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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두 번 내 앞에 나아오라
(민수기 28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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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에 출연하는 주인공들은 일반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기술들을 보여 주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의 시놉시스(synopsi, - 이야기 구성상의 요약된 내용)를 보면,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 “비록 소박한 일이지만 평생을 통해 최고가 된 '생활 달인'의 놀라운 득도의 경지를 만나는 시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달인들이 놀라운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같은 동작을 매일 같이,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무한 반복 하다보면 가장 적합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내게 되고, 다른 사람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달인들의 기술은 고달픈 삶의 현실입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기술들이 신기해 보일 수 있어도, 본인들에게는 고달픈 노동일 뿐 입니다. 어찌 되었든 반복한다는 것은 익숙해지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반복을 계속하다보면 위대한 습관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성숙하게 이끌어 가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행동을 반복 하게 되면 나쁜 습관이 몸에 배이고, 고정관념에 사로 잡히고, 타인을 배격하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반복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디모데와 같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까이 하게 하고, 반복하여 읽게 만드는 습관을 길러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습관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명령을 내려 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상번제(常番祭, continual burnt offering)는 항상 상, 차례 번이라는 한자의 뜻처럼, 매일 같이 지정 된 시간에, 규정에 따라서, 반복하여 드려지는 제사를 말합니다. 상번제는 기본적으로 번제(燔祭, Burnt offering, 불에 완전히 태우는)로 드려야 되기 때문에 반드시 희생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번제단에 올려지는 제물로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아침 시간에 한 마리, 그리고 저녁 시간에 한 마리를 드려서 불로 태웠습니다. 특별히 상번제를 화제(火祭, Offering by fire)로 드리라고 했는데, 화제는, 제물을 태울 때 유향을 넣어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했습니다.
상번제는 숫양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소제(素祭, Grain offering)도 함께 드렸는데, 소제는 빻은 곡식가루와 기름을 함께 드리는 제사 방법입니다. 한 번에 한 되 정도 되는 곡식의 가루(십분의 일 에바 - 에바는 고체 22리터, 1/10 에바는 2.2리터)에다 기름 약간을(사분의 일 힌 – 힌은 액체 3.66리터, 1/4 힌은 0.915리터)부은 후에 번제단에 올려놓고 태웁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상번제를 드릴 때는 전제(奠祭, Drink offering)도 드리라고 합니다. 전제는, 포도주나 독주를 제물에 함께 부은 후 태워서 드리는 방법입니다. 그러니 상번제를 드리려면, 매일 같이 숫양 두 마리를 아침저녁으로 잡아야 하고, 일정량의 곡식가루와 기름이 준비되어야 하고, 포도주와 독주도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제사가 매일 같이 아침저녁으로 반복됩니다.(안식일에는 안식일 번제 규정이 따로 있음-민 28:9-10) 매일 같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달인들처럼 일상적인 반복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달픈 노동일 수도 있고, 습관적으로 몸에 배인 통과의례 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상번제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조건, 매일 같이, 하루 두 번에 걸쳐 의무적으로 드려야하는 제사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많은 제사와 방법들을 동원해서 상번제를 드리라고 명령을 했을까요? 제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이 상번제의 명령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참으로 복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배려가 상번제에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령입니다. 반복하여 습관화 하라는 말씀입니다. 상번제에 담겨진 의미를 세 가지로 요약해서 살펴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각자의 삶 속에서 내 자신이 드려야 하는 상번제의 의미들을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상번제를 명령 하신 것은 하나님의 권리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2절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중에 확연하게 보이는 문구가 있습니다. “내 헌물(예물), 내 음식, 내 향기로운 것”이라고 하시면서, ‘내 것’이라는 것을 특별하게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번제물의 어린 숫양도 하나님 것이요, 포도주와 독주의 전제물도 하나님 것이요, 곡식가루와 기름의 소제물과 유향의 향기로움도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내 것’이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과, 하나님만이 제사를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신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부연설명을 하셨다면 이런 식으로 말씀 하셨음을 상상해 봅니다.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제사를 받을 당연한 권리가 내게 있다. 너희들에게 내가 가진 권한과 권리로 당당하게 상번제를 요구하겠다. 