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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어린 슈나이더 컵 경주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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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세기초, 항공의 개척시대에 속도 경쟁에 불을 지폈던, 슈나이더 컵 경주 대회.... 좌측 사진의 실제의 슈나이더 컵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
1921년, 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항공기 경주대회인 슈나이더컵 대회가 열렸다..... 원래 이 경기는 잭 슈나이더(Jack Schneider)라는 사람이 일차대전 전에 창시 했는데, 1년에 한번씩 세계각지의 내놓라는 항공기들을 모아놓고 서로의 기량을 겨뤄 보는 최신예기들의 잔치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대회에 참가하는 항공기들은 모두 수상 항공기였는데, 그것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항공기들이 이착륙하기에는 당시 비행장의 규모가 작아서, 대안으로 수상이착륙기들이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 슈나이더 컵은 일차대전 후에는 2년마다 한번씩 개최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바로 1921년 스피트화이어의 아버지격이 되는 슈퍼마린 씨라이온(Sea Lion)기가 슈나이더컵의 우승을 거머 쥐게 된 것이다.
[슈나이더 컵에서 우승한 영국팀들이 우승기 S6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간에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람이 S5, S6기 씨리즈와 스피트화이어를 설계한 레지날드 미첼이다. ]
이때 씨라이온기가 보여준 속도는 시속 234 km/h 로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이후 슈퍼마린 항공기는 1930년 초 슈나이더 컵 대회가 없어지기 전까지 S-5형과 S-6형 씨리즈가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1931마지막 슈나이더 컵 대회(사실 1931년 이후 중단되었다가, 요사이에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에서 우승한 영국 슈퍼마린사의 S6B기의 모습
역대 슈나이더 컵 우승기들 (속도는 평균시속 km/h)
-------------------------------------------------------------------------------- 일차대전이전.... 1913 Monocoque기 72 1914 Sopwith 항공사의 'Tabloid'기 139 1919 대회취소
일차대전이후.... 1920 SIAI 항공사의 S.12기 172 1921 Macchi 항공사의 M-7bis기 189 1922 슈퍼마린항공사의 Sea Lion II기 234 1923 Curtiss 항공사의 C.R.3기 285 1925 Curtiss 항공사의 R3C-2기 374 1926 Macchi 항공사의 M-39기 396 1927 Supermarine 항공사의 S.5기 453 1929 Supermarine 항공사의 S.6기 528 1931 Supermarine 항공사의 S.6B기 547
슈나이더 컵 하면, 항공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는데, 붉은 돼지에 나오는 항공기들은 모두 수상기들들인 점도 이 슈나이더 컵을 염두해 둔 것으로 생각된다. 또 1920년 우승한 SIAI(SAVOAI)의 S 12기가 붉은 돼지가 탑승하는 붉은 항공기의 모델이 된 SIAI S21기의 원형이라는 설이있다. (물론 엔진의 부착부를 비롯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은 붉은 돼지의 감독 미야자키의 실수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붉은 돼지 포르코와 숙명의 라이벌로 나오는 미국인 커티스란 인물도 역시 1925년 우승을 차지한 미국의 커티스 항공사에서 이름을 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제로 붉은 돼지에 나오는 인물, 커티스가 몰던 항공기는 1925년 슈나이더 컵에서 우승한 복엽수상기 R3C와 같은 기종이다.(또 내용상으로도 커티스가 두 번이나 슈나이더컵을 차지했다고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한번 더 살펴보면, 1925년 실제로 커티스기를 몰고 슈나이더 컵을 차지한 조종사는 지미 두리틀(james Doolittle)로 나중에 이차대전기간 중 일본의 수도 "동경폭격"을 지휘하게 될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붉은 돼지에 나오는 푼수기로 똘똘 뭉친 그 커티스란 캐릭터는 지미 두리틀을 은근히 묘사한것이 아닐까?.... 미야자키 감독의 친척 중에 그 동경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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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f 109와 스피트화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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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천재와천채의 만남 영국의 항공기술자 ‘레지널드 미첼 (Reginald Joseph Mitchell 좌)’ 과 독일의 천재과학자로 불리는 Wilhelm Emil "Willy" Messerschmitt (우) (June 26, 1898 – September 15, 1978) 는 각각 스핏화이어와 BF-109 메서수미트 전투기를 개발 2차대전 시작부터 종전시까지 치열하게 전쟁을 통해 각자가 개발한 전투기의 성능을 평가받기에 이른다 |
[사진] 자신의 생명을 태워가면서까지, 끝까지 사명감을 갖고 스피트화이어의 원형기를 완성한 영국 항공기 설계의 대가, 레지날드 미첼의 모습..... 그는 독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병마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힘을 스피트화이어에 쏟아부었다.
