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죄명은 '남편을 믿은 죄'였다.
책의 저자 김서영은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괴로운 것을 덮어버리고 싶어했을 지 모른다. 주부로서 최선을 다했던 너무나 한국적인 여인, 저자는 남편 뒷바라지와 시부모 모시기, 자식을 위한 지극한 모성애로 평범하게 살아오다가 어느 날, 남편에게 숨겨온 오랜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30년의 결혼생활에서 진정한 남편은 5년이었다고 할까. 남편은 아내 몰래 25년 동안이나 밀회를 즐기며 숨겨둔 여자를 5년 전에 알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죄를 직무유기죄, 남편방조죄, 오만방자죄로 까지 생각하다가 결론적으로 '남편을 믿은 죄'로 표현했다.
남편은 그 여자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말하지만 말뿐이었고, 속고 또 속이는 남편과 시앗의 관계를 끊을 수 없음을 알게 된 저자는 3년 전부터 결국은 그 여자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만다. 내가 저자를 알게 된 시점도 이쯤이다. 그 여자 즉, 시앗을 인정한 이후에 시앗과 남편을 소재로 한, 일기를 어느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했고 일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나도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저 실례지만 시앗이 무슨 뜻이죠?' 라고 시작된 저자와의 만남은 내게도 엄청난 충격과 회오리였기에 올해 초 '시앗'이라는 책을 낸 후에는 독서감상문까지 쓰는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앗'에 관한 이야기를 일지형식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시앗'은 첩(妾)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라는 속담처럼 시앗은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다. 남편의 배신은 결과적으로 같은 여자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자로, 여자로서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기분일 것이다.
‘누구에게 돌을 던지기 위함이 아니고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기에 이 책을 썼다.’ 고. 말하는 이 책의 저자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교양 있고, 부유한 상류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이 자랐다. 1970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소설가 지망생으로 실력도 갖추었지만, 결혼과 함께 자신의 꿈을 접고 성실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삶을 살아왔다.
실화를 실명이 아닌 ‘김서영’이라는 가명으로 이 책을 남편과 시앗 몰래 출판했다. 언젠가는 알게 될까봐서 마음 졸이며 작가로서의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며 얼마 전에는 '시앗2'도 출간하며 자아실현의 길을 열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이 책을 과제로 선택한 이유가 그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저자의 일상사에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읽어내고, 그 아픔으로 얻은 진주와 같은, 보석과 같은 희귀성의 승화된 감정을 자아성숙으로 이끌어내는 모습을 얻고 싶었기에 저자의 활동은 내게도 큰 기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육십의 허허로운 언덕에 서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봅니다.
인생에 대한 아무 기대도 없고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했는가.
좀 더 잘 살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살아온 모든 날들은 누구의 탓도 아닌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에 섰습니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도 있지만 가슴이 있는 인간이기에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합니다. 나는 감히 돌부처에 도전을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아픔의 연속이지만 패자가 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고 있는 시간들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이겨내고 있습니다. 나의 한이 있듯이 그녀에게도 남는 한이 있을 것을 미루어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노력은 아마 이어질 것입니다. 누가 피해자인지 사실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입장에서 본처의 아픔을 주제로 썼습니다.
이제 아무런 기대도 없고 욕심도 없는 나이가 되고, 정년 퇴직한 남편은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들을 주체하지 못해 쩔쩔매고, 시앗이 남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모자라는 것 투성이라는 것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는 저자는 그들의 25년의 역사 앞에서 맥 못추는 30년이라는 것이 처음엔 가슴 아프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다 내 나름대로의 자만에 불과하고,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없다는 이론 앞에서 자신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던 일은 엄밀히 따지자면 진실로 자기 것이란 자기 자신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한다.
남남끼리 만나 한 평생을 서로 믿고 살아가는 부부는 영원한 평행선으로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서로에게 소유물이 아닌 서로가 독립된 개체로서 함께 존중하고 배려함이 바람직한 것이다.
부부의 의미를 다시 다지게 해 준 '시앗'의 독후감을 마무리 지으면서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사람이 알게 모르게 받게 되는 환경의 영향이다. 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있게 밝혀보고 싶었는데 글자수의 제한으로 다루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왜냐하면 저자의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도 역시 첩을 두었으며, 이복 동생이 매우 많은 사람이었고, 시앗의 어머니는 어느 재력가의 첩(시앗)으로 한평생을 살고 있으며 시앗은 첩의 자식이었다. 이런 환경들이 남편과 시앗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죄의식이나 부끄러움도 없게 하진 않았을까? 또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책을 읽고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다.
첫댓글 이 글을 대할때마다 마음이 착찹해져서 댓글을 달질 못 하겠더라구요....우리 조상들의 못 된 습성이 그대로 피를 타고 흘러 내린듯..... 말씀처럼 잘못됨을 인식 못 하고 ....아무튼 뭐라 말 할 수가 없네요.선아님,맛난 점심 잡수셔요...
그죠. 그 분 참 대단해요. 글을 읽으면 위트도 만점이고, 참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인데 이런 아픔을 가졌다는 것이 안타깝죠. 이제 작가로서의 제2의 삶을 빛내실 거에요.
시앗이 상..하로 나뉘어져 있다네요..일단 상권을 사서 다 읽었는데...읽는동안 내내 뭔가가 가슴을 떡하니 막고있는듯한 답답함.....그리고 그분의 현명함이 저를 더욱더 아프게 했습니다. 읽는이들이 지루할까봐 그랬을까요? 그분의 재치와 유머에...가슴이 숙연해집니다. 그분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는 저역시 참 속물이다 싶습니다..그렇지요? 오늘 무지 덥습니다..이런더위 아차하면 건강 잃습니다. 님들 건강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