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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떨릴 때 떠나야지 다리 떨릴 때 떠나서는 안된다."
흔히 회자되는 이야기로 너무나 지당한 말씀.
낫살 먹어가면서 제일 편한 모임인 '삼삼회'에서 두 번째 맞은 해외나들이다.
첫 나들이인 중국 베이징에 이어 여행지는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
일정은 3박 5일(2015,12/11(금)10:30~2015,12/15(화)06:40)로 경비는 약 600,000원(선택관광 180불 별도)
베트남의 시간은 한국보다 딱 2시간이 늦게 간다.
그래서 한국시간을 그대로 썼는데,그 바람에 베트남에선 하루가 2시간이나 길어진 느낌이였다.
우리에겐 베트남이라는 국명보다도 월남(越南)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월남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시각에서 붙혀진 이름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남쪽(南)으로 국경을 넘으면(越) 베트남이라는 뜻이 아닐까?
베트남 쌀국수로 처음 현지식을 든 후 이동한 바딘 광장.
바딘 광장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 호치민의 묘 바로 앞에 있는 광장이다.
호치민이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이란다.
호치민 박물관은 금요일이 휴관으로 바로 인근의 베트남 국보 제1호인 일주사(一柱寺)를 관광.
일주사는 1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사원이라는 뜻으로 한기둥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저녁엔 베트남 전통 수상인형극을 관람한 후 숙소인 '리버사이드 하노이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하롱베이로 이동하며 베트남 옌뜨 국립공원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고지에 있는 옌뜨 자이완 사원은 베트남 고승들의 사리탑 500여개가 모셔져 있는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사원이다.
하롱베이에 도착 '뉴스타 하롱호텔'에서 이틀째 숙소를 정하고 근처에 있는 한국가게를 들렀다.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 가사에 "먼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 이라는 노랫말이 있었다.베트남은 배를 타고 갔으니 섬인 줄 알았나 보다.
비행기 타는 과정은 시간이나 절차가 너무 바쁘고 복잡하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해외 나들이로 분주하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 앞의 모니터에 나타나는 베트남 에어라인 예쁜 아가씨의 모습. 영어를 터치 하였다.
(공해를 날면서 카메라의 시간은 오작동을 일으키며 오락가락. 이후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베트남시간은 한국시간보다 딱 두 시간을 빼면 된다.)
내 자리는 날개 위 창가. 비행기가 어떻게 나는지 공학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자리.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를 감지할 수 있었다.
모니터에 나타난 GPS. 현재 우리 비행기 위치는 하노이.
하노이 공항에서 가이더를 만나 공항 식당에서 간편식으로 베트남 쌀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가 4일동안 이용할 45인승 버스가 이동을 한다.
하노이 공항을 벗어나...
베트남의 진풍경인 오토바이가 꽉 찬 시내를 지난다.
알 수 없는 사실 한 가지. 얼마나 국민적 자존심이 강하면 세계 공통언어인 영어를 쓰지않고 베트남 자국어로 관광 안내를 하는지 모르겠다.
알 듯 모를 듯하지만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한 자존심으로 보이나 한편 융통성 결여는 아닌지...
19세기 중반부터 약 100년 동안의 베트남 역사는 외세에 대한 응전이다.
제국주의가 팽창하면서 동남아시아에는 세계의 열강들이 마수를 뻗쳤다.
중국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프랑스와 일본, 미국이 차례로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도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업은 자주권 수호였다.
호찌민(1890~1969)은 일생을 독립 쟁취와 통일을 위해 힘썼다.
그는 1945년 베트남의 주석에 취임하지만, 제네바 협정에 의해 남북이 갈리면서 반쪽짜리 나라의 원수가 됐다.
이후 베트남은 호찌민이 이끌던 세력에 의해 다시 하나가 된다.
미국과의 전쟁은 한국도 참전하게 되어 악연으로 남았을 것 같지만 상처는 얼쭈 치유되어 지금은 서로 사돈의 나라로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있다.
한국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네 차례 파병을 통해 총 32만5000여명의 한국군을 베트남에 보냈다.
이 중 5000여명이 전장에서 전사했고, 1만2000여명의 참전 병사들이 고엽제로 인한 질병 판정을 받았다.
