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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코스모스 / 함 동 진 잠잠해지면 하늘이 높아지고 맑아진다. 파아란 하늘아래 동네 어귀나 도로변에는 가녀린 코스모스 꽃이 한창이다.
나는 코스모스를 보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피렌체의 부호 프란체스코 죠콘다를 위해 그의 부인 엘리자베타를 그린 초상화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린다. 코스모스 꽃의 모습은 강렬하지도 않고 맹숭맹숭하지도 않게 편안함 자체, 곧 미소처럼 안심할 수 있는 차분한 감정을 이르켜 주는 꽃이다.
나의 총각시절에 일하고 있던 전주의 J신문사 옆 S버스운수사에는 언제나 말이 없고 모나리자의 미소만을 간직한 처녀가 일하고 있었다. 업무적인 일 외에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과수원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추석을 지내고 빠알간 사과를 가지고 와 그 처녀에게 큰 것으로 두개 나누어주었더니 목례만 할뿐 여전히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내왔다. 그 미소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 마음까지 사로잡히게 되었다.
나는 추석이 지난지 1개월도 못되어 징집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전주역에서 논산 훈련소로 향하는 군용열차 차창 밖으로 철로 변과 도로변에는 온통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으로 넘실거렸다. 이 꽃 모두가 S사의 처녀모습 같았고, 그녀의 미소를 보는 듯 하였다. 그후부터는 코스모스의 계절이 오면 그 처녀의 아리따움과 모나리자의 미소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 꽃의 개화시기 까지 관찰하게 되었다.
20세기말인 1999년 금년은, 6·25전쟁이 있었던 1950년의 여름기후와 흡사하였다. 봄부터 마른 가뭄이 계속되어 연일 기온이 30℃를 웃돌며 따가운 햇볕은 지상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혹은 이러한 가뭄과 이상고온 현상이 엘리뇨와 라니냐 때문이라 하기도 한다. 최근 「눈과 얼음 연구 세계기상기구 위원회」 는 히말라야 빙하가 40년 내에 완전히 해빙하므로 해수면이 급상승할 것이며, 어쩌면 몰디브제도나 마셜제도 같은 아름다운 산호섬들이 물 속에 잠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견을 내어놓았다.
따른 시비가 엇갈리고 있다. 시중 일간지의 신문들은 7월에 코스모스가 개화한 것은, 아침저녁 가을 같은 신선한 날씨 때문에 개화시기가 두 달 정도 빨라졌다고 보도하였었다. 이에 반하여 경남 함안의 한 고등학교] 농업교사인 Y씨는, 때 이른 코스모스의 개화에 대한 소견을 이렇게 펼치었다. "코스모스는 원래 일조시간이 일정시간 이하가 되면 개화가 촉진되는 단일식물(短日植物)로 우리 나라 만생종 품종은 가을 꽃길을 장식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도로변에 개화한 코스모스는 한계일장(限界日長)이 긴 조생종 품종(베르사유등)으로 봄에 파종하면 우리 나라의 한계일장과 무관하게 6~7월에 개화한다. 결코 기상이변에 의해 개화시기가 앞당겨진 것이 아니므로……"라 하였다.
필자의 경험과 관찰의 결과는 전자들과 다르다. 코스모스의 정상적인 만개시기는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으로 기온이 15℃ 안 밖일 때가 개화적기가 된다. 그러나 이변이 발견되기도 한다. 농업전문 교사인 Y씨의 주장대로 만생종과 조생종이 각각 실존은 하겠으나 6~7월에 개화한 코스모스 꽃이 결코 조생종만은 아니다. 생물에게는 종족보존의 본능이 있다. 이 본능이 식물에 있어서는 더 강렬한 것 같다. 비정상적인 생장환경에서 더 뚜렷이 관찰된다. 때 이른 코스모스 꽃은(다른 식물도 같은 원리로 관찰됨) 땅이 메마르고 황량하여진데 그 원인을 두고 보아야 한다. 강렬한 태양 아래 사질토양으로서 메마른 땅에는 생장에 필요한 습도와 거름기가 없기 마련이다. 이러한 조건으로는 코스모스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조로(早老) 현상으로, 종족보존 본능에 의하여 죽기 전에 때 이른 개화를 하며 결실 하려 하는 결과일 뿐이다.