이 슈퍼마린사의 항공기들은 항공기 설계자 레지날드 미첼(Reginald Mitchell)의 작품이었고, 자연스럽게 이차대전 최고의 전투기로 명성을 얻게 되는 스피트화이어 개발로 이어졌다. 그런데 스피트화이어의 설계가 완성되기 전, 레지날드 미첼은 위암에 걸려 1933년, 수술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건강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1934년에는 요양차 독일에 머물며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은데, 이때 그는 히틀러 정권의 힘과 다시 일어서는 독일 공군을 목격하게 된다. 미첼은 머지않아 일차대전과 같은 전쟁을 치르게 될지도, 그리고 독일 공군을 적으로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였으며, 절대안정을 권유하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새로운 전투기 설계에 매진하게 된다.
[사진] 드디어 완성된 스피트화이어 원형기.... 시험비행하는 날 찍은 사진으로, 이 원형기 설계후 레지날드 미첼은 눈을 감고 만다. 아쉽게도 그는 자신이 설계한 이 전투기가 자신의 조국을 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영국을 구하고자한 충정이었으며, 또 상대 항공기에 절대 뒤지지 않겠다는 진정한 프로정신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드디어 1936년 불멸의 역작 스피트화이어 원형기의 설계를 마친 후, 그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때는 1937년.... 그의 나이 고작 42세였다. 사실 그가 전투기 프로젝트에 헌신한 밤과 낮이 그의 생명을 단축시킨 것이었지만, 아마도 그는 죽음을 앞두고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첼이 그렇게 열정을 쏟은 스피트화이어는 후배 설계자들에 의해 계속 업그레이드되면서, 영국을 구하게 된 것이다. 스피트화이어 원형기가 처음 처녀비행을 한 것은 1936년 3월 5일로, 이차대전 전 기간을 통해 라이벌로서 혈전을 치뤄나갈 운명의 적수, 독일의 Bf 109와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 (Bf 109보다 단지 10 개월이 뒤진 셈이다.)
[Supermarine사의 Spitfire 전투기는 독일의 BF-109 메셔수미트 전투기와 쌍벽을 이루는 2차대전 등장한 전투기중 최고의 성능을 가진 전투기중 하나였다]
그럼 여기서 스피트화이어와 메서슈미트 109의 설계상의 차이를 알아보자
두 기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익(앞날개)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차이는 설계자들이 추구하던 전투기 최상의 요소가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전투기의 성능을 설명하는데에는 크게 3가지 요소를 들수 있는데, 속도, 상승력, 선회력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스피트화이어의 원형기.... 2날 목재 프로펠러에 아직은 좀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레지날드 미첼의 유지를 이어 받은 후배 설계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이 3요소 중 당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첫번째 순위로 꼽은 것은 역시 속도였던 것 같다. 다음 남은 두가지 선회력과 상승력은 국가 마다, 선호도가 달랐던 것 같다. 스피트화이어의 설계자 미첼은 아마도 속도 다음으로 선회력에 중점을 두지 않았나 생각된다. 스피트화이어는 우아함 마저 느껴지는 멋진 곡선의 넓은 주익을 가지고 있으며, 날개 자체에 하중을 줄이기 위해 애썼으며, 넓고 가벼운 날개는 스피트화이어에게 멋진 기동과 빠른 선회력을 선사해 주었다.
이에 반해 Bf 109의 설계자 빌리 메서슈미트는 상승력에 매우 큰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날개에 몇가지 특수한 장치를 보태, 전반적으로 날개하중이 증가되어, 선회력은 어느정도 희생해야 했지만 놀라운 상승력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한 몇가지 장치란 극간 앞전(slotted leading edge 극간 앞전)과 극간 플랩(slotted trailing edge flap)을 말한다. Bf 109의 주익의 앞면을 자세히 보면, 중간 정도부터 날개끝 부분까지 약간 튀어나온 구조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극간 앞전"으로, 가늘게 홈이 파여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비행시 받음각이 증가할 때 날개 상부에 생기는 공기와류와 흐름 박리 현상을 줄여, 더 많은 양력을 얻어 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상승력이 향상되었다.
