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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21일간 다니엘 새벽기도회 설교 시리즈
(길지 않고 단순 단백하게 꾸몄습니다.)
특별한 사람 (시 31:23)
찬송 - 383장 / 이 시간 “특별한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대신 갚아주시는 특별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한 자에게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를 어느 왕이 손대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나서서 혼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역성해 주시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23절에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하게 보십니다. 시145:20에도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했습니다. 롬8:28에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5:18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믿고 성령 받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성도, 하나님의 일군, 하나님의 사명을 생각하면 기도가 나오고 축복이 나오고 눈물이 나고 안타까워 견딜 수 없어 하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함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위대해지는 비밀 (눅 2:52)
찬송 - 288장 / 이 시간 “위대해지는 비밀”이라는 제목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위대해지는 비밀을 가르쳐줍니다. 52절에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한 대로 그것은 바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가시게 하는 것입니다.
40절에는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면 생명과 지혜와 은혜와 은사로 우리가 위대해집니다. 그래서 고전1:30-31에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죽고 내 안의 예수님이 살아야 합니다. 내 속성이 죽고 예수가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은 만큼 내 속의 예수의 속성이 살아납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어요. 그러나 예수의 생명은 위대합니다. 그래서 예수 충만하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긴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시간에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는 사라지고 예수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더욱 사랑 받는 귀한 은혜가 더욱 넘치시기 바랍니다.
좋은 열매를 맺자 (눅 3:7-9)
찬송 - 171장 / 이 시간 “좋은 열매를 맺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면 찍혀 불에 던지운다고 말씀합니다. 세례요한 당시 사람들의 오해는 막연히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천국 갈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어도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찍혀 불에 던질 것이라.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야지 막연한 아브라함 자손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아 죄에서 떠나는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느 신학자가 탄식하며 말하더군요. 구원의 확신만 강조하지 구원 안에서 자라가는 것을 모른다고. 성경에 예수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이라고 방법까지 가르쳐 주는데 예수는 예수대로 믿고, 죄에서 구원은 구원대로 따로 받으려는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짜 복음운동입니다. 그래서 무슨 명상운동이니 수도원운동이니 예수복음에다 이방종교를 가미해서 이상한 종교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절대 좋은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만 읽었어도 그런 운동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하셨다는 그 복음의 진리를 믿고 시인하고 감사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그 믿음에 더욱 서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원하신 것을 믿고 그 믿음에서 자라가세요. 히3:14절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칭의만 아니라 죄에서 해방 받는 거룩 즉 성화의 열매까지도 맺혀서 천국의 곳간에 아름다운 참된 백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환난 날과 기도 (시 50:14-15)
찬송 - 301장 / 이 시간에 “환난 날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환난 날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가 아닙니다. 먼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한 대로 감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도우실 자로 계시니 우리는 환난을 당해도 감사할 뿐입니다.
다음은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한 대로 서원의 기도입니다. 서원이란 고대 중동지역에서 신의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 어떤 것을 약속하는 것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광야에서 길을 잃었던 야곱도 서원했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사명 감당하겠다고 혹은 마음에 있는 것으로 서원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렘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신 것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환난 날에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렘29:12-14에도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포로 된 중에서 다시 -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성경이 가르쳐 주신 말씀으로 기도하여 환난의 날에 도우심을 받고 온전히 보호하심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승리한 것은 (눅 22:45-46)
찬송 - 430장 / 이 시간에 “베드로가 승리한 것은”이라는 제목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부활을 목격하고도 주님을 따르지 못한 자신에 실망하여 다시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던 나약함이 있었습니다.
이런 실패자 베드로가 어떻게 온전한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주님의 기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22:31-32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하셨습니다.
