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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1915m)
<노고단(왼쪽)에서 천왕봉(오른쪽)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하나(一)자로 마루 금을 그으며 백두대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하동포구 전망대 금오산(金鰲山849m) 정상에서 바라본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전경>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1967년12월29일 지정)인 지리산(智異山)은 옛 기록에 지리산(地理山) 또는 지리산(地利山)으로 표기되기도 했으나 글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지리산은 지리산으로 이 지방 방언으로 지루하다는 뜻의 “지리 하다”를 음역한 것이 지리산이다. 이 산은 높고 넓고 골이 깊어 지리산을 알려면 수십 년을 인내하며 접근해야한다. 그러므로 지리산은 한마디로 큰 산을 의미한다. 지리산 이름이 뜻하는 바를 혹자는지리산을 알면 남 다른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산이다. 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리산은 민간신앙에서는 신령한 산이라 해서 삼신산(三神山)이라 했고, 불가에서는 방장산(方丈山)으로, 유가에서는 두류산(頭流山)이라 했다. 지리산은 토질이 비옥하여 심으면 심은 대로 뿌리면 뿌린 대로 열매를 거두는 산이다, 천왕봉 남쪽기슭 산청군 시천면과 삼장면 주민들은 세상이 온통 가뭄으로 굶주릴 적에도 이산 덕을 보고 살았다 해서 덕산(德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같은 산을 두고 이렇게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려 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여느 산과는 구별된 명산이라 하겠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白頭山 2744m)으로부터 남으로 굽이굽이 도상거리 1625km를 뻗어 내린 산줄기는,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인 노고단(老姑壇1507m)에서 지리산정상 천왕봉(天王峰 1915m)까지, 평균 해발고도 1400m 가 넘는 주능선은 25.5km에 걸쳐 장쾌하게 웅장 미려한 모습으로 백두대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지리산은 3개도 (경남, 전남, 전북) 5개시 군 (함양, 산청, 하동, 구례, 남원)에 걸쳐 있는 넓은 산역에, 해발1400m 이상의 산봉만도 20여개나 거느리고 우리나라 3대 계곡 (한라산 탐라계곡,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하나인 칠선계곡 등 수량이 풍부한 수다한 계곡을 거느려 산고심곡(山高深谷)의 면모를 과시하며 여름철 계곡피서지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지리산은 ①천왕일출(天王日出)②반야낙조(盤若落照)③노고운해(老姑雲海)④직전단풍(稷田丹楓)⑤세석철쭉(細石철쭉)⑥벽소명월(碧霄明月)⑦불일폭포(佛日瀑布)⑧연하선경(烟霞仙景)⑨칠선계곡(七仙溪谷)⑩섬진청류(蟾津淸流)등 지리10경을 연출한다. 한강을 지배하면 한반도를 지배하고 지리산을 지배하면 삼한(마한,진한 변한)을 지배한다고 했다. 고대로부터 힘의 대결장으로 신라와 백제의 지배권 다툼, 임진왜란, 여순반란사건, 6.25전쟁의 빨치산 활동 등 이민족의 피의 역사가 골골이 배어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정상에 서면 남해가 내려다보이고 덕유산, 무등산, 운장산, 백운산, 황매산, 자굴산, 와룡산, 하동포구전망대 금오산등 남도의 산들이 조망된다. 지리산은 계절에 관계없이 어느 때 찾아도 좋은 산이다.
天王峰 日出
<드물지만 비온 후 무지개가 치솟는다는 뜻의 무재치기폭포>
유평리 새재마을이다. 이 마을은 유평리에서 자동차길이 끝나는 가장 위쪽 마을로 다섯 가구정도 사는데 등산객들을 상대로 민박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마을이다. 새재의 새는 날아다니는 새와는 전혀 무관하다. 중봉에서 밤 머리재를거처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왕등재 능선에 자동차 길이 없던 시절 이 마을에서 산청읍으로 통하는 샛길, 지름길을 의미하는 새재가 있어 그 아랫마을이 곧 새재마을이다. 산행계획은 새재마을~무재치기폭포~치밭 목 대피소~써리봉~중봉~천왕봉(1박)~장터목대피소~중산리주차장이다. 새재마을을 산행기점으로 택한 것은 새재마을~천왕봉8.8km 5시간 소요다, 대원사주차장~천왕봉13.7km 7시간보다 거리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낭에는 텐트 침낭 우의 방한복 취사도구 등등 꼭 필요한 것들로 최소화 시켰는데도 15kg이 훨씬 넘을 듯하다.
