이 구름 떼처럼 몰려옵니까?
그렇지 않다.
바른 교회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소외감과 고통이 더 크고 그런 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날은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는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세상과 비슷해야 좋은 교회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초대교회의 말씀은 사라지고 오늘날은 교회가 온통 세상의 뒤꽁무니만 쫓는 형상이 되었다.
그래서 '세상과 같이 하자, 세상처럼 되자'는 구호가 오늘날 교회가 부르짖는 전도전략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풍토에서 바르게 하려고 하면 오히려 손가락질받고 반대로 그들의 눈치를 보며 자꾸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회 내에서의 소외현상뿐만 아니라 바르게 살려고 하면 세상도 우리를 무시한다.
겉으로는 순진하고 착해서 좋다고 하지만 그런 것은 말뿐이고 뒤돌아서서는 얼마나 지혜가 없고 무식하면 저렇게 고지식하게 사냐고 손가락질한다.
대접받고 살려면 큰소리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나면 먼저 기세를 잡은 사람이 이긴다.
큰소리치지 않으면 바보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목소리부터 커지는 것이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환경이다.
합 1: 15 낚시로 낚으며 잡으며 모으고 -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며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
'낚시', '그물', '초망'등은 갈대아 군대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본다.
앞에서(11절) 언급된 것처럼 바벨론 사람들이 자신의 힘과 권세를 신격화하여 기뻐하고 그것을 의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문에서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교만이 가득한 상태를 묘사한다.
그들이 번성하는 현실은 선지자로 하여금 더욱 큰 의문을 갖게 했던 것이 분명하다.
1]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낚시로 낚는다는 것은 일대일이나 개별적 접촉을 통하여 신뢰를 쌓은 뒤 그를 점령하는 방법을 낚시로 비유한 것이다.
2]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1) 그물로 잡으며
그물은 물고기·날짐승 등을 잡으려고 노끈·실 따위로 여러 코의 구멍이 나게 얽은 물건을 이용하여 물고기가 이동하는 길목에 설치하여 밀물에 설치하였다가 썰물 때를 이용하여 포획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2) 투망으로 모으고
물고기가 모여있는 곳을 찾아내여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의미한다.
3]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이와 같은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날 때마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일을 만나면 상식적인 수준에서 감당하려고 한다.
그동안 살면서 겪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파악하고 '이런 일이 왜 내게 일어날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상황을 판단한다.
어떤 경우는 예의를 갖추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우리 한민족의 특징이 묻어나는 정에 연연해서 판단을 흐릴 때가 있다.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인지는 알지만 정 때문에 모르는 척하고 잘못을 더는 질책하지 않고 단순한 교리와 경험을 바탕으로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자신의 정과 예의와 상식과 단순한 교리와 경험에 치우쳐서 성급히 결론내리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실는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염두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이 생각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
성도는 먼저 침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급한 결론이나 성급한 말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실 것인지를 생각하고 기다려야 한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에게서 확신을 얻을 때 앞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뢰고 우리의 신앙적인 삶을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대로 다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사람들은 뭐든지 다 알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100% 다 안다면 그 하나님은 내 수준밖에 안 되는 하나님일 뿐이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완벽하시고 크신 분이다.
내가 그분을 예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있어나는지를 모르겠으면 모르는 그 자리에 그대로서 있으면 된다.
그리고 '하나님 나는 모릅니다. 이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까?' 라고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기도가 필요하다.
지금 하박국이 하나님은 정결하시고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는 기준에서 상황을 판단했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니까 이해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었다.
내가 볼 때에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인데, 신앙적인 일을 하도록 내려두시고, 더군다나 그 일을 더 잘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칭송까지 받는다면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누구의 기준입니까?
내가 내 안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미리 설정해 놓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항상 복음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복음은 우리가 로마서를 공부했듯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기에는 차별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유대인이 이방인들을 차별했듯이 가난한 자와 신앙에 무지한 자를 은연중에 차별하려 한다.
교인들끼리도 신앙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심중에서 구별하고 있다.
제가 목사라서 조금 나아 보입니까? 겉으로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이다.
그래서 누구든 구별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뿐이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가슴과 통치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서로 한 형제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원래부터 그런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의 자존심이 살아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으면 분노에 참지 못하고 화부터 낸다.
이런 분노가 있으니까 예상하지 못한 일에 내 자존심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라도 관용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목사인 저도 성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면 위로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로, 가장 천한 자로 지목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존재니까 그런 현실에 유감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을 겸손하게 하나님 기준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내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고통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고 자꾸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낮은 위치에 자신을 놓고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현상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