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에서 <다시 김대중>이라는 김대중 대통령 특집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금, 왜, 다시 김대중인가'라는 제목으로 그의 민주화 역정보다도 1998~2003년 5년간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했던 기간이 지금의 시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갈수록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서 정책 성과에 기댄 국정운영의 성과보다, 정치적 분열과 갈등에 기댄 반사이익에 몰두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소수파 대통령이었지만 집권 5년동안 수많은 정책 성과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운영 태도와 방식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기술 강국으로 올라선 데엔 김대중 대통령의 공이 가장 크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고 열린 문화정책을 폄으로써 'K-컨텐츠'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했으며,
재정이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보장제 실행을 밀어붙여 사회안전망 구축의 토대를 놓았으며,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를 새로 설치하는 등 인권 신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였습니다.
경제개발을 이룬 박정희의 업적이 18년에 걸쳐 축적한 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김대중이 이룬 성과는 놀랍다고했습니다.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에서 모진 탄압을 받았지만 재임 시절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지원했고, 자신을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조작해 사형을 선고한 5공 신군부 출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에 초청해 국정 조언을 들었으며, 1997년 대선에서 경합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친 동생이 주도한 '세풍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 본인에겐 어떤 사법적 칼날도 직접 들이대지 않은 것은 '정의 실현'보다 '국정의 성공'을 앞에 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정 운영에 있는 힘을 다 쏟기 위해서 전 정권 청산 같은 것은 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정책을 폈다거나 자민련 총재인 김종필과 손잡은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5년 단임이라는 조건에서 중요한 정책적 성공을 잇따라 거둔 것은 김대중 대통령 외에는 찾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점이 갈수록 지리멸렬한 무능한 대통령이 판치는 세상에서 다시 김대중 대통령을 돌아보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