09시16분 출발이다. 안개 자욱하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온다습한 날씨다. 삼복더위에 묵직한 배낭을 메고 밤새내린 비로 질퍽한 길을 나서니 시작부터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대원사로 통하는 새재삼거리를 지나 무재치기폭포다. 이 폭포는 비온 뒤 드물긴 하지만 무지개가 발기(發起)하는 폭포라는 뜻이다. 등산로에서 100m 떨어진 숲속 계곡에 있어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은 대부분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 지쳐 있는데다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배낭을 벗어놓고 계곡에 내려가 폭포를 구경했다. 비올 때는 폭포수를 볼 수 있고 비가 그치면 폭포수가 끊긴다는 건폭으로 알려진 무재치기폭포, 오늘은 어제 밤 내린 비로 폭포수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행운이라 해야 할까? 대개 기행문이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 머리로 쓰는 게 아니고 발로 쓴다고 한다. 산행기도 이와 같다.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한다. 그래야 이야기의 소재가 풍부해진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다른 사람보다 같은 길도 더 많이 걷는다. 초행길에 폭포수를 봤으니 힘들인 보람도 있다. 폭포위쪽에 올라가서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폭포에서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내려오는 등산객 한사람을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그는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하여 천왕봉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란다. 천왕봉 일출이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일곱 번 도전 끝에 진짜 최고의 일출을 보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며 개선장군처럼 말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나는 다섯 번째 도전이니 최고의 일출을 볼 때까지 아니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허락하실 때까지 도전할 생각이었다.
<안개로 베일에 가려진 중봉의 비경>
치밭목대피소이다. 한 뼘의 텃밭도 없는 곳, 그러나 치밭목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가파른 능선길이라 소가 상대를 공격할 때 떠받는 것처럼 사람도 그런 모습으로 기어오른다 해서 치받목인데 잘못 전하여 치밭목이 되었다. 휴식을 위해 샘터로 갔다. 배낭을 벗어놓고 시계를 본다. 도착시각 11시40분 새재마을로부터 4.8km 2시간25분 걸렸다. 남은 거리는 4km 두시간거리다. 물병 3개를 단숨에 비운다. 여기서 무려30분을 보냈다. 몸도 옷도 배낭도 땀으로 젖었다. 묵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정상으로 향한다. 써래봉(1599m)이다. 능선을 따라 여러 개의 암봉이 삐죽삐죽 솟아서 써레의 잇빨 같다. 때문에 모내기할 때 논바닥을 고르는 농기구의 일종인 써레를 뜻하는 이름이다. 고추잠자리의 군무를 봤다. 짙은 안개로 천왕봉도 가까운 중봉도 보이질 않는다. 혹여 안개가 걷힐까 서성인다. 얼핏 안개사이로 선경이 스친다. 중봉은 써레봉을 내려서서 다시 올라야한다. 중봉(1875m)이다. 현재시각 15시16분 천왕봉 정상까지 빠르면 14시 늦어도 16시까지 도착하기로 되어있는데 0.9km를 더 걸어 올라가야하니 예정보다 상당히 늦어질 것 같다. 중봉에 올라보니 써래봉 보다 더 많은 난생 처음 보는 고추잠자리의 군무를 본다. 그들은 자신을 해치지 않는 사람 좋은 사람(?)인 줄을 어떻게 알았나? 온몸에 휘감긴다. 어찌나 많은지 도무지 진행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예상을 하지 못했던 광경이 펼쳐지자 카메라에 담는 것조차 깜박 잊어버렸다. 휴식도할 겸 여기서 천왕봉정상을 보고 가겠다고 자리를 펴고 않았다. 잠자리의 군무를 감상했다. 저 많은 잠자리가 어떻게 충돌 없이 종횡무진 움직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천왕봉은 무려40분을 기다려도 가능성이 보이질 않았다.
