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곶 야경/ 박영식
어둠을 쓸고 쓰는
등대 불빛 잦은 비질에
흰 갈기 세운 파도
아기고래 떼 업고 온다
내륙은
사부작사부작
밤새 젖 물려주고
띠배에 실어 보낼
젯밥을 지으려고
수만 섬 별을 쏟아
스륵스륵 씻는 소리
끝없이
헹궈낸 뜨물
해안 띠로 둘렀다
*********
첫눈 오는 날/ 박영식
흰 눈이 덤벙덤벙
하늘에서 내리던 날
어항 닮은 우리 동네
고기된 너와 나는
먹이에
입질 하느라
발이 푹푹 빠졌다
************
녹우당에서/ 박영식
두륜산을 병풍 두르고
해남 텃새로 깃을 접은
마른날 뒤란에서
비자나무 숲이 울면
유배의
설움 나르는
후두두둑 저 빗소리
흘러 흘러감이
이끼 낀 세월뿐이랴
삶이라는 것
정이라는 것
다 흘러 흘러갔어도
남는 건
가슴에 한 점
못 지우는 이 그리움
**************
굽다리접시/ 박영식
나에게 아직 못다한 사랑 남았다면
볼 발그레한 천도복숭 그 탐스런 몇 개쯤을
대가야 굽다리접시에 소담스레 담고 싶다
이승에서 못 이룰 사랑이라면 더욱
어느 왕조의 무덤 속 부장품으로 묻혔다가
한 천 년 뒤에나 다시 발굴될 유물이고 싶다
그때 난 박물관 유리관에 들앉아
내 사랑은 햇볕 속 단물 든 속삭임이었다고
넌지시 웃음 보이며 묵상하는 날들이고 싶다
****************
가을 영화/ 박영식
신작의 벌레울음
자막으로 뜨는 이 밤
스적스적 물든 잎새
편집한 가을달이
유리창
스크린 위로
영사기를 돌린다
************
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박영식시조집/ [굽다리접시]/ 동학사/ 2015
바보공주
추천 0
조회 29
16.01.06 10:4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