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
요한복음 8장 봉독 지난번에 성신에 관한 교훈이 많고 독특하다 이 요한복음에서, 그 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은 그렇게하고 이제 지나갈려고 했는데, 그 성신께 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한시간 더 거기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지나가야될 필요를 느꼈습니다. 요한복음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신약전체에 걸쳐서 성신, 특별히 성신의 세례에 대해서 많은 의문들이 있고 문제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성신의 세례란 말이 나오는 곳을 다 조사해 보면은 (헬라어 ) 성신으로 세례를 준다, 혹은 받는다, 신약에 성신으로 세례를 받는다 하는 말이 마 3 : 11절 신약에 성신으로 일곱번 나오는데 --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시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 선구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성신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병행절이(Parallal verse) 막 1 : 8절, 마가복음 1장 8절을 보면은 --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 여기는 그냥 불은 빼고 성신으로 세례를 줄 것이다. 그랬어요. 눅 3 : 16절 --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마태복음과 똑같은 내용의 말씀이에요. 요 1 : 33절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 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 똑같이 4복음서에 다같이 요한이 예수님께 대해서 그가 이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요 1 : 33절에는 무엇을 더 붙였냐면은 그리고 공관복음에서는 그러한 분으로서 심판자시라. 심판주시라는 것을 겸하여 가르쳤어요. 세례를 주시라는 동시에, 심판주라 하는 것은 요한복음에서는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시다하고서 겸하여서 그러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는 말을 또한 결들여서 말했읍니다. 자 복음서에서는 성신의 세례에 관해서 이렇게 다같이 그 선구자 요한이 예수님께 대해서 그런 분으로 가르쳤어요. 이것을 예수님은 이어받아서 행 1 : 5에 보면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 예수께서 그와 똑같은 말씀으로 그 요한의 말을 인정하고 그대로 요한이 말한 그대로 몇 날이 안되면은 그 말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너희가 꼭 성령의 세례라는 말은 없지만은 눅 24에 보면은 (눅 24 : 49) --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성에 유하라 -- 하는 말을 부활 후에 하셨는데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성신의 세례를 받을것이다. 하는 말은 안했지만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너희는 받고서 능력을 받을 것이다 하는 말로 이와같이 공관복음서에서 말하는대로 요한이 예언을 했고 예수께서 그걸 다시금 확실히 약속한 그 사실이 이제 몇 날이 못된다고 아주 임박하게 확인을 하셨는데 결국 그것은 어느때를 가리키겠어요. 오순절이죠. 그래 실지로 오순절날 성신으로 세례를 받는 그 때의 모양을 보면은 행 2 : 4절에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여기서는 성신의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안 썼어요.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랬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리고 거기 따르는 현상으로는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했어요. 그러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예언한 그 사실이 나타날 때 그 현상을 묘사할 때에는 그냥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하는 말로 표시되었어요. 행 8 : 15절에 보면은 --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여기는 받는다는 말로 표시했어요.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 내리신다는 말로 표시했어요. 받기를 기도하고 받는다, 내린다. 16절에, 17절에는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받는단말로 표시했어요. 성령을 받는지를 어떻게 알았을 까요. 어떻게 지금 지켜본 사람들이 지금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다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어떤 현상이 일어났으니까 그걸 보고 아는 거죠. 아마 방언을 하던지 무슨 찬송을 하던지 그랬을 듯해요. 여기 뭐라고 쓰이지는 않았지만은 좌우간 어떤 현상이 이게 지금 오순절 후의 사건이니까, 오순절에 일어났던 어떤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그 때와 꼭같은, 아 그러니까 이것은 성령을 받는다 그 사람들이 확인을 했단 말이여. 이렇게 할만한 어떤 외적인 현상이 나타났어요. 여기도 그러니까 여기는 받는다는 말로 표시했어요. 성령의 세례받는 일을 그냥 성령을 받는단 말로 표시 했어요. 행 10 : 44로 가보면 그 다음 비슷한 일이 일어날 텐데 --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여긴 내려온다는 말로 표시했어요. -- 베드로와 함께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 여긴 또 부어주신다는 말로 표시했어요. 내려온다 혹은 부어준다.