중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금 정상으로 오른다. 오늘은 정말 힘들다. 안개는 자욱하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온 다습한 날씨에 숨이 턱턱 막힌다. 삼복더위에 사람들은 그늘에 앉아서도 발을 물에 담그고 연신 부채질을 해 대는 판국에 천왕봉 일출을 보기위해 혼자서 비박(Bivouac)을 할 생각으로 이것저것 주어 담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오르는 내가 미친 사람 소리를 듣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정상 턱밑에 다다라서 보니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처럼 가파르다. 한발 짝 옮기고 숨 한번 쉬고 두발 짝 옮기고 서 있었다. 앉았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 아예 배낭을 짊어진 채로 바위에 기대어 쉬기도 했다. 이마의 땀방울은 소금으로 변해 눈이 짜다.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니 모래알 같다. 온몸은 땀으로 젖고 배낭까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이정도의 고행은 필수다. 산길이 험하다 한들 인생길만큼 험하며 배낭이 무거우면 세상 짐만큼 무겁겠는가? 지리산(智異山1915m)은 높은 산의 대명사 중국 산동성의 태산(泰山1545m)보다 더 높다. 지리산은 1500m 이상 봉우리를 무려 15개나 거느리고 있다. 힘든 산을 오를 때 마다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1517~1584)선생의 시 登泰山 (등태산)를 생각하며 위로를 삼아 본다.
登 泰山(등태산)
泰山雖高 是亦山 (태산수고 시역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等等不已 有何難 (등등불이 유하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世人不肯 勞身力 (세인불긍 노신력) 세상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 不可攀 (지도산고 불가반) 뫼만 높다 하더라!
<천왕봉에서 지는 해를 등지고 바라본 황혼 빛으로 곱게 물든 동쪽의 운해>
지리산정상 천왕봉(天王峰1915m)에 올라섰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100번지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17시 정각이다. 늦은 시각이라 정상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구름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열리고 온 세상 지면은 운해로 덮였다. 구름바다! 그렇다 운해(雲海)다! 학교 운동장만큼 천왕봉 꼭대기만 운해위로 솟았는데 나는 망망대해 조각배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송암 양대박(松巖 梁大樸1544~1592)선생의 자문자답을 생각해 본다. 이 속세에서 벗어나 어디 가서 허공에 손을 흔들며 조물주와 더불어 넓고 넓은 곳을 유람할 수 있겠는가?라고 자문하고는 기필코 큰 구경을 하려면 두류산 정상에 올라야 할 걸세!라고 자답했다지 않는가? 늦은 시각이라 모두 하산을 한 뒤라 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배낭을 벗어 놓고 정상 한 바퀴를 돌며 산책을 한 후 앉아서 천지의 조화를 감상한다. 학교 운동장만큼 운해위로 덩그러니 솟은 바위봉우리는 두드려도 울리지 않는 일천개의 바위로 만든 천석종인가?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은 열두 차례나 지리산에 올랐다한다. 오늘 내가본 천왕봉의 모습이 그가 남긴 시와 어쩌면 같을지도 모른다.
千石鐘(천석종)
請看千石鍾 (천간천석종) 천근이나 되는 저 종을 보게 나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울리지 않는 다 네
爭似頭流山 (쟁사두류산) 두류산이 그렇지 아니 한가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는 다 네!
<해질녘 황홀경을 연출하는 황혼이 곱게 물든 저녁노을>
동쪽 운해 속으로 무지개가 떴다. 장관이다. 천왕봉정상에 홀로 앉아 넋을 잃고 감상하다가 그만 그 광경 카메라에 담는 것조차 깜박 잊어버렸다. 사람은 한 가지에 몰입하면 누가 옆구리를 쿡 찔러도 모른다. 권력을 다투다 보면 적이 처 들어와도 모르는 것과 같다. 무지개가 사라지자 돌아앉아 낙조를 기다린다. 아니 칠선계곡 쪽에서 누군가가 운해위로 얼굴을 쑥 내민다. 이 늦은 시각에 웬 사람이? 사람인가 신선인가? 나는 기다렸다는 듯 누구인지를 묻기도 전에 그에게로 가서 반갑게 포옹을 했다. 칠선 계곡에서 올라온단다. 출입이 금지된 자연휴식년제 적용구간인데다 얼마 전 수해로 계곡에 산사태가 나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단다. 부산에 산다는 그는 나보다 8년 아래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계속한다. 히말라야등반을 갔다가 기상악화로 도중에 하산 한 이야기부터 산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산 꾼과 산 꾼이 만나면 산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나면 할 이야기가 없다. 그는 천왕봉에서 야영을 하겠다며 텐트 하나로 같이 자잔다. 내가하고픈 제안을 그가 먼저해왔다. 텐트를 치고 저녁밥을 해먹고 나서 기회를 놓칠 새라 두 사람은 황급히 정상에 올라 와 낙조를 본다.
