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십 세단은 브랜드를 이끄는 모델이다. 최신 트렌드와 첨단 기술, 그리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도 한발 앞서 제시한다. 운전자에게 최상의 만족을 전달하고, 브랜드 가치도 높이기 위해서다. 플래그십 세단이 갖춰야 할 덕목은 어떤 게 있을까? 디자인, 성능, 품격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최고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이하 ADAS)’이 플래그십 세단의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ADAS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를 살펴보면, 그 발전사를 쉽게 알 수 있다.
주행에 따라 6단계로 구분하는 ADAS
자동차 회사는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 결과 자동차가 스스로 사고를 방지하거나 주행의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기술, ADAS가 등장했다. 자동차가 주행에 개입해, 안전성을 높이고 운전자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에서는 ADAS를 주행 참여도에 따라 총 6단계로 구분한다. 운전자가 모든 주행을 통제하면 레벨 0, 속도 및 차간거리 유지와 차로 유지 중 하나를 지원하면 레벨 1, 특정 상황에서 속도, 차간거리 유지, 차로 유지를 복합적으로 수행하면 레벨 2, 고속도로 등 제한된 조건에서 스스로 주행하면 레벨 3, 대부분 도로 상황에서 자율주행을 지원하면 레벨 4, 운전자의 도움 없이 목적지까지 스스로 이동하면 레벨 5에 해당한다. 참고로 현재 판매되는 대부분의 차는 레벨 0~2에 머물러 있으며, 2010년 이전에 제작된 자동차는 레벨 0~1 수준이다.
1~4세대 그랜저, 당대의 최신 주행 장비로 운전자 편의성을 높이다
1세대 그랜저의 크루즈 컨트롤은 당시 국산 승용차에서 보기 드문 장비였다
정속 주행 기능을 제공하는 ‘크루즈 컨트롤’은 일정 부분 주행을 담당하는 점에서 가장 기초적인 ADAS 기술로 볼 수 있다. 그랜저는 1세대(1986~1992년)부터 크루즈 컨트롤을 탑재했다. 당시 국산 승용차에서는 보기 드문 장비였다. 크루즈 컨트롤의 가장 큰 장점은 장거리 주행 시 운전자 피로도를 낮추고, 불필요한 가속과 감속을 최소화해 연료 효율을 높게 유지한다는 점이다. 정체가 적은 고속도로에서는 특히 유용한 장비이다. 이 밖에도 1세대 그랜저는 MPI 엔진, 전자식 에어컨, ABS, 2중 접합 안전유리 등 당시 경쟁 차종에선 보기 힘든 장비들을 갖췄었다.
2세대 뉴 그랜저는 유선형 디자인과 신기술을 적용해 대형승용차 시장을 휩쓸었다
2세대 뉴 그랜저(1992~1998년)는 국산차 최초의 에어백과 당시 국산차 최대 배기량인 3.5L 엔진으로 1세대 그랜저의 인기와 명성을 이어갔다. 2세대에서 ADAS와 관련된 장비 중 주목할 만한 건 바로 TCS(Traction Control System)다. TCS는 브레이크와 엔진 출력을 제어해 바퀴가 헛도는 것을 방지하여 최적의 그립과 구동력을 확보하는 주행장비다.
크루즈 컨트롤과 TCS가 탑재된 그랜저 XG
TCS는 엄밀히 말하면 ADAS 장비는 아니다. 하지만 ADAS를 구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구동 제어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로 당시 TCS는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었다. 스로틀 밸브와 가속 페달이 금속 케이블로 연결된 기계식 구조의 당시 자동차에서는 동력을 제어하는 장치를 추가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TCS는 3세대인 그랜저 XG(1998~2005년)까지 주요한 주행 장비로 자리를 지켰다.
4세대 그랜저(TG)는 전자식 스로틀을 적용했다
앞서 설명한 TCS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주행과 관련된 각 부분이 전자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4세대 그랜저(TG, 2005~2010년)에는 전자식 스로틀이 적용됐다. 전자식 스로틀의 가장 큰 특징은 동력 전달 제어 자유도가 높아 TCS와 VDC, 크루즈 컨트롤(수출형)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는 점이다. 스로틀 밸브를 전자 신호로 제어하므로 액추에이터와 불필요한 기구를 삭제할 수 있었으며, 제어 구조가 단순하므로 보다 정밀한 차체 자세 제어가 가능했다.
