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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강의 사람들
여기는 베트남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호치민’입니다. 물의 나라답게 도심에 강이 흐릅니다. 전체 인구의 10%가 사는 이곳, 호치민은 예로부터 장사꾼의 도시라고 불리는 경제무역의 중심지입니다. 비딩 숲에 100년 넘은 재래시장은 명성을 지금까지 잇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터의 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파리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거리.
그래서 이곳 호치민을 동양의 파리라고 부릅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1시간 반 비행기를 타고 호치민에 닿았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나는 두 개의 큰 강, 칸강과 메콩강이 통과하는 베트남은 강만해도 2,300여개가 넘습니다. 여기에 곳곳에 보석같은 호수들까지, 베트남은 어디에서나 바다와 강, 호수와 만나는 물의 나라입니다. 그 물을 따라서 삶은 계속되고 있죠. 호치민시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이곳 호치민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하고 있는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현대적인 모습 속에도 지금 제 옆을 유유히 흐르는 ‘사이공’강 위에서
그들만의 피싱로드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한 켠, 물과 함께 사는 삶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오래전부터 사이공강 유역에는 배위에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젠 단 한 가구만이 남아있죠.
“안녕하세요?
가족들이랑 같이 사시는 거예요?”
50년 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응웬반죽’씨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일과는 매일 변함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낚시를 나가거든요. 낚시는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가업입니다. 말하자면, 응웬반죽씨는 호치민시에 남아있는 마지막 도시 어부입니다.
뭘 잡으셨을까요? 요즘은 메기가 제철이라는데요. 쾌 튼실합니다. 응웬반죽씨 3대가 살고있는 작은 배이자 집입니다. 한 눈에 봐도 식구가 정말 많아보이네요.
“가족이 모두 몇 분이세요?”
“딸 5명에 사위 3명, 손주 6명이 있어요.”
“호치민이 대도시인데, 이렇게 낚시를 하면서 사시는 이유가 뭐예요?”
“낚시는 3대째 내려오는 저희 집 가업이에요.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저까지 이어져 내려왔어요.”
현재 이 가족은 호치민시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정부차원에서 유일한 도시어부를 지원하는 것이죠. 응웬반죽씨는 요즈음 유명인사입니다. 장마철에 강에서 생명을 구했거든요. 그 때 받은 상장들이 그의 자랑거리죠.
“결국 낚시가 사람을 구했네요?”
“맞아요, 저는 어부이지만 만약 누군가를 구조할 상황이 생기면 제가 바로 달려갈 겁니다.”
“이렇게 사시는 거 어떠세요? 행복하세요?”
“네, 저는 이렇게 사는 게 편안해요. 하지만 힘든 점도 있죠.
보통 사람들처럼 정시에 출근한다고 낚시가 잘 되는 것 아니니까요.
낚시란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요.“
“표정부터 행복해 보여요.
할아버지가 잡아 온 물고기가 맛있어?
맛있나 봐.
낚시하는 거 배울거야?”
“손자한테 가업을 물려 줄 생각이에요.
그래서 요즘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욕심내지 않는 삶. 이 말 외에 이 가족을 표현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변화하는 호치민. 베트남의 경제발전은 놀라운 정도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도 가장 빠른 변화는 베트남 인구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20대의 문화입니다. 호치민 도심의 한 공원, 20대 대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예상외로 그녀는 전통의상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네요.”
“이 옷의 이름은 뭐예요?”
“아오자이(AOSAI, 베트남 여성이 착용하는 전통 의상)”
“이 옷은 자주 입어요?”
“네, 저는 학생이기 때문에 자주 입어요.
아오자이가 교복이기 때문에, 저는 거의 매일 입어요.”
“멋진데요?”
“고마워요.”
“한국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어요?”
“한국 영화 음악을 잘 알고 있어요.
수퍼주니어와 소녀시대, 빅뱅이요.”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곳을 물어봤습니다.
“저와 함께 호치민에서 유명한 해산물 음식점에 가실래요?”
“그 음식점 좋아해요?”