다음은 주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눅22:60-62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회개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늘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면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한 것처럼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는 더 이상 나약하지 않았습니다. 목숨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큰 능력이 임했고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었고, 박해 가운데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십자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기도와 말씀과 성령으로 더욱 충만하여 육신적인 면을 다 극복하고 온전히 은혜로 성공하고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탄을 몰아내자 (엡 6:10-12)
찬송 - 358장 / 이 시간 “사탄을 몰아내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탄은 오늘도 자기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면서 우리들의 가까운 곳에서 혹은 먼데서 역사하기 때문에 사탄에 대해서 방심하거나 무지하면 당하게 됩니다. 사탄의 역사는 광범위하지만 특히 생각 속에서 많이 역사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실패했습니까? 뱀의 말을 듣고 생각을 못지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슬슬 기어다니는 생각의 뱀이 있습니다. 사탄이 주는 생각 절대로 허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나니아 삽비라(행5:1-11)가 저주 받은 사건도 레위사람 바나바가 전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드려 섬겨 존경 받는 것을 보고 그런 명예가 탐이 나서 거짓으로 바나바 흉내를 내다가 생겨난 사건입니다. 행5:3에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느냐고 책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면 순종하는 것이지 잘못된 명예욕이 발동하여 교회나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가롯유다도 눅22:3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사탄이 들어가서 생긴 일입니다. 사탄을 허용한 유다도 책임이 있습니다. 거짓선지자나 적그리스도도 마음 지키지 못해 거짓을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마음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예수님까지 시험하려 했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다 이기신 것처럼 우리들도 말씀과 기도로 사탄을 다 이길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쓰임 받는 비밀 (단1:8-16)
찬송 - 546장 / 이 시간 “쓰임 받는 비밀”이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에 부러울 만큼 크게 쓰임 받은 사람 중 하나를 들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기원전 6세기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잡혀갔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바벨론의 2인자인 총리가 되고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왕 다리오와 파사왕 고레스 시대까지 귀하게 쓰임 받은 총리였습니다.
포로의 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역사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다니엘을 죽이려는 음모도 있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 아래 귀히 여김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또한 뜻을 정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그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그것은 우상의 제물이기도 했지만, 구약시대인지라 율법에 따라 부정한 음식을 금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처럼 날마다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를 씻고 단장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고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단6:10을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잡혀서 사자굴에 던져진다 해도 이 뜻은 굽힐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승리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다니엘처럼 늘 자기를 성결케 하면서 날마다 3번씩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고 동거 동행 동역해 주시고 상상할 수 없이 귀하게 써주십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우리 모두가 결심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도 다니엘의 믿음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 다니엘의 믿음을 가지고 실천함으로 다니엘처럼 귀히 쓰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의 은혜 (시 22:3)
찬송 370장 /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오늘은 찬송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찬송하다가 승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일 기억나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목장에서 양을 치면서 날마다 찬송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곰도 사자도 이기고 골리앗도 이기고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과 예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읽은 말씀처럼 찬송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약5:13 “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지니라” 한 것처럼 찬송할 때 기쁨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찬송을 부르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새 힘이 솟아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눈물이 나옵니다.
눅24:52-53에도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오순절 성령이 임한 것은 기도만이 아닙니다. 늘 찬송했습니다. 유대왕 여호사밧도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을 찬송으로 물리쳤습니다. 여리고성도 찬송하면 무너지고, 찬송할 때 예수 안에서 구원하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이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혀서도 한 밤 중에 찬송을 부를 때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 우리의 환경이 빌립보 감옥과 같이 어둡고 답답해도 찬송을 부르면 활짝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찬송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찬송하며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찬송이 주님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는데 찬송이 바로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늘 찬송생활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고 마음과 환경의 문도 활짝 열리는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승리 (창 14:13-16)
찬송 - 384장 / 오늘은 아브라함의 승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창 14장에는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연합군들이 소돔 고모라를 침략해 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가고 재산을 탈취해 갔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까지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소식을 알고 아브라함이 쫓아가서 그 연합군을 쳐부수고 롯은 물론 다른 나라 백성들까지 구해왔던 놀라운 승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겨우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그 거대한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이 많아서도 믿음이 있어서도 아니고 정말 얼떨결에 조카를 구해야겠다는 의무감에 하나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운 결과이지 맨 정신으로 싸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맨정신 가졌더라면 하나님을 그렇게 못 믿었을 것입니다.