[그림] 극간 앞전 (slotted Leading edge)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도.... 이렇게 극간 앞전이 아래로 작동되면, 지속적인 상승시 날개 위쪽에 발생하는 공기 흐름 박리 현상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어, 뛰어난 상승력을 얻을 수 있다. ]
이런 설계를 해낸 빌리 메서슈미트는 천재라 할 수밖에 없겠다. 현대 전투기 중에서도, 짧은 거리내에 상승해 이륙해야하는 미국 항모탑재기 F-14 톰켓에도 이 극간 앞전 플랩이 장착되어 있다고 한다.
[메서슈미트 109의 앞전 플랩을 보여주는 모습... 오른쪽 사진을 보면, 그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이런 섬세한 장치를 위해, 109의 날개의 하중이 증가되어, 스피트화이어보다 선회력은 딸리게 되나,, 상승력은 비교가 안되었다. ]
또 메서슈미트 109의 후방 플랩에는, 작동시 플랩과 주익 사이에 공간이 생기는 극간 플랩을 고안해, 스피트화이어의 스플릿 플랩에 비해 상승력을 증대시켜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극간형(slotted type)으로 날개를 만드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섬세한 기술이 필요했다고 하며, 기계적 장치가 더 첨가되어야 했고, 이에 따라 주익의 하중이 증가해 선회력은 스피트화이어에 비해 약간 떨어졌지만, 만족할 만한 상승력과 급강하 능력을 보이게 되었다.
[위 그림 중 A 그림은 메서슈미트의 극간 플랩(slotted flap)을, B 그림은 스피트화이어의 스플릿 플랩(split flap)을 그린 단면도이며, 아래 사진은 Bf 109의 극간 플랩을 확대해 보여준다. 극간 플랩을 이용하면, 벌어진 틈으로 공기가 유입되어 극간 앞전과 같이 상승력을 얻을 수 있다 ]
결론적으로 스피트화이어는 선회전을 장기로 하는 턴파이터였다 할 수 있으며, 메서슈미트 109는 상승력을 장기로 하는 에너지 파이터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설계상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냐에 따라 전투기의 성능은 많이 차이가 나며, 각 기종 마다 공중전 방식이 달라지므로, 어떤 기종이 더 우수하냐는 따지기 힘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종사 자신이 그 기종의 장단점을 잘 알고,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어느정도 전투기 기량이 비슷해야 비교가 되긴 하겠지만...)
스피트화이어의 3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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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트화이어는 설계자 미첼이 디자인한 기본틀을 조금씩 변형해가면서 대전 전기간을 거쳐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는데, 크게 세번의 세대로 시기를 나눠 볼 수 있겠다.
그 첫번째 세대는 롤스 로이스 머린 (Rolls-Royce Merlin) 초기 엔진을 사용한 시기로, 스피트화이어 Mk V형이 가장 주목할 만한 버전인데, 스피트화이어의 모든 버전 중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기도 했다.(6487 대 생산)
두번째 세대는 2 단계 출력 시스템을 구비한 새로운 롤스 로이스 머린 후기형 엔진을 장착한 시기로, 스피트화이어 Mk IX형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시기적으로 이 당시는 독일이 신형 전투기 Fw 190을 생산해, 영불해 상공에서 제공권을 거머쥐었던 때였고, 스피트화이어 Mk IX형이 개발된 목적도 새로운 엔진이 개발될 때까지 임시적으로나마, 포케볼프 190를 상대해 내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세대는 2500 마력의 강력한 롤스 로이스 그리폰(Rolls-Royce Griffon) 엔진을 사용한 시기로, 최고 속력 460 mph까지 낼 수 있었다. 이 세대에 가장 뛰어난 버전은 Mk 21과 Mk 22형으로 5날 프로펠러를 장착(Mk 14형부터 5날 사용)했고, 1945년 4월경 부터 임무에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 스피트화이어 버전은 Mk 24형으로 1948년 3월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스피트화이어는 총 40개의 세부 버전이 존재했으며, 총 23,000 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이중엔 약 2500 대 가량의 항모 탑재용 스피트파이어이며, 1942년 초부터 일선에 배치된 시파이어(Seafire)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 각 버전들에 대해 알아보자.
