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상업적이면 안 되나… 돈 벌어야 프로
내 작품이 예쁘기만 하고 예술성은 없다고?
"작가는 한정된 갤러리 벗어나 대중에게 다양하게 다가서야"
"일반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고액연봉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화가나 예술가들이 그러면 '상업적'이라고 비난하는 거죠?"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빌딩 '빌라 육심원'.
지하 1층은 갤러리, 지상 1~2층은 아트상품 매장, 3층은 사무실, 4층은 아틀리에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의 소유주 화가 육심원(37)은 "작가는 갤러리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다양한 통로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야 한다"고 말했다.
- ▲ 육심원에게 물었다.“ 화가인가, 아트상품 디자이너인가?”육심원은“나는 화가다. 그림이 좋아야 좋은 아트상품도 나온다. 아트상품은 내 그림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라 답했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육심원의 2008년작‘장난꾸러기 초록’, 2007년작‘오드리’, 육심원의 작품을 이용한 아트상품.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육심원 제공
선화예고·이화여대 동양화과 출신의 육심원은 새침한 표정의 소녀를 그린 작품을 캐릭터화한 아트상품으로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인물. 대학 시절부터 장지에 분채로 예쁘장한 여성들을 즐겨 그려왔던 육심원은 2002년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작품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며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그의 작품은 한 갤러리를 통해 아트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2005년 처음 출시한 '육심원 다이어리'가 현재까지 100만권 넘게 팔린 히트 상품이 됐고 작품이 기업 CF 등에 이용되며 '아트상품업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2007년 자신을 발굴한 갤러리 대표와 결혼한 육심원은 2008년 11월 '주식회사 육심원 디자인'을 세워 대표를 맡았고 2009년엔 서울 강남 한복판에 4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현재 연 매출 약 30억원, 온라인숍은 물론이고 서울 인사동과 강남 신사동에 로드숍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용인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등에도 매장이 입점해 있다. 다이어리와 노트에서 시작한 아트상품은 지갑 담요 쿠션 전등갓 등 500여종가량으로 다종다양해졌고 지난해 여름엔 핸드백을, 올봄엔 구두까지 출시했다. 올가을부터는 프랑스·이탈리아 해외 박람회에도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수많은 미대생이 '제2의 육심원'을 꿈꾸지만 육심원의 이러한 성공을 놓고 미술계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전통적인 '작가상'을 깨뜨리고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했다." 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편에서는 "미대생들이 육심원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기초부터 닦을 생각은 않고 무조건 캐릭터만 만들려고 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작품이 예쁘기만 하지 예술성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육심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느냐'보다는 '어떻게 해서 돈을 벌 것이냐'를 물어본다. 나 역시 그랬다. '언제까지 어머니에게서 돈을 타 써야 하나'가 항상 고민이었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버는 것이 진정한 '프로'인데 학교에서는 '프로'가 되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다. "제겐 두 개의 정체성이 있어요. 원화(原畵)를 그릴 때는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철저히 지킵니다. 잘 팔리는 작품만 그리진 않아요. 원화에서 파생된 이미지인 아트상품을 팔 때는 장사꾼으로서의 '나'가 나와요. 그때는 철저히 상업적이어야 하는 거죠. 화가도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