족장으로서 실수라면 큰 실수입니다. 정말 합리적인 생각을 했다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요, 롯을 구하려다가 내 부족이 다 죽는 일을 왜 합니까? 이 때 나이가 85세 정도 많았을 때입니다. 눅 14장에 예수님께서도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않겠느냐...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않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14:28-32)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신앙생활은 계산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믿음으로 대들었더니 되더라는 것입니다. 왕하 6장에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든 없든 살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얼떨결에라도 믿으시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목숨 바쳐 기도하고 찬송하고 순종하고 전도하고 충성하고 사랑하고 영적으로 싸워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승리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죄의 장애물 (사 59:1-8)
찬송 - 257장 / 이 시간 “죄의 장애물”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 하나님께 대한 종교적 열심을 다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나타나지 않음에 불평할 때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그토록 열심히 섬기는데 왜 삶은 평안이 없고 되는 일이 없이 이렇게 고단하기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 답이 바로 1-2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죄란 무엇일까요? 그 자세한 내용이 3절 이하에 나타나는데 하나님께 잘해도 사람에게 잘못하면 다 헛것이고 무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6:14-15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신하와 같이 그 큰 빚을 탕감 받았다면 남에게도 은혜를 베풀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웃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일3:14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23절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 잘 공경할 뿐 아니라 사람을 사랑합시다. 용서합시다. 그래서 모든 죄의 장애물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시기 바랍니다.
담대의 은사 (딤후 1:7-8)
찬송 - 348장 / 이 시간 “담대의 은사”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 여러 곳을 참고하면 디모데는 천성적으로 기질상 몸도 마음도 약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과 복음의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늘 마음은 겁이 많고 유약했습니다. 믿음에 담대한 자가 받는 은혜가 얼마나 큰데 선천적으로 약하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 때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두려움을 이기는 3가지 비밀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먼저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능력 받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다윗이 양을 지키면서 곰과 사자를 친 것도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골리앗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시27편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했습니다.
다음은 사랑입니다. 요일4:18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떠나는 은사가 임합니다.
그 다음은 절제하는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고 근신하면서 생각을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열매인 절제의 은사를 가지면 사탄이 틈탈 틈이 없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한 것처럼 크고 강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니 강하고 담대함을 구하십시다. 우리 모두 능력과 사랑과 절제를 구하여 온전히 담대한 성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진짜복음 가짜복음 (갈1:6-9)
찬송 - 538장 / 이 시간 “진짜복음 가짜복음”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수를 믿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등 거짓교리에 미혹되자 바울은 강한 어조로 다른 복음은 없다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오늘날에도 가짜가 많습니다. 반쪽만 전하면 가짜복음입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전하고 공의의 하나님을 강조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천국도 전하고 지옥도 전하고, 축복도 전하고 저주도 전하고 다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20:20에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 전하여 가르”쳤다고 하면서, 21절에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했습니다.
성화를 배제한 복음도 가짜복음입니다. 예수 믿어 죄에서 구원 받는 은혜는 용서만이 아니라 죄에서 해방까지를 말합니다. 죄에서 구원이니까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롬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셨듯 칭의와 성화 영화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루신 것을 믿고 시인하며 감사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 된 것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시제는 이제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복음에 서고 또 서되 성령의 도우심을 속에서 실재를 누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벧전2:2에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했고, 빌2:12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평화를 얻는 칭의의 확신 뿐 아니라 삶의 변화까지 허락하신 성화의 복음을 믿고 더욱 아름다운 가운데 자라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과 복 (민 6:22-27)
찬송 - 28장 / 이 시간 “축복과 복”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구약의 축도에도 그렇듯이 성경은 축복과 복을 명확히 구분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고, 축복은 사람이 합니다. 한자로 말하면 빌축(祝) 복복(福)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빌 때 쓰는 건데 한국에서는 구분 없이 쓰는 풍조가 있는데 모를 때는 그랬지만 오늘부터는 복과 축복을 구분하여 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축복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7절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축복하면 복을 주십니다. 시109:17-18에도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했습니다.