스피트화이어 Mk I형, Mk II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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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트화이어 Mk I 형은 1938년 8월부터 영국 공군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1940년 늦여름 영국의 본토항공전이 끝날 때 즈음에는 총 19개의 비행대가 스피트화이어를 주력기로 사용하고 있었다.(영국의 항공전 개전 당시에는 9개의 비행대가 스피트화이어를 사용하고 있었음) 당시 대규모로 몰려오는 독일 공군에 비교해 볼 때, 스피트화이어는 숫적으로 상대도 안되는 열세에 있었다. 그래서 스피트화이어는 주로 독일의 호위 전투기 Bf 109들과 조우했고, 그사이에 성능이 딸리지만 영국공군이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던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독일의 폭격기들을 공격했다. 이런 스피트화이어의 숫적 열세가 당시 영국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이 새롭고 매력적인 전투기는 영국민들에게 공군의 상징이며 영국의 전사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 최초의 실전 스피트화이어 Mk I형..... 영국 본토 항공전의 주역이었다. ]
스피트화이어 Mk I 형은 1030 마력의 롤스 로이스 머린 II, III 엔진을 탑재해, 최고 365 mph의 속력을 낼 수 있었고, 급강하시 속도는 450 mph에 달했다. 무장으로는 각 주익에 4정씩 총 8정의 브라우닝(Browning) 0.303 인치 기관총(7.7mm 구경, 1정단 300발 장전)을 장착했다. 이렇게 기본 무장인 8정의 기관총을 장착한 것을 Mk I A형이라하며 1500 대 가량이 생산되었고, 나중에 4정의 7.7 mm기관총과 2정의 20 mm 기관포를 장착한 Mk I B형은 약 30대 가량만이 생산되었다. 생산량에서도 알수 있듯이, 조종사들은 거의 A형을 선호했는데, 그것은 B형의 기관포가 자주 잼(Jammed)상태에 빠져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 영국의 본토 항공전에 투입되었던 두 번째 스피트화이어.... Mk II형
스피트화이어와 Bf 109를 비교해 보면, 최고속력과 선회력은 스피트화이어가 Bf 109 E형보다 우수했고, 상승력과 급강하 능력, 기관총의 사거리는 Bf 109 E형이 더 앞섰다. 또 특이하게 Mk I형은 2개의 날을 가진 목재 프로펠러를 달고 있었다고 하니, 이차대전 초반만 해도, 아직 일차대전의 전투기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Mk I의 후기형부터는 금속제 3날 프로펠러를 사용했다고 한다)
스피트화이어 Mk II B형의 모습...
독일의 프랑스침공과 연합군의 덩커크 철수시, 스피트화이어 Mk I은 독일의 Bf 109 E형과 첫 조우를 하게되었는데, 이것은 길고긴 이차대전 기간동안 호적수로서 처절한 대결을 벌이기에 앞선 세기의 강철날개간의 첫 대면식이기도 했다. 1940년 6월경부터, 보급에 들어간 스피트화이어 M k II은 파워를 1175 마력으로 올린 롤스로이스 머린 XII형 엔진을 얹었고, 3날 프로펠러를 장착했다. Mk I형과 마찬가지로 무장에 따라 A형과 B형으로 구별되었고, 총 920 대 가량이 생산되어, 영국의 본토 항공전에 투입했다.
