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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어쩌다 단풍여행'입니다.
서해 고군산도의 무녀도로 1박2일 바다낚시를 떠났다가 예상치못한 악천후를 만났습니다.
풍랑주의보가 내린 서해는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 거친 소리를 토해내며 거세게 출렁거렸습니다.
가을에도 굵은 장대비는 내릴 수 있지만 포구를 집어삼킬듯한 해일엔 기겁했습니다.
무녀도에 살던 주민들도 흔히 보기힘든 광경이라고 합니다.
먹구름이 짙은 바닷가엔 벌써 겨울이 온 것처럼 찬 바람이 옷속을 파고 들었습니다.
바다낚시를 포기했는데 무녀도에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소라죽과 미역국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뒤 여행스케줄을 조정했습니다.
무녀도에서 50분만 가면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있는 부안 내소사 단풍을 볼 수 있습니다.
백제 무왕때 창건한 내소사는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600m의 전나무 숲길과 조선 인조 때 건립된 고풍스러운 대웅전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천왕문 주변의 화려한 단풍입니다.
무녀도의 악천후에 예민해진 탓에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가 부안날씨를 클릭하자 온 종일 비소식이더군요.
한숨이 나왔습니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부안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젖어 바닥에 떨어진 푹신한 단풍잎을 걸어보는 것도 만추를 만끽하는 일입니다.
기상청 예보는 또 허발질 했습니다. 올들어 수차례 비숫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소사에 들어서나 하늘이 쾌청한 것은 아니지만 비는 커 녕 먹구름 한조각 볼수 없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데 마음도 환해지는 기분입니다. 기상청의 오보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전날 강한 비바람에도 단풍은 굿굿하게 제 빛깔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찰 경내에는 단풍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바지런한 스님이 가꾼듯 꽃잎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노란색과 분흥색, 보라색 국화꽃 화분이 단정하게 자리잡아 사찰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했습니다. 덕분에 삼층석탑은 곱게 늙은 중년여인처럼 기품이 엿보였습니다.
주중인데도 수백년 세월에 빛이 바랜 단청과 오묘한 문창살이 운치를 더한 대웅보전엔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내소사 연못주변은 단풍잎들이 붉은색 융단처럼 떨어져 깊어가는 가을 풍경이 유난히 돋보이더군요.
물레방아가 있는 연못안은 '수련'으로 잘 알려진 클로드 모네의 화폭을 연상케할만큼 매혹적입니다.
먼 길을 달려와 내소사를 둘러보고 연못 주변을 산책하며 즐거워하고 있는 탐방객들에겐 늦가을의 뜻깊은 선물이 될터입니다.
내소사 주차장옆 하천의 단풍과 항아리도 조화롭게 어울렸습니다.
당초 친구들에게 '물반 고기반'이라고 무녀도 여행을 부추겼지만 우럭과 놀래미는 결국 구경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행의 묘미는 반전입니다.
모처럼 만추의 여행은 고군산도의 춥고 사납고 거친 날씨 때문에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우리네 인생처럼 마음만 바꾸면 새로운 풍경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단풍은 끝물이라지만 내소사 단풍은 아직 아닙니다.
단풍이 깔린 길을 걸으면서 단풍을 감상하는 곳. 아직 내소사는 온통 화려한 단풍과 국화가 점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