창13:3에도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축복은 결코 허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제사장은 보호를 축복했습니다.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다음은 은혜를 축복했습니다. 25절에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은 평강의 복을 축복했습니다. 26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까지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늘 축복하고 축복을 받으십시다.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자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축복을 귀히 여기고 늘 기도로서 자기를 축복하고 남을 축복하고 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해로운 것을 피하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택하며 늘 은혜 받아서 온전한 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호 (시 121:4-8)
찬송 - 568장 / 이 시간 “하나님의 보호”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이번 미국대통령 방문을 두고도 그의 신원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트럼프가 DMZ를 방문하고자 했지만 안개 때문에 무산됐는데 진짜 원인은 북괴군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고 합니다. 문대통령이 미리 가서 기다렸던 걸 볼 때 가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안개를 핑계로 안 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일 안개가 없었으면 약속도 했고 모두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갈 수밖에 없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경호 부실이었는지 고의였는지 대통령의 차가 데모대에 막혀 각종 물건이 던져지고 머물던 호텔 앞에까지 데모데가 침입했지만 아무 사고 없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지 에어포스원과 방탄차를 탄다고 지켜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경성도 허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 하나님의 보호는 완전한 보호입니다. 본문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언제까지? 영원까지, 범위는?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고,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신32:10에는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셨고, 시91:4에는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하셨고, 시23: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지키신다면서 경호를 거절하더니 괴한에게 당해 사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지만 지혜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일 수 있으니까요.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신 그 말씀을 굳게 믿고 우리 모두 눈동자와 같고 날개깃과 같고 방패와 손방패, 그리고 목자와 같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어서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말씀 (시 19:7-14)
찬송 - 546장 / 이 시간 “신령한 말씀”이라는 제목입니다. 대하9장을 보면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보고 그 지혜에 놀라고 또 솔로몬의 영광과 권세를 보고 정신이 황홀하여 “내가 들은 소문보다 지나도다 복 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 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대하9:7-8) 하면서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많은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솔로몬보다 비교할 수 없이 지혜롭고 복된 말씀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마12:42에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하셨고, 딤후3:15에 성경은 구원함에 이르는 온전한 지혜라 했습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 성경은 우리 영혼을 소성시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듣는 자는 심령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우둔한 자란 분별 못하는 순진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세상과 이단과 사탄에 빠지지 않게 견고한 사람을 만들어줍니다.
다음은,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기 ‘정직하다’란 옳다는 뜻으로 항상 옳기 때문에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은 눈을 밝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면 하나님이 보이고 진리도 천국도 지옥도 세상도 천사도 마귀도 사건의 옳고 그름도 다 보입니다.
다음은 성경은 영원까지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한 것처럼 영생을 얻고 악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 다음, 의롭게 살게 합니다. 묵시가 없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그러나 성경을 알면 바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다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 있는 자는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까이하고 늘 묵상하고 믿고 행하고 지키고 충성함으로 이 땅에서와 영원한 세계에서 가장 복 있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신령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편에 설 건가 (마 25:31-40)
찬송 - 455장 / 이 시간 “어느 편에 설 건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심판 날에 양과 염소처럼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날에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신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두렵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우리 안에는 양과 염소 두 속성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양과 염소를 비교해 보면 양과 염소는 율법에 의하면 쪽발인 점과 먹고 새김질하며 젖을 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결한 제물로 쓰인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먼저 색깔이 다릅니다. 양은 희고 염소는 검습니다. 다음은 양은 낮은 데를 좋아하고 염소는 높은 데를 좋아합니다. 또 양은 순종하나 염소는 고집이 셉니다. 양은 목자가 앞에 가면 따라오지만, 염소는 앞에서 끌면 따라오지 않습니다. 신기하리만큼 독특한 동물입니다.
또 양은 사랑이 많아 뭉치지만 염소는 시기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양들 끼리 뭉치면 여지없이 뿔로 받아 흩어버립니다. 그래서 양을 몇 마리 넣어두면 양들이 뭉쳐서 밟혀 죽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뿔이 없지만 염소는 뿔이 있어 잘 받습니다. 염소가 받는 것을 보면 머리가 깨질 정도로 받습니다.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말씀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아시겠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양과 염소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의 유무입니다. 양은 사랑이 많고 주고 약자라고 무시하지 않고 대접하고 사랑했고 의롭고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그 반대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말씀이 40절에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리고 또 중요한 말씀은 46절에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마음에 예수가 있다면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느 편인 것 같습니까? 오른편은 자신 없고 그렇다고 왼편도 아닌 중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양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진실로 회개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혀 양이 섰는 주님의 오른편에 설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옥토의 마음 (눅 8:15)
찬송 - 284장 / 이 시간 “옥토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씨 뿌리는 자가 나가서 뿌릴 쌔 여러 밭에 떨어졌는데 옥토에 떨어진 씨는 자라서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옥토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눅8:15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옥토밭 마음은 말씀을 깨닫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말씀 잘 받아야 위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비밀은 말씀을 잘 받아야 합니다.