<태양은 한낮의 임무를 마치고... 천왕봉에서 바라본 낙조>
맡겨진 소임을 다하는 천왕봉의 청소부 다람쥐
19시40분56초 한낮에 이글대던 태양은 운해가 넘실대는 저 멀리 끝자락에서 하루의 임무를 마치고 하늘 금을 넘어갔다. 황혼이 곱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저 해는 지금 서쪽으로 저도 내일 아침이면 분명 동쪽에서 다시 부활 하겠지. 인생도 살다가 마지막 순간이 저렇게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지리10경중 제1경 천왕봉 일출만 생각 했는데 뜻밖에 무지개도 보고 낙조도 봤으니 내일 일출도 기대가 된다. 힘들여 오른 보람이 있다.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데 한낮의 태양이 달구어 놓은 바위는 엉덩이가 따끈따끈하다. 천연 찜질방에 앉은 기분이다. 계속 이야기꽃을 피운다. 바로아래 바위 물 덤벙에 다람쥐가 물을 마시고 있다. 뜻밖에 장면이 연출되자 그 모습이 귀여워 카메라를 집어 드는 순간 다람쥐는 고개를 들다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달아나 바위 속으로 몸을 숨겼다. 순간포착에 실패했다. 아쉽다. 모든 피조물은 쓰임 받은 타고난 소명이 있다. 창조주는 쓸모없는 것은 만들지도 않았다. 나는 산삼을 약초인줄 모르고 잡초인줄 알고 지금껏 짓밟고 다녔다. 이처럼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무지일 뿐이다. 다람쥐는 종의 번식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만 생각 했는데 이곳 다람쥐는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과일이나 과자 부스러기 등을 흘려 바위틈 사이로 빠지면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바위 틈 사이까지 다람쥐가 청소를 한다. 그래서 천왕봉 다람쥐는 청소부다.
<동쪽하늘 붉게 물들이는 태양, 지평선 저 멀리 부산 일광(日光)방면>
날이 어두워지자 텐트로 돌아온 형제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날이 시작 된지 이미 한 시간이 지났다. 날씨가 좋아 최상의 천왕봉 일출을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봤다. 기온이 내려가자 대기는 깨끗해져 멀게만 보이던 진주시가지와 광양만일대의 불빛은 한결 가까워 졌고 청청하늘의 잔별들은 발돋움하여 팔를 뻗으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2006년8월1일 01시20분 잠자리에 들었다. 방한복을 입고 잤는데도 추워서 잠이 깼다. 다시 번데기처럼 침낭 속에 들어가 얼굴만 밖으로 내어놓고 잠을 잤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정상에서 시끌벅적 사람들 소리에 또 잠이 깼다. 03시10분이다. 잠시 후 더 많은 사람들 소리가 나자 그제사 일어났다. 03시30분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들고 정상에 올라갔다. 추산 컨데 이미 약 3천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통상 천왕봉 일출은 새해 1월1일에 가장 많이 몰리지만 오늘은 직장인들의 하기휴가와 자녀들의 방학이 겹치는 시기라 이렇게 많이 운집한 것 같다. 정상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우리형제가 그만 지각을 하고 말았다. 좋은 자리는 일찍 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늦게 온 나는 아래쪽 변두리를 배회하다가 간신히 자리를 마련한 것이 삼각대를 세울 수 없는 장소였다. 아직도 일출시각은 두 시간이 넘게 남았다. 피서 철이라고 가볍게 옷을 입은 사람들은 추위에 새파랗게 질려 떨었다. 다들 천왕봉 일출을 보겠다고 설레 이는 마음에 밤잠 설치며 일찍 올라온 사람들이다. 기다림 끝에 여명이 밝아왔다. 지면에는 운해가 깔리고 티끌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저 멀리 스카이라인을 따라 동쪽하늘은 붉어지고 빛은 부채 살처럼 펴졌다. 왁자지껄하던 이 많은 사람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폭풍 전야의 고요 같다. 고개 돌려 쳐다보니 사람들의 눈빛이 새벽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운해가 깔린 지평선 저 멀리 환희에 빛나는 광명한 아침 해가 천지창조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마침내 빛은 어둠을 이기고 장엄하게 솟아오르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 일출 광경>