스피트화이어 Mk V형, IV형, VI형, VII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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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중반이후 독일이 Bf 109F형을 등장시키자 F형의 우수한 성능에 놀란 RAF가 슈퍼마린사에 의뢰하여 발주한 것이 spitfire Mk. V형이다. 이 Mk. V형은 출력이 1440마력으로 더욱 향상된 머린 45엔진을 탑재한 것으로 외형에서는 Mk. II에 큰차이가 없으나 강력한 엔진 덕분에 비행성능에서 Bf 109F형에 뒤지지 않을만큼 향상을 보였다. ]
스피트화이어 Mk III형의 대량 생산이 취소되면서, 1941년 3월 경부터, 후속 버전으로 스피트화이어 Mk V 형이 그 뒤를 잇게 되었다. Mk V형 중 일부는 주익의 가장자리 타원형 부분을 마치 칼로 싹둑잘라낸 것 처럼 각지게 만들어 저고도에서 기동을 향상시켰는데, 이런 모양의 주익을 LF형 날개라 불렀다.(기존의 타원형 날개를 유지한 것은 F형 날개라함)
스피트화이어의 주익의 끝부분을 각지게 만들어 저공에서의 기동을 살린 LF형 주익을 보여주는 모형 (이 기종은 스피트화이어 Mk XVI이다)
[spitfire Mk.V형은 출력이 1440마력으로 더욱 향상된 머린 45엔진을 탑재한 것으로 외형에서는 Mk. II에 큰차이가 없으나 강력한 엔진 덕분에 비행성능에서 Bf 109F형에 뒤지지 않을만큼 향상을 보였다. 무장은 Mk. II의 B형을 이어받아 히스파노 20mm 기관포 2문과 7.7mm 기관총 4정으로 Bf 109F에 비해서 강력했다. 이후 독일과 영국의 주전선이 되었던 말타섬을 둘러싼 공방전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나타나 많은 활약하였으며 총 생산기수 6479기로서 스핏화이어 시리즈중 가장 많은 생산양을 자랑했을 만큼 대전 중반기 RAF의 주력 전투기였다. ]
사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이것은 참 재미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왜냐면, 영국의 항공전을 거치면서, 독일은 반대로 날개끝이 각진 Bf 109 E형을 개량해, 둥근 날개끝을 가진 Bf 109 F형을 만들었고, 영국의 스피트화이어는 비록 일부에 적용된 것이긴 하지만 반대 과정을 거친 것이다. 즉 독영 양 공군은 영국 본토항공전에서 서로의 전투기 개발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몰타섬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도 활약한 스피트화이어 Mk V형의 모습... 스피트화이어 버전 중 최대의 생산량을 기록한 버전이기도 하다 ]
스피트화이어 Mk V형은 기본 무장에 따라, A(94대 생산),B(3923대 생산),C형(2447대 생산)으로 나누었는데, A형과 B형은 Mk I, Mk II 형에서 구분한 것과 같은 분류였고, 추가된 C형은 4정의 20 mm 기관포만을 장착한 기종이었다. 엔진은 1440 - 1490 마력의 머린 45형, 머린 50형 엔진을 탑재했다.
1942년 3월, 허리케인으로 힘겹게 주축공군과 싸우고 있는 몰타섬으로 Mk V B형 15대가 영국 항모 이글호(Eagle)에 실려 보내졌는데, 이것이 처음 유럽 대륙 밖으로 공급된 스피트화이어 기종이기도 했으며, 나중에 북아프리카전선, 태평양 전선과 버마 전선에도 이버전이 공급되었다고 한다. 몰타의 영웅 뷰링도 이 기종을 이용해 놀라운 격추 행진을 벌이게 된 것이다. 뷰링은 통산 32기 격추를 달성했으며, 나중에 몰타의 팰콘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사진] 생산댓수가 가장 많아서 그런지 V형이 가장 우리에게도 친숙한 기종이다.
Mk V형의 일부는 무장을 줄이고 연료탑재량을 늘려, 정찰용으로도 사용하면서 스피트화이어 Mk IV형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 얼마후 주익의 면적을 늘리고, 4날 프로펠러를 채택했으며, 머린 47형엔진을 장착한 스피트화이어 Mk VI형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Bf 109의 상승력을 의식하고, 고공 기동을 향상시킨 버전이었다고 한다. 또 2 단계 출력의 머린 60형 엔진을 탑재하고, 입탈식 후미 착륙용 바퀴를 처음 장착한 Mk VII형도 생산에 들어갔는데, 역시 이것도 고공 기동에 초점을 맞춘 버전이었다. 또 Mk VII형 부터는 최고속력이 408 mph로 최초로 400 mph 대를 돌파해 의미가 있다하겠다.