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의 높임을 들음이러라 - 여기는 분명히 나타난 현상이 있었읍니다. 이걸 보고서 아 이 사람들은 여기에 지금 성신이 내렸다 또 성신을 부어주셨다 하는 것을 알았읍니다. 이같은 사실을 놓고 행 11 : 15절에 가서는 --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기를 이것 온단말이죠,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여기는 임하신단 말로 표시했어요.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니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 그런데 임하는 것을 보고서 아 세례받으리라고 하시더니 과연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이 때에 이것이 성신의 세례라는 것으로 이해를 한 것이여. 베드로는 결국 그러니까 성신이 임하는 것이나 성신의 세례를 받는 것이나 같은 것이죠. 많은 차이가 없이 여기에 있어요. 행 11 : 17절에 보면 --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성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 여긴 선물준단 말로 표시했어요.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 임하심, 선물준다 이것이 곧 성신의 세례라 이 다 같은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비슷한 체험이 행 19 : 6절에도 있는데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 여기도 그 현상이 따라왔는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단말로 표시했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세례라는 말로서는 복음서에 4번 행 1 : 5절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한 번 그러고 그 나머지는 행 11 : 16절인가 베드로가 먼저 그렇게 하신 세례를 받으리라하신 그 말씀이 생각났다 한말에 한번 그렇게 나온겁니다. 지금 -- 다해서 여섯번이죠. 그 다음에 한번 더 나오는데가 고전 12 : 13절이에요 --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 한 번은 세례받는다는 말로 몸을 둘로 썻다는 말로 표시하고 그 다음에는 또 마시는 것으로 표시했읍니다. 결국 같은 결국 그 모습만 다른 같은 사실을 두고 말하는 건데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그 앞에는 모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인 거와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 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자 그러면은 여기에 더 가르치는 것은 뭐예요. 전체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죠. 교회 어떤 일부만을 가리킨건 아니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교회에 들어온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이 다 ㅎ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하는 말이죠. 이렇게 분명한 말로서 우리가 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다 누구든지 교회의 한 일원이 되었으면 한 지체가 되었으면 받드시 이것 성신의 세례를 받으므로 교회에 들어온것이다. 그 말이여. 성신세례 안 받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이 없단 말이에요. -- 질문 교회에 들어온다는건 (어떤걸 말하는지) -- 하나님의 교회에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 되는 사실을 가리켜요. 실제에 있어서 뭐 그러니까 교회에 등록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교회에 등록한다는 말이 아니교 하나님이 보실 때 실제에 있어서 그가 교회의 그리스도와 몸의 한 일부, 한지체, 우리가 몸이 있으면 여기에 손발이 다 있고 이목구비가 있듯이 그게 다 지체인데 그와같이 예수그리스도의 몸, 땅에 있는 그 몸 그 교회, 그 교회의 한 일원이 되는 일은 다 성신으로 세례를 받고서 되는 것이다. 그 참 교회에 속한 사람은 누구든지 성신을 받지 않고 들어오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것의 좀 보충이 고전 12 : 3절 말씀인데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누가 어떤 사람이 예수의 저주 받을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은 분명히 성신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여. 그 사람 속에는 성신이 없다 성신이 그 마음 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신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할 수 가 있겠는가 그 말이여. 그건 아주 현저한 일이다 그 말이여. --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누가 예수를 가리켜서 주시라 예수님은 나의 주시다 우리의 주시다 그렇게 말하면 분명히 성신이 그 마음에 있어서 깨우침을 주고 그 다음을 지배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땅위에서는 어떤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고 안들어오는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냐 아니냐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뭐 다 신앙고백을 하지 않읍니까 예수 믿읍니까. 