반대로 음습하고 거름기가 많은 곳에 심어진 코스모스는 늦가을 아니 겨울이 와도 계속 성장하므로 개화를 하는 둥 마는 둥 봉우리 없이 무성한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얼어죽기까지 한다. 까지 자라며 곁가지가 많이 돋고 가는 실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은 흰색, 연분홍색, 진분홍색 등 여러 가지의 빛깔이 있고 겹꽃으로 피는 것 등 변종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살사리꽃'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며 꽃말은 '사랑과 의리'로 되어 있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꽃에 얽힌 신화나 전설이 없다. 다만 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알송달송한 이야기만이 전해져 올뿐이다. 코스모스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910년대로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종자로 들여와 퍼트려졌다고 한다. 유럽에는 18세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화요법(花療法) 으로서 심신이 지친 환자에게 생약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다시 코스모스의 계절이 왔다. 코스모스 꽃이 만개하던 전주-삼례 -익산-논산을 잇는 그 너른 들의 도로에 나서고 싶다. 아직도 그곳에 허리 잘록한 가녀린 처녀가 모나리자의 미소를 짓고 서있지나 않는지? 코스모스 꽃의 아리따운 물결 속으로 그녀의 미소를 건지러 뛰어들고 싶다.
인디아의 아가씨를 닮은 가무잡잡한 피부와 까만 눈동자의 삼단머리 결 처녀, 지금은 뉘 집 아낙으로 모나리자의 웃음 닮은 딸을 낳아 기르고 있을까? 위로 오버랩 되어 온다. 아, 추억앓이로 몸살을 겪는 회억의 계절이여!...끝
코스모스 탄식 / 박향림 코스모스 탄식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박향림 노래
코스모스 피어날제 맺은 인연도
해란강에 비가올제 다정튼님도 해란강에 눈이오니 그만이드라 변함없는 마음이란 말뿐이러나 눈물로 손을잡던 용정 플랫홈.
두만강을 넘어올제 울든사람도 두만강을 건너가니 그만 이드라 눈물없는 청춘이란 말분이러나 한없이 흐득이는 나진행열차
위 가요는1939년 여가수 박형림이 부른 곡명이 '코스모스 탄식"이란 해금가요 입니다. 가사에 나오는 "두만강 다리" ,용정 플렛홈" ,'나진행 열차" ,해란강"은 지금도 원형적인 옛모습을 전부 간직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우리민족의 흔적과 숨결을 느끼며 엿볼 수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연찮게 해금곡 모음의 노래소리를 듣게 됐는데 그 중에서도 코스모스 탄식"이란 곡과 가사가 가슴에 닿습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정서가 담겨 있는 여느 노래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애닲게 합니다 왜정시대에 짓밟히고 빼앗긴 한서린 삶이 애닳은 곡과 가사에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가 전달되는 것 같기도 하며 일제시대나 해방 후에도 만주일대는 우리민족이 사실상 점유하고 살았던 것을 유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軍國主義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로 최후 발악을 하던 일제의 강요를 못 이겨 일분군 전시 동원령에 불을 지피는 "혈서지원"이란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가수 박향림의 처지가 7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매우 안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혈서지원(血書志願)
조명암(趙鳴岩) 작사
노 래 박향림(朴響林) 백년설(白年雪)
참고 남인수는 <강남(江南)의 나팔수>와 <남쪽의 달밤>, <낭자일기(娘子日記)>,<병원선(病院船), <이천오백만 감격(二千五百萬 感激)>, <혈서지원(血書志願)> 등의 친일 군국가요를 불렀다.
박향림은 오빠는 풍각쟁이를 부른 가수입니다, <진두(陳頭)의 남편〉,〈총후(銃後)의 자장가〉등의 군국가요를 불렀다.
백년설은 〈아들의 혈서>〈혈서지원>,〈위문편지〉 ,〈지원병의 어머니〉,〈즐거운 상처〉 등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 가요를 다수 불렀다.
백년설-혈서지원(백년설,남인수,박향림)친일가요.
2012-10-04-작성자 명사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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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