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미항美港 밴쿠버 공항에 내리는 순간, 먼저 원주민의 수 공예품이 이방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내를 들어 오는 길목 맑은 공기와 푸른 들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끝없는 거리를 달리노라면, 이 광대한 캐나다는 과연 어떤 문화를 가졌으며 이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지울 수가 없다.
북미에서 조지아 오키프와 나란히 칭해지는 여류화가의 얼굴을 찾아서 밴쿠버 아트갤러리에 들였다. 다운타운 중심지 랍슨 거리(명동과 같은)에 위치한, 미술관 4층 에밀리카(Emily Carr) 전용 상설전시관에는 그녀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일대기가 테레비전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유년시절부터 동물을 그리거나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상상력 ㅡ 사물을 관찰하는 예사롭지 않는 그녀의 눈빛을 따라 나는 빠져 들고 있었다. BC주의 수도 빅토리아에서 자랄 때부터 여성스러운 또래의 친구들과는 달리, 10대 후반 샌프란시스코에서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집을 떠남으로 가족의 완고한 권위에서 탈피한다. 그녀는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남자여야 하는 삶을 살았다. 청년시절, 젊은 여성으로서 결혼대신 예술의 길을 선택함으로 인습에 반항한다. 사랑을 언약한 연인을 뒤로하고, 영국과 프랑스로 미술 선생을 찾아서 고향 빅토리아를 떠난다.
Emily Carr 는 BC주 연안 인적이 드문 원주민 마을에서 야생의 여인 D’sonogua를 만난다. 그녀는 이 신화적인 존재에 영향을 받고. 사라지는 문화유산 인디언 마을과 토탬폴(Totem Pole)을 캠버스에 그림으로 옮겨 보존해야 하는 임무를 느낀다. 토탬폴에 담긴 혼을 찾아 단지 스케치북과 개를 동행 삼아 북서쪽 BC주로 여러 번 여행을 한다. 그곳에 데려다 줄 수 있는 것이라면, 화물선, 낚시배, 카누(canoe) 무엇이든 얻어 탄다. 1899년 초기의 그림 소재들은 인디언 문화를 중심으로 한 토템 폴. 불행하게도 여러 해 동안 그녀의 예술은 인정 받지 못한다. 생활을 위해 하숙집을 경영하며 제작을 단념한 시기도 있지만. 1927년, 오타와에서 열린<캐나다 서해안 인디언 예술 전>에 초대된다. 당시 동부지역 유명한 화가 집단이던 ‘일곱 명의 예술가 모임(The Group of Seven)’의 해후는 그를 분발시킨다. 특히 로렌 헤리스를 만난 것은 행운으로, ‘당신은 우리들의 동료요’ 라는 말에 용기와 힘을 얻는다. 그로부터 그녀의 작품은 왕성하게 생산적인 글과 그림을 선보임으로, 길고 긴 고립의 터널에서 벗어난다. 56세의 나이로 그녀가 사랑하는 자연의 숲에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영적인 면을 탐구해 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대부분 서부연안 지역을 배경으로 독자적인 시각에서ㅡ 울창한 숲과 하늘, 나무의 생명력을 담은 그의 그림에서는 불타는 불굴의 혼이 전해진다.
1928년 후기의 그림은 현재 우리의 주변과 거의 차이가 없다. 푸른 숲은 인간의 안식처로서 사람에게 새로운 힘을 재충전시키는 에너지원. 나무라는 존재는 인간과 동일한 의식으로 자화상이기도 했으리라. 처음 그린 나무의 모습들은 큰 상록수(Cedar)나 소나무(Pine Tree)로 장엄하게 보인다. 진한 갈색과 청색, 녹색과 약간의 검정색조로. 거룩한 성소에서 신의 위엄 앞에 압도되는 듯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전의 변형된 형태인 나무로 조각한 토탬폴과 같은 의미다. 인디언은 다듬어진 나무를 바다를 향하여 그들의 집 양 가장자리에 세운다. 이는 당시 바다에서 생업을 하는 연안인디언의 간절한 바람ㅡ 보호와 안전, 풍요를 나타내는 원형이요. 재료인 나무는 인간과 같다고 믿었을까.
어느 날 생명의 상징인 나무가 쓰러진다. 인간의 문명이 침범해 올수록 그들이 휘두르는 도끼와 톱에 무참히 찍힌다. 에밀리는 ‘참으로 끔찍한 장면이다’고 아파한다. ‘마지막 신음 소리, 가슴에서 터지는 울음이 들여 올수록 도시는 넓어지고 숲은 공허하다’ 고 기록한다. 거목들의 모습은 더 이상 그녀에게 소망이 되질 못한다. 그루터기만 남은 고목들, 주변에 흩어진 가지들. 나무에 대한 인식은 경외감에서 모멸로 이어진다.
1935년 그녀의 대표작 ‘Scorned as timber, beloved of the sky’그릴 무렵, 그녀의 나이 60대 중반이다. 언젠가는 정지될 육신을 본 그의 작품은 정신적인 면모, 단면을 제공한다. 생명이 쓰러진 벌목 지에 새싹이 돋아난다. 사이사이 오뚝, 두 세 어린 나무가 하늘을 향해 솟고 있다. 재생이며 부활이다. 오! 환희의 탄성. 나무 주변에는 빛이 환하게 빛난다. 흰색과 하늘색의 붓 놀림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멀리 있는 작은 산마저 청색으로 나타난다. 자연과 인생, 창조주의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나님이 주관하는 대자연 속에서 생명의 고동소리를 영감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황홀한 광휘, 물결 같은 구름과 빛이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나무와 숲뿐만 아니라 바다와 바위, 절벽에 이르기까지 창조주의 숨소리가 스며 있음을 깨닫는다.
"모두가 나무처럼 좋은 것들,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 계시는데 말이야. 내가 너무 편협 했든 것은 아닐까” 숲과 더불어 움직이는 하늘과 작은 나무들이 밝은 금색과 노랑, 연녹색이 화면에 등장한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장엄한 이미지는 ‘아름다운(Beautiful BC)캐나다의 그 자체이다. 자연을 생명처럼 사랑했던 그녀의 작품에는 창조주와 대화하는 고백이 배여 있다. ‘인디언의 친구로서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조각한 토탬폴에서, 유럽의 전통과 사유… 캐나다의 특징을 한 눈에 보여 준다. 대륙에 먼저 태어난 예술의 선각자(1871~1945)는 이 땅에 살아갈 꿈과 소망을 소개한다. 자연과 동물을 벗하며 평생 홀로 지내온 에밀리카는 74세로 육신은 떠났어도ㅡ 하나님의 영광 생명의 신비, 자연의 혼을 그린 캐나다의 얼굴은 미의 화신인양 어디서나 태양처럼 더욱 빛나고 있다.
메모: 에멜리카 미술관을 나온 찬란한 후유증은, 내친 걸음에 캐나다에서 유명한 에밀리카 미술대학으로 달리게 했다. Granville Island 에밀리카 대학 주변에는 인디언의 전통을 소개하는 여러 종류의 공예방들. 넓은 광장에는 거리의 악사(원주민)가 부르는 구성진 노래 소리. 이곳을 찾는 관광인에게 에멜리카는 그림뿐 아니라 많은 책으로도 귀중한 유물을 담겼다. (그녀의 생전에 C $10,- 에 산 그림이 지금은 C$ 100, 000-의 가치가 있음)
첫댓글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오랫만에 오셨군요...한동안 궁금했습니다...여기는 춥네요...늘 건강조심 하시기바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