예수가 어떤 분입니까 롬 10 : 9 - 10절 거기에는 -- 네가 만일 네 입을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적어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시고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시다 이렇게 고백하면은 그 사람은 아 이 사람은 예수께 속한 사람이다 인정을 하고 세례를 주지 않읍니까 그러면 이제 땅위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노력을 다해서과연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는가 하는 것을 분간을 해서 그 사람을 땅에서도 교회에 입교를 시키는건데 그 이제 사람의 하는 일이라 혹시 그중에 이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아상은 어떻게 달리 할 수가 없어서 가장 최대한도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그건 실지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한 사람의 노력이에요. 그러고 교회에 명령하신 주님의 명령이고 좌우간 그렇게해서 진정으로 교회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은 다 성신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 학생 ; 교회라는 것은 아주 순수하게 자기가 성령을 혹신한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으로(생각했을 때 그런 것이지만은) 사실상, 교회안에 ------- 예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걸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항상 생각할 때에는 그것을 항상 원형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얘기를 해야지 예외를 놓고 항상 생략해서는 안되요. 예외는 그걸 정상으로 놓고 생각하다가 우리는 노력을 다 기울이는데 어떻게 해서 예외가 생기는 것은 그야 별수 없지요. 그런데 유형 교회에 따라오는 불가피한 사람의 연약과 사람의 그 무지와 잘못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생기는 불가피한 그런 결과이니까 그건 이제 최후에 다 드러날 일이지요. 그러나 항상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원상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우리는 항상 원상을 놓고 생각해야 됩니다.질문 ; - 학생- 그러니까 성신의 세례를 받았을 때에 사도행전에 나타난 현상들을 보면은 외형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죠. 그런데 여기 고전 12 : 13절을 보면은 교회에 들어오는 참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다 성신의 세례를 받는 것이다 했어요. 이런 원착하에서 사도행전을 또한 잘 보면은 성신 세례를 받는 사람은 받듯이 외형적으로 어떤 성신을 받았다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고 한번 보에요. 지금 우리가 본것은 서너의 경우만 국한해서 봤어요. 그러나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경우라도 3천명이 회개하고(주께서 저들을) 교회에 다녔다고 그랬죠. 그들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그러면은 이 고전 12 : 13의 원칙에 비추어서 볼 때에는 그들도 성신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그러지 ㅇ낳고 교회에 더 할 수는 없는 거에요. 그런데 주께서 저들을 날마다 더하셨다 그랬죠. 보태주었단 말이요. 교회에다가 주께서 그들을 더욱 보탰단 말이여. 교회에 속하게 했단 말이요. 그 수가 불어난건데 그들도 틀림없이 성신의 세례를 받은 것이고 그래서 교회에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오순절날과 같은 혹은 그 다음에 일어났던 성신 세례 받을 때에 있었던 그런 외형적인 어떤 현상이 그들에게도 나타났느냐 사도행전에 그런게 나타났다고 안했어요. 그외에도 바울이 빌립보에 와서 그 여자 루디아죠, 자주장사 루디아에게 믿게 하니까 그 사람이 믿었지요. 그 간수도 믿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믿었으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에요. 구언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지요. 그리스도의 몸에 그런데 그것은 단언을 하고 어떤게 글머 현상의 성신을 받았다는 외적현상이 나타났읍니까 안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성신을 받았다고해서 반듯이 어떤 외적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우리가 규정짖는 건 아니에요. 나타날 때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는 거예요, 그렀죠. - 학생질문- 방언이 어느 시대에 까지 끝였고 오늘날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 그건 이제 그 다음 문제인데요. 그건 그 다음 문제인데 성신을 받으면 반듯이 무슨 방언을 한다던지 예언을 한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 말이여. 그렇죠. 그건 분명해요. 그런 것이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면 그 사람은 성신의 세례를 받은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이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에요. 자 좀더 해 봅시다. 한 가지 우리가 꼭 확실한 지식으로 가지고 넘어갈 것은 성신의 세례는 세례란 말은 무슨 큰 무슨, 성신의 세례가 무슨 마력을 지닌 것 같이 생각하는데 결코 그런짓이 아니고 아까 우리가 쭉 행 2 : 4절, 오순절날 일어난 현상이에요. 행 2 : 4, 8 : 15 - 16절 이런데, 다 이런데 비교해 볼 때에 성신의 세례란 말은 다른 말로도 표시할 수가 있어요. 