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질감이 좋아 생활자기 고집
흙의 가치 알리고 싶어 방과 후 강사활동
해남에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인들이 많다. 해남문화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우리지역의 예인들을 찾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아버지는 시멘트를 바르더라도 서툴지만 그 속에 꽃이나 풀을 그려 넣었다. 나는 그러한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 그러나 내가 도예공의 길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를 따라 나섰던 아르바이트 자리가 도자기 공방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도예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었다.
여수수산대서 무선통신과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을 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서른여섯이 되던 어느 날 갑자기 사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집안의 반대가 심해 접어야 했지만 서른여섯의 나이에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도 늦어버린 길이다. 그때 생각난 것이 군 입대 전에 잠깐 배웠던 도예였다. 나도 모르게 나의 몸속에는 아버지의 소박한 예인 기질이 들어 있었나 보다.
미치게 도예에 빠져들었다. 지루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삶, 생활이 어려워도 도예는 너무도 많은 가치를 나에게 주었다.
황산면이 고향인 나는 산세가 아름다운 삼산면 무선동 한옥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나는 투박하지만 자연미가 살아있는 생활자기를 만든다. 도자기 하면 모두들 비싼 장식용을 떠올린다. 시멘트에 꽃이나 풀을 그려 넣었던 아버지의 소박함이 스며들었을까. 실생활에 이용하는 생활자기가 나는 좋다.
투박함에서 오는 소박미, 이러한 미가 좋다며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흙은 우리가 결국 돌아가야 하는 고향이다. 흙을 밟고 만진다는 것은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흙이 주는 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용전분교와 삼산초 황산고에서 방과후 수업을 지도하고 있다. 촉감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수업도 연구 중에 있다. 그들에겐 흙의 느낌이 더욱 다를 것이다.
한옥민박을 운영하다보니 손님들과 함께 도자기 체험을 한다. 자녀들과 도자기를 빚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찰기 있는 흙만 있으면 도자기는 빚을 수 있다. 다만 흙에 따라 그릇의 질감이나 특성이 달라질 뿐이다. 그러나 좋은 흙이 있다면 먼 길 마다않고 달려간다.
보통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백자를, 조각을 잘 하는 사람은 분청자나 청자를 선호한다. 나는 백자나 청자 모두 빚기를 좋아한다.
집을 찾아온 손님 중 도자기에 관심있는 이들을 만난다. 도자기 각 부분의 명칭과 도자기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정말로 신바람 난다.
도자기는 흙과 불의 만남이다. 한 번 가마 속에 그릇이 들어가면 온도 조절 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도 물레를 돌리고 있는 나는 삼산면 무선동 한옥민박마을에서 12년째 우인도예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