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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스크랩 최기종 선생의 시들
김창집 추천 0 조회 33 15.07.16 08: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블로그 글 올리려고

읽다가 책상 위에 둔

최기종 시집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를 펼쳤다.

 

‘밥과 양심’ 같은 가슴을 치는 시부터

‘공부해서 남 주자’ 같은

구구절절 참 교육자다운 내용들이다.

 

난 아이들을 위해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가르치다 정년퇴임했을까

자괴감으로 가득한 아침이다.

 

 

♧ 물에 빠진 아이들

 

아이들이

물을 좋아하다 보니

물에서 살고 물에서 죽기를 원하니

나는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서

게임에 빠지고 금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나는 녹음기처럼 되뇌인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가라앉고 하니

나는 나비처럼 날갯짓만 한다.

 

아이들이

타워 조명을 좋아하다 보니

등롱의 하루살이처럼

골리앗 속으로 빠져 들어가니

나는 이 크레인을 떠나지 못하는가?

 

 

♧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

 

어릴 때 어머니께서

“애야! 물가엔 가지 마라.”

물가에 가면 큰일 날 줄만 알고

모성의 그늘에서 순종만 하면서

지금껏 물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 되었다.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데모하면 무조건 처벌한다고

민주니, 자주니 하는 건 대학에서나 찾는 거라고

권리나 사상을 주장하는 물가엔

절대로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도 뒷조사까지 했다.

 

아이들도 물가에 가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구호나 주의주장 같은 건 아직 필요 없는 것이라고

교과서만이 진리요, 현실을 담고 있다고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학생이 되어

온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는데

 

생각해 본다.

내가 헤엄이란 ‘헤’자도 모르는 것이

어머니의 과잉보호 탓이었을까?

아이들이 물이란 물 피하면서

온실 속에서만 머뭇거리는 것이

헤엄 못 치는 선생들의 과잉단속 탓일까?

 

 

♧ 밥과 양심

 

우리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묻곤 했다.

밥만 먹고 사느냐고

아이들이 아니라고 가로 저으며

양심은 생명이라며 밥줄이 떨어져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했다.

 

탈퇴 각서 한 장에

정의와 용기는 사라졌을까?

이제 아이들이 되묻는다.

밥이 먼저냐 양심이 먼저냐고

하지만 우리들 머뭇거려야 했다.

 

소나기는 피하고 본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천길만길 절벽으로

와르르 무너지던 돌무더기

우리들 어둠 속으로 멀어지면서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밥이냐 양심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두려운 칼날 앞에서

두 겹 세 겹 가면을 쓰고

아이들 앞에 서야 했다.

   

 

♧ 장래 희망

 

아이들의 꿈에는

도무지 땀 흘리는 게 없다.

땡볕에서 얼굴이 시꺼멓게 타는 건

도무지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손에 물을 묻히거나 기름밥 먹는 건

작업복 걸치고 먼지 뒤집어쓰는 건

도무지 격에 맞지 않는다고

농부가 되고 어부가 되고 화부가 되는 꿈

석공이 되고 목수가 되고 잡역부가 되는 꿈

도무지 돈이 되지 않는다고

그래도

의사가 되거나 법관이 되거나

책상에 앉아서 펜대를 굴리거나

아이들의 꿈에는

도무지 흙을 묻히는 게 없다.

도무지 함께 가는 게 없다.

밑바닥이 되는 꿈

다리가 되고 허리가 되는 꿈

세상을 눈물로 색칠하는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다.

 

 

♧ 공부해서 남 주자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좋은 대학 가려고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

엄마가 좋아하니까

등등 이유야 많다.

그래서 내가

남 주려고 공부하려 하니까

그건 아니라고 야단법석이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공부해서 어떻게 하지?

의사가 되어서

과학자가 되어서

기술자가 되어서

누구를 주느냐고 물었더니

이놈들 고개만 갸웃거린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공부해서 남 주는 거라고 퉁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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