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7일(주일) 낮 설교 - 성령강림절 후 제17주[청년주일] -
탐욕의 무덤 [기브롯 핫다아와]
( 민수기 11 : 4~20 )
Ⅰ. Story. 「 노인과 샘물 」 인터넷카페 예화&창작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우거진 야자수와 맑은 샘물이 있어서 사막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야자수그늘 아래서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떠 주는 것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그네들이 물을 마시고 나서 고마움의 표시로 몇 푼의 동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노인은 나그네들을 맞이하여 시원한 물을 떠주고, 서로 대화하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심으로 돈을 받지 않으려고 극구 사양했지만, 차츰 동전에 마음이 기울어갔고, 동전이 쌓여가기 시작하자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돈을 받다보면 곧 부자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 후부터 노인은 이제 동전을 안 주는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물 값을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노인의 전대에는 돈이 쌓여갔습니다. 노인은 더 많은 돈이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더 많은 물을 퍼 올려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샘터를 최신시설로 바꾸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펑펑 나왔지만 어찌된 일인지 샘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노인은 주변의 야자수가 샘물을 빨아먹어서 샘이 말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주변에 있는 야자수를 모두 베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곧 야자수그늘이 없어져버렸고 샘물은 아주 말라버렸습니다. 노인도 결국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탐심이 자신의 생명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한이 없습니다. 옛날 네 사람이 모여 서로의 ‘희망사항’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 사람이 “나는 금 만 돈을 가졌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라며 탄식하듯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이런 돈만 아는 사람 같으니. 나는 신선이 되어 학처럼 하늘에 올라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돈이고 뭐고 나는 열 고을 정도 다스리는 대감이 되었으면 한이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금 만 돈을 가지고, 학을 타고 날아 먼 곳에 가서, 열 고을을 다스리고 싶다” 그렇습니다. 탐심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의 끝은 무덤입니다.
Ⅱ.
어느 더운 여름날 한 농부가 호두나무 아래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쉬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호박넝쿨을 보고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은 참 이상한 분이야. 저 조그만 넝쿨에다 큰 호박이 열리게 하신 이유를 모르겠어. 또 호두 같이 작은 것은 저 큰 나무에 열렸으니 참으로 불공평하구나!” 농부는 혀를 차면서 그늘에 누웠다가 단잠에 빠졌습니다. 얼마 동안 잠에 취해 있을 때, 농부의 이마에 “딱!”하고 호두 하나가 떨어져 농부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깜짝 놀란 농부는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하나님! 이 큰 나무에 커다란 호박이 아니라 작은 호두가 열리게 하셨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하고 소리쳤습니다.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릅니다. 금방 이랬다가 또 금방 저랬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요 생각입니다. 그 마음을 탐욕이 사로잡으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서 1년가량 머물다가 가나안땅을 향해 출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머잖아 불평 충만해졌습니다. 불평하면 불평이 늘어나고, 감사하면 감사가 늘어나는 법입니다. 한번 불평하기 시작한 이스라엘은 이번에는 날마다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만나에 싫증내기 시작했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시작한 불평이 온 이스라엘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은 주저앉아 울며 보채는 아이처럼 “아, 고기 먹고 싶다. 아, 고기가 그립다!”며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습니다. 탐욕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자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보이지 않고, 오직 불평거리만 보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시험에 빠진 것입니다. 원래 광야생활 자체가 시험과 연단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시험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탐욕의 안경을 끼면 그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다른 것은 전혀 안 보입니다.
Α. 섞여 사는 무리들이 문제의 발단입니다(4a, 출 12:38).
1. 제일 먼저 탐욕을 품었던 사람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이 아니라 그 중에 “섞여 사는 무리”입니다(4a). 섞여 사는 무리가 누구일까요? 이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같이 따라 나온 사람들입니다.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하였으며”(출 12:38)
2. 이들이 바로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이들은 신앙의 기초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출하시는 장면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차별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이스라엘을 따라가자고 생각하고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3. 늘 먼저 불평하는 사람, 늘 먼저 말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섞여 사는 무리’요, ‘가라지’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이들의 언행을 구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말씀중심, 교회중심, 목회자중심으로 판단해 보아야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진실이 보입니다.
Β. 탐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태도입니다(4b, 21-23).
1. 이스라엘이 굶주렸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늘의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심으로 신앙의 군더더기를 빼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만나 주신 목적=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법 교육.
2. 탐욕은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내 것으로 움켜쥐려는 마음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서 먹게 할꼬?” 이미 탐욕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탐욕에 빠지면 안 보입니다.
3. 하나님은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지중해 쪽에서 메추라기를 몰아오셔서 이스라엘 진 사방 100리 길에 1미터 높이로 깔아놓으셨습니다. 그날 밤새 그리고 그 이튿날까지 메추라기를 주어서 모았는데, 적게 모은 사람이 열 포대를 거둬들였습니다.
Γ. 탐욕의 끝은 파멸입니다(34-35).
1. 모든 것은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탐욕에도 끝이 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탐욕의 끝은 파멸입니다. 1년 가까이 고기를 먹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미친 듯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아예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백성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재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지나치게 먹어서 죽었던지, 썩은 고기로 인해 죽었을 것![추측]
3. 그래서 그 땅 이름을 “탐욕의 무덤”이라는 의미로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지나친 욕심의 끝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탐욕에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탐욕에 빠지면 죽을 때까지 멈추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브레이크입니다.
Ⅲ.
어느 낚시꾼이 희한하게 생긴 ‘이상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물고기는 금빛을 띠고 있었는데, 물고기가 낚시꾼에게 말했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드릴게요.”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물고기가 하도 애원하기에 이런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소원 다섯 가지만 들어주면 너를 살려주마.” 물고기는 서글프게 말했습니다. “저는 세 가지 소원밖에 들어줄 수 없어요.” 낚시꾼은 다시 채근하며, “그럼 네 가지 반만 들어다오.” 물고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습니다. “세 가지밖에는…” “좋다. 네 가지 소원만 들어다오.” 그러나 물고기는 이미 숨이 끊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탐심은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한 욕심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는 ‘더 움켜쥔다’는 뜻입니다. 프랭클린은 “배부른 것이 모든 악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12장15절에서 예수님은 “…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탐욕의 끝은 무덤입니다. “기브롯 핫다아와”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탐욕이 내 마음을 점령하지 않도록, 내 마음이 탐욕과 섞이지 않도록, 주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