성신이 내린다던지 입힌다던지 성신을 받는다던지 성신을 선물로 받는다던지 선물로 준다던지 또 특별히 중요한 것은 행 11 : 18절 말씀인데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 성신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으로 인해서 성신의 세례를 받은 것, 그것은 곧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셨다 그들이 참으로 진정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회개를 했고 그래서 생명을 얻었다하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성신 세례를 받았으면 반듯이 생명을 얻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성신의 세례라는 것과 성신이 내린다는 것, 임한다는 것, 성신을 받는다는 것, 성신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 생명얻는 회개 그런 표현과 똑같고 이것은 생명얻는 회개를 했다는 그래서 생명을 얻었다는 표가된다고 우리가 결론 지을 수가 있어요. 성신 세례를 받았으면 그런 반듯이 생명을 얻었다 할 수 있단 말이에요. 회개했다 그리고 주의 용서도 물론 받았지요. 결국 이것은 신자의 표시라 그 말이요. 신자라면은 성신을 받은 것이고 성신의 세례를 받은 사람은 반듯이 신자라 그 말이여. (테이프 후면)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이냐 하면은 성신이 있는 사람이다. 성신을 소유한 사람이다. 성신을 소유한 사람이면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이면 반듯이 성신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신의 세례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성신을 받아서 소유하고 있는 사람, 이 롬 8 : 9절 이 말씀에 곧 성신을 받은 사람을 규정하는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그 안에 성신께서 와서 영원토록 내주하기 위해서 거하시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고 성신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성신의 세례를 받아서 일단 그 사람에게 와 계시면은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에요. 에베소서에서는 그를 인쳤다 그랬어요. 하나님의 기업으로 인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확실히 영원히 이제 하나님의 소유다 하는 걸로 인치고 그걸 성신의 세례란 말로 표시한 것 뿐이에요. 갈 3 : 14절도 매우 의미 있는 교훈인데 --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아브라함이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 지금 이거 갈라디아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느냐 아니면 믿음으로 받느냐 하는 것이 큰 중대한 문제인데 이와관련해서 예수님이 하신 그 일, 십자가를 지신 십자가와 부활하신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이냐, 성격이 뭐냐하는 것인데 이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고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13절을 보면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그 십자가에 근거해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그래 믿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든지 이 십자가 은혜가 미쳐서 결국 이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미치는 것이다. 구약시대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시고 또한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약속하셔서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하리라 한 그 복이 지금 믿는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다 미치는 것이다 그거에요. 그런데 그것은 그 다음 말로서 다시 설명하는 것 뿐입니다. 오가지의 다른 복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 아브라함의 복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했느냐면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고 이 성령의 약속을 받으면 결국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것이다 그거에요.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하여서 은혜를 베푸시기로 작정하신 그의 최종적인 목적이에요. 모든 땅의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의 목표가 이 성령의 약속을 받으므로서 실현된다 그 말이여. 그 이상 더 바랄 복이 없는거에요. 사람으로서, 그런데 이 성령의 약속이라 할 때는 앞으로 성령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아니죠, 약속하신 성령이여 오히려, 전에는 구약 성경에는 성령을 받으리라고 약속했지만은 그 약속으로 그 때는 머물러 있었는데 이재는 그것을 그 약속을 받는다 그 말이여. 실지로 이건 그 말이에요. 이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려 함이라 하지만은 약속했던 그 내용은 이제는 나의 것으로 받는다 그 약속이 실현된단 말이어요. 이제 그 약속이 실현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거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성신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너희가 복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그 멸망하지 않고 복을 받게 하시려는 그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성신의 약속을 받는다, 성신을 받는다 하는 것은 이 맘만한 뜻이 있어요. 그것이 곧 성신의 세례가 내포한 내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신 세례는 신자가 한 번 받으면 그것으로 족한거에요. 성신세례를 또 받고 또 받고 하는게 아니에요. 