스피트화이어 Mk IX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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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k. IX형은 1942년 초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형이다. 독일의 FW-190의 등장으로 공중전에서 Spitfire Mk. V형의 열세가 명백해 짐에 따라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설계된 기체이다. 더욱 향상된 1660마력의 머린 61엔진을 장착하였다.]
독일은 Fw 190A형을 실전 투입하면서, 유럽의 관문을 방어했으며, 그보다 성능이 떨어지던 스피트화이어 Mk V형기를 제압하고, 제공권의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즉 포케볼프 190은 스피트화이어 Mk V형에 비해, 선회력만 딸릴 뿐 거의 모든 면에서 성능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은 스피트화이어 Mk VIII형을 계획 중이었으나, 새로운 적수 Fw 190의 등장으로, 그 계획에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었다.
스피트화이어 중 2번째 생산기록의 Mk IX 버전.....
[Mk. IX형은 Mk. V형에서 큰변화는 없으며 신형 엔진 장착을 위한 최소한의 기체 개량만 실시 되었다. 기체자체의 설계가 워낙 뛰어난 스핏화이어였으므로 강력한 엔진을 탑재하는 것만으로도계속 일취월장의 변화를 보였다. ]
1942년 7월경, 대안으로 만들어 진 것이, 바로 스피트화이어 Mk IX형으로, 기체 프레임을 새로이 제작할 겨를이 없어, 당시 활동 중이던 Mk V C형 100대를 골라, 엔진만 2단계 출력 시스템의 롤스로이스 머린 엔진(61형, 66형, 70형)으로 교체했다. 처음 영국 공군의 계획은 다음 버전이 나올 때까지만 임시적으로 Mk IX형을 운용하는 것이었으나, 급조된 Mk IX형이 예상 밖으로 혁혁한 전과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면서, 아예 임시형에서 정식 버전으로 대량 생산에 들어가, 최종적으로는 Mk V형 다음으로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게 된다.(5665대 생산)
스피트화이어 Mk IX형의 모습.... 항공기 설계에서 우연찮게 우수한 성능을 얻게되는 것들이 종종있는데, 이 버전이 그 예중 하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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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국 격추 1위의 에이스 자니 존슨(Johnnie Johnson)의 모습.... 그도 스피트화이어 에아스중 하나였다. 비록 영국의 본토 항공전에는 거의 참가하지 못했지만, 후반기에 그의 스피트화이어는 격추의 신이었다.
Mk IX형의 기본 무장은 2정의 20 mm 기관포와 4정의 7.7 mm 기관총이었는데, 일부는 4정의 7.7 mm 기관총을 2정의 12.7 mm 기관총(0.5 인치 구경)으로 교체해 장착하기도 했다. 또 Mk IX 후기형부터는 캐노피가 눈물방물형 캐노피(tear drop canopy)로 바뀌어 후방시야를 개선했다.
이것은 독일 Bf 109의 갈란트 하우베(Galland Haube 갈란트 후드) 캐노피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후방시야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이시대의 유행처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P-47 썬더볼트와 P-51 무스탕 역시, D형으로 가면서 물방울형 캐노피로 교체되는 과정을 거치니.....
[그림] 초기에 영국 격추 1위를 달리다가, 자니 존슨에게 추월당해 일위를 차지 못했지만, 영국의 본토항공전 당시부터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한 아돌프 말란(Adolph Malan)....]
스피트화이어 에이스 중에서 자니 존슨 역시 Mk IX형을 이용해, 주된 격추기록을 달성하는데, 1943년 4월에는 하루만에 3기의 Fw 190을 격추시키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 주었으며, 최종 38기 격추를 달성해 이차대전 영국 격추 1위의 에이스로 등극했다. 자니 존슨과 막판까지 격추 경쟁을 벌이던 아돌프 말란도 뛰어난 에이스였는데, 독일 파일롯들의 아버지 베르너 뮐더스를 격추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며, 통산 27기 격추를 달성했다고 한다.