너희도 만약 나의 백성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나에게 나아와 제사를 드리는 것을 잊지 말고 명심하여 반드시 그대로 시행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분이시지만, 반드시 받아야 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요구도 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제 1계명을 어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질투하심은 제 1계명을 어기고 다른 우상에게 절하는 것에 있을 뿐만 아니라, 참신,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질투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당연한 권리인 상번제를 거부하는 것은, 제 1계명을 어기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은 최고의 거역행위요, 불순종의 행위입니다. 구약의 제사를 신약의 예배라고 연결지어 말합니다. 제사와 예배가 완전하게 동일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의미에서는 다른 형태를 지닌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번제가 매일 매일 드리는 제사 이므로, 하나님께 매일 매일 예배의 자세로 겸손하게 나아가는 행동이 있어야 하나님의 권리를 충족시켜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만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과 삶의 전 시간 속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예배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삶에서 놓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상번제의 예배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무서운 배반행위가 됩니다. 우상이라는 것은 나무, 철, 돌 등으로 만들어진 신상을 뜻하는 것이지만, 신약에서는 음란, 교만, 거짓, 시기, 정죄 하는 것 등, 죄의 온갖 온상 등을 통틀어서 광범위하게 우상이라고 정의 합니다. 이러한 죄와 악의 찌꺼기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 매일 매일 예배의 자세로 나아가는 횟수만큼 우상의 죄악들은 정리되고 청소가 됩니다. 상번제를 드리는 습관은 죄와 악을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명령은 내려졌고, 이제는 각자가 하나님께 매일 매일 나아가는 것을 결단하고 그것들을 행하는 실천의 문제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친한 사람들하고 연락하거나 우연히 만났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자”입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실제 밥을 같이 먹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냥 교제용 멘트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곧 기다리세요. 제가 곧 가겠습니다 하나님!”이렇게 말해 놓고 이런 일 저런 일로 바쁘게 사느라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한 번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결국 지친 몸으로 주일예배에 이끌려 나오다 시피 합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현실입니다. 상번제를 드리겠다고 해놓고도 사느라고 바쁜 나머지, 다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매우 서운해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을 정말 보고 싶은 마음에, 24시간 내내 ‘언제 오나, 언제 오나’ 기대감으로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결국 아무도 내게 오지 않았구나, 하루에 나를 향하여 두 번만 얼굴을 돌리고 눈 한 번 마주 쳐 주는 게 그렇게 어렵니, 참으로 너희를 보고 싶구나” 상번제를 명령하신 하나님이 마음이 이러하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백성들은 엘리야의 말에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호기 있게 외치는 엘리야는 혈혈단신이었고, 그가 상대하는 사람은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었습니다. 왕의 곁에는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이 도열해 있었고, 왕 옆에는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가 무려 450명이나 있었습니다. 세상이 이렇습니다. 상번제를 드리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세상이 주는 유익과 즐거움은, 아합왕과 군사들과 바알 선지자들처럼 너무나도 선택하기 좋은 것들이 무궁무진 합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라고 말하면 어느 누구도 쉽게 대답을 하지 않을 겁니다. 엘리야 앞에 있는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의 불이 내려오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확신을 주는 무언가가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이 점점 악해져 간다고 하여도 확실하게 선택할 수 있는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약속의 증거인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합니까? 엘리야가 지금 이 시간에, 이 장소에 나타나서 “너희가 하나님과 우상 중에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 물어온다면 주저 말고 대답해야 합니다. “네, 저는 오직 하나님만 선택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상번제를 철저하게 지키며 평생토록 살겠습니다!” 그리고 결심으로 고백한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고백대로 하나님 나아가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분들이 매일 매일 드리는 하나님만을 선택하시는 상번제의 삶을 살아가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건강하고 온전한 믿음의 예배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상번제의 명령은 삶의 무게를 이겨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는 참으로 버겁습니다. 만약에, 사람의 수명이 한 천년 쯤 된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행복할까요? 행복한 면도 있겠지만, 고통이 연장되는 괴로움이 될 것입니다. 질병, 사고, 근심, 먹고 사는 것, 불화, 누명 등, 우리의 삶 자체가 온통 암초투성이 인데, 이런 고통의 문제들이 천 년 간이나 이어진다면 생각 만해도 아찔합니다. 하나님이 허약한 육신의 수명을 짧게 정해 주신 것이 복중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짧은 인생의 시간에도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지 모릅니다. 매일 살아가는 것이 걱정이요 근심이니,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고, 어디 가서도 제대로 된 위로의 한 마디 들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번제의 명령을 통해서, 매일 매일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그들의 지치고 고단한 인생의 무게들을 거두어 주시려고 합니다.