우리는 학창시절 3부두로 나가 파월장병들을 전송하기도 하였으며 군에서는 철수하는 월남 병장들 탓으로 상병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 아저씨’로 불리는 호치민은 하노이에 대규모 기념관과 함께 조성된 이 묘역에 안치돼있다.
호치민의 시신은 방부처리해 전시하고 있고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든다.
죽기 전 호치민은 시신을 화장하여 무덤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으나 국민들은 그를 영원히 볼 수 있도록 방부처리를 원했다.
지난 2013년엔 박근혜 대통령이 호치민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가이더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우리 학생들.
호치민 묘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화이팅 하자네. 에구~ 박자가 안맞아...
방향을 틀어 맞은편 호치민 기념관(월,금요일은 휴무)을 배경으로...
그리고 일주사로 이동.
일주사는 리 타이 똥 황제(재위 1028∼54) 때 지은 것으로 지름 1m50cm 정도의 원통 기둥에 아담한 불당을 얹은 형태다. 젊은 연인들의 인기 기도처란다.
우리의 가이더인 이 반장의 설명을 귀기울여 듣고 있는 친구들.
일주사(一柱寺)는 우리나라 사찰의 일주문처럼 기둥(柱)이 하나(一)라고 부른 이름.
베트남에선 곳곳에서 용을 만난다. 용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신성시된 동물.
우리의 조상이 곰이라는 단군신화가 있다면 베트남의 조상은 용이라고...
아열대 기후인 베트남에서 자주 보이는 나무.
본목에서 가지가 내려와 땅에 뿌리를 박으면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나무에도 부처를 모셔놨다.
사리탑인 듯.
베트남도 한문 문화권.
일주사 계단을 올라 기도하는 사람들.
낫과 망치와 별 그리고 깃발은 공산당을 상징.
수중인형극을 보러 이동을 하는 도중 차창으로 보이는 하노이의 풍경이 이채롭다. 차도를 완전 점거한 채 이동하는 오토바이 퇴근길.
시내 한복판에 LOTTE mart가 보이고,크락션 소음에 귀가 멍멍할 정도지만 나름 질서가 있어 뵌다.
수중인형극이 상연되는 극장으로 입장을 하였다.
우측에 베트남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극이 시작된다.
전통악기 연주가들
무대는 물(수중)이다. 무대장치 뒤에서 장인들이 조종하며 극을 꾸미는데,조명과 오우러져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용이 등장하고...
인형들이 등장하고...
휘나레를 장식하더니...
무대는 썰렁해지고 마감을 서두른다.
수중인형극’(Water Puppet Plays) 안내에...
인사말과 형식(순서)이 소개되어 있다.
준비해간 소주를 생수통에 넣어 불고기 저녁식사에 반주를 겸하였다.
안종철 친구는 삼삼회는 아니지만 동행하여 여행을 함께 하였다. 친구의 가슴에 단 사진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으로 여행을 함께 한다는 의미.
아마도 생전에 여행을 못시켜 드린 데 대한 미안함이였을 것.
그리고 2인 1실의 호텔로 입실. 나의 룸메이트는 정창수 친구.
한방에 모였다.
펱소주와 팩소주를 내놓고 콩파리새파리 여행의 첫날밤이 깊어간다.
다음날 아침
호텔 부페식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이며 아침을 들었고,밥맛이 좋아 아침부터 포식한 우리들은 완전 베트남 체질.
식사를 끝낸 우리들은 여장을 챙겨서 호텔 밖으로 나왔다.
한국시간으로 10시이지만 베트남 시간으로 8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아직 하롱베이 출발시간이 많이 남았다.
호텔 앞으로 흐르는 강은 일견 깨끗해 보이지만 예전의 온천천쯤으로 오수가 뒤섞인 모습이다.
호텔 뒤편에 사찰이 있다는 정보를 조회장이 듣고와서 찾아 나섰지만 이건 사찰이 아니었다.
69/5 맨션이라면 고급 아파트인가?