한 번 받고 그 다음에 물론 때에 따라서 성신의 충만함을 받아서 어떤 일을 하는 경우는 특별히 중대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고, 또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누구든지 저 사람은 성신이 충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해야만 그 사람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리고 그러기를 윌는 항상 힘써야 하는 거에요. 이런데 대해서 토레이 박사의 성령론에 보면은 그런 것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회개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있고 그 후에 성신의 세례를 받아야 그 사람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하는 것이 이제 그 분과 또한 (Neo-Pentecostalism) 오순절 교회라는거, 소위 오순절 교회의 가르침인데 거기 토레이 목사도 쭉 읽어가 보면은 거기 139p에 미묘한 말을 했어요. -- 이들은 잠재적으로는 성령의 세례를 받고 있으나 경험적으로는 그러한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 -- 이런 말을 했어요. 다른 데는 다 분명히 자기 입장을 항상 유지했는데, 여기 보면은 매우 자기의 입장을 무너뜨리는 말을 여기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앞에 좀 읽어 볼까요. -- 또 우리는 성령의 세례는 고린도전서 12장 13저에 있는 말씀대로 각 신자는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유능한 단체의 일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서 세례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신자들은 이 성령의 세례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한 신자들엑 주시는 바 선물인 주의 지체가 될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잠재적으로는 성령의 세례를 받고 ---- 어떻게 잠재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았다 하는 말을 쓰고 있다 그 말이여. 그래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정말 능력잇는 신자가 된다고 말하는데 아직 그렇게 성신을 못받은 사람의 경우를 지금 얘기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이제 성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거에요. 있어서 그걸 잠재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표시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봐요. 잠재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성신이 그들속에 있다는 말을 인정한거 아니에요. 그러면 벌써 문제는 해결된거에요. 성신이 그들에게 있으면은 그에게 더욱 순종을 하고 내가 이제 성신을 하나님이시고 인격을 가지신 분이니까 내가 성신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에게 더 순종을 하고 내가 그의 콘트롤을 받고 그러면 충만하게 되는 거예요. 성신에 충만하게 되면 벌써 그 사람은 이 토레이 박사가 요구하는 경험적으로 성신의 세례를 받는 그거 능력있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활동하는 것 그것이 이루어 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결국 이 토레이 박사가 자꾸 주장하는 것 성신의 세례를 받아라, 세례를 받아라 이것은 성신의 충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 밖에는 안되는 거에요. 질문 -- 마 16장에 베드로가 주님을 시인했지 않읍니까 그러면 그 때에 성신의 세례를 받은거로 보아야 합니까? 그런데 이 보세요. 그 시기에 벌써 예수님은 요한복음 그 16장 그 말씀은 전부다 그 시기 이후의 말인데 그런데 오순절 전의 이야기이에요. 그러면서도 너희가 받으리라 그랬거든요. 신자냐 중생했느냐 거듭났느냐 안났느냐 할 때는 거듭났다고 할 거에요. 베드로가 그렇지만 그 사람이 성신 세례를 받았느냐면 받았다 할 수 없어요. 오순절 전이에요. 그러면 그 사람이 거듭났으면 성신을 받은게 아니냐 우리 입장에서 볼 때에 신약의 성도로 볼 때는 다 그런데 그러기 때문에 오순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가운데 아주 특이한 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것은 역사 가운데 한 번 있는 거와 같이 오순절도 이 세상에 한 번 있는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사람은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거기까지 올려면 그것은 신자일지라도 그걸 거치는 거에요. 그래서 그 몇 사람의 경우는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은 거듭났고 이제 오순절 때에도 거듭났으면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 하겠지만은 오순절 때에는 이 사람들은 훨씬 한 단계, 단계를 오르는 거에요. 오순절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그 예수님의 새로운 백성,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형성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적인 의미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형성된거에요. 명실공히 교회는 오순절에야 시작된거에요. 그 전에도 교회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신약의 의미에서 정말로 하나님의 교회다운 교회는 오순절 때 비로서 시작된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오순절 전에는 크리스챤이 없었다 할 수 있어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그러니까 베드로도 그 때 고백할 때에 거듭났고 그리스도를 알기는 알았지만은 참으로 신약의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인, 참으로 그리스도인다은 그리스도인은 아직 못 되었던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도 모르고 도망가고 십자가에 달려야 겠다고 하니까 그러지 마시라고 한거아니에요. 