스피트화이어 Mk XIV형와 그외 버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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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tfire Mk. XIV형은 머린 엔진보다 훨씬 강력한 1735마력의 그리폰 엔진을 장착한것으로 그리폰 엔진은 머린엔진보다 약간 길고 컸기 때문에 기수의 설계가 변경되어 더 길어지고 뾰족한 형태의 기수를 가지게 되었다]
다음에 주목할 만한 버전으로는 Mk XIV형이 있다. 스피트화이어 Mk XIV형은 1944년 전선에 배치되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엔진의 교체였다. 이전의 롤스 로이스 머린엔진에서 더욱 강력한 2035 마력의 롤스 로이스 그리폰 엔진과 5날 프로펠러를 채택함으로써, 강력한 전투기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속력 437 mph, 20 mm 기관포 2정, 12.7 mm 기관총 2정을 주익에 장착 )
가장 뛰어난 성능으로 평가 받는 스피트화이어.... Mk XIV형, 그리폰 엔진의 탑재로 기수 부분이 날렵하다 못해 뾰족하게 변했으며, 동체길이도 늘어났다.
다른 전투기들도 마찬가지지만, 전투기 외형 변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엔진의 변화다. 그것은 엔진이 기수부분에 부착되는 프롭기에서 더더욱 그렇다. 즉 기수부분이 전투기 외형상 특징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그 크기나 굴곡의 변화는 세부 버전을 구별할 수 있게하는 키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롤스 로이스 머린엔진을 장착한 스피트화이어 이전 버전에서는 기수부분이 약간 통통하고, 볼륨감이 있었는데, 그리폰 엔진을 장착하면서 스피트화이어 앞모습은 가늘고 (뾰족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더욱 날렵하게 변했다. (결과적으로 Mk XIV형은 Mk IX형에 비해 동체길이가 약 45 cm 정도 길어졌다.)
[그리픈 엔진은 미해군의 F-6F 헬켓등에 장비된 Pratt & Whitney R-2800 에 견줄정도로 우수한 엔진으로 그리폰 엔진은 머린엔진보다 약간 길고 컸기 때문에 기수의 설계가 변경되어 더 길어지고 뾰족한 형태의 기수를 가지게 되었다. 옆모습을 보았을 때 기존형의 우아한 곡선을 가진형은 머린엔진을 장착한 것이고, 좀더 긴 형태의 기수를 가진 것이 그리폰 스핏화이어이다]
스피트화이어 Mk XVIII형의 실제 사진
당시는 연합군의 수 많은 중형 폭격기들이 유럽본토로 날아가던 때로, 이미 독일이 방어 자세를 취한지 오래였다. 미국의 4발 엔진 폭격기 대형 편대가 자체 방어가 뛰어나기는 했지만, 폭격기 단독으로는 독일 공군의 저항을 막아내기는 아직은 역부족이어서 호위전투기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몫은 미국의 P-51 무스탕이 담당했다. 스피트화이어와 P-47은 무스탕에 비해 항속거리가 비교가 안되었으니, 자연히 스피트화이어는 계속 영불해 근처에서 활동해야만 했다.
당시 스피트화이어 Mk XIV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독일의 비밀 병기이며 보복 무기 V1 로케트를 막아내는 것이었고 약 300기 이상을 공중에서 격추시키는 쾌거를 달성했다. 또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에는 프랑스 연안의 독일 기지와 철도, 차량들을 공격하는 지상 공격기로도 할약했으며, D-day 이후 프랑스로 기지를 옮겨, 고공 정찰 임무도 꾸준히 수행하며, 독일의 Fw 190기들과 자웅을 겨루었으며, 1945년 초에는 제트 전투기 Me 262기들과도 싸워 나갔다.
[사진] 스피트화이어의 아주 후기의 버전인 Mk XXII형의 비행모습
스피트화이어의 업그레이드 과정은 향상된 고공기동을 위한 변화의 과정이었다 말할 수 있는데, Mk XXII형에 와서는 분당 1500 m 라는 꽤 괜찮은 상승력을 보여주었다.
스피트화이어의 최종 버전은 Mk XXIV형으로, 이 버전을 마지막으로 이차대전 중 가장 뛰어난,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전투기 스피트화이어도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스피트화이어의 진가는 영국의 본토 항공전에서 발휘되었다. 제 3제국의 수중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조국을 구한 스피트화이어는 아직도 영국인들의 가슴에 살아있으며, 이차대전 영국의 항공전이 기억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출처 고공출격 (http://user.chol.com/~hartmannshim/)
일부 사진은 최신사진으로 교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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