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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지명 전 사전접촉으로 야구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
8월 16일 열릴 예정인 2011 프로야구 신인 지명회의가 자칫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12일 LG를 제외한 나머지 7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LG가 신인 지명회의를 앞두고 1라운드 지명 예상자들과 사전접촉을 벌이는 등 야구계의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KBO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LG의 재발방지 약속이 이뤄지지 않으면, 최악에는 신인 지명회의 보이콧도 불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포츠춘추>의 취재 결과, LG는 7월 중순 2명의 아마추어 선수와 사전접촉하고 이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메디컬 체크를 받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7개 구단 스카우트 "LG가 지명 전 메디컬 체크 했다."
내막은 이렇다. LG는 7월 중순 신인 지명회의 1라운드 지명 예상자들인 A고 B, C고 D, E고 F 선수와 사전접촉했다. 이들 고교 졸업 예정자 3명은 2011 신인 지명회의에서 1라운드 지명 가능성이 매우 큰 투수들로, 8개 구단 모두 관심을 집중하는 이들이었다.
LG는 3명의 선수에게 건강검진을 제안했고, 이 가운데 E고 F를 제외한 2명이 응했다. E고 F는 아버지가 LG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제안에 응한 2명을 복수의 정형외과로 데려가 MRI(자기공명영상) 촬영과 각종 검사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 소재의 모 재활센터로 이동해 추가 검사를 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평범한 건강검진이었지만, 야구계의 시각으론 전형적인 메디컬 체크였다.
그도 그럴 게 선수들이 검사를 받은 모 정형외과는 야구선수들 사이에서 팔꿈치, 어깨수술로 유명한 곳인데다 실제로 이들은 손목, 팔꿈치, 어깨 등을 집중 검사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모 재활센터를 들른 것도 평범한 건강검진이 아니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LG는 검사를 통해 세 선수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아냈다. 그리고 얼마 후, LG의 메디칼 체크를 받은 고교생 2명은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몇 차례의 홍역을 치른 끝에 아마추어 야구와 프로야구는 서로의 '룰'을 지켜왔다(사진=대한야구협회) |
1라운드 예상 지명자들이 LG의 메디컬 체크를 받았다는 소식은 최근에야 알려졌다. 모 스카우트는 “소문으로 떠돌던 이야기라 믿지 않았으나, 실제로 확인해보니 모두 사실이었다”며 “해당 선수들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했으며, 이들이 메디칼 체크를 받은 곳에서도 ‘선수들을 검사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스포츠춘추>의 취재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당 선수들과 선수들의 학교 감독들은 “LG의 제안을 받아들여 메디컬 체크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LG가 지명 전 메디컬 체크를 한 배경 아마추어와 프로는 캐치볼을 하는 사이다. 서로가 공을 주고 받으며 공생하는 사이다. 캐치볼이 원활하게 하려면 서로의 가슴에 정확히 공을 던지는 정성이 필요하다. 과연 프로가 아마를 상대로 그렇게 해왔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3명의 아마추어 유망주들이 특정구단의 메디칼 체크에 응한 이유는 간명하다. 모 감독은 “프로와 아마는 ‘갑’과 ‘을’의 사이”라며 “프로 스카우트가 ‘메디컬 체크를 하자’고 제안하면 대부분의 아마 선수는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선수들의 막연한 기대감도 메디컬 체크에 응하게 된 배경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프로팀의 메디컬 체크 제안을 ‘나를 지명하기 위한 절차’로 오인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째서 LG는 신인 지명회의를 1달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아마추어 유망주들을 한꺼번에 메디컬 체크한 것일까.
모 구단의 스카우트는 “부상 없는 ‘깨끗한 선수’를 데려가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스카우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이번 신인 지명회의 1라운드에서 LG는 한화 다음으로 지명권을 행사한다. 한화가 유창식(광주일고)을 지명할 게 뻔한 상황에서, LG는 A고 B, C고 D, E고 F, G대 H 등 유망주들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실력이 엇비슷하다면 부상이 없거나, 부상 위험이 적은 선수를 지명하려 했을 테고. 그러던 차에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메디컬 체크를 통해 부상 여부를 직접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스카우트가 LG의 메디컬 체크를 ‘무리수’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신인 지명회의 전 프로의 아마추어 접촉이 명백한 프로·아마 협정서 위반이기 때문이다.
