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4:4]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 히브리 원문에는 '보라!' 혹은 '여기에'의 뜻이 있는 부사 '히네'가 있다.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혹자는 본 문구를 '보라 !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그분은 나의 돕는 자시라'라고 사역하였다. 비록 이러한 사역이 약간 확대적이긴 하지만, 3절까지에 언급된 다윗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었다는 확신을 극명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적절하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도움을 주는 자의 입장에서 그의 곁에 계셨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편 '돕는자'는 '구원하시는 자'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 이 같은 번역은 하나님의 도움이 다윗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었던 것 같은 오해를 하게끔 한다. 따라서 본 문구는 (1)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드는 자 중의 한 분이시다 (2)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드는 분이시다로 번역됨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 중에서도, 본 문구의 '붙드는자'가 복수 분사라는 점에서, (1)의 것이 더 옳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2)와 같은 번역을 고집하는 것은, (1)의 번역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던 모든 자들로 하여금 계속 그를 보호하게끔 하셨으며 그에 관한 주도권을 지니셨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던자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다윗의 주변에 모여들었던 '육백 명'(삼상 23:13)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윗의 보호자로 붙여주시지 않았다면, 쫓겨다니던 다윗을 계속적으로 추종하기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히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 돈을 사랑치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강조된 금지 명령이다. 돈에 대한 탐욕은 타인의 권리를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게 할 뿐 아니라 마음에 두 주인을 섬기게 하여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범죄하게 만든다 그 결과 우상 숭배의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저자는 본절에서 현재 주어진 여건과 물질에 대해 만족할 것을 권면한다.
저자는 현재 주어진 것에 대해 만족해야 할 이유 두 가지를 제시한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본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인용문은 없으며 단지 필로가 동일한 인용문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저자의 인용문과 필로의 인용문이 동일하다고 해서 저자가 필로의 것을 인용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으며 도리어 다른 헬라어 역본에서 인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
그리스도인들이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현재 주어진 여건에 만족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켜주신다는 사실은 바울과 같이 현재에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게 한다..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 본문은 시 118:6의 인용으로 앞서 언급된 인용문과 연결되어 '약속과 응답'의 형태를 취한다...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시편 기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죽음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와지며 담대해질 수 있다. 한편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는 부정을 유도하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대항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