다음은 눅8:15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했듯 인내의 마음입니다. 여기 인내란 참는다는 의미보다는 어떤 걸 계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꾸준히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이 기도의 말씀을 붙들 계속하다 위대한 일군으로 쓰임 받았듯이 어떤 말씀이든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옥토밭 마음은 길가 돌짝밭 가시밭 등의 시험을 다 이긴 사람입니다. 완악한 마음, 참지 못하는 마음, 세상의 재리와 유혹도 이기고, 또 옥토의 곡식 역시 햇볕 바람 폭풍 잡초 병충해 등 온갖 시험을 이겼기에 100배로 결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루 천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기쁘게 받고 인내로서 끝까지 믿고 행하며 어떤 시험이 와도 계속하다가 100배로 열매 맺는 아름다운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요 8:29)
찬송 - 314장 / 이 시간 “하나님을 기쁘시게”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배 만배로 기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가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대로 주십니다. 요일3:22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기쁘게 해주십니다. 히11:5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 기쁘시게 해드렸더니 하나님께서 300년간 동행해 주시고 죽음까지도 면제해 주셨습니다.
전2:26에도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정말 노다지 캐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잠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롬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이 엄청난 약속과 은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해드린 우리 주님처럼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 되는 귀한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신 5:8-10)
찬송 - 563장 / 이 시간 “하나님을 사랑하자”라는 말씀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은 십계명의 제 2계명의 말씀입니다. 십계명에 약속 있는 계명이 딱 두 계명인데 제2계명과 제 5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잘 지키면 큰 복이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지만 그런 약속을 하신 것은 더 기쁨 가지고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9-10절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자신과 후손을 사랑한다면 이 말씀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귀한 것은 신앙과 그 열매입니다.
신28:1-14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시91:14에는 “그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하셨고, 시119:165에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했습니다.
요14:15-16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롬8:28에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고, 약1:12에도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했습니다.
이상의 말씀 외에도 사랑할 때 안식을 주신다(시127:2).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약1:12).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약2:5). 항상 보호하여 주신다(시145:20).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잠8:17). 재물의 복도 주신다(잠8:21). 하나님이 거처를 함께 하여 주신다(요14:23).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된다(고전8:3).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요일4:7). 이런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장 사랑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 받은 야곱 (창 27:21-29)
찬송 - 426장 / 오늘 새벽에는 “축복 받은 야곱”입니다. 본문은 야곱이 어머니 말을 듣고 변장하여 형 에서를 대신하여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윤리적으로만 보면 잘못이지만 하나님께서 태중에 있을 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하신 말씀을 그의 어머니가 믿고 추진했기 때문에 믿음을 떠난 행동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은 축복을 그렇게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창 25장을 보면 야곱이 에서가 피곤한 틈을 이용하여 팥죽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을 삽니다. 나면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오고, 장자의 명분을 살만큼 사모했습니다. 이런 사모하는 기초소양이 잘되어 있어야 복을 받습니다.
또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은 어머니의 도움이었습니다. 창27:13을 보면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설득하면서 저주는 내가 받으마. 너는 내 말만 따르라고 말합니다. 여기 어머니는 성령의 상징입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형 에서로 변장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복을 주셔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복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세 전부터 예정하신 하나님의 복을 믿고 복을 사모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복 받을 일을 하면서 항상 예수 이름으로 구하여 야곱과 같은 복의 사람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죄를 미워하자 (잠 6:16-19)
찬송 - 455장 / 오늘 새벽에는 “죄를 미워하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복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 미워하시는 것을 잘 알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닮은 사람을 가장 기뻐하시고, 마귀 닮은 사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세요.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잠6:17-19) 이거 누구의 마음입니까? 이 말씀은 시종 마귀의 마음과 하는 일을 정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두 마귀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 받으려면 마귀죄를 철저히 배격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약4:6에도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하면 적을 물리치시듯 물리치십니다. 다음,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십니다. 요8:44에도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 무죄한 자를 해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 없는 충신 우리아를 죽인 죄가 얼마나 컸던지 나단선지자를 보내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10) 하셨습니다. 꼭 칼로만 죽이는 것 아닙니다. 잠25:18에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 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 말로도 죽입니다.
