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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원 박사 | |
그의 할머니에 대한 향수는 성인이 돼서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중학교 졸업과 함께 광주 제일의 명문이던 광주일고에 진학하자 할머니는 그 기념으로 마당에 감나무를 심었다. “나 죽고 나면 감이 열 것이다. 나중에 느그 각시하고 따 묵어라.” 할머니는 김 원장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어릴적 향수 그 자체였다.
할머니로부터 틈틈이 전해 들은 옛날 이야기는 빗자루 귀신 이야기부터 아름다운 전래 동화까지 다양했다. 가끔은 할머니가 실제로 겪었던 한국전쟁 당시 집안에서 거두었던 머슴이 어느 날 갑자기 빨간 완장을 차고 나타나서 조부의 목숨을 위협했던 것과 마을 주민들을 학살했던 끔찍한 일들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김 원장은 은연 중에 인간의 본성과 정신 세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갔다. 그러다 성인이 돼서 광주 사태를 맞는다. 당시 광주의 민주화 운동과 서슬퍼런 군부의 탄압 장면을 생생히 목격한 그는 인간 내면의 새로운 철학에 눈을 뜨게 된다.
인간 내면의 깊은 상처는 그 어떤 외상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과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자신이 평생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많은 환자들을 보듬어 안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자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단국대와 순천향대 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