2006년 8월 1일 05시 38분 16초 전국에서 운집한 3천여 명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죄악이 관영한 이 땅 위에는 운해가 깔리고 일광 쪽 지평선 저 멀리 환희에 빛나는 광명한 아침 해가 천지창조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마침내 장엄하게 어둠을 몰아내고 솟아올랐다. 와! 하는 함성과 박수가 터지고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후래시가 터졌다. 카메라셔터를 누르고 나니 눈앞이 캄캄했다. 순간 강열한 태양빛에 눈이 멀었나 생각했다. 감격이다. 감동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태양이 지평선으로부터 완전히 분리 될 때까지 셔터를 눌렀다. 흥분된 상태로 카메라 조작도 잊은 채 어떻게 셔터를 눌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장엄(莊嚴)! 그렇다. 일출광경은 한 마디로 장엄했다. 장엄이란 불교에서 피눈물 나는 고행 끝에 무아(無我)의 경지(境地)를 거쳐 극락에 이르는 과정이요, 기독교에서 죄악(罪惡)이 관영(貫盈)한 이 땅에서 한번뿐인 삶, 온갖 세상유혹을 물리치고 최후 승리를 이룬 자에게 주어지는 천자의 면류관을 받아 영생한 천국소망을 누리는 과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산전수전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며 최후승리를 거둔 군대가 개선행진을 하거나, 음악에 있어서 고저장단을 거듭한 끝에 장중하게 대미를 장식할 때, 이럴 때 한마디로 “장엄하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지금까지 노고단에 첫 발을 내 디딘 이래 지리산을 80회 이상 올랐고 천왕봉일출 산행을 수차례 해왔다. 그러나 오늘처럼 완벽한 그림은 처음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저 넓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 일 년 중에 과연 며칠이나 되겠는가? 잊혀 지지 않을 감격! 감동!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해가 뜬지 한참 되었는데도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 미련으로 남았는지 사람들은 자리를 뜰 생각을 않았다. 지리10경중 제1경 천왕봉 일출, 일출을 보러 간다고 아무 때나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뜻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을 계속해야만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기회를 주신다. 그래서 지리산인 이원규 시인은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란 시 의 첫머리에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마시고.....” 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지리산 천왕봉 산 그림자를 삼각모형으로 그리며, 저 멀리 곡성 땅 깊숙이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
05시54분48초 사람들은 제 갈길 다가고 두 사람만 남았다. 천지 사방을 돌아본다. 평소에 멀게만 보이던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25.5km의 주능선이 바로 한 걸음 앞이다. 능선을 따라 아침의 천왕봉 산 그림자가 피라밋 모형을 그리며 하동 구례 저 멀리 곡성 땅 깊숙이 그려졌다. 조금만 일찍 발견 했더라면 아마도 담양 땅까지 그려졌겠다. 텐트로 돌아와 남쪽을 굽어보니 어제는 보이지 않던 낙남정맥 길이 되는 지리 남부능선도 운해 위로 솟았다. 지리산정상 천왕봉에 올라 그 감동을 노래한 점필재 김종직 (佔畢齋 金宗直1431~1492)선생의 시가 실감이 난다.
天王峰 頂上(천왕봉 정상)
絶頂窺鴻濛 (절정규홍몽) 정상에서 아득한 천지를 보는 구나
浩浩俯積蘇 (호호부적소) 광대한 첩첩 봉우리 들을 굽어보니
如脫天地籠 (여탈천지롱) 천지의 울타리를 벗어난 듯하구나!