호텔로 돌아오니 호텔 앞에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하롱베이까지 약 4시간을 걸쳐 버스를 이용 이동을 하여야 한다.(거리는 그리 멀지 않으나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베트남의 현실)
버스가 출발하자 차창으로 보이는 장면. 퍼뜩 카메라를 집어들고 셔터를 눌렀지만 에고~
추측컨데 이 장면은 장례식으로 보인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지팡이를 든 모습이 상주의 모습. 그리고 노란 화환과 붉은 기엔 부처가 새겨져 있다.
우리의 장례문화와 별반 차이가 없어 뵌다.
하롱베이로 이동 중 문묘(文廟, Van Mieu)를 들린다.
문묘앞의 하마비(下馬碑)는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이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서 들어가라는 말.
문묘는 공자를 기리는 사당이자 베트남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다.
리 왕조의 3대 임금인 리탄똥이 1070년 건설을 명했고, 후대 왕인 리년똥이 1076년 꾸옥뚜잠(우리의 국자감에 해당)을 지었다.
우리나라의 국자감은 동량지재를 기르기 위해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국립대학인데, 꾸옥뚜잠의 성격 또한 동일하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만 한문 문화권 국가인 줄 알았는데, 베트남도 한문 문화권이였다.
문묘에서는 1442년부터 약 330년 동안 젊은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과거도 치러졌고 여러모로 고려, 조선과 체제가 비슷했다.
문묘와 성채는 구조가 닮은꼴로...
앞쪽에 정원이 있고, 전각은 뒤쪽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
가이더인 이 반장의 안내.
용머리에 얹혀있는 용과 잉어와 그 가운데 뱀과 항아리
왕은 중앙의 큰 문으로 출입을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양 옆에 있는 덕성(德成)문으로 들가야 한다고...
거리의 건물에서는 프랑스의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문묘로 가면 중국 어디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한자를 사용하는 베트남 문화가 중국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문묘는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인공호수를 둘러싼 양쪽 건물에 늘어서 있는 건물엔 비석이 줄을 잇고 있다.
마침 이날엔 베트남 어느 대학교의 졸업식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었고,베트남 아가씨들의 아오자이속에 드러나는 날씬한 허리가 유독 시선을 끈다.
정사각형의 호수 주위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인공호수 양 옆에 도열해 있는 거북이 등의 비석에는 많이 마모된 각자들이 새겨져 있는19세기 원조(沅朝)시대에 만든 규문각이다.
82개의 비석이 모두 다른 얼굴을 한 거북위에 세워져 있고 300년동안(15~18세기) 2년에 한 번씩 행한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름이란다.
각자들은 한자로 새겨졌는데 후대 사람들은 거북이 머리나 그 이름을 만지면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기원한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자를 모셔놓은 사당이 있는데 향을 피우는 것이나 건축양식 등이 중국을 닮아 있다.
'차서공도금천하,과갑련제고학궁'이란 주련이 쓰여져 있지만 과거시험과 관련된 것으로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다.
인공호수를 지나...
2층 루가 있는 중앙의 문과 양 옆에 있는 작은 문은 출입 신분이 다르다.
졸업사진 찍기에 분주한 베트남의 젊은이들.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공자를 모셔놓은 사당이 보인다.
사당의 용마루에는 역시 쌍용이 마주보고 있고...
건축양식 등이 흡사 중국을 닮아 있다.
학 조형물 뒤로 덕참천지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덕참천지(德參天地)란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그 덕이 천지와 비등하다라는 뜻.
편액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문묘의 중심 건물인 디엔다이탄에 다다른다.
안에는 공자와 맹자의 위패가 봉안돼 있고...
성인들의 모습이 모셔져 있다.
사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지문형이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담배를 피우러 어딘가 있을 것
베트남의 특이한 분재 아래에 베트남의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구수회의가 열렸다. 모두 가방이나 호주머니를 뒤적이는 걸 보아 돈을 끄집어 내는 모양. ㅋ
이곳엔 베트남 청소년들의 축제 행사장인 듯.
무대 옆으로 돌아가 여학생들의 전통 의상을 살펴본다.
밖으로 나와 문묘문을 돌아 찍었다.
그리고는 목적지인 하롱베이로 이동을 하며 홍강(紅江, Song Hong)을 건넌다.
