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 끌고 논밭 갈고 특유의 충직함으로 한국인의 사랑 '듬뿍'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없게 새해에도 "파이팅"
한현우 기자
소의 눈을 들여다본 적 있습니까. 선하게 팬 쌍꺼풀과 긴 속눈썹이 깊고 검은 눈동자를 감싸고 있지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가 어린 눈입니다.
소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은 사람이 소를 잡을 때뿐이라고 합니다. 그 눈을 차마 보지 못해 우리나라에선 소를 잡기 전에 귀신감투(소의 눈을 가리는 보자기)를 씌우고 꽃씨(정화수)를 소의 몸에 뿌리는 의식을 해왔지요. 소를 즐겨 읊었던 시인 김기택은 '소'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소는 살아서 온갖 힘든 일을 견디고 죽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줍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루터기라도 남았지만, 소는 피 한 방울까지 선짓국으로 바칩니다. 하다못해 쓸개에 생긴 응어리(우황·牛黃)도 강심제로 쓰이지요.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는 말은 흰소리가 아닙니다.
▲ 농부들은 안다. 살림이 어렵고 앞날이 불투명할 때일수록 느릿느릿 소 걸음으로 천리를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진은 전남 강진군 군동면에서 농사를 짓는 우용제씨가 먼동이 틀 무렵 그의 우직한 벗이자 살림 밑천인 황소와 함께 일터로 나서는 모습. 강진=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소는 개와 함께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가축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6000년쯤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지요. 한국에서는 경남 김해에서 발굴된 소의 두개골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눌지왕 22년(서기 438년)에 백성에게 소로 수레 끄는 법을 가르쳤고, 지증왕 3년(502년) 소를 써서 논밭을 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소는 우리 민족에게 오랫동안 '일소'였지요.
소가 깔고 앉은 볏짚에 똥오줌을 누면 그대로 거름이 됐습니다. 장정 여덟 명의 힘을 가진 소는 쟁기질 써레질 할 때 꼭 필요했지요. 쇠등에 발채나 옹구를 얹어 볏단과 보릿단을 날랐고, 연자방아를 돌리게 해 곡식을 찧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소에 달구지를 붙들어 매 사람이 타고 다녔지요.
소가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은 진짜 이유는 특유의 충직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되새김질하며 허연 콧김을 내뿜다가 간혹 "움머어~" 하고 우는 것 말고는 늘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니까요. 우리 조상들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밭두렁 소에게 이야기하곤 했나 봅니다. "소더러 한 말은 안 나도 처(妻)더러 한 말은 난다"는 속담은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면서, 소가 그만큼 가까운 친구였음을 뜻할 테니까요.
이제 한국에서 '일소'는 트랙터에 밀려 거의 사라졌습니다. 다만 죽이기 위해 살찌우는 고기소와 우유를 짜내는 젖소가 있을 뿐이지요. 이젠 코뚜레를 꿰지 않는 소도 많습니다. 마냥 외양간에서 꼴만 먹다가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꽃등심과 갈빗살로 나뉘어 팔려나가는 것이죠.
김도연 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실제 농부인 작가의 소에 대한 애증(愛憎)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소를 트럭에 싣고 전국을 여행하는 주인공은 소와 이야기도 하고 막걸리도 함께 마시지요. "암소들의 시대도 끝났다"고 푸념하는 소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가 변해서 그런 거야" 하며 주인공이 위로하는 장면은 소의 현재 위상을 상징합니다.
작년 초여름 한국을 휩쓴 '광우병 유령'은 소가 더 이상 가축이 아님을 웅변했습니다. 소를 닭이나 돼지처럼 고기로 팔기 위해 키우다 보니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였고, 이것이 광우병을 불러 왔지요. 그 공포가 극도로 과장돼 전해져 사람들의 불안을 증폭시켰습니다. 결국 100만명 가까운 사람이 100일 넘게 촛불집회를 벌였습니다. 요즘 대형 마트에서 LA 갈비가 인기라는 얘길 들으면, 확실히 광우병 파동은 '소가 웃을 일'이었던 같습니다.
소는 엉뚱하게도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지요. 소가 되새김질 할 때 트림을 하면 내장 속 세균이 만든 메탄가스가 나옵니다. 전 세계 13억 마리 소가 "꺼어억" 할 때마다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올라간다는 식으로 사람들은 말하지요. 그렇지만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수증기이며, 그 다음이 이산화탄소이고 메탄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과학자들의 데이터는 '환경 포퓰리즘' 앞에서 무력합니다. 꼴을 먹고 되새김질해야만 살 수 있는 소에게 지구온난화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요.
기축년(己丑年) 새해 아침, 한국인과 수천 년 한 식구처럼 살아온 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요즘처럼 살림이 어렵고 앞날이 불투명할 때일수록 소걸음(우보·牛步)으로 천리를 가는 지혜가 필요할 테지요. 지나간 쥐띠 해를 되새김질(반추·反芻)하고 소의 끈기와 성실함을 따라 새로 한 해를 시작할 만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