“네, 좋아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해산물 음식점이에요.”
호치민의 청담동이라는 곳. 고급식당입니다. 젊은 세대를 겨냥했지만, 주 재료는 생선입니다. 한 상 가득 채워진 건 바다, 강, 호수의 생선들. 물길을 그대로 옮겨놓은 식탁이었죠.
“맛있게 드세요.”
그루퍼(GROUPER)-농어목 바리과의 바닷물고기
“그루퍼는 큰 생선인데요. 칠리소스로 요리를 해요.”
“일단 생선이 매우 큽니다. 살이 많아요.
우럭구이? 그런 식감인데요.
전혀 비리지 않고 고소하고 쫄깃쫄깃하고요.
그리고 적당히 잘 익혀서 구수한 맛까지 나요.
맛있어요, 맛있어.
외국에 오면 생선요리를 겁내는 분들이 꽤 많은데
그대로 저는 오븐에 구운 생선은 꼭 추천하고 싶어요.
평소엔 접하기 쉽지 않은 생선요리를 드시면서
이곳 베트남의 맛을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담백한 생선요리와 즐거운 대화에 힘이 절로 납니다.
호치민에서 3시간을 달려 ‘껀저(CAN GIO)'에 왔습니다. 사실 껀저에 온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특별한 축제 때문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어떤 축제가 열리고 있나요?”
“껀저 지역 어부들의 전통 축제예요.”
“이 축제에 전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옛날에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다가 홍수의 피해를 입을 때
남하이(NAM HAI) 신이 까옹이라는 고래를 불러서 우리를 구해주셨어요.”
그럼 이제부터 축제를 즐겨볼까요? 먼저 인사를 드릴 곳이 있는데요. 축제의 메인홀 중앙의 큰 제단으로 갔습니다. 어부들의 수호신, 고래신께 인사를 드려야 하거든요. 저도 잠시 고래신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축제장 한켠에서 까캐오를 발견했습니다. 물 위가 아닌 땅 위에서 사람들이 까캐오를 신고 거리를 행진합니다. 사람들이 마침내 바다로 갑니다. 제가 신어봤던 ‘까캐오’라 반가운데요. 마릉의 응원단까지 왔습니다. 올해 까캐오의 최강자를 가리는 시합.
“넘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조심하세요.”
까캐오 달리기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까캐오를 신고 달리는 사람들. 베트남의 까캐오 달인들답게 걷기도 힘든 까캐오를 신고 경주를 마쳤습니다. 사실 이 까캐오는 전통 낚시도구입니다. 어부들이 좀 더 먼 바다로 나가기 위해 물에 강한 대나무 장대를 올라 신고 그물로 함께 고기를 잡는 베트남식 기구죠.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적 도구지만 어부들에겐 여전히 일상의 물건입니다.
1년에 단 한 번 어부들의 축제. 베트남 각지의 어부들과 가족들이 함께 기뻐하는 순간입니다. 까캐오 낚시의 최고 달인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축제의 분위기로 흥겨운 오후, 가장 중요한 행사만이 남았습니다.
“지금 이 순서는 ‘고래 할아버지 모셔오기’라는 보트 경주입니다.
이 축제가 고래 할아버지를 기리는 것에서 시작됐잖아요,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보트 경주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 옛날 맨 몸으로 파도와 맞선 그 시절 그 배로 어부들이 경주를 합니다. 고래할아버지와 바다를 향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벌써 반환점을 돌아오는 배가 있어요.”
모두가 함께해서 즐거운 시간, 올해도 무사히 올해도 만선을 고래할아버지께 기원합니다. 축재의 바다 앞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무지개가 떴습니다.
껀저에서 배를 타고 1시간,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왔습니다.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인 ‘맹그로브 숲(MANGROVE FOREST)’입니다. 이 숲에 들어서니 비로서 열대 나라에 온 것이 실감납니다.
서울보다 넓다는 맹그로브 숲은 강과 바다 습지의 갖가지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40년 전엔 베트남 전쟁 최대 게릴라 격전지로 고엽제가 무차별 살포되어 모든 동식물이 사라져간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이 숲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다시 복원된 것입니다.