사전접촉은 프로·아마 협정서 위반 야구계 인사들은 "지명 전 사전접촉, 메디컬 체크는 야구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사진=대한야구협회)
LG의 메디컬 체크 소식을 접한 모 팀의 베테랑 스카우트는 "지금껏 프로·아마 협정서에 따라 각 구단 스카우트들은 최대한 아마추어 선수들과의 사전접촉을 금해왔다"며 "경험 많은 LG 스카우트팀이 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LG가 뻔히 사전접촉 금지조항을 알면서 고의적으로 이를 무시했다는 뜻이다.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아마추어 야구를 대표하는 대한야구협회는 1982년 프로·아마 협정서를 체결했다. 올해까지 5번의 개정을 거친 협정서는 ‘아마추어 선수의 보호 육성을 위해 프로의 무분별한 스카우트를 막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이 협정서에 따라 프로 스카우트들은 신인 지명회의 전까지 아마추어 선수들과의 사전접촉을 자제했다. KBO에서도 지명 전까진 아마추어 선수들과 사전접촉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실제론 사전접촉이 횡행했다. 신인 지명회의 전 이미 계약을 마무리 짓고, 뒷돈까지 오간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지역 연고와 관계없이 전년도 성적의 역순으로 1라운드 1순위권을 갖는 전면 드래프트 제도 시행 이후엔 사전접촉이 덜해졌다. 연고지 지명제 때는 연고지 선수에게 용돈이나 글러브를 주는 등 자연스럽게 관리할 수 있었으나, 전면 드래프트 이후엔 '우리 팀에 올 수 있다'는 확신이 덜한데다 자연스러운 접촉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부 스카우트는 주변의 눈을 피해 사전접촉을 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사전접촉이 협정에 위반된다'는 스카우트들의 말을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프로·아마 협정서엔 사전접촉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프로구단은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기간 중 고교졸업 예정선수와의 입단교섭 및 계약을 할 수 없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지명을 받았어도 미계약한 선수들에게만 해당한다.
KBO 정금조 운영팀장은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프로의 교섭을 막은 건 이 기간이 프로 미지명자나 미계약자들이 대학 야구팀에 가등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야구규약과 협정서에 통달한 스카우트 대부분이 ‘신인 지명회의 전 사전접촉을 해선 안 된다’고 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7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협정서의 제1조 목적을 들었다. 이 조항엔 ‘(협정서는) 아마추어 야구와 프로야구 간의 질서를 유지하며 우리나라 야구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로 명시하고 있다.
모 스카우트는 “사전접촉 금지는 협정서의 제1조 목적에 명시한 ‘아마추어 야구와 프로야구 간의 질서를 유지’하는 구체적 실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까 지금껏 스카우트들이 사전접촉을 자제한 건 ‘사전접촉이 아마추어와 프로야구 간의 질서 유지’에 심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KBO의 유권해석도 같다. 정 팀장은 “협정서의 모든 조항은 ‘아마추어 선수와의 접촉은 지명 이후’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구체적 금지조항이 없어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분별한 사전접촉은 아마추어와 프로야구간의 질서를 훼손하는 행동”이라며 “구단들도 이를 잘 알기에 지금까지 사전접촉을 자제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하는 대한야구협회도 프로의 아마추어 선수 사전접촉 금지는 협정서의 기본전제라는 입장이다. 협회 이상현 사무처장은 “지명 전 프로의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사전접촉은 야구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동”이라며 “프로 스카우트가 고교야구팀에 찾아와 특정선수만 접촉한다면 동료선수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심하겠느냐”고 말했다.
LG "그런 사실 없다." 그러나, 지난해도 지명 전 메디컬 체크는 있었다. 국내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고교야구팀 감소와 유망주들의 국외 진출로 갈수록 힘들어 하고 있다. 고교, 대학 전국대회라면 전국 어디를 찾아가는 그들은 주목받지 않는 가운데서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유망주가 성장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 반대로 유망주가 성장하면 그 공은 1, 2군 코칭스태프의 몫이다.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공정한 경쟁만 지켜진다면 어떤 어려움에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 역시 빛을 잃고 있다. 사진은 언제부터인가 고교대회를 점령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LG를 제외한 7개 스카우트는 LG가 단순 사전접촉을 넘어 유망주들을 메디컬 체크한 것에 대해 공분하고 있다.