상번제를 번제(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로 드린다고 했습니다. 번제는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어디로 올라갑니까? 정성과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진실함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더불어서,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슬픔과 고통과 염려와 근심을 다 태워버리고, 하나님께 올려 드리면 됩니다. 불로 완전하게 태워진 문제들은 다시 재발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나아오라는 것은, 올 때 마다 태우고, 올 때마다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명령입니다. 땅에 있는 것, 몸에 있는 것, 우리의 생각에 있는 것은 다 태워서 하나님께 올려 드리면, 하늘에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위로와 소망의 능력으로 채워 주십니다. 매일 매일 태우고 올려 드리지 않으면, 쌓이고 쌓인 문제들이 나를 짓누를 것이고, 그 고통은 낙심과 실망을 가져다주어서 점점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은 상번제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 평안을 충만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무조건 올려 보내야 평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나아올 때 무턱대고 그냥 나와 와서는 안 됩니다. 상번제의 제물에 그러한 의미들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번제물의 희생제물처럼 거룩하고 흠 없는 생활을 하다가 깨끗한 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흠이 있는 제물은 아예 제물로 선택 받지도 못했습니다. 제단에 올려지는 희생제물(숫양)은 죽임을 당하고, 가죽이 벗겨지고, 몸은 여러 조각으로 분리가 됩니다. 제물이 죽기 전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동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는데, 이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모든 죄가 동물에게 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제물이 불에 다 태워지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가 제물과 함께 태워져서 사라진다는 죄 사함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상번제의 제사를 드리려고 하나님께 나아오기 전에는, 제물과 같이 한 점의 흠도 없는 생활을 하려고 몸과 마음을 최대한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단에 올려 진 제물과 같이 나는 죽어서 태워 없어질 존재일 뿐이라는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매일 매일 나아오는 사람들은 ‘거룩함이 습관화 된 생활’을 하면서 지내라는 것입니다. 삶과 예배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거룩함이 연장이 되어서 예배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상번제를 소제로 드릴 때 곡식이 빻여서 가루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예배에 방해되는 요소들은 다 제거해야 합니다. 치워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철저하게 배격해야 합니다. 예배의 시간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환경과 사람들,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서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머릿속에 들어오는 잡념들을 다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겉만 예배자가 아니라, 마음속 까지 예배자가 되어야 하나님께 진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제로 부어지는 액체처럼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남김없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헌신과 봉사의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빌 2:17, 표준새번역)라고 말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이었지만, 그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라면 전제와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 주는 것이 가장 기쁘고, 또 기쁜 일이라고 합니다. 예배자의 자세는 사도 바울과 같은 헌신과 봉사의 마음으로 다 부어주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무거운 삶의 무게들을 가볍게 해 주시고, 마음에 아픈 상처들을 싸매 주시고, 불안과 염려를 다 맡겨 주시려고 상번제의 명령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은혜를 풍성하게 주시려는 마음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내 자신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삶의 자세를 묵묵히 지켜 나가야 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항상 거룩하게 생활하고, 주변의 불필요한 것들을 완전하게 정리하고, 헌신과 충성으로 결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어 겸손하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위로의 마음을 주십니다. 가볍고 쉴만한 멍에를 매게 해 주십니다.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어깨 펴고 살아갈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새 힘을 주십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분들이 상번제의 명령을 지키셔서, 삶의 무게들을 이겨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고, 매일 매일 주시는 새로운 능력으로 승리의 기쁨 속에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상번제의 명령은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요구 하신 것입니다.
