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번 고쇼지 가는 길은 번뇌 그 자체였다. 버스는 이례적으로 큰 도로 옆에 선다. 내리란다. 다 왔다는 것이다. 내려서 보아도, 절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상점(?)에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무슨 일을 하시고 있다. 문을 열고 여쭈었다.
"텐노지(天皇寺)가 어디인지요?"
할아버지 표정이 뚱 하시다. 일어나서 엉금엉금 나오신다. 문을 열고서는 뭐라뭐라 설명하실 태세.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즉슨 '천황사'는 여기가 아니다. 한참을 가야 한다는 뜻이렸다.
우리 가이드로부터 나도 내도록 이제 "제79번 텐노지"로 간다고 들었기에,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천황사"를 물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다 내려서 우왕좌왕 하는데 동네의 한 할아버지가 더 나오시더니, 여기는 고유쇼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가 풀렸다.
가이드가 천황사라 그랬던 어쨌든, 정신 차리고 있었던 것은 기사님이었다.
사진 : 하소정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애시당초 고우쇼지는 우리 일정표에는 없었다. 텐노지하고, 66번 운펜지(雲邊寺)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이드북에는 그 사찰들이 안내되어 있다.(이는 박영빈 군 작성) 그런데 여행사에서 연락이 오기를, 이 절들은 차가 못 가서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측 여행사에서 알아서 대체 사찰로서 추천한 곳이 고우쇼지와 72번 만다라지(曼茶羅寺)였다. 부랴부랴 이 두 절에 대한 안내를 무상심 보살에게 부탁했고, 그것이 뒤에 붙어 있다. 하지만 "시코쿠 순례" 자료집 제일 앞에 붙어있는 일정표에는 텐노지와 운펜지를 빼고서, 고우쇼지와 만다라지(이 절은 결국 시간 부족으로 못갔음)를 가는 곳으로 수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일정변화를 기사는 정확하게 지시받고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이드는, 이동중인 차안에서 여러가지로 "공부"를 하다보니까, "시코쿠 순례" 자료집에서 텐노지를 읽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서대로 '방송'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 역시 천황사가 고우쇼지로 바뀐 것을 깜박하고서, 가이드 장단에 춤을 추었던 것이다.(잠시 뒤에, '얼차려'를 받게 된다.)
친절한 할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골목길을 한참을 걸어서, 고우쇼지를 가르쳐 주시고 가셨다.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골목길을 걸어서, 절을 찾아갈 수 있었다. 절 입구에는 지장보살님이 앉아계신다.
"아이고, 이 사람들, 길 찾느라 고생했구나. 어서 오게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같다. 조금 걸어가자, 수각이 나타난다. 참배하는 방식에는 제일 먼저 손과 입을 씻어야 한다. 먼저 오른 손으로 물을 퍼서 왼손을 씻고, 왼손으로 물을 퍼서 오른 손으로 씻는다. 그런 뒤에 다시 입을 헹군다. 그렇게 하려고 수각에 들어가려는 순간, 딱 머리를 부딪혔다. 아프다! 얼차려, 라는 뜻인 것같다.
절 분위기가 비교적 한적하다. 마치 선종 사찰 분위기가 난다. 가마쿠라의 엔가쿠지(圓覺寺)가 생각난다. 탑두(산내 암자)가 있는 그런 절 같다. 본당 앞에는 세 분의 오헨로상들이 와서,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있다. 조금 기다렸다가 우리도 하고서, 대화를 시도한다. 오사카에서 오신 분들인데, 3-4년 걸려서 조금씩 조금씩 돌 계획이란다. 우리가 도는 방식과 비슷한 것같다.
이 절에도 82번 네고로지에서와 같이, 1만분의 관세음보살을 모신 지하동굴이 있다. 이름하여 "만체관음동". 들어가 보니, 여기도 역시 습기가 가득 차있다. 네고로지와 다른 점은, 여기 관세음보살님 앞에는 공양물이 더러더러 놓여있다는 것이다. 타이베이 용산사에 수북히 쌓여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자기가 모신 관세음보살님 앞에 누군가 과자라든가 그런 고양물을 올려놓았다. 이 공양물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서 올려진 것일 터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이라든가 ---. 염원들이 다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도해 본다.
본당 뒤쪽으로 올라가면 납골묘원이 보인다. 거기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본당 쪽에 붙어있는 게시판에 A4 용지 크기만한 전단지가 하나 붙어있다 얼른 보니, 제목에 "一遍上人"일 되어 있다. 급히(시간이 없어서, 독촉을 받고 내려가는 중이었음) 읽어보니, 잇펜스님을 주제로 한 무슨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공연 안내이다.
버스를 타고보니, 가이드가 아까의 혼돈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시종 고우쇼지'라는 멘트가 나온다. 아, 그랬구나. 시종 절이었구나. 그래서 "잇펜스님" 공연 전단지가 있었구나. 어디 88개 사찰 중에서 시종 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건만 ---. 도무지 "시코쿠 순례"를 읽은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좀더 진지하게 참배하면서 잇펜스님의 향취를 찾아볼 것을 ---. 뒤늦은 후회가 밀어닥친다.
원래 이 절은 교키스님이 개산인데, 절 이름을 도량사(道場寺)였다. 지금 시종 절인데, 88개 사찰에 들어가게 된 것은 코우보대사가 도량을 정비한 일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찾아가 보니, "진언 시종" 양 종의 종지를 함께 떠받든다고 한다. 진언은 다라니이고, 시종은 염불인데 어떻게 함께 회통될 수 있을까? 내가 궁금해 하는 일이다. 그런 스님이 나중에 가쿠반(覺*) 이라는 분이었다. 진언종에서 난 스님인데, 인연이 된다면 공부해 봐야 겠다.
고우쇼지 홈페이지에는 "시코쿠 헨로의 3대 신조"라는 것이 적혀 있다.
"첫째, 누구든지 다 거둘어 들이며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는 대사님의 서원을 믿고, 동행2인의 신앙에 힘쓴다.
둘째, 어떤 일이라도 수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화를 내거나, 망녕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어떤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서 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서, 88가지 번뇌를 소멸시킨다."
* 박영빈 군의 정보 제공에 따르면, "一遍上人" 전단은 영화 안내라고 합니다.
첫댓글 그 잇펜쇼닌이라는 전단지를 고쇼지에서 구해서 읽아봤습니다. 잇펜쇼닌의 생애를 다룬 영화라고 합니다. 꼭 구해 봤으면 하네요 ㅎㅎ
아, 그렇군요. 역시 ---. 그런 영화가 나오다니, 다들 대단하네요. 도겐스님 영화도 만들더니, ---. 저도 그 영화 꼭 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네 저도 잇펜스님에 관한 영화 포스트 붙여놓은것을 보았는데 혹시 제가 잘못 알았나했습니다. 일본어를 잘 할 수 있다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텐데요....
일본어는 외국어입니다. 그러니 잘 한다, 고 말한느 것이 어폐가 있지요. 하지만 아는만큼 보이게 되고, 조금씩 조금씩 하게 되면 좀더 나아집니다. 보이는 것이요. 외국어는 평생 공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 그래도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