아주 빈약하다 그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나 그런 정도가지고는 지금 신약 교회에서 행세 할 수가 없어요. 마태복음 16장에서 고백한 그런 정도의 기독론 가지고는 이 신약교회서 행세할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참 옅은 수준의 미비한 수준에 있는데 오순절때에 비로소 그가 정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겁니다. 말하자면, 그러나 오순절 이후에는 누구든지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가 아주 확연히 이제는 들어난거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은 이후에 성신께서 그것을 확고히 진리로서 세상에 가르치고 하는 이 이후에는 누구든지 그 진리를 받아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에 그 때야말로 이제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교회의 일원이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는 오순절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다 하는 말을 할 수가 있는거에요. =질문= 오순절 이후의 사건에 있어서도 행 8 장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받고 그것으로 부족해서 그 이외에 성령이 교회위에 내린 것처럼 표현이 되었는데(행 8 : 14 - 15) 사도행전 8 : 16절 --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며 성령을 받는지라 그러니까 여기서 사도들이 안수 할 때 성령을 받기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면은--- 이 성경 전체적인 교훈을 일단 딱 놓고서이걸 받고서 그 다음에 그런 문제는 해석을 해야 되어요. 그것은 그것대로 좀 더 이제 우리가 자세한 주석을 해야되겠는데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은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면 그들은 성신의 세례를 받은 것이고, 완전히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 그 사람들이 사마리아인들이라는 것이 특수한 역사적인 사람이어요. 사마리아 인들은 종래에 유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방인이고, 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살마들이 예수님을 믿었단 말이여. 그 속으로는 믿을지 몰라도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그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닌가 확인을 못해요. 그런데 거기서 성신을 받으므로 아 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우리와 똑같이 성신을 받았구나 확인하는 그 시기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필요가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나타남을 주신거에요. 그래서 성신을 받았다는 확인을 주신거죠. =질문= 사도행전까지 나타난 사실을 보면 교수님 가의 하셨듯이 이제 성령 충만이나 성령 세례나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잖읍니까? 그러면 성령 충만하고 성령 세례를 같은 의미로 받는다면 에베소서 5장 17절에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 =답= 아 그걸 완전히 동일시 하는건 아니에요. 성신 세례를 받은 사람은 받을 때 그 순간은 성신이 충만한다 그 말이죠. 그래서 성신 세례를 받으면 그사람은 성신이 그에게 내주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성신의 충만을 또 받고 또 받고 할 수 있는거에요. 또 어떤 때에는 성신 충만을 못받고, 성신은 모시고 있으면서 성신의 지배는 받지 아니하고 떨어져서 자기 멋대로 생활할 수가 있어요. 고린도전서를 보더라도 알마던지 그런 일이 있는데 그러면은 그 성신 충만 안하게 되는 거에요. 말하자면 성신이 자기에 오셨으면 주로서 모시고 그에게 다 순종을 해야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나름데로 산단 말이요 그러면 성령 충만 안하게 되어요. 성신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성신 충만 안 할 수도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신의 세례 = 성신 충만은 아니에요. 성신 충만 받을 때 그 순간이 행 2 : 4절에 보면 그들이 충만했더라 그거에요. 그 상태, 그 시대는 그 순간은, 그렇지만 그것이 항상 = 이란 말은 아니에요. 성신의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성신 충만 안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명령을 하는 거지, 지금 시간이 다가서 이야기를 더 못하겠는데 지금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을 이야기하다가 이 얘기가 되었는데, 이러한 성신에 대해서 요 14 : 16,17,26절 이런데에서는 요 14 : 16절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로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요 14 : 26절에 보면은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여기에 보면은 세상과 구별하는 요건이 되지요. 성신을 주어서 받게 되는데 나를 믿는 신자들에게 그들은 세상과 구별이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이게 사도들에 약속하신 말씀인데 그러나 사도들에게만 국한 시킬수가 없어요. 세상과 구별한다할때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거듭난자 전부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세상과 구별되게 하는 요소가 곧 성령이다. 