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서 계속---
(3) <절규>의 도난과 회수
1) <절규> 연작은 도난과의 지독한 악연으로 유명하다. 1994년 4명의 괴한이 오슬로 국립미술관의 창문을 깨고 사다리를 타고 넘어와
유화 버전의 작품을 훔쳐 갔었다. 그들은 " Thank for the poor security "라는 메모를 남겨 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3개월 뒤 구매자를 가장한 경찰의 함정수사로 다행히 붙잡혔고 작품은 손상되지 않은 채 돌아와 다시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2) 2004년에는 3명의 복면 무장 강도가 백주 대낮에 오슬로 뭉크미술관에 난입해 당시 관람중이던 수십여명의 과람객을 위협한뒤 너무 나 간단하게 템페라 버전의 <절규>와 <마돈나>를 훔쳐 갔었다. 이들 두 작품은 2006년에 다행히 되찾긴 했지만 노르웨이 경찰은 되찾은 과정에 대한 발표를 거부했고 이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돌아온 <절규>는 왼쪽 하단부가 약간 습기로 손상되었고, <마돈나>는 오른쪽 테두리 부분이 좀 찢어지고 마돈나의 팔에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채 회수되었다.
(4)<절규> 작품에 대한 비평
미국의 미술사가 로버트 로젠블럼은 파리의 인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페루 미라의 해골이 모델이 되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결박당한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미라의 모습은 확실히 <절규>의 인물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또 뭉크가 가장 좋아 했던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은 철학자 키에르케코르(1813-1855)의 다음과 같은 말이 연상된다. "나의 영혼은 너무 무거워서 그 어떤 생각도 그것을 짊어질 수 없다.어떤 날개짓도 하늘 높은 곳으로 저공 비행을 감행하는 작은 새처럼 땅바닥을 스쳐지나가는 정도일 뿐이다.압박과 불안이 내면의 존재를 짓누른다. 지진이 곧 일어날 것 같다."
시인 라이나 릴케(1875-1926)는 1920년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뭉크의 그림에서 보이는 선들은 공포를 구조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뭉크는 코코슈가에 비해 자연 자체에 훨씬 가까이 접근했다. 그래서 그는 보존과 파괴라는 극단적인 모순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자기 예술에 대한 일련의 모멸감에 대한 뭉크의 징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