하노이는 베트남 북부를 가로지르는 홍강을 낀 삼각주 델타 지대의 안에 자리잡은 도시.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이동 중 <동영상>
차창으로 보이는 아열대성 식물들.
점심식사를 하러 한식집인 맛집에 들어왔다.
셋팅이 완료된 식당에서...
메인 메뉴는 보쌈으로 마늘 고추 새우젖갈에다 상추,그리고 두부찌짐에다 된장국으로 이만하면 성찬이다.
다시 이동하면서 우리나라의 농촌과 흡사한 전원풍경을 바라본다. 수로가 있는 농로를 따라 소떼를 몰고가는 풍경이 무척 평화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특이한 풍경. 베트남에도 사람이 죽고 장례를 지내며 묘지를 조성한다. 2층 사리탑인 듯 보이는 건 아마도 묘지인 듯.
살짝 당긴 모습은 공동묘지인 듯. 산이 없는 지역이니 이렇게라도 묘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
하롱베이 이동 중에 다시 옌트국립공원(Yen Tu National Park)을 들린다. 안내판을 살피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고...
숲이 우거진 포장길을 따라...
10여분 걸어 들어가면 케이블카 탑승장이 나온다.
원통형으로 생긴 케이블카는 4명이 정원으로 분주히 여행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술진이 케이블카의 안전도를 검사하였다는데...
케이블카에서 내려 습도 높은 계단을 오르면...
좌우에 도열한 사리탑을 볼 수 있다. 사리탑은 우리나라와 비슷해 보이지만 많이 다른 느낌.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한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거쳐왔다.
중국과의 접경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아왔고 근현대사에 있어서 외세의 침략과 독립운동 이후 남북전쟁 등 굉장히 유사한 점이점이 많다.
종교에 있어서도 불교신자가 80% 이상을 차지하며 비슷한 문화색채를 나타내고 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베트남의 불교는 소승불교가 아닌 대승불교.
이는 오랜 세월 중국의 지배 하에서 받은 영향으로 이러한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비슷한 양식이 나타난다.
고지에 위치한 옌뜨국립공원의 사리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위시하여 고승들의 500여개의 사리탑이 도열해 있다.
세 명의 왕이 부처가 되어 산을 지킨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10여개의 사찰이 있으며 '뾰족탑의 산'으로도 불린다.
진신사리탑이다.
진신사리탑엔 각종화환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와 생수가 탑을 쌓듯 차곡차곡 진열되어 있었다. 이는 높은 곳까지 운반하여 시주한 것으로 보인다.
계단 좌측으로 보이는 고목과 지주석.
수령 700년 이란 말인 듯.
한옥의 처마끝 모습이 날아갈 듯 곡선미가 도드라져 보인다면 베트남의 건축은 그 곡선이 지나쳐 어쩐지 날카로워 보인다.
자이완 사원 앞의 해태상도 우리네와 많이 닮은 모습.
100년 동안 불교를 믿었다 해도 옌뜨산 정상에 올라보지 않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베트남 북부의 명승지이자 불교 성지다.
편액과 주련이 걸린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려다 포기를 하고 만다.
그리고 한 바퀴 돌아 내려와 이 반장이 사주는 사탕수수 쥬스를 맛본다. 마치 설탕물을 마시는 듯 달콤하다.
흡사 옥수수 대를 닮은 사탕수수
다시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식
땅에서 하늘을 찌른다(파극천 巴戟天)는 노니나무 뿌리술 한 병에 40 달러
뉴 스타 하롱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호텔 인근으로 마실을 나왔다...
한국식품을 파는 K market에 들렀다. 소주를 사기 위함이다.
길 잃을라, ㅋㅋ 바삐 호텔로 들어가 ...
한국서 가져온 팩소주에다 베트남 맥주(1불로 저렴하다)를 섞어 소맥으로 양을 불려 느긋한 저녁시간을 갖는다.
즐거운 우리들의 여행을 위하여~♬
한국시간으론 벌써 자정을 훌쩍 넘겨 날이 바꼈다.
몇 년간을 금주에 철저하던 영준씨가 금주령이 해제되자 여흥(旅興)을 틈타 다시 즐기기 시작하였다. 반가버~~
이제 내일의 일정을 위하여 잠자리에 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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