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내 책을 누가 사 갔을까?”
― 방송 출연 후 달라진 흥미로운 현상
◆ ‘무인점포 헌책방’에 꽂혀 있던 나의 수필집도 사라졌네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공중파 방송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지난 5월 12일 KBS1TV ‘6시 내 고향’에 출연한 후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를 실감했다.
▲ 필자가 출연한 KBS1 ‘6시 내 고향’ TV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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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일이었다. 그날 네이버 블로그 방문자 수가 급증했다. 《윤승원의 청촌수필》 블로그 하루 평균 100여 명 안팎이던 방문자 수가 방송 직후 실시간 1,600명이 넘었다.
▲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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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원로 문인의 뜻하지 않은 전화도 받았다. “TV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니 반가웠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 제목대로 『추억 복원』을 소재로 한 또 한 편의 수필이 써지겠네요.” 흥미로운 기대감과 격려 말씀을 주셨다.
다정했던 고향 친구의 카톡 문자도 반갑고 소중했다.
“방송 잘 보았네. 여전히 건강한 모습, 정장 차림도 보기 좋았네. 의미가 담긴 방송 비디오테이프 제작진에서 복원해 주니 정말 기뻤으리라 생각되네. 그리고 손자 사랑도 빼놓지 않았네. 손자의 느낌과 생각까지도 놓치지 않고 돌보고 있는 나와 똑같은 할아버지 모습 그대로였네. 암튼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 얼굴 TV를 통해 보면서 옛 추억을 공감하는 고마운 시간 가졌네.”
이뿐이 아니었다. 가장 기분 좋은 말은 팔순 여류 수필가의 말씀이었다.
“윤 선생님, TV 화면발 잘 받으시네요.”
‘화면발 잘 받는다’라는 표현만큼 출연자를 즐겁고 기쁘게 하는 말씀이 어디 있는가.
물론 농담 섞인 칭찬이지만, 모처럼 푸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여류 문사의 따뜻하면서도 소탈한 시청 소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무인점포 중고서적’. 이곳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 대전의 한 ‘무인점포 중고서적’에서(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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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 서가에 꽂혀 있던 나의 색 바랜 수필집이 보이지 않았다.
헌책방에 가끔 들러 눈여겨보았던 ‘나의 책’이 며칠 사이 사라진 것은 저자로서 매우 흥미롭고 신기한 일이다.
‘노란색 표지’여서 유독 눈에 잘 띄는 책. 하지만 누가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나의 오래된 중고 책.
▲ 필자의 수필집 표지(2002) -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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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들르는 책방이지만 그 책이 사라진 공간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시중에서는 이미 구해 보기 힘든 책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전국 국공립 도서관 또는 대학 도서관에서 ‘열람’이 가능한 책.
좀 더 책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화제의 책’을 소개한 언론사 기사가 고구마 줄기처럼 한눈에 엮여 들어온다.
잠깐, 책 출간 당시 언론의 관심이 어땠는지 일간지 기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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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02.11.14. 23면
■ “고맙다. 아들아, 고마워요. 아버지” 경찰관 윤승원 씨 수필집 ‘부자유친’ 펴내
대전북부경찰서에 근무하는 윤승원(尹昇遠) 씨가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얘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 수필집 제목은 ‘부자유친(父子有親·제3의 문학)’으로 ‘고맙다, 아들아! 고마워요, 아버지!’란 부제가 붙어 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또 경찰로서 두 아들과 글로 나눴던 따뜻한 가족사랑 얘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대학의 문학동아리에서 문집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큰아들 준섭(峻燮·21) 씨가 신세대 취향으로 편집을 했고, 미대 지망생으로 고3인 둘째 아들 종운(鍾運·19) 군이 삽화를 중간중간에 그려 넣었다.
종운 군은 책이 나오기 전에도 아버지가 글을 쓰면 삽화를 그려서 인터넷에 올려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292쪽의 이 책자에는 월드컵 경비근무 중 아들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경기내용을 주고받던 일, 큰아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 놀라 글로 금연을 호소한 일, 인터넷을 통해 동료 경찰관의 ‘칭찬 릴레이’를 이어간 사연 등이 솔직담백하게 담겨 있다.
윤 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수필 사이트에 올려진 네티즌의 소감과 자신에 대한 신문기사까지 덧붙여 놓았다.
윤 씨는 충남경찰청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1990년 ‘한국문학’을 통해 등단해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우리동네 교장선생님’ 등 산문집을 펴낸 수필가이기도 하다.
그는 “아들들이 1차 독자로 내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참여했다.”라고 하면서 “자식들과 함께 책을 꾸미고 만들다 보니 지금까지 발간한 어떤 책보다도 애정이 간다.”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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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출연했을 때도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간략하게 내용만 언급했을 뿐 화면에는 책 표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방송에 출연하여 책을 홍보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 필자가 출연한 KBS1 ‘6시 내 고향’ TV 화면 –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 해당 지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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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시청자들은 출연자가 펴낸 책에 관심을 주었다. 무인점포 중고서적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단돈 2천 원 책값을 통 속에 넣고 가져간 것이다.
발행 당시 책값 8,000원짜리가 인터넷 중고서점에서는 7,000원, 무인점포 헌책방에선 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의 저자로서 출간한 지 24년이 지난 오늘, 굳이 많은 독자를 만나길 바라진 않는다. 단 한 명의 독자를 만나더라도 그지없이 반갑고 고맙다.
그렇다면 내 책을 과연 누가 사 갔을까?