다음에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선한 계획만 세워야지 악한 계획을 세우면 안 됩니다. 이건 고의적인 범죄, 즉 고범죄라 하여 용서가 없습니다. 영원히 없다는 것이라기보다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다음, 악으로 빨리 달려가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또 거짓 증인을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이런 건 모두 마귀 짓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싫어하신다는 말씀의 원문을 보면 ‘구역질나는, 증오스러운’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만큼 싫어하십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죄를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요일3:10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마귀의 모습 다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만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띠 (골 3:13-14)
찬송 - 268장 / 이 시간 “띠”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띠는 허리에 매는 띠인데, 띠를 띠느냐 안 띠느냐의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유대인들의 옷은 보자기 같은 이불인데 밤에는 이불 삼아 덮고 낮에는 입기 때문에 띠를 매지 않으면 바람에 날리고 발에 채이고 부자유스럽고 부끄러움이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반드시 띠를 띠어야 했습니다. 우리 믿음에도 띠어야 할 띠가 있습니다.
본문에 골 3:14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의 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띠를 띠시고 제자들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온전해지고 싶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과 같습니다. 더 사랑을 키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벧전1:13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여기 띠는 근신의 띠입니다. 근신이란 방탕의 반대말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말씀대로 살려는 각별한 자세를 가리킵니다. 성을 지키는 군인들처럼 무장하고 정신 차리고, 또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처럼 준비하고 준비하고, 재림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엡6:14에도 띠가 나옵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믿음의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진리로 띠를 띠어야 힘이 나옵니다. 차력사들이 튼튼한 띠를 띠는데 그래야 힘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씀 충만하여 증거가 확실하고 논리가 분명해야 믿음이 생기고 힘이 나옵니다.
엡4:3에도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의 줄입니다. 요21:18에도 띠가 나옵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베드로의 죽음을 예언하신 말씀 중 한 대목인데 자유로움을 띠에 비유했습니다.
어떤 분이 개척하면서 하도 어려워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울었더니 꿈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띠로 허리를 묶어 주시더랍니다. 그래서 띠를 단단히 매었는데 그 때부터 아무리 어려워도 어려운 줄 모르고 감당할 수 있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사랑의 띠, 진리의 띠, 근신의 띠, 능력의 띠, 성령의 띠, 자유의 띠, 두려움을 모르는 담대한 띠로 겹겹이 매어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열심 (롬 12:11)
찬송 - 285장 / 이 시간 “열심”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교훈합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게으름 죄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 바로 게으름입니다.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길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있어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둘러보더니 아무 일 없다고 자던 사람들은 나중에 보니 다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둘러보니 아무 일도 없습니까? 그러나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사람은 부지런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는데 다스리려면 어떠해야 합니까? 롬12:8에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본래 부지런한 존재였습니다. 신앙생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6:6-11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이 말씀은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하루 세 시간의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날은 마귀에게 포로가 되는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먼저 예배에 힘써야 합니다. 성경 공부에도 힘써야 합니다. 기도에도 힘써야 합니다. 전도에도 힘써야 합니다. 봉사와 헌신에도 힘써야 합니다. 불을 드려야 불이 임합니다. 열심의 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불 꺼지면 죽은 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육신의 안일을 던저버리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나라 위한 기도 (딤전 2:1-4)
찬송 - 208장 / 이 시간 “나라 위한 기도”라는 제목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첫째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정치가들이 잘못되면 그만큼 백성들이 고통스럽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지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때문에 말씀드리는데, 우리나라는 안보는 위기 가운데 있는데 언제부턴가 애국이라는 말이 사라졌고, 애국가도 점점 부르지 않고 있고, 간첩잡자는 말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의 나라 위한 우국적인 말을 하면 집단적으로 공격을 받습니다. 심지어 김일성을 찬양하는 친북인사들이 국회 정부 사법 언론 교육 기타 모든 계통의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상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는데 대한민국의 심장부 청와대 비서실 만까지도 실장을 비롯해 모든 비서관들을 모두 전대협 출신으로 채워놓았습니다. 전대협은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평화협정체결 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적화노선을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전대협은 모일 때마다 김일성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한 후 수령 만세를 삼창 후 회의를 종료하는 등 그런 집단입니다.
