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19-2-1.zip
淸峯:무아상이란 내가 있음에 끄달려서 나라는 고집이 있었으나 나의 실상이 참으로 비어 없어 실체가 공하므로 색?수?상?행?식(五蘊)이 본래 실상이 없는 것이건만 나라고 집착하는 것은 미혹으로 인한 어리석음 때문임을 요달함이요.
무인상이란 것은 사대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것이 인연 따라 생긴 일시적인 허상일 뿐 끝내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무지로 인해 집착해온 것임을 요달함이요
무중생상이란 중생이라는 것은 본래 생멸이 없음을 요달함이요.
무수자상이란 내 몸(색신)이 본래 공(本來面目)하거늘 수명이 있다고 생각하여 길고 짧음을 연장하여 죽지 않고 오래 살겠다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요달함이다. 이로써 사상(四相)이 공하고 일체 모든 것이 공함(無法相)을 요달하게 되는 것인데 하물며 진리 아닌 것이야 없는(無非法相)것을 당연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요달하면 지혜가 밝아져 유무에 집착하지 않으며 미세망념을 영원히 제거하게 되어 자성불을 체인(體認) 체달(體達)하여 상락아정(常樂我淨)하게 되는 것이다.
說誼:?細垢盡하면 圓明體露로다
설의:거칠고(?) 미세한(細) 때(垢)가 다하면 원만한 밝음의 體가 드러나도다.
청봉착어:내라고 하는 나는 참이 아닌 헛것이요
사람도 중생도 법도 헛것이로다
나도 헛것이요 헛것도 헛것이며
헛것이라는 것 마저 헛것이로다. 악!
圭峰:初徵에 信者는 以何義故로 得如來悉知悉見인가 後釋에 有二하니 一은 無我執이니 執取自體 爲我이고 計我展轉하여 趣於餘趣가 爲人이며 計我盛衰苦樂이 種種變異相續이 爲衆生이고 計我一報命根이 不斷而住가 爲壽者니라 二는 無法執이니 論에 云하되 無法相者는 能取所取인 一切法無요 亦無非法相者는 無我가 卽顯眞空實有라 然이나 離二執이 正是得佛知見하고 成就正信之本으로 善根福德이 却是相兼이니라 故로 論에 云하되 有智慧便足이거늘 何故로 復說持戒功德인가 爲示現生實相差別義故로 亦有持戒功德하고 依信心恭敬하여 能生實相故로 不但說般若라하다
규봉:처음 물음에,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므로 여래가 다 알고 다 보는 것을 얻는다 하는가? 뒤에 설명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我執이 없음이니 자기 몸을 집착함이 我가 되고, 我를 계교하고 더 나아가서 다른 것을 취향하게 되어 人이 되며, 나의 성하고 쇠함과 괴롭고 즐거움이 계교하되 갖가지 별스럽게(이류인 축생이 아니라고) 이어간다고 하는 것이 衆生이 되고, 내가 한번 받은 생명을 계교하되 끊어지지 않고 머문다고 함이 壽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法執이 없음이니 論에 이르되 “무법상이란 것은 능히 취하고 취할 것인 모든 것이 없음이요, 또한 무비법상이란 것은 무아가 眞空의 실다운 있음(妙有)을 곧 나타낸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나 두 가지(我執, 法執) 집착을 여읜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지견을 증득하고 바른 믿음을 성취한 근본으로 선근과 복덕이 오히려 이렇게 서로 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論에 이르기를 “지혜가 있으면 편하여 족하거늘 무슨 연고로 다시 지계와 공덕을 설하셨는가?
실상을 차별로써 드러내 보이신 뜻이 되므로 또한 지계공덕이 있고 믿는 마음으로 공경하여 능히 실상을 내는 연고이므로 단지 반야만을 설하지 않았다” 하였다.
六祖:若有人이 於如來滅後에 發般若波羅蜜心하고 行般若波羅蜜行하여서 脩習解悟하여서 得佛深意者는 諸佛이 無不知之시니라 若有人이 聞上乘法하고 一心受持하면 卽能行般若波羅蜜無相無着之行하여 了無我人衆生壽者四相하니라 無我者하면 無受想行識也이고 無人者는 了四大不實終歸地水火風也니라 無衆生者는 無生滅心也이고 無壽者者는 我身이 本無이니 寧有壽者이리오 四相이 旣無이니 卽法眼이 明徹하여 不着有無하여 遠離二邊하고 自心如來를 自悟自覺하여 永離塵勞妄念하면 自然得福無邊하리라 無法相者는 離名絶相하여 不拘文字也이고 亦無非法相者라하여 不得言無般若波羅蜜法이니 若言無般若波羅蜜法이라하면 卽是謗法이니라
육조: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입멸하신 후에 반야바라밀의 마음을 내고 반야바라밀을 행해서 닦고 익히고 알고 깨달아서 부처님의 깊은 뜻을 얻을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이 그를 알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높은 가르침을 듣고 일심으로 받아 가지면 곧 능히 반야바라밀의 무상무착행을 행하게 되어서 我, 人, 衆生, 壽者의 四相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無我라는 것은 수상행식이 없음이고 사람(인상)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四大가 實이 아니므로 마침내 지수화풍으로 돌아감을 깨닫게 됨이다. 衆生이 없게 되면 생멸심이 없게 되고, 無壽者란 것은 내 몸이 본래 없으니 어찌 오래 삶이 있겠는가?
四相이 이미 없으니 곧 法眼이 분명하고 투철해서, 有無에 집착하지 않아 二邊을 멀리 여의게 되고, 자기 마음인 여래를 스스로 깨달아 자각해서 煩惱妄念을 영원히 여의게 되면, 자연히 가없는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無法相이란 이름을 여의고 相을 여의어 文字에 얽매이지 않음이고, 또 無非法相이라하여 반야바라밀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 만약 반야바라밀법이 없다고 한다면 곧 이 법을 비방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