한 스카우트는 “LG가 사전 메디컬 체크에 따라 건강한 선수를 파악하고, 이 선수를 지명한다면 나머지 팀들은 전후 사정도 모른 채 ‘웬 떡이냐’하고 부상 선수를 지명했다가 보기 좋게 당할 수 있다”며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됐다면 LG가 속으로 얼마나 고소했겠느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다른 스카우트도 “LG의 메디컬 체크는 ‘우리 팀만 좋은 선수를 확보하면 그만’이라는 전형적인 이기주의”라며 “이는 산부인과에서 아들인, 딸인지 성 판별을 한 뒤 출산을 결정하겠다는 소리와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BO 이상일 사무총장도 “신인 지명은 공정한 경쟁이 바탕”이라며 “LG가 지명 전 메디컬 체크가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불공정 경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전 구단이 지명 전 메디컬 체크를 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선수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야구계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중대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모 구단 관계자는 “어린 선수들에게 건강을 매개로 직업선택을 강요하는 건 정부 지침과 사회 흐름에도 맞지 않다”며 “지명 전 메디컬 체크가 성행한다면 지명 선택의 중심이 지금의 능력이나 앞으로 가능성이 아니라 부상 경력으로만 치우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카우트들도 “신인 지명은 미래 자원을 확보한다는 개념”이라며 “지명 전 메디컬 체크가 이뤄진다면 충분한 실력을 갖춘 유망주들이 단지 부상 경력 때문에 지명 기회마저도 박탈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카우트들은 일부에서 제기하는 “1라운드 지명 후 부상이 드러날 때 팀에 막대한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모든 구단에서 지명 후 계약 전 메디컬 체크를 하고 있다”며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을 시 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KBO의 관계자 역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지명 전 메디컬 체크를 한 건 이번 LG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라며 "구단 대부분이 지명 후 계약 전 메디컬 체크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명 전 메디컬 체크가 성행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야구계의 몫이다. 한 대학 감독은 LG의 지명 전 메디컬 체크 소식을 듣고 “그럼 대학팀은 부상 선수들만 받으라는 소리냐”며 “프로의 근간이 되는 아마추어 야구 활성화에 도움은 주진 못할망정 아마추어 야구를 고사하려고 작정한 모양”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7개 구단 스카우트는 LG 스카우트 팀장이 ‘프로야구 스카우트협회’ 회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더 허탈해하고 있다. 한 스카우트는 “어떻게 회장이 회원들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느냐”며 “LG의 불공정성보다 인간적인 배신감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고 털어놨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프로 스카우트들이 고교 유망주에게 입단을 매개로 뒷돈을 주고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학생야구헌장'을 제정했다. 이 헌장에 따르면 학생선수들은 학교 선배 출신이라고 해도 직업 야구선수와 훈련도 함께 할 수 없다. 프로 스카우트로부터 신발 한짝만 받아도 엄중한 제재를 받는다. 만약 프로팀이 아마추어 유망주를 상대로 지명 전 메디컬 체크를 실시했다면 어떨까. 네이버 일본야구전문가 기무라 고우치이 씨는 "그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사실이라면 일본에선 상당한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7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13일 모처에서 모임을 하고 LG의 지명 전 메디컬 체크와 관련해 숙의하기로 했다. 스카우트들은 “KBO의 철저한 조사와 LG의 재발방지 약속과 사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신인 지명회의 보이콧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자세다.
KBO는 조만간 LG를 상대로 사실 확인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총장은 “7개 구단의 진정이 있을 시 철저한 사실확인에 들어갈 것”이라며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안에 걸맞은 제재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KBO의 한 관계자는 “LG의 신인 지명을 승인하지 않는 것도 제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O는 진상조사와 함께 대한야구협회와 협의해 지명 전 사전접촉 금지조항을 강화할 방침이다.
대한야구협회도 LG의 지명 전 메디컬 체크가 사실로 드러나면 KBO에 강력한 항의와 재발방지를 요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LG 스카우트팀 관계자는 <스포츠춘추>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명 전 메디컬 체크를 한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재발방지와 사과에 대해서도 “그 같은 사실이 없는데 왜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스포츠춘추>의 추가 취재결과, LG는 지난해에도 아마추어 유망주들을 상대로 지명 전 메디컬 체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모 팀에서 뛰는 이 선수는 “지난해 지명 전 LG 스카우트팀의 권유로 모처에서 메디컬 체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당시 LG로부터 메디컬 체크를 받은 선수 가운덴 성장판 검사를 받은 선수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선수가 뛰는 소속팀 관계자도 "계약이 끝난 뒤 선수로부터 그같은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그때 이의를 제기했다면 재발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인 지명회의’라는 잔칫날을 앞두고 야구계는 당분간 진실공방에 휩싸일 전망이다. 야구계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서나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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