딱 한 사람 전병헌이라고 비전대협 출신이 끼어 있으니까 전대협 비서실장이 비리를 터트리면서 기어코 쫓아냈잖아요. 지금 언론 사법까지도 완전히 장악해 버렸고 국민들은 방송만 듣고 박수만 치고 있는데 조금만 눈을 더 떠주시기 바랍니다. 마24:15에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했듯이 그만큼 위중한 상황입니다.
제게 대항할지 몰라도 제 말을 참고하고 관찰해 보세요. 그러면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그 말이 옳았구나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교회와 나라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기도하는 이 자리에서까지도 기도제목을 던져주지 못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저를 진정 아낀다면 소문 내지 말고 기도만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할 이유를 본문에서 잘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그래서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할 수 있는 복된 나라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주일성수 (출 20:8-11)
찬송 - 43장 / 이 시간 “주일성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주일성수를 해야 바르게 할까요? 주일성수하는 법은 구약의 안식일 성수하는 법과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20:8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셨듯이 이 날은 다른 날과 다릅니다. 주일이니까 내 날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입니다. 나를 위한 날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58:13-14에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즉 이 날은 특별한 날로 여기고 오락은 물론 사사로운 말도 하지 말고 신앙의 말만 하면서 지키면 큰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출20:9-10에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적으로 지키라는 뜻은 아닙니다. 막3:4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유대인들은 법에만 얽매여 안식일을 위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사람이 다 죽어가도 안식이라 하면서 방치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내신 안식일의 개념을 모르는 행위입니다. 즉 우리 쉬라고 준 것이니까 먼저 잘 쉬고 예배하고 남도 쉬도록 선을 행하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주일을 지키면서 그 날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안식 후 첫날이 주일을 가리킵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성찬하며 예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일성수가 안 되면 우리 믿음은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주일성수를 생명 걸고 준수해야 합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 안에 안식을 주심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잘 믿고 염려 맡기고 성령 안에서 평안함 얻으면 그것이 안식일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잘 믿고 성경대로 주일성수 잘함으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그리고 삶의 모든 면에서 평안함과 형통함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다 (마 11:28-30)
찬송 - 337장 / 이 시간 “주님의 멍에는 쉽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의 일로 지치고 힘들 때 예수님께로 가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쉬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주님께로 가기만 해도 모든 짐이 부려집니다. 주님께서 대신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68:19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조금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과 함께 메는 멍에입니다. 이 멍에는 신앙생활을 말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그 의무 만큼은 우리가 잘 담당해야 합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짐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주님을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에서 고통을 당하십니까? 우리는 죄인일지라도 이젠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상 받는 것도 쉽습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그냥 믿어만 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 하셨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도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해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칭의 성화 영화도 예수 공로이니 믿음으로 받아들이세요. 대신 믿어지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스럽게 믿으려니까 어려운 것이지요.
기도도 쉽습니다.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데 뭐가 어렵습니까? 구하기 전에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빌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렇게 믿음으로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면 응답도 빠르고 쉽습니다.
10년을 기도해도 영적 체험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그리고 곁에 와 계신 주님을 믿고 늘 대화하고 찬양하고 존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오늘 주님의 부르시는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모든 짐을 다 부리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은혜로 은혜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 신앙생활이 더욱 즐겁고 활기차고 행복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창 1:1)
찬송 - 383장 / 이 시간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고, 또 높이여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시9:10에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다는 말씀 드릴 수 없고 오늘 창세기 말씀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 때 어찌 믿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창1:1의 하나님을 원문으로 보면 ‘엘로힘’인데 엘이란 '강한 자' 혹은 '능력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엘로힘은 복수형인데 한 분 하나님이 복수형인 것은 히브리어에서 복수형은 종종 위엄이나 초월적인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그만큼 전능하시고 위대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분을 우리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그 분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지만 창조하셨듯 우리 마음도 새롭게 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121:1의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 삶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다는 믿음 가지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셔서 전능의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참 감사 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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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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