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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토론회) 주요 내용을 요약 했습니다.
발제자 정진각 선생은 "500년간 중국에 의지하며 지내온 조선왕조가 중국사신을 맞이하며 비굴한 자세를 취했던 영은문을 헐고 민족의 자존심을 우뚝세우기위해 세운 것이 독립문이다. 학생시절 무악재를 넘어 서울 시내로 들어오며 길 한가운데 우뚝서있던 독립문을 보며 민족의 자존심을 키워왔다. 그러나 유신독재 시절 고가도로를 건설한다며 독립문을 그 옆으로 옮겨 우리민족의 자주성을 훼손했다. 독립문은 건축물로서의 의미보다 중국사신들이 들어오면 그들을 맞이하는 사대의 예를 다하던 바로 그자리의 상징물을 없애고 세웠다는 상징으로 그 위치에 의미가 있는곳이다.
마찬가지로 안산의 비석거리도 비석의 문화재적 가치때문이 아니라 안산 3.1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위치적 의미가 크다. 따라서 이것을 옮긴다면 비석의 의미는 사라진다."라는 취지로 수암동의 일제 강점기 역사에 관한 발언을 하였다. 토론자 신대광 선생님도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발언을 했고 참석한 몇분들의 의견을 말하였다.
마지막 이전을 요구한 주민 한분의 발언이 의미심장했다. 수암동에 오래 거주하며 개발과정을 다 지켜본 분이었다. "나도 일제시대 태어나 일본놈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 의미 있는 장소를 지금까지 왜 홀대했느냐? 나도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개발하면서 저쪽땅은 @@@에게 팔고 뒷쪽은 ###에게 팔고 @@@이 땅주인이 되면서 비석을 파가라 하니 파출소 뒤로........" 생생한 증언을 하였다. "안산시에서 좋은 땅은 이미 다 팔아먹고 짜투리땅으로 팔리지 않는 구석떼기 땅에 옮겨놓은 곳은 말이 안된다. 안산 3.1운동의 성지이니 원래 시에서 민간에게 팔았던 땅을 다시 사서라도 그자리에 세워놓는 것이 더 좋지않겠냐?"의 취지였다. 참석한 안산동장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일은 안산시가 어찌 해결을 할 것인지?... |
첫댓글 http://2url.kr/agYQ 한빛방송 보도내용입니다
당국이여, 대답하라! 응답하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시민은 용납할 수가 없다. 제자리를 보존하는 해법을 내 놓기 바란다. 조속한 답변을 촉구하며
3월14일 공청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지?
미리 알았으면 한번 토론회장을 지켜볼 것을 아쉽습니다. 내 보기에 비석거리 비석은 3`1독립운동과는 무관한 공덕비로 그 곳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안산의 삼일운동은 바로 그 비석거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비석거리 못미쳐 있는 도살장터에서 각마을에서 모여든 인원을 정리하고 비석거리에서 독립선언및 만세삼창을 하고 수암 주재소로 향해 갔습니다. 즉 비석거리는 안산 삼일운동의 성지입니다
안산지역 3.1독립만세운동은 바로 공덕비군 앞에서 주민 2,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운동을 펼쳤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현재 공덕비군을 비롯한 그 주변은 안산 3.1독립운동의 성지 입니다. 공덕비는 불과 3년 전까지 수암파출소 공중화장실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던것을 현위치로 옮겨 놓았습니다. 현위치는 다행히도 최초의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시유지여서 적당한 장소로 선택 되었습니다. 그런데 옮겨만 놓고 아무런 안내표시도 없고 오물과 쓰레기 등으로 환경상태가 지극히 불량해서 그지역 주민들의 민원에 의하여 또 다른곳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접하고 관계당국에 어필하여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우 반갑습니
수리산도립공원과 연계된주차난도 그렇고 ,대중교통문제도 그렇고, 장상동에 추진중이라는 수암체육공원조성도 그렇고, 수암봉을 뚫고나가는 수원광명간고속도로, 신안산선 수암역사 배제, 안산천 원류 방치.. 안산시는 수암동에 많은 것 들을 빚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암동 주민을 위한 진정한 배려는 보이지 않네요. 송덕비도 해설과 더불어 제자리에 있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장상천도 개복해서 자전거 길로 만들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복원하여 ,아름답게 가꾸며, 안산천 걷기에 동참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송덕비, 관아터, 수암봉, 안산천은 수암동의 소중한 재산 입니다. 애쓰시는 분들을 응원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