‘맹그로브 나무’는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에서만 자라는 신기한 나무입니다. 그 뿌리에 눈길이 갈 즈음 숲에 또 다른 주인공이 나옵니다. 이 원숭이들이죠. 이 원숭이들은 사람을 피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죠.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에는 악어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심지어 몸 길이가 5m인 것도 있죠. 하지만 목적지는 여기가 아닙니다. 제가 가려는 곳까지는 배를 타고 좀 더 들어가야 하거든요.
“안녕하세요? 맹그로브에 가나요?”
배는 물이 빠지기 전에 서둘러 나갑니다. 지금 이 물길은 사이공강 지류가 남중국해와 만나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물길을 따라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더 깊은 곳으로 가는 중입니다. 어느덧 배가 좁은 수로로 들어섭니다. 갯벌이 보이시죠? 강과 바다의 퇴적물이 만든 것입니다.
배가 갯벌과 가까워지자 배에 탄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립니다. 모두 일을 하러 갯벌에 가는 겁니다. 갯벌이 주민들의 일터거든요. 맹그로브 숲에서 느긋하게 그물을 치는 ‘방밍궁’씨를 만났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죠.
“이렇게 그물을 계속 치는 거구나.”
어부는 매일 이렇게 강에 그물을 칩니다. 거의 1시간 정도 그물치기가 계속됐습니다.
“수면이 아주 낮아요.
지금 바닥에 노가 닿아요.
이렇게 물고기를 모는구나! 아~
지금 물고기를 모는 거죠?”
“네, 이렇게 해서 물고기를 다 몰아야 해요.”
노로 물살을 해치며 물살을 만들어 갑니다. 강의 고기를 그물 위로 모는거죠.
“그물을 저 끝에서 여기까지 친 다음 물고기를 모는 거네요.
지금 다시 시작점으로 갑니다.”
강을 한바퀴 돌고 난 뒤, 어부는 그물을 걷어올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잡는 방식은 누가 가르쳐 주신 거예요?”
“아버지가 직접 가르쳐 주셨어요.”
이 모든 게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수십 년 내려온 낚시 비법이었군요. 너무 간단해서 물고기가 잡힐지 조금 의심스럽긴 했는데요, 이런 기우였네요.
“오~ 계속 물고기가 잡힙니다.
물고기가 성질이 잔뜩 났어요.
오~ 진짜 큰 물고기 나왔어요, 진짜 큰 물고기!”
힘들이지 않고 저녁거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 이 정도면 충분한 거죠.
“그러니까 매일매일 가족들이 먹을 물고기를 그물로 잡으시는구나!”
맹그로브 숲이 둘러싼 갯벌 사이, 어부 방민붕씨의 집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물때를 보고 아버지를 마중하러 갑니다. 언제나 아이들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아빠의 낚시통이죠. 보세요, 어부의 아들답지 않나요? 물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집 앞에 강이 사라지고 갯벌이 나타났습니다. 물 만난 고기마냥, 갯벌 위를 신나게 다니는 아이. 저도 아이처럼 쉽게 걸을 줄 알았는데요, 한 발자국 떼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죠.
밀물과 썰물이 바뀌면서 갯벌에 신선한 물과 함께 영양분이 들어옵니다. 덕분에 어패류가 아주 풍부해졌죠. 갯벌에선 게와 조개 강굴 우렁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중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건 이 강굴인데요. 하지만 아드님을 이게(게) 좋다네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자연의 것으로 사는 사람들.
“보통은 새우를 많이 잡아요.
오늘처럼 게를 잡으면, 적게는 20만 동(만 원) 많게는 40만 동(이만 원) 정도 벌어요.”
자연에 살며 자연의 선물을 받는다는 건, 이런 거겠죠? 세상이 빠르게 변했다지만 방민궁씨의 삶은 그리 변한게 없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아온 것처럼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 위의 삶은 오늘도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3부-무이네 사람들,,,
영상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