4절에,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라고 말씀 합니다. 아침과 저녁 정해진 시간에 두 번 나아오라는 것이 하나님의 상번제 명령이었습니다. 왜 아침과 저녁을 기준으로 정해 주었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창조주요 심판자이시고, 알파와 오메가 이시고, 처음과 나중 되십니다. 닫혀진 문을 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열린 문을 닫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매일 두 번 나아오라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인생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재삼 확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숨 쉬고 생활할 수 있는 하루의 생명을 온전히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더불어서, 아침과 저녁으로 예배로 드리라는 것은 중단 없는 기도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 하루를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시작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마무리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 기도를 통해서 감사의 마음을 올려드리는 것이 매일 두 번 나아오라는 의미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간단하고도 쉬운 감사의 두 마디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잘 안 됩니다. 잘 안하며 무덤덤하게 지냅니다. 감사가 자연스러워지려면, 자동적으로 감사의 입이 벌려질 때까지 반복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습관화 될 때까지 집에서 가족끼리 서로가 기도와 감사를 했는지 확인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침, 저녁 두 번 정해진 시간에 나아오라고 했다고 해서 그 외의 나머지 시간들은 기도와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 준비하고, 제단을 정비하고, 땔감과 여러 가지 준비물들을 해 놓으려면 매우 분주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 일련의 준비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조건으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제물과 곡식과 포도주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배의 제단을 준비하며 섬길 수 있도록 불러 주시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피곤하지 않은 건강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응답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녀와 가족이 화목하고 형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웃과 다투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함께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족 구원도 반드시 이루어 주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 힘들고, 몸이 피곤하고, 짜증나도록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고 봉사하는 그 순간에도 감사의 조건들은 무궁무진 합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제대로 습관이 된 분들은 더 세분화 하고 광범위하게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따라 물맛이 너무 맛있다고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근하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을 보며 행복한 마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에서 싼 값에 좋은 물건 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횡단보도 지나는데 제 시간에 맞추어서 신호가 변경되어 빨리 통과하게 하셔서 지각하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김치, 깎두기가 아주 꿀맛이라 밥을 한 공기 더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따라 휴대폰이 고장 나서 남는 시간에 성경 10장 읽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배고픈 생각 안 들게 하셔서 살 안 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얼마나 많은 감사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말 한마디, 사물의 풍경, 정해진 사회 질서 속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는 감사가 숨어 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작하고, 기도로 생활하다가,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사람은 입술에서 감사의 말이 떠날 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아침과 저녁 두 번을 드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하루를 살아가면서, 기도하며, 감사하며, 동행하며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상번제를 명령하신 하나님의 진심은, 평생토록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평안하게 살아가게 해주시기 위해서였다고 믿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셔서 많이 기도하시고, 많이 감사하시고, 많은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상번제의 명령을 통해서 세 가지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첫째, 상번제를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의 권리선언입니다.
둘째, 상번제를 명령하신 것은 삶의 무게를 이겨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셋째, 상번제를 명령하신 이유는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상번제는 예배함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명령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매일 매일 두 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꼭 지켜 가십시오.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예배를 드리시고, 죄와 불순종의 마음은 완전하게 태워 버리십시오. 예배에 불필요한 것들은 가루를 내버려서 다시는 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만드십시오. 예배를 통해서 내가 드릴 수 있는 헌신과 봉사를 결단해 보십시오. 매일 매일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위로와 평안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고, 삶의 모든 시간 속에서 쉬지 않는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시는 00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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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상번제의 명령을 통하여 예배의 삶, 거룩한 삶, 기도의 삶을 깨닫게 하시고, 결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을 순종함으로 실천하여 복 되고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00교회 모든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영생의 소망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