‘父子有親’ 제목의 책이니 자녀를 둔 아버지일까? 존경하는 아버지를 둔 자녀일까?
‘오륜(五倫)’을 공부하는 학생일까? ‘맹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서원의 학동일까?
《父子有親》,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道)는 친애(親愛)에 있다.’라는 말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사회는 그런 온화하고 반듯한 인품의 국민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자는 흐뭇하다.
책의 가치와 의미를 따지기 전에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
2026. 5월
윤승원, ‘무인점포 중고서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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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이번 작품은 단순한 ‘방송 출연 후기’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KBS 방송 출연 이후 벌어진 작은 변화들을 기록한 생활 수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권의 책이 세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문학적 기록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세 가지 층위가 절묘하게 겹쳐져 있습니다.
방송 이후 벌어진 현실적 변화
저자 자신의 감정 변화
오래된 책 한 권이 다시 독자를 만나는 문학적 기적
이 세 요소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과 미소를 함께 안겨줍니다.
우선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과장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방송 출연 이후 방문자 수 폭증, 지인들의 연락, 원로 문인의 전화, 친구의 따뜻한 카톡, 여류 문인의 유쾌한 칭찬 등을 소개하면서도 결코 들뜬 자기 자랑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반응을 “고맙고 신기한 일” 정도로 받아들이는 담담함이 작품 전체를 품위 있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이런 대목입니다.
“그 책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 한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드디어 내 책이 팔렸다”는 성취감이나 흥분을 앞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웃음’으로 표현합니다. 그것도 조용한 웃음입니다.
여기에는 허세가 없습니다. 대신 오래된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손으로 옮겨졌다는 사실 자체를 신기해하는 순수한 문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바로 ‘무인점포 헌책방’입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징적 장소입니다.
잊힌 책들이 머무는 공간.
누군가의 젊은 날과 추억이 먼지처럼 쌓이는 공간.
값으로는 겨우 2천 원이지만, 시간의 무게로는 헤아릴 수 없는 기억들이 놓여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작가의 책이 사라집니다. 이 장면은 마치 소설의 한 장면 같습니다.
특히 노란 표지의 책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눈에 잘 띄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던 책”이라는 설정은 마치 오래된 배우가 다시 무대 조명을 받는 순간처럼 묘한 애틋함을 만듭니다.
그리고 여기서 방송의 의미가 단순한 ‘홍보 효과’를 넘어섭니다.
작가는 분명히 말합니다.
“방송에 출연하여 책을 홍보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방송 속 인물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결국 헌책방에서 그의 책을 찾아 구입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신기한 생명력입니다. 광고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전달된 것입니다.
화려한 마케팅이 아니라 살아온 삶의 온기가 독자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핵심 감동은 “책이 팔렸다”가 아니라 “사람이 전달되었다”에 있습니다.
또 하나 깊이 있는 부분은, 작가가 책의 가격 변화를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출간 당시 8,000원.
인터넷 중고서점 7,000원.
무인점포 헌책방 2,000원.
보통 저자라면 씁쓸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윤승원 수필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단 한 명의 독자를 만나더라도 그지없이 반갑고 고맙다.”
이 문장은 이번 작품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을 ‘판매량’으로 보지 않고 ‘만남’으로 바라보는 태도.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은 깊은 품격을 획득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상상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자녀를 둔 아버지일까?”
“존경하는 아버지를 둔 자녀일까?”
“맹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학동일까?”
이 대목에서 작품은 현실에서 다시 문학으로 건너갑니다.
실제 구매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독자를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상상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윤승원 수필 특유의 인간 신뢰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사람의 선의를 믿는 태도. 바로 그 따뜻한 시선이 작품 전체를 환하게 밝힙니다.
또한, 이번 작품은 ‘시간의 순환 구조’도 매우 뛰어납니다.
2002년 월드컵 시절
경찰관과 아버지였던 시간
두 아들과 함께 만든 책
24년 후 방송 출연
다시 누군가에게 발견된 책
이 흐름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삶은 사라지지 않고 축적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아들이 편집하고 삽화를 그렸다는 대목은 단순한 가족 미담이 아닙니다. 책 자체가 이미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실천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아, 저 책은 단순한 수필집이 아니라 한 가족의 시간 자체였구나.”
그리고 바로 그 시간이 24년 뒤 방송이라는 계기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이번 작품은 결국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람은 늙어도
진심은 낡지 않는다는 것.
책은 오래되어도
따뜻한 마음은 다시 발견된다는 것.
그리고 문학은 결국 누군가의 가슴에 조용히 닿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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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前略==발행 당시 책값 8,000원짜리가 인터넷 중고서점에서는 7,000원, 무인점포 헌책방에선 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필자는 이 책의 저자로서 출간한 지 24년이 지난 오늘, 굳이 많은 독자를 만나길 바라진 않는다. 단 한 명의 독자를 만나더라도 그지없이 반갑고 고맙다.
그렇다면 내 책을 과연 누가 사 갔을까?
‘父子有親’ 제목의 책이니 자녀를 둔 아버지일까? 존경하는 아버지를 둔 자녀일까?
‘오륜(五倫)’을 공부하는 학생일까? ‘맹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서원의 학동일까?
《父子有親》,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道)는 친애(親愛)에 있다.’라는 말에 무게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사회는 그런 온화하고 반듯한 인품의 국민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자는 흐뭇하다. ==後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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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신문 편집국장님
경찰문인회 주유정 시인
역사학자 정구복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