그러니까 어떤 소수만 특별히 이 은혜를 받는다 하는 말이 아니죠. 신자 전체가 그걸 받는 거에요. 그 다음에 이와 관련해서 요일 2 : 27절에 보면은 --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 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뭐 이제는 하나님 처럼 전지 전능하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에요.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알만한 모든 것은 이 성신으로 말미암아 다 얻는 것이다. 아까 이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한 말씀이나 같은 말이에요. 내가 너희에게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진리를 가르칠 것이다하는 말이나 같은 내용입니다. 성신을 받은 사람은 특별히 그래서 어떤 경우가 생기면 거기가서 무엇을 얻어볼까하고 간다던지 이단이 오더라도 그냥 거기 갈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너희에게는 성신이 있으니까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있으니까 너희는 그것으로 만족하다. 성신만 의지하고 살면은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아무 부족할 것이 없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요한 사도의 가르침을 종합해서 보면은 성신은 모든 신자들이 다 받는 것이다 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충실히 신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것을 물론 사도들에게 있어서는 사역에 있어서도 아무 부족함이 없이 그를 힘입어서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훨씬 광범위하게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성신의 충만만 받으면은 성신을 받으면은 더 부족한 것이 없이 거기에서 모든 지혜와 힘을 얻을 것이다 하는 거에요. 이렇게 한 터위에서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만날 때에 우리가 성신의 충만함을 다시 구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한 항상 구하여 그런 상태에 성신이 충만한 상태에 있을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한 상태에서 더욱 더 지라갈 수가 있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다시금 그들이 성신의 충만을 받는다 하는 말이 하나 모순이 아니에요. 자 이렇게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에서와 꼭같이 예수님께서는 성신을 주시는자시다 하는 교훈도 하는 동시에, 그러나 이 사도 시대에 사도들이 가르치는바와 같이 신자에게 항상 있어서 그들의 생활을 지도하고 그들의 힘이 된다하는 그런면을 공관복음서에서는 별로 가르치지 않는데 요한복음에서는 그면까지도 말하자면 이걸 폴리리즘(Paulism)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바울 사도가 성신께 대해서 아주 충만히 잘 가르치는데 그 바울의 교훈이 벌써 요한복음에도 있다 하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요한복음 매우 특이하다 그 말이여. 성신에 관한 말씀을 대부분 이 신약성경에 나온 것을 보면은 사도행전과 그 사도들의 서신과 계시록에 많이 나옵니다. 성신에 대한 교훈이 복음서에는 조금 나오는데 그런데는 이제 비교해 보면은 이 뒷부분 사도행전 이 뒷부분에 나오는 성신의 교훈은 신자에게 임재해서 일하시는 그들에게 복이 되시는 그들의 생활을 지도하시는 그러한 성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복음서에서 보면은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관해서만 성신이 항상 관계되어 있어요. 절대적으로 말하는 건 아니지만은 현저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게 그런 거예요. 그리고 복음서에서 성신께 대해서 이야기 할때는 항상 미래로, 성신을 받을 것이다하는 것으로서 미래로만 얘기한단 말이여. 그런데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서 보면은 거기에는 현재 우리가 받아서 그 힘을 의지해서 살고 그의 인도를 받아서 산다는 것으로 늘 가르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오순절을 가운데에 두고 현저한 차이가 있어요. 저 밖에서는 이제 예수님 이야기 그만 두고 신자의 입장에서만 보자면은 오순절 전에서는 항상 미래로만 이야기 했고 오순절 후에서는 성신이 신이 우리에게 지금 임재해서 우리를 지금 힘 주시고 인도하신다 하는 입장으로 가르친거라 그 말이여. 그런 것으로 볼 때에 오순절의 의의를 우리가 거기에서 확실히 캐치할 수가 있어요. 오순절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을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그리스도인답게 만든 시기로 그 때 성신님이 내렸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은 우리가 성신세례를 받는 것이고, 그 때 오순절때 이루어졌던 하나님의 그 교회에 우리가 더 보태진다 그 말이여. 자꾸 보태어져, 이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내어공부해야할 만한 큰 제목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문이 좀 남을 것입니다만은 그러나 이러한 아우트라인을 마음에 두시고 계속해서 좀 더 침착하게 아까도 방언이 그쳤느냐 그런 것 까지라도 침착하게 이런 큰 테두리안에서 잘 공부해 가시면은 뭐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그런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확고히 진리를 잡고 갈 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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