5세대 그랜저(HG), 본격적인 ADAS의 시대를 열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장착해 레벨 1 반자율주행을 구사했다
5세대 그랜저(HG, 2010~2016년)부터 본격적인 ADAS 장비가 적용됐다. 5세대 그랜저는 속도 및 차간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Smart Cruise Control)’과 차선을 넘어가는 경우 운전자 주의를 환기하는 ‘차로 이탈 경고(LDW, Lane Departure Warning)’가 탑재됐다. 가속과 감속을 능동적으로 해내므로 SAE 기준 레벨 1에 해당한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은 범퍼 하단에 위치한 레이더 센서를 통해 차간거리를 인식하고, 이에 맞춰 감속과 가속을 스스로 조절한다. 시속 30km 이상으로 주행 시 작동하며, 완전히 정차했다가 재출발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참고로 당시 경쟁 모델은 완전히 정차하거나 재출발하는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은 차간거리에 맞춰 브레이크와 가속을 스스로 조절한다
그랜저 시리즈에 처음 탑재된 ‘차로 이탈 경고(LDW)’는 전방 카메라를 통해 차로 이탈 여부를 파악해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능동적으로 조향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조향과 관련된 그랜저 최초의 ADAS 장비였다. 센서로 주차 및 출차 가능 공간을 탐색한 후 자동으로 스티어링 휠을 제어해 평행주차, 직각주차, 출차를 도와주는 ‘주차 보조(PA, Parking Assist)’가 들어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후측방 사각지대에 다른 차가 있을 경우 경고하는 ‘후측방 충돌 경고(BCW, Blind-Spot Collision Warning)’도 주목할 만하다. 전동화된 기구와 기존 센서를 활용해 안전하고 편리한 주행을 돕는 기능을 다양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기능을 늘렸지만 장비 추가를 최소화해 비용 및 운용 측면에서의 만족도를 높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6세대 그랜저(IG), 레벨 2 보조 주행에 들어서다
6세대 그랜저는 레벨 2 보조 주행 기술이 적용됐다
6세대 그랜저(IG, 2016~)에 적용된 ADAS 시스템은 운전자를 돕는 범위가 넓어졌다. 예컨대 차로 이탈 경고(LDW)는 기존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과 함께 작동한다. 덕분에 고속도로처럼 차량 흐름이 단순한 곳에서는 일정 조건 내에서 ADAS 시스템에 운전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이는 SAE 기준 레벨 2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큰 진보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성능도 개선됐다
성능도 개선됐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은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차를 감지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정교하게 차의 속도와 차간 거리를 조절한다. 전방 카메라의 해상도와 데이터를 해석하는 기술이 진화한 덕분이다. 또한 후측방 경고(BCW)는 후측방에서 접근하는 자동차와 충돌 위험 시 한쪽 바퀴에 미세한 제동을 가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BCA, Blind-Spot Collision-Avoidance Assist)’로 발전했다.
최근 ADAS의 진화 트렌드는 모든 센서의 데이터를 융합하는 데 있다. 기존에 탑재된 센서를 활용해 ADAS 기능을 늘리는 것이다. 전방 카메라의 경우 5세대 그랜저(HG)까지는 ‘차로 이탈 경고(LDW)’와 ‘차로 이탈방지 보조(LKA, Lane Keeping Assist)’에만 활용했지만, 6세대 그랜저(IG)부터는 전방 카메라를 통해 자동차, 사람, 자전거를 인식해 경고하고 감속하는 ‘전방 충돌 경고(FCW, Forward Collision Warning)’와 ‘전방 충돌방지 보조(FCA, Forward Collision-Avoidance Assist)’에도 활용된다. 이와 함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은 내비게이션의 지도 정보 및 GPS 정보와 융합해 고속도로 안전속도 구간 및 곡선 구간을 파악하고 스스로 감속하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Highway Driving Assist)’로 발전했다.
더 뉴 그랜저, 다양한 ADAS를 폭넓게 적용하다
더 뉴 그랜저는 운전자 선호도가 높은 ADAS 사양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FCA), 차로 이탈방지(LKA) 및 차로 유지 보조(LFA), ‘운전자 주의 경고(DAW, Driver Attention Warning)’, 전방 차량 출발 알림, 주변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상향등을 ON/OFF로 전환해주는 ‘하이빔 보조(HBA, High Beam Assist)’를 기본화 했다. 아울러 기존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BCA, Blind-Spot Collision-Avoidance Assist)’의 성능을 개선하고 작동 조건을 넓혀서 추가적인 기능도 마련했다. 후진할 때 좌/우측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감지해 스스로 제동하는 ‘후방 교차 충돌방지 보조(RCCA, Rear Cross-Traffic Collision-Avoidance Assist)’, 정차 시 뒤에서 접근하는 자동차를 감지해 뒷좌석 도어 개폐 여부를 결정하는 '안전 하차 보조(SEA, Safe Exit Assist)', 후진 시 보행자나 장애물과 충돌 위험이 감지되면 스스로 제동하는 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PCA, Reverse Parking Collision-Avoidance Assist) 등이다.
더 뉴 그랜저의 ADAS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HDA의 작동 범위가 자동차 전용도로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내비게이션 데이터의 활용 능력과 센서 제어 정밀도가 향상했기에 가능한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차량 주변 보행자를 인식해 사고를 예방하는 ADAS 기능을 적용했다
현대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는 ADAS의 밑바탕이 되는 크루즈 컨트롤을 발 빠르게 적용한 데서 시작해 현재는 레벨 2에 해당하는 반자율주행까지 선보이고 있다. 그랜저는 역대 그랜저가 그래온 것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이동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도 큰 폭의 진화를 담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