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부터 불국사 재정을 한 손에 주무르고 사금고처럼 운영하며 사찰 수입의 많은 부분을 빼돌려 수십억 원대의 호화빌라를 소유하는 등 개인치부를 일삼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1991년 사형인 종원 스님이 불국사 주지로 취임하면서 불국사의 잘못된 현실을 혁파하려하자 위기를 느낀 종상 스님이 1993년 12월 경 추종자 10여명과 더불어 종원 스님을 불국사 경내에서 집단테러했다. 그 사건으로 수배되어 도망다니다가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의해 구속되었으며 94년 3월 종단으로부터는 ‘체탈도첩’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94년 4월의 종단개혁 과정에서 능수능란한 정치적 처세를 통해 94년 5월 재심호계위에서 초심의 ‘체탈도첩’을 ‘공권정지 3년’으로 경감하는데 성공하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종단의 중징계를 가벼운 3년 형으로 바꾸는 재주야말로 세인들이 경탄해 마지않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파로 노른자위 사찰인 관악산 연주암을 빼앗긴 것은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수배되어 손발이 묶인 가운데 용주사 주지 정대스님이 자신의 상좌 자승을 연주암 주지로 임명한 것이다. 지키려는 종상도 빼앗으려는 자승도 서로 전국구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돌았다. 방검복을 입고 현장을 지휘했던 자승스님이 이후 정치적으로 성장하는데 연주암이 뒷받침이 되었다. 이때 자승 측에서 폭력배를 동원한 이가 뒷날인 2012년 자승의 도박과 룸살롱 출입 등 비리를 폭로하다가 지병으로 죽은 김세민이다. 이 때 서로 적이었던 종상과 자승 두 사람이 뒤에 도박으로 긴밀해져 정치적으로 한 편이 됨으로써 종단을 좌지우지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사람 인연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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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사형인 장주는 평소 종상 스님을 명분으로는 사제이지만 실질로는 어른으로 모신 덕분에 떡고물을 나누어먹는 은총을 누렸다. 종회에 입성하여 종회 부의장까지 역임할 수 있었던 것은 장주 본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종상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13년에 들어 둘 사이가 틀어져 오래 머물던 오어사에서마저 쫓겨나게 되자 분을 못이겨 검찰에 출두하여 스스로의 도박죄를 토설하여 종상을 궁지에 몰고자 했다. 자해와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는 종상의 법력을 너무나도 가벼이 본 것이다. 종상 스님이 관계요로에 차분히 손을 쓴 덕분에 태산명동서일필도 아니라 무혐의로 결론내리니 쥐 한 마리 잡지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종상의 도박멤버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자승이 2013년 조계종 총무원장 재선에 성공하자 종상의 권력은 날개를 단 듯 힘을 얻었다. 이미 ‘약속드립니다’ 문건으로 자승의 1차 임기에 권력을 보장받았던 종상은, 자승의 재임시 강남의 노른자위 봉은사를 약속받는 거래를 했다. 당시 중앙종회 종책모임 불교광장 대표인 지홍스님이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했지만 대세에 지장없었다. 세인의 눈을 의식해 원학스님을 명자주지로 임명시키고 자신의 졸개들을 총무와 재무 등 실무라인에 포진시키니 봉은사의 실제 주인이 종상임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