<운해위로 모습을 드러낸 청학동 뒷산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지리 남부능선>
08시30분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배낭을 꾸려 하산을 한다. 능선을 타는 천왕봉~로타리대피소~중산리주차장은 7.4km에 2시간30분 거리인데 굳이 이보다 먼 천왕봉~장터목대피소~중산리를 택한 것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타기위해서다. 시편에 기록되기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고!라고 했다. 초면에 하룻밤을 호형호제하며 텐트에서 함께 자고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해준 그는 진정 형제로다!우리는 동시대에 태어나 이 땅 수십억 사람들 중에 단둘이서 지리산정상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만났으니 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나는 그에게 우리 식구가 계곡에서 피서를 하고 있는 중산리로 하산할 것을 제안했으나 어제 오른 칠선계곡으로 다시 하산하겠단다. 같은 길이라도 올 때와 갈 때가 느낌이 다름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누가 말 했던가? 오는 사람 박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고 했겠다. 정들자 이별이다. 그를 얼싸안고 등을 두드리며 형제여! 앞날에 건승을 빈 다 는 말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떠나보내고 혼자 정상에서 장터목으로 내려 왔다. 옛적 지리산 남쪽의 해산물과 북쪽의 농산물을 물물 교환하던 곳 장터목 대피소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피소다. 한낮의 불타는 태양은 나의목도 타게 했다. 샘터에는 20여명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뙤약볕에서 30분을 기다린 끝에 물 한 병을 받았다. 이르는 곳마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계곡 길을 내려왔다. 한여름의 계곡산행의 최적지 지리산, 덕천강 상류 중산리 계곡물 소리도 우렁차다. 계곡물에 몸을 씻었다.
<산 높고 골짝 깊어 수량도 풍부한 지리산의 계곡>
산청군 시천면과 삼정면을 통틀어 속칭 덕산이라 한다. 지리산 천왕봉은 덕산(德山)이요, 지리산동쪽 유평리 계곡물과, 천왕봉남쪽에 중산리 계곡물이 천왕봉 정남에서 합수하여 마침내 덕천강(德川江)이 되니 덕산(德山)에서 먹을 것을 얻고 덕천(德川)에서 마실 것을 얻으니 이 모두가 지리산에서 덕을 보고 살만했다. 남명선생은 1560년 회갑 년에 고향 합천에서 배산임수(背山臨水)에 금환낙지(金環落地)인 이곳 덕산에 들어와 1561년에 산천재(山天齋)를 건립하여 11년간 후학들을 양성하며 말년을 보냈다. 천왕봉 초입 덕천강변 덕산에 후학들이 세운 덕천서원(德川書院 사적 제30호)이 있다. 천왕봉아래 중산리계곡 그늘이 좋은 계곡 물가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며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이 남긴 시 두 편을 감상해 보았다.
德山卜居 (덕산복거)
春山底處無芳草 (춘산저처무방초) 봄 산 어느 곳에 풀꽃이 없으련만
只愛天王近帝居 (지애천왕근제거) 다만 천왕봉이 하늘나라에 가까운 것이 부러워 찾아왔네
白手歸來何物食 (백수귀래하물식) 늙어 빈손으로 돌아와 무엇을 먹고살거나?
銀河十里喫有餘 (은하십리끽유여) 맑은 물 십리나 흐르니 먹고도 남으리!
浴川 (욕천)
全身四十年前累 (전신사십년전누) 온 몸에 더러워진 사십년 세월
千斛淸淵洗盡休 (천곡청연세진휴) 천섬 맑은 물에 모두 씻어 버리네
塵土倘能生五內 (진토당능생오내) 만약 가루 같은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割腹付歸流 (직금할복부귀류) 지금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씻어 보내리!
칼바위를 지나 중산리 매표소다. 여기서 중산리 주차장까지 2km 남았다. 생애최고의 일출산행이었다. 개선장군처럼 산문을 나서니 11시33분이더라. 이번 산행은 유평리 새재마을~무재치기폭포~치밭목대피소~써리봉~중봉~천왕봉~장터목대피소~칼바위~중산리 매표소다,
2006년 7월31일 월요일 안개~8월1일 화요일 맑음
첫댓글 엄청 자세한 내용은. .
그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크신 때문에. ..
감사합니다!
지리한 장마가 끝나면 직장인들의 휴가와 학생들의 방학이 되겠지요.
천왕봉 일출은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면 굳이 새해 첫날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요.
천왕봉 일출을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도 지난 여름휴가때 성삼재-천왕봉-중산리 다녀왔는데 같이간 일행들반응이 넘좋아
가을오기전 서북능선 갈려고 준비중입니다
여름지리산은 야생화가 인상적인거 같습니다
지리산은 산 높고 계곡이 깊어 여름 산행지로 인기가 좋습니다. 물론 야생화도 좋고요.
서북능선은 성삼재에서 철죽으로 유명한 바래봉 능선을 말씀하시는것 같는데 초가을 야생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