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시위’와 ‘똥물사건’으로,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상징으로 대변돼 온 동일방직 인천공장 여성 해고 노동자들이 ‘27년만의 복직’을 요구하고 나t섰다. <본보 3월24일자 17면 보도>
24일 오후 2시 인천시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 인천공장 정문 앞.
이 곳에서 대표적 노동가요인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던 여성 40여명의 목청은 꽃샘추위의 매서운 바람에도 기운이 넘쳤다.
이들은 지난 1978년 2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똥물’을 뒤집어 쓴 채 쫓겨난 지 두 달여만에 무려 124명이 대량 해고된 일로 잘 알려진 동일방직 인천공장 여성 해고 노동자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회사에서 쫓겨난 지 벌써 27년.
노래 가사처럼 이들의 ‘청춘’은 흘러갔지만, 어느덧 쉰을 넘기고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만난 이들은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옛 친구들의 얼굴에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맞잡은 손을 놓지 못하던 이들은 그러나 힘들게 살아온 지난 날들의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 지난 세월동안 가슴에 묻었던 ‘한’(恨)이 다시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당시 스물다섯의 나이로 해고됐다는 서모(52)씨는 “요시찰 인물로 찍혀 형사의 추적을 받으면서 밀리고 쫓겨다니던 우리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며 눈물을 찍었다.
그녀는 “이른바 불순분자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된 뒤로, 취직한 데서도 쫓겨나고, 결혼한 사람들은 ‘빨갱이 며느리를 들였다’는 구박과 수군거림에 상처투성이의 삶을 살아왔다”며 울먹였다.
엄혹했던 독재 시절의 민주노조 활동으로 생존권마저 박탈당했던 이들은 “지난 2001년 민주화운동보상법에 의해 명예회복됐지만, 실질적 회복인 ‘복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측에 1978년의 부당해고에 대한 사죄와 현장 복귀를 요구했다.
함께 집회에 나선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의 오종렬 상임대표는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은 이뤄졌지만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늙은 노동자가 아니라 민주화 투사로써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자”고 말했다.
당시 동일방직 해고자 복직추진위원장이었던 김병상 신부도 “오늘 집회는 우리 삶이 힘들어도 희망과 미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일”이라며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일이 동일방직이 이 나라 민주화에 동참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3시쯤 동일방직 이한평 사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공장에 진입했지만 이 사장의 공석으로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이들은 “이미 내용증명까지 보낸 면담 요구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불응했다”고 항의하며 자리를 지켰고, 결국 김인환 상무이사와의 대화에서 오는 28일 이한평 사장 등 회사 관계자와 해고자 대표단간 면담 약속을 받아낸 뒤 오후 8시를 넘겨 해산했다. /송영휘기자 (블로그)ywsong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